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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84화
외전. 제국의 기사
돌이켜 보면 그랬다.
단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었다.
황실의 기사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이후부터 쭉 황태자를 지켰고, 오늘에 이르렀다.
자연히 ‘휴가’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처음이군.”
황태자. 아니, 황제의 호위기사.
제2 황실기사단의 단장.
그린리버 제국의 검공.
드래곤 슬레이어.
올리버 레이우드.
그가 중얼거렸다.
“휴가라, 흐음.”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의 배려로 무려 반년 동안 주어진 휴가, 그 자유로움이 썩 어색한 올리버였다.
‘뭘 하면 좋을까.’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황족 수호를 최우선으로 두는 황실의 기사에게 가정이란 약점에 불과하다.
즉 전통적으로 혼인이 불가하다는 얘기다. 자연히 반 년 간의 휴가를 함께 즐길 가족도 존재하지 않는다.
“…….”
올리버의 고뇌가 길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자리였다.
간단히 표현하자면, 할 게 없다.
‘수련?’
생애 첫 휴가계획에 수련부터 떠올리다니. 그야말로 대륙의 제일검 올리버 레이우드다운 생각이었다.
‘아니지, 아니야.’
하지만 지극히 그다운 생각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휴가를 하사받기 전,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의 신신당부가 떠올라 버린 탓이었다.
“놀아. 무조건!”
아무 것도 하지 말라신다.
그냥 놀아보라신다.
폐하께서 말이다.
황명이란 거다.
“으음…….”
도대체 무얼 해야 한단 말인가? 차라리 본 드래곤을 상대하는 일이 훨씬 더 속 편할 지경에 이르렀다.
‘오래간만에 이안 공과…….’
대련을 한번 요청해 볼까? 수련이 아닌 대련은 놀이에 속하지 않을까? 과연 폐하께서 인정해 주실까?
“바쁩니다.”
“…….”
하지만 황제의 생각을 가늠해볼 여유조차 없었다. 그 전에 먼저 이안의 거절을 받았으니까. 어찌나 단호하게 잘라내는지, 누가 보면 이안이 칼잡이인 줄 알겠다.
“탑주로 부임하고 휴가만 십 년 넘게 써서 말이죠. 죽을 때까지 여유로울 날은 없을 것 같네요.”
결국 올리버는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채 상아탑을 빠져나왔다. 이제 또 무엇을 해야 하는가? 놀라니? 도대체 뭘 하고 논단 말인가?
‘고향이나 한번 내려가야겠군.’
결국 정답은 하나였다.
그래도 피붙이가 존재하는 곳.
제국의 북부, 모그리안 영지.
그곳에 소속된 가문.
레이우드 일가.
‘오랜만에 형 얼굴도 좀 보고.’
몇 년간 떠돌았던 황태자와의 여행 도중에도 고향은 방문하지 않았다. 아니, 애당초 귀족일가의 성이나 저택은 일절 삼갔다. 오로지 민생을 살피기 위한 여행이었으니까.
‘변했겠지. 많은 것들이.’
황제의 즉위식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대대로 검의 가문이었던 레이우드 일가는 언제나 모그리안 영지의 국경을 지켰다.
전쟁의 위협이 미미한 시대라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즉위식에 참가함으로써 귀족 간의 인맥을 쌓고, 새로운 황제와의 안면을 트는 등 으레 당연시되는 선택을 누리지 않았다.
대신 ‘국경의 수호’라는 오랜 가업을 지켰다. 올리버 레이우드의 우직한 성품은 사실상 집안 내력이었다.
‘이참에 민간 비행선을 타볼까.’
사실, 올리버에게는 아주 소박한 꿈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고위층을 위한 ‘전용 비행선’이 아닌, 민간인들의 탑승이 허용된 ‘민간 비행선’을 타보는 것이었다.
‘폐하와의 여행은 오로지 말, 혹은 두 다리만 가지고 움직였으니까.’
이내 결심을 내린 올리버가 민간 비행선의 ‘선착장’으로 향했다. 비록 하늘을 날아다니는 이동수단이긴 하나, 선박의 모양새를 띄었기에 선착장이란 표현이 굳어버렸다.
“자! 모그리안 영지로 향하는 비행선, 마지막 탑승권 판매 종료까지 삼십 분! 딱 삼십 분만 남았소! 정원까진 고작 열 장밖에 남지 않았소이다! 어서들 서두르시오!”
운이 좋았다.
별생각 없이 왔거늘 바로 탑승할 수 있게 되었다. 기분이 좋아진 올리버가 탑승권을 판매하는 선착장 관리인 쪽으로 다가갔다.
제국에서 총괄하는 비행선 사업이기에, 선착장 관리인도 하급 관리와 제국군이 도맡고 있었다.
“한 장 주시오.”
