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85화
외전. 새로운 황태자
작살 낚시.
그물이나 낚싯대가 아닌, 뾰족한 작살을 던져 물고기를 포획하는 수렵의 방식이자 생존의 기술이기도 했지만, 누군가에게는 다소 거친 ‘취미생활’이 될 수도 있었다.
“으쌰!”
그린리버 제국의 황실에도,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황궁에 마련된 널찍한 호수에도 그 취미생활을 즐기는 남자가 있었으니.
“이 미꾸라지 같은 놈들!”
제법 연로한 나이인데도 탄탄한 육체를 자랑하는 남자, 전 황제이자 상왕 ‘테리 그린리버’였다.
촤악-!
드디어 작살에 덩치 큰 물고기 하나가 꿰뚫려 나왔다. 무려 마흔 번하고도 여섯 번째 시도만의 성공이었으나, 상왕 테리는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으하하!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더니만, 이런 월척을 봤나!”
그가 작살로부터 물고기를 때어내 자랑했다.
그 대상은 상왕 테리의 호위를 맡은 제1 황실기사단, 여러 수발을 담당하는 하인들, 마지막으로 한 줌 권력욕까지 전부 다 내려놓은 2, 3, 4황자들이었다.
“옳지, 오늘은 이 녀석이나 통째로 구워먹어야겠다. 이런 게 또 가끔 먹어주면 별미라고, 별미.”
보통 낚시를 즐긴다면 잡고 풀어주게 마련이거늘, 작살 낚시는 애당초 그러한 방생이 불가능한 부류였다.
생각해 보라, 포획하는 순간 죽음을 맞이하지 않겠는가?
‘한 마리로 만족하셨으면…….’
한편, 그 ‘괴상한 취미’의 현장을 바라보던 신하들의 마음은 하나로 집결되었다.
‘제발 저 한 마리로 만족했으면 좋겠다’는 바람 말이다. 어쩔 수 없었다.
작살 낚시는 평범한 낚시와 달리 물고기 수가 계속해서 줄어든다, 그리고 그 물고기의 수급은 전적으로 신하들의 몫. 상당히 귀찮은 업무였다.
“보자,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다 배불리 먹이려면…… 적어도 스무 마리는 더 잡아야겠는데? 어이쿠! 이거 일 났구먼. 일 났어.”
하지만 그 신하들의 바람은 무참히 깨져 버렸다.
표현처럼 산산이 조각났다. 스무 마리라니, 심지어 최소한으로 잡은 숫자가 스물이라니!
‘망했다.’
평범한 물고기도 아니다. 비교적 작살에 잘 맞아줄 큼직한 어류가 필요하다.
그런 놈을 공수해 오는 일이 쉬운 줄 아는가?
천만의 말씀!
‘상왕 전하께서 황제 폐하셨을 때는 이런 문제가 없었는데…….’
당연한 얘기였다.
그때는 바빴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괜찮다. 여유로움이 흘러넘친다. 오히려 더 젊어진 것 같았다.
상왕, 테리 그린리버 말이다.
‘아주 기겁들을 하는구먼.’
사실 테리 그린리버도 신하들의 번거로움을 알고 있긴 했다. 하지만 미안함까지 느끼지는 않았다.
‘그만큼 잘해주고 있으니까.’
그렇다. 일개 하인이 받을 대우라고는 누구도 믿기지 않을 정도의 대우를 해줬다.
그러한 바, 테리는 죽을 때까지 이럴 생각이었다. 그저 남은 생애 동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아들과 신하들이 이끌어나가는 세상을 감상하다가, 그렇게 가리라.
“음! 아니지. 스무 마리가 뭔가? 장정들이 몇인데. 못해도 마흔 마리는 잡아줘야 배부르게…….”
장난기가 발동하기 시작한 테리 그린리버. 그의 충격적인 선언이 모두에게 공표되는 순간이었다.
“저, 전하! 상왕 전하!”
