소설리스트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86화 (외전) (186/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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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86화

외전. 인연의 고리

“폴센 영지의 몇몇 마을에서 괴질이 발생했다는 급보입니다.”

상아탑의 22층, 상아탑주 이안 페이지의 방.

그곳에 고위마법사 ‘로난’이 각 영지로부터 올라온 ‘상아탑 직통 요청서’들을 하나하나 보고하고 있었다.

“아직 파악된 원인은 불명이며, 다행히도 수동적인 전염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더 퍼지기 전에 조치가 필요할 듯합니다.”

보통 이러한 업무라면 아래에 위치한 마법사들이 담당할 법도 하건만, 로난은 절대 그리하지 않았다.

“원인불명의 괴질이라, 마을 단위를 벗어나기 전에 막아야겠군요.”

물론 이안도 거리낌이 없었다.

애당초 로난은 그런 사람이니까.

보다 더 높은 마법적 경지를 향한 갈망, 그 갈증으로부터 삶의 원동력을 얻어내는 마법사 아니겠는가?

‘대단하기도 하고.’

더불어 이안은 로난을 인정했다. 그 집착에 가까운 갈증과 별개로, 설마 로난이 4클래스를 넘어서 5클래스, 심지어 6클래스 초입에 이르리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내 도움을 받았다고는 해도, 대단한 건 대단한 거다.’

무려 6클래스의 대마법사.

인류 중 ‘세 번째’에 속한다. 공식적으로는 ‘두 번째’였다.

첫 번째가 프란 페이지.

두 번째가 이안 페이지.

세 번째가 바로 로난.

실로 엄청난 위업이었다.

“지금 즉시 리커버리 매지션에 소속된 마법사 전원, 그리고 황실 연금술사 더글라스를 괴질의 발생지로 투입하도록 하십시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거의 다 죽어가는 사람도 살려낼 법한 조합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매번 불치병을 타파해 나가는 리커버리 매지션과 더글라스의 조합이었으니까.

“제가 폴센 영지로 연결되는 포탈을 열어 드리겠으니, 로난 님께서는 말씀드린 인원을 소집해주세요.”

“폐하께 올릴 보고는 어찌하시겠습니까? 지금쯤 폐하께도 괴질과 관련된 장계가 올라갔을 텐데요.”

“제가 직접 찾아뵙고 조치사항을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전염성 괴질이니만큼 선조치가 급한 상황이니까요. 이해해주실 겁니다.”

이해의 범위를 넘어서 상아탑주에게는 ‘선조치 후보고’란 권한이 존재한다. 문제될 거리가 없으리라.

“즉시 움직이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로난 님.”

로난이 빠져나간 탑주의 방.

그럼에도 이안은 쉴 새가 없었다.

워낙 업무의 양이 엄청났으니까.

“후우……!”

깨어난 이후로 어느덧 4년.

그간 이안은 바쁘게, 나아가 충실하게 살아왔다.

상아탑주로서, 누군가의 아들로서, 형으로서, 이웃으로서, 친구로서, 그리고 연인으로서 맡은 바 온 정성을 쏟아냈다.

‘오늘 폐하께서는 오후나 되어야 시간이 나실 테니까…… 가벼운 업무 하나만 더 처리해 볼까?’

그것은 일종의 ‘강박증’과도 같았다. 무려 9년이란 시간을 다른 차원에 소모하지 않았던가?

하물며 그전까지도 ‘이안 페이지’로서 충실했던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파견 마법사 제도 개혁안?’

상아탑주는 달에 한 번, 여러 마법사들이 올린 개혁안이나 이론서 등의 논문 중 하나를 심사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결코 ‘간단한 업무’라고 표현할만한 일이 아니었지만, 이안은 달랐다.

‘아, 이게 그 데커드 님께서 은퇴 전 마지막으로 작성하신 논문인가.’

