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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78화 (178/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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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78화

    68. 마지막 매듭(7)

    ‘어머니.’

    이제 그녀는 베네사가 아니었다.

    이안의 어머니 또한 아니었다.

    전혀 새로운 이름을 가졌다.

    전혀 새로운 세월을 살았다.

    그렇기에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이렇듯 먼 곳서나마 바라볼밖에.

    ‘그래도.’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전생의 어머니가 살아계셔서.

    이렇게 다시 볼 수 있어서.

    비록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모든 게 행복해 보여서.

    이안이 바랐던 얼굴, 그 얼굴을 하고 계셔서…….

    “여보.”

    그때, 어머니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오두막집 앞에 나타났다. 사냥이라도 나섰던 길인지, 웬 노루 한 마리를 짊어지고 있었다.

    ‘저 남자가…….’

    이안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 남자를 향했다.

    어머니가 오랜 시간 의지했으며, 또 어머니를 오랜 시간 지켜줬을 사람. 그 고마운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궁금했으니까.

    “오늘은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날도 어두워지는데, 걱정했잖아요.”

    “가죽이 상하지 않게 잡으려다 보니 조금 늦었소. 그래도 당분간은 걱정 없겠군. 이 정도면 가격 꽤 받을 테니까. 그렇지 않소?”

    “그러다 사고라도 당하시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풍족하지 않아도 되니까, 몸부터 챙기셔요.”

    “하하, 알겠소. 내 명심하리다.”

    “매번 그렇게 말씀만 하시고…….”

    “이번에는 진심이오. 그렇지 않아도 몸이 예전 같지가 않아서. 슬슬 사냥은 토끼잡이나 좀 하고, 목수 짓에나 전력을 쏟아볼까 싶소만. 부인께서는 어찌 생각하시오?”

    노부부의 일상적인 대화였다. 지극히 평범했고, 모든 것이 평화로웠으며, 소소한 행복도 느껴졌다.

    ‘……?’

    그럼에도 이인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의구심으로 물들어갔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프란 페이지……?’

    어머니의 남편, 그 사냥꾼이자 나무꾼, 목수를 겸하는 남자의 생김새가 프란 페이지와 똑같았다. 더 늙긴 했어도 알아볼 수 있었다.

    ‘설마…….’

    프란의 또 다른 사념일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잠시간 그리 생각했던 이안.

    이내 고개를 저으며 철회했다.

    ‘전부 다 사라졌으니까.’

    프란 페이지가 새하얀 불꽃과 함께 영혼까지 소멸하는 순간, 그가 파생시켰던 사념들도 일시에 박멸되었다. 이안은 자신으로서 각성했기에 영향을 받지 않았을 뿐.

    ‘하지만, 저 남자는 분명…….’

    모든 정황을 차치한다면. 오로지 본질적 정체로만 판단하자면, 저 남자는 분명 프란의 사념체가 맞았다. 확신까지 품을 수 있었다.

    “…….”

    이안이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순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놈의 사념이 세상에 남았다.

    과연 무엇을 뜻하겠는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상황.

    “잠깐.”

    놈의 정체를 가늠했던 이안.

    그가 무언가 발견한 듯 뇌까렸다.

    ‘똑같되, 다른 존재다.’

    내면이 달랐다. 살펴본 바 그랬다. 본디 마기로 얼룩진 프란의 사념과 달리 깨끗하기만 했다.

    결코 의도적으로 감출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이안의 눈까지 속일 수 없을 터.

    ‘심지어 평범하다.’

    마법사로서 그 어떤 능력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표현 그대로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얘기였다.

    ‘대체 왜 저런 사념이…….’

    이안이 고민에 빠졌다.

    계속해서 놈을 감시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나는 이 노루 좀 손질할 테니, 당신은 안으로 들어가 쉬고 계시오. 날씨가 많이 쌀쌀하잖소.”

    이안의 고뇌가 깊어지는 순간, 프란의 얼굴을 가진 그 이질적인 사념이 베네사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으쌰!”

    그러더니 짊어지고 온 노루를 마당에 설치한 작업대에 올렸다. 앞치마도 둘렀다. 뿐일까? 아예 무두질용 도구까지 챙겨왔다.

    “그가.”

    무두질을 막 시작하려는 찰나.

    그 남자가 작게 중얼거렸다.

    “나를 남겼다.”

    ‘그’가 나를 남겼다?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주변으로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키우는 개 한 마리가 있었으나, 설마 개와 대화를 나누려는 것은 아닐 터. 즉 대화를 나눌 대상 자체가 없다는 거다.

    “다른 차원에는 모두 이안 페이지, 그대가 하나뿐인 아들로서 내 아내를 지켜주고 있겠지.”