또 다른 하녀 하나가 접근했다. 무엇이 그리도 급한지 아주 허겁지겁 달려왔다. 복색을 보아하니, ‘황비궁’의 하녀인 것 같았다.
“설마……?”
황비궁의 하녀가 이 시간에.
그것도 저토록 급히 달려왔다?
상왕 테리가 한 가지 경우를 떠올렸다. 마침 시기도 시기이니만큼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 상왕 전하! 송구스럽사옵니다만, 황비 마마께오서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다. 의복만 갖춰 입고 따라가도록 하지.”
재미난 작살 낚시는 끝났다.
더 즐거운 일이 남아있을 테니까.
상왕의 며느리이자 황비, ‘마가렛 그린리버’만 무사하다면 말이다.
* * *
모그리안 대영주의 딸.
이제 어엿한 제국의 황비.
마가렛 모그리안. 아니, ‘마가렛 그린리버’가 황비궁의 분만실에 들어간 지도 어느덧 수 시간째.
딱!
그 분만실의 문 앞으로부터.
딱!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딱!
규칙적으로, 오랫동안 들려왔다.
이는 바로 제국의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의 오른쪽 손가락과 왼쪽 손가락이 일으키는 소음이었다.
“으으…….”
하이든 그린리버, 제국 역사상 그만큼 다양한 변화를 접해본 황제가 없었다.
일생이 긴장감의 연속이었건만, 지금 느끼고 있는 긴장이야말로 가히 최고봉에 이르렀다.
목숨을 위협당하거나 계승 경쟁에서 밀려날 수도 있었던 상황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기분이었다.
“……!”
어찌나 긴장했는지, 어찌나 오감을 열어놨는지, 자그마한 소리나 기척에도 흠칫 놀라기에 이르렀다.
“휴우우…….”
덕분에 다른 이들도 곤욕이었다. 휴가를 떠난 올리버 대신 황제의 호위를 담당하게 된 부단장 폴도, 여타 하인들까지 덩달아 긴장했다.
“폴.”
“하명하시옵소서.”
“마, 만약에 말이야. 아들이면 어쩌지? 뭐부터 해야 하는 거야?”
“그런 것은…… 소장도 잘 모르겠습니다. 송구하옵니다.”
“그, 그럼 딸……. 공주님이 태어나면? 내가 뭐부터 해줘야 하지?”
“소장도 잘…….”
황실의 기사는 가정을 이룰 수 없다. 그것이 오랜 규칙이다.
한데 제2 황실기사단의 부단장 폴이 무엇을 알겠는가?
긴장감에 그 간단한 사실마저 망각했던 황제 하이든, 그가 폴의 눈을 한참동안 바라보더니, 이내 깨달은 듯 끄덕였다.
“미, 미안.”
“아니옵니다.”
“폴, 혹시 가정을 이루고 싶다면 말해. 내 어떻게든 황실 기사단의 혼인에 대한 금지를 풀어줄…….”
오랜 금기를 풀어주겠노라 말했던 황제 하이든. 그가 자신의 입 구멍을 급히 틀어막았다. 정신이 없다 보니 별 헛소리가 다 나온다.
“내가 정신이 없네. 또 미안.”
“폐하. 긴장되시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더 편하게 풀어내셔야 하옵니다. 새로운 황실의 일원을 처음 만나는 자리가 아니십니까? 본디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는 첫인상이 중요한 법이옵니다.”
듣고 보니 그랬다.
폴의 말이 실로 옳았다.
아들, 혹은 딸과의 첫 만남.
전혀 긴장할 필요가 없으리라.
앞으로 오랜 시간 함께할 어린 친구 하나를 만나는 거니까.
“쓰읍! 후우우……!”
그래. 맞다.
마음 편하게 먹자.
황제 하이든의 심호흡 소리가 수차례 더 울려 퍼졌다.
심호흡의 효과인지, 마음가짐의 효과인지는 모르겠다만, 긴장으로 가득했던 속내가 제법 안정되는 것 같았다.
“폐하!”