논문 처리 업무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해’다. 해당 논문을 정확하게 이해해야만 상아탑주로서 올바른 답을 내려줄 수 있는데, 이안에게는 그 과정이 무엇보다 쉬웠다.

‘어디 한 번 볼까.’

이안이 끈으로 엮인 데커드의 개혁안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개혁안의 모든 글자들이 푸른색 마나로 하여금 허공으로 뿜어져 나왔다.

과거, 불사의 힘을 파헤치고자 수많은 흑마법서를 단기간 습득할 때 사용했던 바로 그 방식이었다.

“흐음.”

불과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데커드의 개혁안을 외워 버린 이안, 그가 눈을 감고 개혁안의 내용을 음미했다.

완벽하게 암기했으니, 이제는 차곡차곡 정리할 차례였다.

“재미난 생각을 하셨네.”

노년의 마법사 데커드는 말년에 이르러 마법 연구보다 상아탑의 행정적 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그 관심은 자연히 수많은 개혁안으로 이어졌고, 이번 개혁안 역시 상아탑 전체를 박수를 받을 만했다.

“몇 가지 사소한 부분만 보완해 드리면 뭐, 더할 나위 없겠네.”

이안이 깃펜을 들었다.

그렇게 또 하나의 업무를 봤다.

해가 떨어지고, 밤이 올 때까지.

흡사 강박증과도 같은 상아탑주 이안의 업무처리는, 도무지 끝날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 * *

하늘에 깔렸던 어둠이 걷히고 나서야, 날밤을 꼬박 새고 나서야 이안은 퇴근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문제는 그 기쁨의 크기가 평소보다 십 분의 일 수준이라는 거다.

‘가봤자 아무도 없으니…….’

그것이 문제였다.

폴센 영지로 파견된 더글라스를 따라 래디오는 물론 어머니 베네사마저 따라갔다. ‘페이지 재단’의 책임자로 따라나선 거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며칠 이상은 저택 전체가 조용할 터.

‘딱히 위험하진 않겠지만.’

물론 걱정되지는 않았다. 4년간 꾸준히 발전해온 리커버리 매지션, 그리고 연금술 장인 바이온의 정수를 완벽하게 습득한 더글라스 아니겠는가?

그 정도 하급의 전염병쯤이야 능히 해결할 수 있으리라.

‘여왕님도 없고.’

페어리 퀸 또한 부재중이었다. 다른 권속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드래곤 일족의 ‘급변한 인간세계 나들이’를 가끔씩 도와주곤 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으니까.

‘하이리도 폴센 영지로 보냈으니.’

이안은 더 이상 공주 하이리 그린리버를 ‘공주마마’라고 칭하지 않았다. 무려 이름을 부르기에 이르렀다.

지난 4년, 두 남녀의 사이가 상당히 가까워진 덕택이었다.

‘만날 사람이 없군. 만날 사람이.’

황제 하이든은 불과 몇 시간 전에 만났다. 그 또한 많이 바쁜 것 같았다. 시간 날 때 식사나 하자는 약속만 맺은 채 돌아와야 했다.

‘올리버 경께서도 요즘은 제자 키우는 재미에 푹 빠지셨던데…….’

틈만 나면 오래간만에 대련이나 해보자던 올리버 역시 요즘은 뜸했다. 새롭게 얻은 제자 ‘카놀란’을 키우는 재미가 쏠쏠한 까닭이었다.

‘……돌아가서 업무나 볼까?’

참으로 눈물겨운 결론이었다.

선택권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텅 빈 저택으로 돌아가느니.

그냥 일이나 하고 말겠다.

“음?”

이안은 포탈이나 텔레포트 대신 발로 걸어 퇴근하는 쪽을 선호했다.

덕분에 퇴근할 때마다 마법 아카데미의 커다란 담장을 지나쳐야 했는데, 오늘따라 유독 아카데미 담장의 모습이 정겹게 느껴졌다.