    남자의 말은 놀랍게도 이안을 향하고 있었다. 이안이 지켜보고 있단 사실, 그리고 자신의 얘기가 들릴 거라는 확신도 가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차원, 이안 페이지가 독살을 당해 사라진 유일한 세상 속 그녀는 아무도 지켜주지 않아. 아무에게도 보호받을 수 없지.”

    갑작스러운 상황과 이야기.

    그럼에도 이안은 수긍했다.

    그 말이 틀리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에게 남은 마지막 ‘선의’가 떨어져 나온 존재다.”

    “선의……?”

    “보다시피 그대는커녕, 세상 그 무엇하나 위협할 힘이 없지.”

    검증된 이야기였다. 그는 대단한 권능을 갖지 못했다. 하물며 본신조차 이안을 이길 수가 없었는데, 사념 따위로 무엇을 하겠는가?

    “다만 쓸모 있는 잔재주를 몇 가지 가져서, 내 아내 하나 지킬 힘은 갖고 있다. 적어도 그녀와 내가 인간으로서 부여받은 삶, 그 시간을 모두 소모할 때까지는 말이지.”

    프란 페이지의 얼굴을 가진 사념, 그 남자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항상 너스레로 일관했던 프란 페이지와는 여러모로 달랐다.

    “나 또한, 그녀가 숨을 다하는 즉시 소멸을 맞이한다. 탄생의 근본적인 의무가 끝나는 것이니까.”

    물론 그 말을 덥석 믿기란 어려웠다. 프란 페이지로부터 훔쳐 읽었던 기억과 지식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였으니까.

    ‘떨어져 나온 선의란 표현이 사실이라면, 기억까지 갈라졌을 수도.’

    그럴 가능성도 충분했다.

    어느 것 하나 확신할 순 없지만.

    ‘만약, 모든 게 진실이라면.’

    그렇다면 프란이 최후의 발악처럼 남겼던 이야기, 자신을 죽이면 베네사도 소멸된다는 그 얘기가 완전한 거짓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마 조각처럼 잔류한 ‘선의의 기억’을 그렇게 변질시켰으리라.

    ‘거짓일까?’

    아니,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이안의 생각이 거기에 닿을 때쯤.

    남자가 하던 말을 마저 이어갔다.

    “믿기 어렵겠지. 지금이라도 당장 나를 소멸시켜도 좋다. 대신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그대의 어머니이자 나의 아내는 꽤 길었던 행복, 그리고 안정된 삶 속을 거닐고 있다. 더는 ‘베네사 페이지’가 아닌, ‘엘리사’란 이름으로서.”

    어머니, 베네사의 새로운 이름은 ‘엘리사’였다.

    결코 풍족하고 호화로운 삶은 아니었으나, 누구보다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아왔다. 고작 일이 년도 아닌 수십 년을 말이다.

    “물론 그대의 힘으로서 기억을 되돌릴 수도 있겠지만, 글쎄. 그녀에게 유익할 거란 장담은 어렵겠군. 그녀는 베네사 페이지보다 엘리사로서 더 오랜 세월을 살았으니까.”

    이안이 잠시간 침묵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이 실로 옳았다.

    “무얼 결정하든 상관없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임무를 마저 수행할 터이니, 그대 또한 그대의 생각과 신념에 따라 움직이길 바란다.”

    그 남자, ‘프란 페이지의 선의’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다시 노루손질에 나서는가 싶더니만, 갑자기 활과 화살들 집어 들었다.

    슉!

    허공으로 쏘아진 화살이 포물선을 그렸다. 물론 이안을 목표하진 않았다. 쏜다고 맞아줄 위인도 아니거니와, 방향부터 달랐으니까.

    “캬악!”

    요란한 단말마가 터져 나왔다.

    인간의 비명은 아닌 것 같았다.

    화살의 표적은 들짐승이었다.

    제법 먼 거리였으나 정확했다.

    명사수들이 울고 갈 정도였다.

    “여, 여보! 무슨 일이에요?”

    그 소리에 베네사. 아니, 이제는 엘리사가 된 노령의 여인이 오두막집에서 뛰쳐나왔다. 겁을 먹었다기보다는 남편이 걱정된 탓이었다.

    “오, 놀라게 해서 미안하오. 아무래도 이 노루를 노렸던 사냥꾼이 나만 있었던 게 아닌 것 같구려.”

    ‘프란의 선의’가 별거 아니라는 듯 아내를 진정시켰다. 아무래도 저 활 솜씨, 그리고 들짐승의 접근을 눈치챈 감각이 그가 말한 ‘잔재주’ 중 일부인 것 같았다.

    “…….”

    이안이 고민에 잠겼다. 다른 건 몰라도 단 한 가지 사실, 프란 페이지는 베네사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수천 년간 끝없이 타락해 왔으며, 새까만 악의와 광기로 미쳐 버렸을지언정, 한 줌 남겨둔 선의로서 아내를 지킬 정도로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안이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오직 ‘선의의 프란’만이 들을 수 있는 마법의 속삭임이기도 했다.

