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82화 (외전) (18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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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82화

외전. 치료마법 전문학파

이안이 깊은 수면 속으로 빠져든 지 약 9년, 돌아온 뒤로 약 1년, 총합 10년을 넘어선 세월 동안, 상아탑의 4클래스 고위마법사이자 제국의 공주 ‘하이리 그린리버’는 이안을 기다리고 보살피는 것 외에도 한 가지 일에 몰두했다.

그것은 바로 상아탑 내부에 어떤 특정한 ‘학파’를 창설하는 일이었는데.

“본 상아탑의회는 고위마법사 하이리 그린리버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 그녀를 필두로 한 상아탑 내 의료 전문학파, ‘리커버리 매지션’의 창설 및 운영을 허락한다.”

이안 페이지가 혼수상태가 된 지 9년 차가 되던 어느 날.

이안 이후 인류 중 두 번째로 ‘6클래스 초입’에 도달한 고위마법사 ‘로난’이 임시 상아탑주로서 맡은 바 업무를 수행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리커버리 매지션’에 속한 마법사들은 제국 내 모든 의술사와 연금술사, 마도공학자의 협조 및 동원을 합법적으로 구할 수 있으며, 보다 특화된 인재의 양성을 위하여 독자적인 아카데미 커리큘럼을 계획, 다음해부터 적용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라.”

모든 의술사와 연금술사, 마도공학자를 동원할 수 있는 권한, 심지어 마법 아카데미의 기초교육 과정 중 한 갈래로서 편입.

이는 생각보다 훨씬 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이안 님은 언젠가 반드시 깨어난다. 그때까지 이안 님의 주변사람들 속으로 섞여야 해. 그렇다면 나도 자연스레 측근 중 하나가 되겠지.’

임시 상아탑주 로난의 목적은 단순하면서도 확고했다.

나아가 오래 전, 그러니까 이안의 진면목을 깨닫고 전 상아탑주 허버트 레온을 배신했을 때부터 쭉 일관적이었다.

‘이안 님의 깨달음을 조금만 더, 부스러기라도 챙길 수만 있다면!’

로난은 이안을 적극적으로 도와 받아먹었던 몇 가지 깨달음과 노하우로 6클래스의 경지까지 올라섰다.

그렇기에 오랜 세월 잠들어있음에도 변치 않는 충성심을 유지했다. 더 높은 경지를 향한 욕망과 노력만큼은 이 대륙에 로난을 따라올 마법사가 없었으니까.

“리커머리 매지션의 첫 번째 마법사 하이리 그린리버, 상아탑의회의 신중하고도 은혜로운 뜻을 결단코 헛되게 만들지 않겠습니다.”

그로부터 1여년이 흘렀다.

로난의 직감처럼 이안은 깨어났고, 세상은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웠다. 다만, 공주 하이리가 창설한 상아탑 내 치료마법 전문학파, ‘리커버리 매지션’은 무척 기본적이면서도 치명적인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공주…… 아, 아니 학장님.”

본래 전 상아탑주 허버트의 개인 자료실이었던 상아탑 17층.

하나 지금은 치료전문학파 ‘리커버리 매지션’의 연구실로서 탈바꿈된 이곳에, 3클래스 마법사이자 ‘리커버리 매지션’의 부학장, ‘매리’가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들어왔다.

“오셨어요?”

그녀의 등장에 공주 하이리 또한 반가움을 표했다.

동부 대토벌에서 치료계열의 마법으로 호흡을 맞췄던 두 여류 마법사 아니겠는가?

그 이후로도 쭉 돈독한 사이를 유지한 결과, 어느덧 학파의 창단 멤버로서 같은 배를 타게 되었다.

“학장님, 그 지원자는…….”

“말씀하지 않으셔도 되요.”

“……네?”

“표정으로 이미 보고하셨는걸요.”

공주 하이리가 씁쓸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매리의 얼굴표정에 전부 다 쓰여 있었으니 말이다.

“죄, 죄송…….”

“에이, 매리님이 뭐가 죄송해요? 처음부터 예상했던 일이기도 하고. 우리가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요.”

그랬다. 작금의 치료전문학파 ‘리커버리 매지션’이 위기에 봉착한 이유, 그건 바로 ‘인원 부족’이었다.