‘흐음, 슬쩍 구경이나 해볼까?’

망설임에 그친 생각이었지만 행동은 달랐다. 이미 아카데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갔으니 말이다.

‘원칙대로라면 외부인은 들어가지 못하는 게 맞긴 한데, 애당초 들어갈 수도 없고.’

그도 그럴 것이, 마법 아카데미의 정문과 후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담장도 높아 어지간해선 몰래 들어가기가 불가능했다.

물론 플라이 마법과 텔레포트 등이 가능한 이안에게는 어렵지 않겠다만.

‘내가 무슨 도둑도 아니고.’

이안은 조금 더 점잖은 방법을 택할 권한이 있었다. 바로 상아탑주라는 위치, 그리고 상아탑주임을 증명해 주는 ‘보패’였는데, 이안이 바로 그 보패를 꺼내 마법 아카데미의 정문 앞으로 가져갔다.

우우우웅-!

이윽고 상아탑주의 보패가 아카데미 정문과 푸른빛으로 공명하기 시작했고, 그 공명이 잦아질 때쯤 굳게 닫혔던 정문도 천천히 열렸다.

“이 맛에 상아탑주 하지.”

마법사의 정점 상아탑주, 심지어 일 잘하는 상아탑주 아니겠는가? 이 정도 권력 남용이야 애교였다. 전 상아탑주 허버트처럼 한탕 거하게 해먹는 것도 아니고.

“햐, 진짜 하나도 변한 게 없네.”

이안이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이번 생은 아카데미에 다니지 않았다.

전생의 기억까지 거슬러 올라가자면 실로 오래간만에 방문하는 상황, 한데도 변한 것이 없었다. 건물부터 조성된 정원에 이르기까지. 외관적으로는 확실했다.

“그래서 더 좋지만.”

그 중얼거림이 옳았다.

세상천지가 아무리 변해도 마법 아카데미만큼은 항상 그대로였다. 언제나 그 자리에 세워져 주변을 감싸주는 고목처럼 꿋꿋하고도 꾸준했다.

‘이렇게 보면 또 맞는 것 같다니깐? 세상이 변할수록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학자들의 주장 같은 거.’

이안이 별생각을 다 떠올리며 익숙한 산책길 안쪽으로 걸어갔다. 이렇게 쭉 걷다 보면 다양한 보조 마법으로 중첩된 정원이 나타나는데, 그래서 그런지 피부에 체감될 정도로 상쾌한 공간이었다.

‘덕분에 인기는 없다만.’

심신을 달래기에 이토록 좋은 정원이 없을 테지만, 아카데미의 생도들에게는 인기가 없다 못해 바닥을 치는 정원이었다. 어째서일까?

‘감시 마법까지 섞여 있거든.’

정원에 깔린 수많은 보조 마법.

그중에는 학생의 일탈을 감시하기 위한 주문 역시 내포되어 있었으니까. 그렇지 않아도 참견과 감시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년 소녀들 아니겠는가?

당연한 얘기였다.

‘덕분에 잘 쉬곤 했지.’

물론 이안은 괜찮았다.

소위 일컬어지는 ‘범생이’.

그것이 전생에 아카데미를 다녔던 이안의 ‘별명’이었으니 말이다.

“쓰으읍! 후우…….”

마침내 정원 중심부까지 들어선 이안, 그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천천히 내쉬었다.

과연 전생의 그 상쾌함과 편안함 그대로였다.

“근데, 꼬마야.”

심호흡을 몇 번이나 내쉬었을까?

이안이 정원 한구석을 바라봤다.

동시에 나지막한 어조로 말했다.

“겁먹지 말고 나와. 정원에 먼저 있었던 건 너면서 왜 숨어있어?”

사실 이안은 정원에 들어서는 순간, 본인 말고도 누군가가 자리하고 있음을 감지했다. 다만 위협적이지 않았기에 모른 척했을 뿐.

