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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76화 (176/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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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76화

    68. 마지막 매듭(5)

    [……?]

    감겨있던 눈을 뜬 ‘꼬맹이’ 이안.

    녀석이 눈앞에 이안과 마주했다.

    [아앗……!]

    그러더니 깜짝 놀라며 허겁지겁 도망쳤다. 문제는 도망칠 곳이 마땅치가 않다는 점, 기껏해야 육신을 고정해줬던 선홍빛 점액 고체 뒤로 숨는 게 전부였다.

    [저, 저리 가요……!]

    ‘꼬맹이 이안’이 선홍빛 점액 고체 뒤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었다. 어찌나 경계심으로 가득한지 깨운 입장으로서 민망할 지경이었다.

    “겁먹을 거 없어. 다 봤잖아? 내가 착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쁜 놈도 아니라는 거.”

    심상 세계에 잠든 영혼들.

    그들은 꿈으로서 세상을 본다.

    육신의 지배권을 소유한 영혼.

    즉 이안이 보는 세상을 말이다.

    [그, 그래도…… 사람도 막 죽이고…… 손가락도 꺾어버리고…….]

    “마지막은 솔직히 좀 통쾌했지?”

    [그, 그런…….]

    ‘꼬맹이 이안’은 분명 그랬다.

    무언가 반박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가 어려웠다.

    ‘통쾌하다’는 그 감정.

    잘은 모르겠지만.

    [그, 그런 것 같기도…….]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찌릿하게 전해오는 느낌.

    감히 형용할 수 없는 만족감.

    이것이 바로 통쾌함 아닐까?

    “거봐, 너나 나나 그게 그거야.”

    […….]

    “나도 네 나이 때는 그렇게 순수한 얼굴도 할 줄 알았다고.”

    […….]

    “그래도 인물은 어렸을 때가 더 낫긴 하네. 그립다. 그리워.”

    […….]

    다른 사람이지만 같은 존재.

    특히나 이안 페이지 특유의 성질머리는 멀리 가지 않았을 터. 결국 그놈이 그놈이라는 얘기였다.

    “아무튼 꼬마야. 이제 다시 네 자리로 돌아갈 차례다. 봐서 알겠지만, 어머니도 곧 건강해질 거야. 그러니까 이제 알아서 잘 살아봐.”

    어머니의 병이 회복된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꼬맹이 이안’의 표정이 화사하게 피었을 정도였으니까.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하,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주점의 불량배, 람바오를 혼내줬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놈은 도시 내 첫 번째를 다투는 거대 조직의 일원이다. 분명 보복을 하고자 우르르 몰려들 터. 꼬맹이 이안 혼자만의 힘으로는 결코 감당할 수 없으리라.

    “뭘 걱정하는지는 알고 있다.”

    이안이 말했다.

    모를 리가 있겠는가.

    단지 좋은 수를 갖고 있을 뿐.

    “근데 있잖아. 필요 없어.”

    [……네?]

    “걱정할 필요 없다고.”

    이안이 ‘꼬맹이 이안’의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뜨리며 읊조렸다.

    “그동안 네가 봐온 것들, 곧 기억 속에서 지워질 거다. 영원히.”

    심상 세계 구석진 곳으로 밀려난 이후, 마치 꿈처럼 접했던 이질적인 기억과 경험들. 그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서 지워질 거란 얘기였다.

    “단.”

    이안의 말문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본론이 남아 있었으니까.

    [……?]

    이안이 손바닥을 펼쳤다.

    동시에 푸른빛 구체를 빚어냈다.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공격 마법.

    바로 한 구의 매직 미사일이었다.

    “이 주문 하나만 기억에 남겨주도록 하마. 그럼 불량배 따위에게 보복당할 일도 없을 거고, 자연스럽게 마탑이 되었든, 상아탑이 되었든 알아서 찾아오겠지.”

    모든 기억과 일체화된 지식을 지우되, 매직 미사일의 술식과 발동의 조건만큼은 남겨줄 생각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심문 마법으로 추궁을 하겠다만, 별수 없을 거야. 기억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데 뭘 어쩌겠어? 그냥 온종일 두들겨 맞다 보니 각성하게 되었다, 그 정도만 해도 문제없이 넘어갈걸? 따지고 보면 사실이니까.”

    이안에게는 벌써 한차례 경험이 존재했다. 뿐만 아니라 마법사란 족속들의 습성을 잘 알고 있었다. 마법을 맹신하는 만큼 자신들의 심문 마법 또한 의심하지 않을 터, 전생의 이안한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천재니 뭐니 하면서 엄청 피곤하게 굴겠다만, 매질 당하며 사는 것보다야 낫잖아? 어머니도 훨씬 수월하게 모실 수 있을 거고. 그치?”

    […….]

    ‘꼬맹이 이안’은 이안이 하는 말을 전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몇 가지만큼은 비교적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매질에서 자유로워진다는 점과, 어머니를 조금 더 수월하게 모실 수 있다는 부분이 무엇보다도 만족스러웠다.