“그래도 아카데미에는 꽤 많잖아요? 우리 쪽 과정 밟은 아이들 말이에요. 당장은 미약하나 미래가 밝다, 이 정도로 생각하자고요.”

더는 클래스 상승을 포기한 1클래스 내지 2클래스의 중, 장년 마법사, 혹은 이제 막 아카데미에서 꿈을 키우기 시작한 마법생도의 지원은 충분히 봐줄 만했다.

“그, 그건 그렇지만…….”

문제는 그 이상의 지원, 인즉 ‘고급인력’의 수급이었다.

학파의 연구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그 고급인력들의 실력과 경험, 지식이 필수 아니겠는가?

한데 지금 학파 내 3클래스 이상 마법사라고는 하이리와 매리, 두 여류 마법사뿐이었다.

“우리만 흔들리지 않는다면, 나머지는 자연히 제자리를 찾겠지요.”

치료전문학파 ‘리커버리 매지션’을 향한 기성마법사들의 인식이 생각보다 부정적인 까닭, 그것은 실로 간단한 ‘고정관념’의 문제였다.

‘아무리 그래도 마법사가…….’

‘그런 건 말년에나 하는 거지.’

‘소일거리로는 재미있겠네.’

‘보조라면 모를까, 주력으로 전문화하기에는 좀 그렇지 않아?’

마법사들 특유의 엘리트 의식, 나아가 ‘마법사라면 반드시 이러이러해야한다’ 식의 고정관념들이 ‘리커버리 매지션’에게는 장애물이었다.

“저기, 학장님.”

“말씀하세요.”

잠시 망설였던 매리.

그녀가 천천히 입술을 뗐다.

“차라리 이안 님께 한번 상의를 드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탑주님의 도움이라면 소소한 정도로도 파급효과가 엄청날 것 같은데…….”

매리의 의견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괜찮은 방법이었다.

“음…….”

장장 9년 만에 깨어난 이안은 곧바로 상아탑주로서의 직위를 되찾았다. 나아가 그 어느 때보다도 왕성하게 상아탑주로서 활동했다.

그런 그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약간의 지원까지 받는다면, 아마 치료전문학파 ‘리커버리 매지션’은 지금보다 더 크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리라.

“아니, 그럴 순 없어요.”

잠시 고민했던 공주 하이리.

그녀가 딱 잘라 거절했다.

“우리가 시작한 일이니만큼, 남에게 의존하지 말고 우리 손으로 해결을 해내죠. 괜히 다른 누군가의 힘을 빌렸다간 오히려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어요. 이 상아탑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조직에서 말이죠.”

하이리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매리 역시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동시에 이겨내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눈빛으로 차올랐다.

“근데 무슨 수로 이겨내지요?”

“계속 생각을 해봐야겠죠.”

“…….”

“…….”

잠시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봤던 두 명의 여류마법사는 이내 피식 웃으며 말문을 주고받았다.

“우리도 정말 대책이 없네요.”

“그러게요. 허가가 떨어졌을 때만 해도 쭉 탄탄대로일 줄 알았는데.”

첫 시작은 찬란했으나, 과정이 너무 어려웠다.

더군다나 3클래스 이상의 마법사를 끌어들이는 일이란 단순히 노력만 가지고 될 일이 아니었다. 어떤 특단의 조치가 절실한 상황이기는 했다.

우우웅……!

그때였다. 누군가 ‘리커버리 매지션’의 연구실로 접근해 왔다. 울리기 시작한 수정구가 그 증거였다.

“라, 학장님……!”

동시에 학장실 바깥에서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던 1클래스의 ‘리커버리 매지션’ 소속 마법사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수정구의 발동 이유를 보고할 요량인 것 같았는데.

“무슨 일이세요?”

“그, 그것이…….”

누가 오기에 저러는 걸까? 허둥지둥하는 중년 마법사의 모습에 하이리와 매리까지 덩달아 긴장했다.

“고, 고위마법사…….”

“고위마법사요?”

지금 고위마법사가 오고 있다고?

‘리커버리 매지션’의 연구실로?

“아, 아니요! 고위마법사이기는 한데, 엄밀히 따지자면 고위마법사가 아니기도 한…… 그…….”