“어지간하면 모른 척 해주려고 했는데, 좀 위태로워 보여서 말이지.”

이안의 능력은 단순히 주변 기척을 감지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았다, 그보다 몇 단계 더 진화되어 기척의 주인이 품고 있는 감정을 대략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홀로 독차지하고 있었던 정원을 빼앗겨서 우는 건 아닐 것 같고.”

보이지 않는 정원 한구석.

그곳에 숨어있는 꼬마.

필시 생도일 터.

“얼굴이나 보자. 괜찮으니까.”

아카데미의 생도는 곧 미래의 마법사다. 상아탑주로서 쓸데없는 오지랖이 결단코 아니라는 거다.

사박!

이안의 말에도 한참동안 침묵을 지켰던 정원.

마침내 그 한편으로부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수풀이 부딪치는 소리였다.

“오, 그래. 이리 오렴.”

아카데미의 정복을 입은 소년.

그중에서도 2년 차의 복장이었다.

잔뜩 상기된 얼굴이 이안의 추측대로 잔뜩 울어 재낀 모양새였다.

‘나랑 머리색이 같네.’

밝은 갈색의 머리카락.

크게 희귀하진 않으나, 보기 쉬운 머리카락 색깔도 아니지 않겠는가?

“……어?”

하나 진정으로 놀라운 점은 머리카락의 색깔이 아니었다. 아니, 머리색과 조화되어 특정한 놀라움을 선사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소년, 외람된 말이지만 너무…….

‘못…….’

이안이 생각을 집어삼켰다.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옳지 못한 행위니까. 물론 소년의 떨어지는 외모 때문에 놀란 것은 아니었다. 이유가 명확했다.

‘닮았다.’

밝은 갈색의 머리카락. 못난 편에 속하는 얼굴. 마법사라는 특징까지.

누군가와 많이 닮았다.

어린 소년이라는 점, 그리고 마법사로서 타고난 마나 하트의 강도가 약하다는 점만 제외하자면 그랬다.

‘아닐 테지만.’

언어의 힘조차 뛰어넘어 버린 이안. 그에겐 본질을 읽는 힘이 있다.

그 힘으로서 단언하건대, 녀석은 단지 평범한 소년이었다. 물론 마법사의 자질을 타고났으니 아주 평범하진 않겠다만, 어디까지나 이안의 기준에선 평범함 그 자체였다.

“내가 알기로 아직 자야 할 시간일 텐데. 숙소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불가능할 거고. 그치?”

이안의 의문은 합당했다. 아카데미 생도로서의 삶이란 생각보다 자유롭지 못하다. 수면 시간 역시 철저하게 통제된다.

분명 그럴 텐데, 이 생도는 정원에 나와 울고 있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단 거다.

“그, 그게…….”

누군가를 닮은 소년.

녀석이 우물쭈물했다.

쉽게 말을 내뱉지 못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괜찮으니 얘기해 보렴. 부당한 일을 당했다면 이 아저씨가 아주 그냥 한 방에 해결해 줄 수 있거든? 이래 보여도 높은 사람이란다.”

“노, 높은 사람이요……?”

“그럼.”

“교, 교수님들보다요?”

“당연하지.”

“하, 학장님보다…….”

“그분도 내가 임명해 드린 거야.”

이안의 어깨가 조금 으쓱거렸다. 당연히 거짓말도 아니었다. 아카데미뿐만 아니라 상아탑 어디에도 이안보다 높은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 그럼 혹시…….”

“상아탑.”

“……네?”

“저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야.”

“……?”

“내가.”

“……!”

상아탑의 주인.

모든 마법사의 정점.

이안이 상아탑주임을 밝혔다.

“헉……!”

소년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교수도, 학장도, 심지어 고위마법사도 아닌 상아탑주라니? 이게 갑자기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거, 거짓…….”