    [어머니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고 싶습니다. 잠시만 당신의 눈과 감각을 빌려도 되겠습니까?]

    그 부탁에 프란의 고개가 한번 끄덕여졌다. 허락의 표현이었다.

    [그럼…….]

    이윽고 이안이 ‘선의의 프란,’ 그 존재의 감각을 빌렸다.

    빙의가 아니기에 통제권까지 얻을 수는 없었으나, 어머니의 얼굴과 목소리를 좀 더 가까이서 접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저녁은 어떻게 할까요? 간단하게 준비를 해두긴 했는데, 조금 심심한 것 같아서…….”

    그녀, 엘리사라는 이름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베네사가 읊조렸다.

    그 목소리와 표정 하나하나가 여러 긍정적인 감정으로 가득했다. 행복, 만족, 안정, 사랑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밝았다.

    “그거 나쁘지 않겠소. 우리 나이에는 심심하게 먹는 것도 괜찮지. 오히려 건강에 좋다고 하더이다.”

    감각을 공유하든 말든, ‘프란의 선의’ 역시 다정하게 대꾸했다.

    ‘만들어진 감정이 아니야.’

    동시에 이안은 느낄 수 있었다.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으니까.

    ‘이건 진심이다.’

    ‘프란의 선의’는 이안을 속이지 않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애당초 사념체가 이안을 기만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결코 마법사 특유의 오만함 따위가 아니었다.

    “…….”

    또다시 침묵을 삼킨 이안.

    마침내 머릿속을 정리해냈다.

    먼저 어머니는, 행복하다. 앞으로 남아있는 여생 또한 행복할 것이다. 구태여 이 행복을 방해할 필요가 눈곱만큼도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저 프란 페이지의 사념. 아니……, 한 줌 선의의 조각도.’

    그 존재 역시 비틀리지 않았다.

    ‘마지막 선의’로부터 태어난 존재.

    그 소개말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

    [……이만.]

    이안의 결심은 그러했다.

    [돌아가겠습니다.]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은 채.

    아무런 변화도 주지 않은 채.

    이 세상 속의 어머니와, 행복한 삶을 누리는 그녀와 작별하는 것.

    [아무것도 바꾸지 않겠습니다. 무언가를 바꿔봐야 어머니께 좋을 것이 없을 거라는 말, 충분히 이해하니까요. 그러니까 부디, 어머니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안이 부탁하자 ‘프란의 선의’ 또한 고개를 조금 끄덕여줬다.

    ‘그래, 이거면 됐다.’

    그 끄덕임을 본 이안이 차원이동 마법을 발동시켰다. 동시에 그러한 종류의 생각들을 반복적으로 뇌까렸다. 이거면 됐다, 어머니는 행복하다, 참 다행이다…….

    ‘어머니, 부디.’

    노령의 세월을 짊어진 어머니. 그녀의 행복을 기원함과 함께, 이안이 ‘본래의 차원’으로 돌아갔다.

    ‘행복하세요.’

    더불어 산속 부부의 보금자리에 따스한 기운이 내리깔렸다. 살갗을 시리게 만들었던 쌀쌀함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금방 꽃봉오리가 피어날 것만 같은 따스함, 그 온기를 불러일으킨 눈물 한 방울이야말로, 이안이 남기고 간 ‘마지막 인사’였다.

    * * *

    이제는 이안의 ‘주된 무대’가 되어버린 세상, 상투적인 표현으로는 ‘두 번째 삶’에 해당하는 차원.

    ‘돌아……, 온 건가.’

    모든 차원을 정상화시킨 이안.

    그가 눈을 떴다. 나아가 벽에 걸린 제국력 연표부터 살펴봤다.

    “…….”

    동시에 표정이 굳어졌다.

    지금으로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지키지 못한 것 같았다.

    금방 돌아오겠다는 ‘약속’ 말이다.

    ‘9년……? 9년이 지났다고?’

    그랬다. 저 제국력 연표가 잘못 기록된 게 아니라면, 혹은 누군가의, 특히 더글라스의 장난이 아니라면, 세상은 놀랍게도 ‘9년’이란 세월이 흘러버린 이후였다.

    ‘어째서?’

    이안은 작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프란 페이지와의 일전 당시에는 여러 차원을 표류했는데도 수십 분밖에 지나지 않았었거늘, 도대체 왜 지금은 9년이란 세월이 흘러 버렸단 말인가?

    ‘……당황스럽네.’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애당초 차원과 차원 간의 연결, 흐름, 그리고 시간의 작용 등을 이해하고자 했던 것이 실수였을까?

    ‘9년이라…….’

    실로 많은 것들이 변했을 터.

    급히 몸을 일으키는 이안이었다.

    장장 9년 만에 침대로부터 벗어나 움직이기 시작한 이안 페이지, 그 ‘위대한 마법사’의 몸뚱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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