그때, 소식을 듣고 온 상왕 테리 그린리버가 황제 하이든에게 다가왔다. 거의 달려오는 수준이었다.
“아바마마.”
급히 왔다는 한마디가 이처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정말 오래도록 기다린 장손의 탄생에 상왕 테리는 평범한 할아버지가 되어버렸다.
“소식을 듣고 급히 왔습니다. 황비께서는 어찌하시고 계십니까?”
비록 제국 내 권력 최고의 위치까지 올라선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였으나, 아비인 상왕에게는 극진함을 잃지 않았다.
반대로 상왕 테리는 황제에게 아랫사람 된 자의 예의를 빼먹지 않고 갖췄다.
“아직 이렇다 할 기별은 없사옵니다만, 들어간 지가 꽤 흘렀으니 곧 어떤 소식이 나올 것도 같습니다.”
황제 하이든의 설명에 상왕 테리가 흥분된 가슴을 쓸어내렸다. 안도의 한숨도 깊숙하게 토해냈다.
“휴! 다행이군. 내 늦지 않았어.”
운이 나쁘다면 평생 볼 수 없을지도 모르리라 여겼던 장손 아니겠는가? 그 얼간이 황태자 하이든과 혼인을 희망하는 가문이 없었고, 정작 정신을 차린 이후부터는 하이든 본인이 혼삿길을 거부했으니까.
내심 후사 구도를 어찌 짜야 하나 걱정했었는데, 마침내 장손의 탄생이 임박한 거다.
늦은 감이 있다고는 하나, 뭐 어쩌겠는가? 지금이라도 ‘시작’했으니 됐다.
‘아직 팔팔하겠지.’
상왕 테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직 황제도, 황비도 젊은 나이다. 그 나이에 불이 한번 붙었으니, 번져나가는 것은 시간문제일 터.
달칵!
그때였다. 이윽고 분만실의 문이 열렸다.
그곳으로부터 황비 마가렛의 무사 분만을 도왔던 노년의 유모가 걸어 나왔다. 그녀는 과거 하이든 그린리버의 탄생을 도왔던 장본인이기도 했다.
“폐하, 마마.”
유모로서 잔뼈가 굵은 만큼, 눈앞에 놓인 황제와 상왕을 보고도 딱히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어, 어찌 되었나?”
“황비는 좀 괜찮은가?”
오히려 황제와 상왕 쪽이 곱절은 더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같았다.
“먼저, 황비 마마께서는 건강하십니다. 극도의 안정이 필요한 터라 직접 나오실 수는 없사옵니다만,”
당연한 얘기였다.
다행스럽기도 했다.
분만 도중 잘못되는 경우가 얼마나 부지기수던가?
그럼에도 건강함을 지켜냈다는 말에 순간 감사의 기도까지 올리는 하이든이었다.
“아, 아기는…… 아기는 어떻지?”
물론 이 다음도 중요했다. 특히 황비의 건강상태가 몹시 양호함을 확인해둔 이상, 아기의 상태보다 중요한 문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기씨께서는…….”
말문을 의도적으로 흐리는 유모였다. 그러자 상왕 테리가 한 걸음 다가서며 재촉하기에 이르렀다.
“이보게 유모. 우리 황자들 낳을 때도 이러더니만, 지겹지도 않나?”
“상왕 전하, 이 미천한 것의 유일한 낙이오니, 조금만 양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혹 불쾌하시다면 즉시 이 미천한 목을 쳐주시옵소서.”
“허어……!”
상왕 테리는 평생 져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늙은 유모에게만큼은 항상 패배하는 것 같았다. 하이든을 낳을 때부터 장손에 이르기까지, 이것도 참 긴 역사였다.
“흠흠!”
상왕이 어떤 표정을 보이든 말든, 늙은 유모는 황제 하이든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읍하며 말했다.
“폐하. 감축드리나이다. 제국력 521년, 붉은 전갈자리 태생의 건강하신 황자마마이시옵니다.”