“잘 봐. 수업시간에 배우잖아? 초상화도 봤을 텐데? 역사상 최고의 상아탑주 이안 페이지. 너와 같은 머리색을 가졌고, 항상 시퍼런 로브를 걸치고 다니지. 생각보다 젊고, 쌓아올린 업적은 수없이 많아.”

제 입으로 ‘역사상 최고의 상아탑주’란다. 문제가 있다면 맞는 말이라는 거다. 세상 누구도 이안의 자화자찬에 토를 달지 못하리라.

“그게 나야.”

“…….”

“대단하지?”

“…….”

“너무 멋지고?”

“…….”

소년이 입을 꾹 다물었다. 이안의 말처럼 수업시간에 배우긴 했다. 역대 상아탑주를 다루는 수업 등에서 자주 접할 수 있었으니까. 다만.

‘과묵하신 분일 줄 알았는데…….’

눈앞에 나타난 아저씨가 정말 상아탑주라면, 소년은 오늘부로 이안 페이지에 대한 인식, 혹은 환상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할 것 같았다.

“크흠!”

다소 썰렁한 소년의 반응에 이안이 부끄러운 듯 목청부터 가다듬었다.

너무 나갔나? 그 아찔한 생각이 머릿속에 휘몰아쳤다. 다른 얘기로 넘어갈 필요가 절실했다.

“어쨌거나 꼬마야. 내 소개를 했으니 네 소개도 좀 듣고 싶은데.”

“아! 저, 저는…….”

소년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말하는 것이, 어떤 콤플렉스나 트라우마로부터 비롯된 버릇인 것 같았다.

“……나르프, 제 이름은 ‘나르프’라고 해요. 재작년에 마나반응 검사를 통과했고…… 작년에 입학했어요. 지, 지금은 2년 차고요.”

나르프, 그것이 누군가와 닮은 소년의 이름이었다. 그린리버 제국에서는 보기 드문 작명인 것 같았다.

“나르프, 입에 착 달라붙네.”

이안이 그 이름을 몇 번이고 더 입속에 굴렸다.

빈말이 아니었다. 발음하기 어려운 것 같으면서도 착착 달라붙는다. 재미난 이름이다.

“나르프, 숙소를 어떻게 빠져나왔느냐는 묻지 않으마. 대신 울고 있던 이유나 좀 듣고 싶은데.”

이안이 점잖은 어조로 말했다. 탑주라는 위치에 어울리는 말투였다.

“……빠져나온 게 아니에요.”

“응?”

“여기서…… 잤어요.”

“뭐? 여기서?”

뜻밖의 대답.

이안이 귀를 기울였다.

“애들이 못 들어오게 해서…….”

“애들? 친구들을 말하는 거야?”

소년 나르프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 녀석들을 친구라 불러도 될까 싶었지만, 딱히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었으니까.

“친구들이 왜?”

“내, 냄새가 난다고…….”

“냄새?”

이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당연하게도 냄새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설령 냄새가 난다 한들 생도를 내쫓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저를…… 싫어해요.”

“친구들이?”

“못생기고, 냄새나고, 공부도 잘 못한다고……. 아, 아직 마나 움직이는 법도 모르거든요. 아니, 알긴 아는데…… 잘 안 돼요…….”

간단히 표현하자면 ‘집단 따돌림’이었다. 세상에, 길거리 평범한 아이들도 아니고 마법사로서 길러지는 아이들이, 인류 최고의 엘리트라 볼 수 있는 마법 아카데미의 생도들이 요따위 유치한 짓거리라니?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동시에 소년 나르프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봤다.

한눈에 봐도 잔뜩 위축된 표정, 불어터진 눈가까지. 밤새 울어 재낀 모양이었다.

‘타고난 재능은 아쉽긴 한데…….’

마나 하트와 마나 브레인. 양쪽 모두 일정 수준 이하였다. 아쉽지만 발전 가능성도 낮았다.