지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고위마법사인데, 고위마법사가 아니다?

좀처럼 이해하기가 어려운 하이리, 그리고 매리였다.

“그러니까…… 얼마 전에 감옥에서 풀려난 헬레느라고 있지 않습니까? 한때 고위마법사였고, 전 상아탑주의 흑마법에 놀아났던…….”

본디 고위마법사였던 마법사.

통칭 ‘불의 여인’ 헬레느.

그녀에 관한 얘기였다.

“헬레느?”

헬레느, 그녀는 황태자가 황제로 즉위한지 얼마 되지 않아 풀려났다.

그것도 황태자, 아니 황제와의 수차례 면담 끝에 특별히 사면되었다. 근 10여 년만의 해방이었다.

“그 사람이 왜……?”

사면 이후에는 그야말로 조용하게, 쥐 죽은 듯이 지냈다.

상아탑으로 복귀할 수 있는 허락까지 받았음에도, 거처 밖으로 단 한걸음조차 나서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왜, 그것도 ‘리커버리 매지션’의 연구실을 찾아온단 말인가?

“그분께서 접수를…… 저희 ‘리커버리 매지션’ 소속으로 들어오겠다는 지원서를 접수하셨습니다.”

“지원서를? 그 여자가……?”

헬레느라면 유명하다.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여전히 그랬다.

특히나 그 불같은 성정과 오만함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회자되었다.

한데, 그런 여자가 다른 곳도 아닌 상아탑 내 치료전문학파, ‘리커버리 매지션’에 친히 지원서를 접수했다?

‘무슨 꿍꿍이지?’

하이리가 의문을 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보였으니까.

‘불가능한 건 아니긴 하지만…….’

물론 그 행보가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헬레느는 황제와 상아탑 양측의 허가를 받아 마법사로서 복직되었으며, 언제든 상아탑의 일원으로 복귀할 권리를 부여받았으니 말이다.

단지 스스로가 직접 세상과의 단절을 선택했을 뿐이었다.

똑똑!

바로 그 순간.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더불어 학장실의 문이 열렸다.

“…….”

그곳으로부터 어떤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놀라운 점은 조금도 늙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과거에는 나이에 비해 늙어 보이는 ‘노안’으로도 유명했던 헬레느 아니겠는가? 한데 지금은 달랐다. 마치 본연의 연령대를 찾아온 느낌이라고나 할까?

“여, 여기…….”

이윽고 헬레느의 입술이 스르르 떨어졌다. 무척 조심스러우면서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였다.

“흠흠! 여기가 치료마법 전문학파, ‘리커버리 매지션’의 학장…… 님께서 계신 곳이 맞습니까?”

존대마저 어색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 탑주한테조차 무늬뿐인 존대로 일관했던 그녀였다. 그러할 지언데 존대를 얼마나 해봤겠는가?

“제가 ‘리커버리 매지션’의 책임자 하이리 그린리버입니다. 어쩐 일로 여기까지 발걸음을 하셨는지요?”

공주 하이리는 최대한 친절하게 응대하고자 했다. 그럼에도 내제된 쌀쌀맞음을 모조리 감출 수가 없었다.

아무리 전 상아탑주 허버트 레온의 흑마법에 조종당했다고는 하나, 오라비의 목숨을 노렸던 자객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었으니까.

“알고 있으면서 괜…….”

한 성질 하는 헬레느 또한 그 쌀쌀맞음을 곱게 넘길 위인이 아니었다. 일말 머뭇거림도 없이 싸늘한 어조로 대답하고자 했다.

하지만.

“…….”

이내 하려던 말을 멈췄다. 그러더니 입 꼬리를 올렸다. 안면경련이 아니라면, 이는 놀랍게도 미소였다.

“신청서를 작성하고 오는 길입니다. 비록 그 노친네…… 전 상아탑주 허버트 레온의 흑마법에 놀아났습니다만, 그 또한 저의 죄이니 남은 생애 속죄하며 사는 길을 고민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여러분들, 치료전문학파 ‘리커버리 매지션’에 관한 소문이 들리더군요.”

많이 죽었다. 성질 한번 제대로 죽었다.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본래의 성질을 무참히 살해했다고밖에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변해 버린 헬레느의 말본새였다.