그린리버 제국력 521년생.
여름에 해당하는 붉은 전갈자리.
새로운 황태자의 탄생일이었다.
“황자…… 아들이라고?”
상왕 테리가 먼저 중얼거렸다.
아들이란다.
“아들……?”
황제 하이든도 덩달아 읊조렸다.
아들이란다.
“…….”
황제 하이든, 상왕 테리.
두 부자가 잠시 침묵했다.
그저 몸뚱이만 부르르 떨었다. 기쁨으로 가득한 몸부림이었다.
“그럼 들어오시지요.”
늙은 유모가 길목을 비켰다. 분만실 안쪽으로 들어가라는 뜻이었다.
“황비……?”
당연한 이치로 황제 하이든이 앞장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황비 마가렛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온 힘을 소진한 듯 창백한 얼굴이었으나, 품에 안은 누군가를 바라보며 연신 웃어 보였다. 바로 비단에 감싸진 아기였다.
“폐하.”
황비 마가렛이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로 황제 하이든을 불렀다. 소음방지 마법이 걸려있어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마가렛의 비명으로 황궁이 떠나갈 기세였으리라.
“어서 이쪽으로 오시어요.”
하지만 그 쉬어버린 목소리에는 크나큰 차별점이 존재했다. 비록 쉬긴 했어도, 그 속에 담긴 감정만큼은 행복과 환희로 가득했으니까.
“이 아기가…….”
조금 얼떨떨한 표정으로 다가간 황제 하이든. 그 역시 얼떨결에 아기를 받아 품었다.
태어남과 동시에 한바탕 울어 재낀 모양인지, 곤하게도 잠들어 있었다.
“내…… 아들이라고……?”
아들.
아들이라.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현실이었다.
아기의 심장박동이 콩닥콩닥 느껴졌고,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온몸으로 전해졌다.
앙다문 입과 눈, 조막만 한 코가 참으로 앙증맞았다.
“이 아기가, 내 아들.”
그 말을 몇 번이나 더 중얼거렸을까? 이윽고 황제 하이든의 얼굴에 화사한 미소가 피어났다.
“아바마마.”
아들을 품은 황제 하이든.
그가 상왕 테리에게 말했다.
“황손의 이름을 지어주셔야지요.”
“이름? 내가 말이냐? 아, 아니. 제가 이름을 말입니까? 폐하.”
이 상황이 얼마나 좋으면, 나아가 이름을 지어달라는 말에 당황했으면 순간 예법마저 잊어버렸을까?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으음…….”
기쁘기는 했다. 하지만 신중해야 한다. 처음으로 지어보는 피붙이의 이름, 무려 그 기회를 빼앗는 일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정말 그리 해도 되겠습니까?”
“장차 이 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황태자가 아니겠습니까? 제국의 영원한 성군이신 아바마마께서 손수 지어주셨으면 합니다.”
황제이자 아들의 말에 상왕 테리가 잠시 고민했다. 나아가 기회이기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생각해둔 이름이 존재하긴 했으니까.
“좋습니다. 폐하께서 원하시면, 감히 이 늙은이가 황태자 전하의 이름을 지어드리도록 하지요.”
어떤 이름이 좋을까.
수많은 후보 중 어떤 이름이?
상왕 테리의 고민이 길어졌다.
“…….”
마침내 고민을 끝낸 상왕 테리.
그의 입술이 느릿하게 떨어졌다.
“소신이 폐하께 추천을 드리고자 하는, 황손 마마의 이름은…….”
그 말에 황제 하이든은 물론 황비 마가렛의 양쪽 귀가 쫑긋하게 세워졌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물러나 있는 하녀들과 늙은 유모, 문밖 기사들까지 모두가 그랬다.
“프란츠, 프란츠가 어떠십니까?”
프란츠.
프란츠 그린리버.
그것이 짧게는 몇 분 후, 길게는 며칠 후에 이르기까지. 하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그린리버 제국의 모든 백성들이 속삭일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