냉정한 평가를 하자면 그랬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 소년 나르프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있잖아요. 저는요. 얼굴 가지고 놀리는 거, 냄새난다고 뭐라 하는 거. 다 괜찮아요. 기분은 좀 나빠도 참을 수 있어요. 근데…… 근데!”

잠시 말문을 멈춰 세운 나르프.

자그마한 주먹이 꽉 쥐어졌다.

녀석을 가장 화나게 하는 것.

그건 놀림과 멸시가 아니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돼요.”

“뭐가 안 된다는 거지?”

“여기, 마법 아카데미에서 배우는 거 전부 다요. 진짜 열심히 하는데, 누구보다 열심히 듣고, 복습하고, 연습한다고 생각하는데……!”

마법이란 ‘재능의 영역’이다.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명백하다.

그렇기에 소년 ‘나르프’는 좌절감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설렁설렁 한다면 모를까, 그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는 상황임에도 성과가 없다.

그 저릿한 좌절감을 고작 13살짜리 소년이 감당할 수 있겠는가?

“흐음.”

하지만 그 대답이야말로 이안에게 있어 상당한 의외였다. 저 어린 나잇대라면 따돌림을 당하는 상황에 더 큰 무게가 실리기 망정일 터. 한데 문제로 삼지 않는다고?

“그러니까 네 말은, 여기서 배운 것들을 이해하긴 하는데, 활용이 불가능하단 얘기로구나. 바로 그 부분이 화가 난다는 거고. 맞지?”

이안이 묻자 조막만 한 얼굴을 세차게 흔들어대는 소년 나르프였다.

“그렇단 말이지.”

이안이 고민했다. 제아무리 상아탑주라고 해도 생도들 간의 분쟁을 정리하기란 어렵다.

겁을 줄 수는 있겠으나, 딱 거기까지일 뿐일 터.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는 거다.

‘다행이라면, 이 녀석의 성격.’

생도들의 따돌림은 괜찮다. 그저 미천한 재능에 화가 솟구칠 뿐이다.

이게 무엇을 뜻하겠는가?

그 분노를 잠재울 수만 있다면, 부족한 재능을 충족시킬 수만 있다면, 따돌림처럼 자잘한 장애물쯤이야 능히 이겨낼 수 있다는 뜻이리라.

‘타고난 재능을 바꿔주는 방법이라, 아무리 나라도 그런 건…….’

단언컨대 없다. 확신할 수 있다.

불가능하단 얘기다.

‘가만.’

확신이 굳는 그때였다. 불현듯 이안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기억 한 줄기가 있었으니.

‘그러고 보니 그때…….’

과거. 드래곤 일족과 이안이 프란 페이지에게 대항하고자 정식으로 손을 잡았던 당시, 동맹의 징표처럼 받았던 선물 하나가 떠올랐다.

‘용의 내단.’

모든 드래곤 일족의 수장, 리시스 라덴쥬의 심장에서 생성된 내단. 마법사로서 엄청난 기연이었으나, 이안에게는 쓸모가 없었던 선물.

‘주머니 속에 그대로 있겠지.’

받기만 하고 까맣게 잊어버렸다.

만약 이 내단을 평범한 마법사, 혹은 생도가 섭취한다면? 실로 엄청난 효과를 누릴 수 있으리라.

‘이거 하나 먹는다고 단번에 고위마법사가 되는 건 아닐 테지만.’

당장 힘을 키워주진 않는다. 대신 잠재력을 상승시켜줄 터. 마나 하트와 브레인의 한계치를 말이다.

‘줘도 될까?’

뭐가 어찌 되었든 문제는 하나였다.

처음 보는 꼬마에게 이러한 기연을 함부로 줘도 될까? 꼬마 말고도 감사히 받아줄 주변인은 많다. 당장에 떠오르는 사람만 대여섯은 된다.

한데 그 모두를 차치하고 내어줄 가치가 있을까? 이 꼬마에게?