“지난 10년, 정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솔직히 지금처럼 풀려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냥 거기서 죽을 때까지 썩겠구나. 그렇게만 생각했죠. 아, 물론 억울하지는 않았습니다. 저지른 중죄는 중죄니까. 단지 아쉬울 뿐이었죠.”

졸지에 헬레느의 고해성사가 시작되어버렸다.

정말이지 순식간에 펼쳐진 상황이었으나, 의외로 하이리와 매리는 자연스럽게 경청해 줬다.

“그랬는데, 뜻밖의 기회로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폐하께서 저를 사면해 주셨고, 마법사로서의 힘과 직위도 박탈하지 않으셨습니다. 조종당했을 뿐이지만, 그래도 폐하의 목숨을 노렸던 저에게 말입니다.”

어째 조종당했음을 여러 번 강조하는 느낌이었으나, 어찌되었든 그녀의 말이 틀리지도 않았다.

새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는 헬레느와의 직접적인 면담 끝에 사면을 명령했으며, 마음만 먹었다면 이안을 통해 마법적 불구자로 만들 수 있었음에도 그리하지 않았다.

“황제 폐하께 하사받은 자유, 과거와는 달리 뜻깊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나마 잘할 수 있는 마법으로 뜻을 이루고자 찾아왔습니다. 이 정도면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 설명이 충분할까요?”

마침내 헬레느의 말이 끝났다. 비록 일부에 불과했으나, 그녀가 지난 십여 년간 느꼈을 후회, 아쉬움, 참회, 등의 감정을 어렴풋이,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충분합니다.”

이에 하이리가 대답했다.

실로 충분한 설명이었다.

더 물어볼 게 없을 정도로.

“그런 마음가짐, 그리고 헬레느 님 정도의 실력자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환영이지요. 오히려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저희를 찾아와주셔서.”

하이리의 말은 진심이었다. 사실 그녀도 머릿속으로는 쭉 생각했다.

만악의 근원은 단지 전 상아탑주 허버트 레온이며, 헬레느는 피해자에 불과하단 사실을.

그럼에도 말이 곱게 나오지를 않았는데, 그 닫혔던 마음이 비로소 풀어졌다.

심지어 헬레느는 4클래스의 고위마법사 아니던가? 여러모로 완벽한 인적자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저기, 그런데…….”

약간의 침묵이 감도는 찰나.

마법사 매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당연히 저보다 훨씬 많이 알고 계시겠지만…… 즐겨 다루시는 치료계열 주문이 따로 있으신가요?”

치료마법을 전문적으로 논하는 학파이니만큼 당연한 질문이었다. 학파의 목적 자체가 더 높은 경지의 치료계열마법, 나아가 세분화된 치료마법의 연구 및 개발이었으니까.

“치료마법?”

“네. 치료마법이요.”

“흐음…….”

잠시 고민에 빠졌던 헬레느.

얼마 후 그녀의 말문이 열렸다.

“아카데미 시절에 배운 것들이 있긴 한데, 이것도 쳐주나? ……요?”

헬레느가 어렵사리 존대를 완성시켰다. 하나 진정한 문제는 존대와 반말 따위가 아니었다.

“네? 아카데미 시절이요?”

“네. 아카데미 시절.”

“…….”

세상에, 4클래스를 고위마법사씩이나 되는 양반이 고작 아카데미 수준의 치료마법만 알고 있다고? 거짓말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였다.

“그, 그거 말고는…….”

“제외하면, 뭐.”

곧장 손바닥 위로 불꽃을 피워내는 헬레느였다. 치료마법 얘기 중에 웬 뜬금없는 불꽃이란 말인가?

“가끔 상처를 불로 지지긴 했는데, 지혈에 직방이라서. 근데 이것도 치료마법으로 쳐주나? ……요?”

실로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동문서답인가, 우문현답인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하이리와 매리는 직감할 수 있었다.

‘쉽지…… 않겠구나.’

상아탑 내 치료마법 전문학파, ‘리커버리 매지션’의 앞날이 생각보다 더 첩첩산중이란 사실을 말이다.

[병자가 없는 세상을 향하여.]

리커버리 매지션의 다짐이 적힌 고급스러운 브라운 액자가, 오늘따라 유난히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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