“거, 신분패부터 보이시고.”
“신분패?”
본디 신분패라 함은 제국의 백성임을 증명해 주는 보패를 뜻할 터. 문제가 있다면 올리버 레이우드가 귀족이라는 점이었다.
그에게는 딱히 신분패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귀족으로서, 그리고 기사로서 올리버 레이우드를 증명할 보패 몇 가지는 존재하긴 했으나…….
‘집에 있지.’
일단 신분부터 밝힐까? 내가 바로 기사, 올리버 레이우드요. 그 한마디로 충분할까?
아니, 애당초 밝힌다고 믿어나 줄까? 믿는다면? 민간 비행선에 탑승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따라 왜 이리도 고민이 많은지, 세상 살기가 참 어려움을 느끼는 올리버였다.
“당장 신분패는 없소만.”
“무슨 소리요? 이 제국 땅에 신분패 없는 백성이 어디 있다고?”
이곳은 민간 비행선의 선착장이다. 귀족의 경우를 생각할 겨를이 없고, 무엇보다 올리버의 차림새가 자유로운 ‘모험가’와도 같았다.
“…….”
올리버가 잠시간 침묵했다. 관리인의 눈이 의심으로 물들었다.
난감하기 짝이 없는 문제였다. 누누이 말하지만, 차라리 본 드래곤 두 마리를 한꺼번에 베는 편이…….
쿠궁!
바로 그때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굉음.
그 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쿠궁! 쿵! 콰지직……!
소리의 근원지는 허공.
모든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저, 저게 왜…….”
소리의 근원은 하늘로 높게 솟아난 비행선 전용 선착장의 일부, 그러니까 비행선을 정박시킬 수 있도록 설계된 일종의 ‘지지대’였다.
아무래도 비행의 담금질을 시작하려는 과정에서 무언가 잘못 부딪친 모양새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비행선은 허공에 떠올랐지만.
“떠…… 떠, 떨어진다!”
“꺄아아아아아아악-!”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니, 애당초 문제는 하나였다.
지지대가 부서지며 파편을 발생시켰으니까. 나아가 그 아래로는 사람들까지 존재했다. 이게 무얼 뜻하겠는가?
“……!”
파편들이 추락한다.
아래에는 사람들이 있다.
피할 여유가 한없이 부족하다.
피하지 못한다면 필시 죽을 터.
비극적인 사고가 목전에 놓였다.
스르릉!
이윽고 올리버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먼저 갈색 옷가지에 가려져 있었던 허리춤 검을 뽑았다. 동시에 한쪽 다리를 굽혔다. 단번에 탁 치고 나가기 위해서였다.
팟!
그 도약력은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넘어섰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추락하는 지지대 파편과 동일선상을 이루어냈으니 말이다.
“하압!”
베어봤자 땅으로 떨어지는 파편의 숫자만 늘려줄 터. 올리버의 선택은 검의 옆면이었다.
그 부분으로 하여금 가장 큼지막한 지지대 파편을 재빠르게 후려쳤다.
터엉-!
그러자 지지대의 파편이 멀찌감치 사람 하나 없는 공터 쪽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튕겨졌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도약력처럼, 근본적인 완력마저 상식을 뛰어넘었다.
“아직!”
하지만 파편은 하나가 아니었다. 비교적 자그마한 파편 몇 개도 처리해야만 했다. 올리버의 다음 선택은 마나, 즉 오러 블레이드였다.
쉐에엑-!
한줄기 푸른 검광이 올리버의 보검, ‘기다림의 종결’ 끝으로부터 뿜어졌다. 나아가 파편의 뒤를 엄청난 기세로 추격하기 시작했다.
콰앙-!
올리버의 오러 블레이드는 파편을 베어내지 않았다. 단지 폭발을 일으키며 파편이 추락하는 방향만 바꿔낼 뿐이었다.
또 다른 파편들도 마찬가지였다. 절제된 검기가 적재적소의 파편으로 뿌려졌다.
콰앙! 쾅! 콰아앙-!
표현 그대로 완벽했다. 올리버는 사람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파편을 단 하나도 용납하지 않았다.
탁!
그가 지면으로 착지했을 때,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사고로부터 놀란 가슴, 혹은 살아남은 안도감을 느끼기보다도, 갑자기 나타난 절정의 칼잡이에게 곱절은 더 경악했다.
“후우!”
하나 올리버는 사람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평소처럼 나직하게 토해낸 숨소리와 함께, 보검 ‘기다림의 종결’을 허리춤으로 거두었다. 그 간단한 동작만으로도 기사의 기품이 은은하게 풍겼다.
“이보시오. 관리자.”
나아가 탑승권의 판매를 도맡았던 선착장 관리자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할 말이 있다는 뜻이었다.
“예…… 예?”