“…….”

평소의 이안이었다면 고민하지도 않았을 거다. 생판 모르는 남에게 어마어마한 기연을 넙죽 선사할 만큼 배려심이 깊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닮았어. 너무.’

그 존재. 애증의 존재. 프란 페이지를.

‘기분이 이상하군.’

그럼에도 경계가 되진 않았다.

오히려 자꾸만 눈길이 갔다.

마음 한편이 복잡했다.

“저…… 아저씨?”

나르프의 조심스러운 부름에.

“아저씨가 아니라 상아탑주다.”

한마디 툭 던지는 이안이었다.

물론 이제 막 마법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소년에게는 커다란 쇳덩이보다 무거운 한마디이기도 했다.

“사, 상아탑주님! 죄송…….”

“죄송하라고 한 말은 아니고.”

가볍게 손을 저어준 이안.

그가 마침내 생각을 정리했다.

간단히 표현하자면.

‘주자. 까짓것.’

간단한 문제였다.

만약 내단이 또 필요하다?

그럼 또 받으면 그만이다.

‘심장도 아니고 내단인데.’

고작 내단 하나에 인색하겠는가?

요구자가 무려 이안 페이지인데.

그러니 아낄 거 하나 없다.

마음이 가면, 행하는 거다.

“꼬마야. 아니, 나르프.”

이안이 소년 나르프를 불렀다. 동시에 아공간 주머니로 손을 집어넣었다. 오래전 담아두고 잊어버렸던 내단을 끄집어내기 위해서였다.

“음, 이건가?”

드디어 이안의 손아귀에 딸려 나온 자그마한 붉은색 물체, 그야말로 완벽한 구 형태의 내단이었다.

“맞네.”

용의 내단을 꺼낸 이안이 냄새부터 맡아봤다.

혹시라도 변질되었을까 싶은 의구심 탓이었다. 물론 그러할 가능성은 추호도 없으리라.

“좋아. 신선해.”

겉보기론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아도 이는 명백한 ‘생체의 일부’ 아니겠는가? 확인할 가치가 있었다.

“먹어.”

“……네?”

“맛은 좀 없겠다만, 눈 딱 감고 삼켜봐. 장담하는데, 너한테는 아주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테니까.”

“기, 기적이요?”

“그래. 기적.”

기적.

틀린 말도 아니었다. 일찌감치 재능의 벽에 부딪혀버린 나르프에게는 더더욱 특별한 경험이 될 터.

“…….”

시뻘건 용의 내단을 받아본 소년 나르프, 이안과 마찬가지로 냄새부터 맡았다. 손으로 살짝 눌러보기도 했고, 혀끝에 살짝 접촉시켜 맛을 보기도 했다. 별맛은 없었다.

“이, 이게 뭔데요?”

“용의 내단.”

“……네?”

나르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짜고짜 용의 내단이라니?

심지어 먹으라고? 이걸?

“저, 정말 상아탑주님 맞아요?”

“공부 열심히 했다며? 내 초상화랑 정보, 질리게 봤을 거 아니야?”

“그, 그렇긴 한데…….”

“그럼 됐지. 뭘.”

“…….”

한데도 계속 망설이는 나르프.

이안이 한마디를 더 붙였다.

“꼬마야. 나는 지금 너에게 큰 선물을 주고 있다만, 원치 않는다면 그냥 가져가마. 어쩌면 그것도 네가 타고난 복일지도 모르지.”

원인을 알 수 없는 변덕으로 용의 내단을 건넨 이안이었으나, 굳이 싫다는 녀석의 입에 기연을 쑤셔 넣어줄 생각 역시 추호도 없었다.

“싫으면 다시…….”

“머, 먹을게요!”

결국 소년, 나르프의 결심이 섰다.

더불어 입을 쩍하고 벌렸다.

내단을 삼키기 위해서였다.

꿀꺽!