    [자, 잘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할게요. 아, 아니……. 그렇게 해주세요! 부탁할게요. 아저씨!]

    아저씨 소리는 참으로 간만에.

    아니, 처음 접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 듣다니.

    기분이 묘해지는 이안이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이안이 두 손을 뻗었다. 나아가 꼬맹이 이안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기 시작했다. 약속대로, 계획대로 작별의 시간이 찾아왔다.

    “아무튼 작별이다. 꼬마야.”

    [우음…….]

    이안의 인사에 ‘꼬맹이 이안’이 머뭇거렸다. 하고 싶은 얘기라도 있는 걸까?

    [저기, 아저씨.]

    “응?”

    [사실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뭘?”

    [꿈인지, 아니면 진짜인지요.]

    하룻밤 꿈, 당연히 그럴 거다. 고작 13살짜리 꼬마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방대하고 비현실적인 기억과 경험이었을 테니까.

    [그래도…… 진짜일지도 모르니까 인사드릴게요. 고맙습니다. 우리 엄마 안 아프게 해주셔서요.]

    ‘꼬맹이 이안’의 목소리는 진심으로 가득했다. 역시 이안은 이안이었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저 모습만 봐도 단박에 알 수 있으리라.

    “알면 됐다. 잘 보살펴 드리고.”

    [네! 맡겨만 주세요! 아저씨!]

    “오냐.”

    그 말은 곧 작별인사로서 가치를 다했다.

    이안의 정신체가 눈 녹듯 녹아내렸고, 선홍빛으로 가득했던 심상 세계 또한 소용돌이치며 무너지기 시작했으니까. 그 어지러운 공간 속에서 ‘꼬맹이 이안’ 역시 두 눈을 감았다. 거부할 수 없는 졸음이 몰려온 탓이었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머니를 모셔둔 열악한 흉가.

    ‘꼬맹이 이안’이 눈을 번쩍 떴다.

    “우음…….”

    가장 먼저 머리가 아팠다.

    왠지 모르게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것도 찰나에 불과할 뿐.

    곧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마땅히 지워질 기억은 전부 지워졌다.

    “엄마는…….”

    어머니는 주무시고 계셨다.

    오늘따라 혈색이 좋아 보였다.

    호흡도 꽤 안정적인 것 같았다.

    “휴, 다행이다.”

    아무래도 오늘은 ‘꼬맹이 이안’의 기도가 통한 모양이었다. 그래 봐야 잠깐일 테지만, 병세가 악화하는 것보다야 백 번 천 번 낫겠지.

    콰앙-!

    ‘꼬맹이 이안’이 안도하는 그때였다. 흉가의 낡아빠진 문짝이 쾅하고 떨어져 나가버렸다. 바깥으로부터 가해진 충격이 원인이었다.

    “누, 누구……?”

    ‘꼬맹이 이안’의 당혹감으로 가득한 목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누구긴 누구야 이 개새끼야!”

    험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꼬맹이 이안’에게도 익숙한 음성이었다. 주점을 운영하는 폭력배들의 목소리였으니까. 그중에서도 평소 ‘꼬맹이 이안’을 자주 구타했던 람바오가 잔뜩 씩씩거리며 들어왔다.

    “너 이 새끼! 오늘 아주 뒈질 줄 알아라. 네 어미랑 같이 쌍으로 찢어다가 개밥으로 던져줄 테니까!”

    놈은 어찌 된 영문인지 한쪽 손을 붕대로 칭칭 감았다. 심지어 손가락마다 부목까지 고정해뒀다.

    “가, 갑자기 왜…….”

    작금의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꼬맹이 이안’이었다. 물론 저 폭력배들이야 개자식이 분명하긴 했지만, 지금처럼 불쑥 찾아와 난리를 쳐댄 경우는 ‘꼬맹이 이안’으로서도 상당히 생소했다.

    “갑자기 왜 이러시…….”

    퍽!

    이윽고 람바오의 발길질이 ‘꼬맹이 이안’을 가격했다. 복부에 꽂힌 탓일까? 일말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했다. 그저 뿜어지는 거품과 함께 널브러져 꿈틀거릴 뿐이었다.

    “끄으윽……!”

    “뒈져! 뒈져! 뒈지라고!”

    퍼억! 퍽! 빠악 - !

    놈의 무자비한 발길질이 계속되었다. 입구마저 가로막혔다. 도망칠 방법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통증마저 무감각해지기 시작했다.

    '설마 나, 죽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두려웠다.

    ‘이렇게…….’

    조금 억울한 것도 같았다.

    이렇게 죽어날 인생이었다니.

    ‘나는 왜 태어난 걸까? 고작 이렇게 맞다가, 허구한 날 두들겨 맞다가 죽으려고……?’

    의식이 점점 흐릿해졌다.

    죽음이 목전인 것 같았다.

    “뭐야, 설마 벌써 뒈지시려고? 안되지 안 돼. 아까 주점에서도 말해줬잖아? 너한테는 아직 할 일이 있다니까 그러네.”