“속히 이안 공의 장원으로 연락하시오. 방금 일어난 사고를 보고하고, 빠른 도움을 요청하시오. 직통으로 연결되는 수정구로 말이오.”
“아……! 알겠습니다. 나리!”
“그리고 자네들.”
관리자를 움직인 올리버의 다음 목표는 제국군, 비행선 선착장의 치안 유지를 도맡은 경비병이었다.
“이쪽으로.”
“예! 나리!”
어느 때보다 재빠른 경비병들의 움직임이었다. 그들은 이미 올리버의 정체를 알아챘다.
대륙에 전체에 저만한 칼잡이는 단언컨대 한 명 이상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시, 실례가 되지 않으신다면, 혹시 검공 올리버 레이우드 경…….”
“맞네. 허니 내 말을 따라주게. 먼저 주변의 사람들을 선착장 근처에서 멀찍이 떨어뜨리고 통제해 주길 바라네. 비행선은 복잡한 마도 공학의 산물, 파편으로부터 어떤 문제가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니까.”
사람들과 함께 대피하라.
그것이 올리버의 명령이었다.
“또한 한시라도 빨리 마도공학자를 모셔야 하니 이안 공의 장원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목도 정리를 시작하게. 내 말 알겠는가?”
두 번째 이어진 명령도 지극히 합리적이었다. 당혹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냉철함을 잃지 않는 올리버 특유의 성품이 빛을 발했다.
“알겠습니다! 그, 그리고 올리버 경을 뵙게 되어, 하물며 명령까지 받게 되어 무한한 영광이옵니다!”
“여, 영광이옵니다! 올리버 경!”
“가문의 영광이옵니다!”
경비병들이 너도나도 영광스러움을 피력하며 고개까지 조아렸다. 하지만 그들도 병사로서 훈련된 군인이 아니겠는가?
뜸들이지 않고 재빨리 명령 수행에 나섰다.
“음.”
상황의 긴급한 통제를 이끌어낸 올리버 레이우드, 그가 파편이 떨어진 공터 쪽으로 옮겨갔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가벼운 폭발쯤이야 본인의 힘으로도 능히 막아낼 수 있으리라.
* * *
비행선 선착장의 사고는 일차적인 정리가 이루어졌다.
마도공학자 스람과 그 제자들은 물론 장원의 장인들이 파편을 수습했고, 사고의 원인을 밝혀내고자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덕분에.
“고향은 나중에나 가야겠군.”
물론 이안의 도움을 받아 텔레포트, 혹은 포탈의 힘으로 고향에 도착할 순 있겠으나.
왠지 그러고 싶진 않았다. 마치 오늘의 비행선 선착장 사고가 올리버 자신의 고향 가는 발목을 잡아챈 기분이었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작게 뇌까린 올리버가 맥주 담긴 나무잔을 잡았다. 결국, 생애 첫 휴가의 시작은 도시 내 허름한 단골 술집으로부터 서막을 올렸다.
“저, 저기…….”
자축의 첫 잔을 들이켜려는 순간.
누군가 올리버에게 말을 걸었다.
심지어 팔까지 톡톡 건드렸다.
“음?”
부름의 주인은 기껏해야 여덟 살 남짓의 소년이었는데, 올리버와 똑같은 갈색 머리칼의 소유자였다.
“무슨 일이지?”
나무잔을 내린 올리버, 그가 상체를 돌려 소년과 마주했다. 이런 밤중에, 심지어 술집에 꼬마라니?
“저…… 그러니까…… 그게……. 이, 일단 제 이름은 카, 카놀란이라고 해요! 카놀란!”
다짜고짜 제 이름을 소개하는 소년, 카놀란이 잔뜩 긴장된 얼굴과 목소리를 뽐냈다.
동시에 술잔을 정리하던 주인장이 한마디 했다.
“저희 종업원입니다. 천애고아에 사정이 하도 딱해서 소인이 거두었습죠.”
말이 좋아 단골이지, 방문의 빈도가 몇 년에 한 번 꼴이니 그 종업원을 알 턱이 있겠는가?
“카놀란, 좋은 이름이구나. 그래, 내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느냐?”
올리버는 최대한 푸근하고도 친절하게 말했다. 표정 역시 그렇게 지어 보였다.
흡사 ‘옆집 사는 삼촌 올리버’라도 되어주고 싶은 모양인지 각고의 노력을 기했으나, 숨만 쉬어도 풍기는 압도적인 중압감까지 감춰낼 도리가 없었다.
“저…… 아까 봤어요! 비행선 선착장에 일어났던 그 사고요! 올리버 경께서 칼로 막 이렇게! 이렇게! 얍! 얍! 하시는 것도 봤고요!”
이렇게, 이렇게, 얍, 얍이라.