마침내 시뻘건 내단이 나르프의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표현 그대로 두 눈 딱 감고 삼켜버렸다.

“……!”

눈뿐만 아니라 두 주먹, 나아가 온몸으로 퍼진 힘줄과 근육 하나하나에 힘이 들어갔다.

모르긴 몰라도 용의 일부 아니겠는가? 무언가 대단하고도 격렬한 변화가 일어날 터. 그에 걸맞은 대비가 필요했다.

“…….”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

한참을 기다렸던 나르프.

녀석이 감았던 눈을 떴다.

동시에 이안을 바라봤다.

“푸흡!”

이안은 웃고 있었다.

장난기 가득한 미소였다.

“사, 상아탑주님……?”

언급했던 ‘기적’과도 같은 변화는커녕, 일말 변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그 용의 내단을 내어준 상아탑주란 아저씨는 웃고 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걸까?

“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데요?”

“당연하지. 뻥이니까.”

“……뻐, 뻥이요?”

“용의 내단은 무슨! 그거 그냥 돼지 간 뭉친 거야. 동그랗게.”

“……?”

뻥?

돼지 간?

동그랗게 뭉쳐?

혼란을 느끼는 나르프였다.

그리고 그 혼란에 쐐기를 박는 한마디가 이안으로부터 들려왔다.

“녀석! 그럴수록 더욱 정진해야 하거늘, 입학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요행을 바라는 것이냐!”

나르프가 할 말을 잃어버린 채 눈만 껌뻑거렸다. 전혀, 하나도 위협적이지 않은 호통소리였으니까. 단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오죽하면 코웃음까지 흘러나올 판일까.

“내 상아탑주로서 요행만 바라는 생도를 그냥 두고 볼 수가 없구나. 앞으로 달에 한 번! 개별적으로 찾아와 불시검사를 할 터이니, 조금의 진전이 보이지 않을 시에는 즉각 퇴학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

“그, 그게 갑자기 무슨…….”

“하면 나는 바빠서 이만!”

이안은 나르프에게 질문의 틈을 주지 않았다. 그야말로 한바탕 폭풍처럼 제 할 말만 쏟아낸 뒤, 텔레포트 주문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

우두커니 남아버린 나르프.

녀석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뭐지?”

탑주임은 확실했다. 인물도, 복장도, 하물며 텔레포트 주문에 이르기까지 증거가 차고 넘쳤으니까.

“뭘까……?”

나르프가 한 번 더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그럼에도 답을 알 길이 없었다. 왠지 ‘지나가던 심심한 아저씨’한테 당해 버린 기분이었다.

“……모르겠다. 진짜로.”

어느덧 아침 해가 완연하게 밝았다. 곧 생도 숙소 전체의 아침점호가 시작될 터.

나르프가 급히 정원을 빠져나갔다. 아무래도 오늘 있었던 일은 나중에, 여유가 좀 생기면 마저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기분은 괜찮네.’

요상한 상아탑주 아저씨를 만난 덕일까? 한없이 우울하고 분했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덕분에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던 숙소로 향하는 발걸음 역시 가벼웠다.

왠지 이 느낌이라면 오늘 하루, 아니 앞으로가 순탄할 것만 같은, 정말이지 밑도 끝도 없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 요행은 무슨. 어제보다 더 열심히 해보자. 매일매일 두 배씩 열심히 하는 거야. 그럼 언젠가는 성과가 나타나겠지! 나도 당당하게 검사받고 입학한 생도잖아?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아자! 아자!’

정신이 바짝 든 아카데미 생도 나르프. 녀석은 알고 있을까?

방금 먹어치운 그 ‘용의 내단’이 돼지 간 뭉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정말 어마어마한 기연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언젠가, 아주 먼 훗날.

이안의 ‘후대 상아탑주’로서.

새로운 ‘8클래스 마법사’로서.

이겨낼 일이 많을 거라는 운명을.

1부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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