그 귀여운 표현에 피식 웃음을 지어 보이는 올리버였다. 어린 아들이 있었다면 딱 저럴까?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로 흐뭇한 기분이었다.
“저도 이다음에 크면, 꼭! 꼭! 올리버 경처럼 엄-청나게 센 기사가 될 거예요! 그래서 막!”
그 이후로도 술집의 종업원, 카놀란의 이른바 ‘올리버 찬양’이 펼쳐졌다.
올리버도 은근히 싫지만은 않은 모양인지 계속해서 들어줬다.
“나쁜 용도 물리치고! 사람들도 구하고! 높으신 분들께 인정도 받고! 또…… 또…… 으음…….”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찬양의 거리가 뜸해지자 올리버의 표정 또한 진지해졌다.
“카놀란.”
“예?”
“네 말은, 기사가 되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것이냐?”
“네! 맞아요! 올리버 경처럼요!”
“그렇구나.”
비록 어린 시절 잠시 머물다 갈 꿈일지언정 기사를 꿈꾸는 소년이 아니겠는가?
이 나라 기사의 정점으로서 해줄 이야기가 존재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새겨듣도록 해라. 적어도 기사의 꿈을 간직한 순간만큼은 반드시 지켜야 할 이야기이니 말이다. 알겠느냐?”
일순간 카놀란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행복한 기대감이 가득 차다 못해 뚝뚝 흘러넘칠 기세였다.
“많은 사람의 인정, 숭고한 명예. 모두 기사로서 추구해야 할 요소임은 분명하단다. 하지만, 그 명예란 기사가 추구하고 몸에 새겨야 할 ‘진정한 도의’의 일부에 불과하지.”
“지, 진정한…… 도의요?”
“그래. 도의.”
한 박자 쉬었던 올리버.
그가 말문을 이어갔다.
“먼저, 기사는 세상 그 누구보다 성실해야 한다. 오늘 쌓아올린 수련이 내일의 너를 살릴 것이니.”
성실.
올리버는 그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예의를 알아야 한다. 단순하게 윗사람을 향하는 경직된 예의만 아니라, 낮은 곳에 있는 이에게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는 법.”
두 번째는 예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근본적인 기사의 정신이었다.
“겸양의 마음가짐 또한 중요하다. 언제나 이 가슴 속 공간을 깨끗하게 비워라. 황금, 권력. 그런 이물질들은 딱 필요한 만큼만 누려라.”
겸양, 혹은 겸손.
다소 어려운 말이었지만, 술집의 소년 종업원 카놀란은 무척 진중한 눈빛으로 새겨들었다.
설령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목소리 자체를 통째로 외워 버릴 기세였다.
“마지막은 언제나 약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다. 황제 폐하의 곁을 지키는 내가 이런 말을 하니 조금 모순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만, 약자의 보호야말로 제국의 기사, 아니 세상천지의 모든 기사가 으뜸으로 추구해야 할 덕목이란다.”
약자의 보호, 그렇기에 올리버는 항상 목숨을 걸었다.
토벌대를 넘어서 온 대륙의 인류를 위협했던 본 드래곤, 그 사악한 마룡의 등뼈에 칼을 꽂았던 당시처럼 말이다.
“우으으음…….”
올리버의 말을 들은 카놀란.
그 꼬마가 생각에 잠겼다.
명예, 성실, 예의, 겸양.
마지막으로 약자 보호.
총 다섯 가지 기사의 덕목.
“감사드립니다!”
갑작스레 인사를 올리는 녀석.
나아가 술집 안쪽 자신의 숙소로 우당탕 달려갔다.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분명 9살조차 되지 못한 소년에게는 어려운 얘기였을 터.
하지만.
다다다다-!
꼬마 카놀란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뛰쳐나왔다.
아까와 다른 점이라면 손에 웬 ‘목검’ 한 자루가 쥐어져 있다는 점이었는데.
“기사의 첫 번째 덕목, 성실! 지금 바로 수행하러 가겠습니다! 슈융!”
한바탕 호기롭게 소리쳤던 꼬마 카놀란. 녀석이 술집 바깥으로 나갔다.
어디 그뿐일까? 뒤쪽 공터에서 목검을 휘두르기에 이르렀다.
“……주인장.”
그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던 올리버가 주인장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잔을 물려야겠소.”
그러더니 주문했던 맥주를 물리며 일어났다.
술이나 마실 때가 아닌 것 같았다. 저런 원석을 눈앞에 두고 어찌 술이나 마시겠는가?
“아무래도 저 소년의 검을 좀 살펴줘야겠소. 아, 술값까지 내놓으란 소린 아니니 걱정 마시구려.”
제국의 기사, 올리버 레이우드.
말년에 이르러서야, 제법 키울 맛 나는 제자를 발견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