    주점의 관리인이자 폭력배 람바오, 놈이 ‘꼬맹이 이안’ 앞에 쭈그리고 앉아 이죽거렸다. 자꾸만 할 일이 남아 있다는 둥 헛소리를 지껄이기도 했다.

    “자! 죽는 건 나중으로 하고, 일단 눈부터 좀 떠봐. 옳지. 그렇게 앉아서 여길 봐. 여기. 까꿍! 잘 보이지?”

    급기야 ‘꼬맹이 이안’의 상체를 일으켜 세우더니 벽에 기대어 앉혔다. 그 방향은 아직 깨어나지 못한 어머니를 향하고 있었다.

    “잘도 주무시네. 네 어미라는 년.”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분명 엄청난 난리였다.

    한데도 깨어나지 않으셨다고?

    ‘그럴 리가…….’

    ‘꼬맹이 이안’이 떨어졌던 고개를 올렸다. 퉁퉁 부어터진 눈도 최대한 크게 떴다. 어떻게든 어머니의 상태부터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오, 드디어 보는군.”

    람바오는 어느새 어머니의 곁으로 다가가 ‘꼬맹이 이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음흉하고도 끈적거리는 눈빛, 그리고 목소리였다.

    “지금부터 네가 해줄 일은 말이다. 음, 간단히 말하자면 네 어미를 팔아넘기는 일이야. 짭짤한 거래가 잡혔거든? 예쁘장하고, 피부 하얗고, 엉덩이 크고, 조용하고, 적당히 가지고 놀다 ‘처분’하기에 부담이 없는 노리개. 그런 계집 하나 찾으시는 분이 계시더라고.”

    순간 ‘꼬맹이 이안’의 이마에 핏줄이 잔뜩 솟아났다. 어머니를 어떤 부자, 혹은 귀족에게 노리개로 팔아넘기겠다는 뜻이었으니까.

    “그 조건을 듣자마자 딱, 농담이 아니라 진짜 딱! 하고 네 어미가 생각나더라니까? 흐흐, 어차피 곧 뒈질 년, 쓸데없이 밥만 축내는 년. 너도 좀 홀가분하지 않겠냐?”

    “…….”

    놈의 가뜩이나 음흉했던 목소리. 그 끔찍한 말소리가 더더욱 기괴하게 꿈틀거렸다. 단지 듣는 것만으로도 불쾌감이 자극될 정도였다.

    “근데 있지. 세상 만물에는 다 순서라는 게 존재하는 법 아니겠냐? 그간 병 옮을까 봐 꾹 참았는데, 글쎄 그 나리께서 얘기를 듣더니만 ‘성수’까지 내어주시더라.”

    ‘성수’란 현시점 최고급 연금술로 빚어낸 값비싼 비약의 별명이었다. 베네사의 병은 태생적으로 나약한 몸에 영양 부족과 더러운 환경 등 여러 요소가 빚어진 수준이었기에, 성수 한 병으로도 제법 그럴싸한 호전을 바랄 수 있었다.

    “역시 귀족 나리들은 통이 크다니까? 그 변태 같은 취향 한번 만족하자고 돈을 얼마나 쓰는지 모르겠어. 뭐, 우리한테는 고마운 고객이시지.”

    반대로 따지자면, ‘꼬맹이 이안’은 그 성수 하나 구할 능력이 없어 어머니를 치료하지 못했던 거다.

    “그래서 말인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가 순서를 좀 엄격하게 세워보려고. 그냥 팔아넘기기엔 뭐랄까, 너무 아까워. 여러모로.”

    폭력배 람바오가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다른 무리도 마찬가지였다. 놈들의 눈과 입, 머릿속에는 온통 더러운 생각만 가득했고, 심지어 그 생각에 지배를 당했다.

    “거기 앉아서 감상이나 하라고. 우리가 네 어미를 어떻게 가지고 노는지 말이야. 그게 이상한 속임수로 내 손가락을 분지른 대가니까.”

    상황은 확실해졌다. ‘꼬맹이 이안’조차 이해할 정도로 더러운 악의, 그리고 노림수가 체감되었으니까.

    “……돼.”

    “엉? 뭐라고?”

    “안 돼…….”

    거의 혼수상태나 다를 것이 없는 ‘꼬맹이 이안,’ 녀석이 힘겹게 웅얼거렸다. 명백한 반대의 의사였다.

    “하! 안되긴 뭐가 안 돼?”

    “그, 그만…… 그만둬…….”

    “지랄하고 자빠졌네.”

    ‘꼬맹이 이안’의 간곡한 요청을 무시한 채, 깨어나지 못한 베네사의 육신 쪽으로 양손을 뻗는 람바오였다. 일단 일으켜 세운 뒤 성수부터 복용시킬 요량인 것 같았다.

    “이래도 안 일어나? 야, 네놈 어미 벌써 뒈진 건 아니지? 숨은 쉬는데…… 맛이 가버리기 직전인가? 그건 좀 곤란한데. 흐음…….”

    놈의 추악하고 더러운 손이 베네사를 더듬었다. 냄새나는 입김 또한 어머니의 얼굴에 흠뻑 닿았다.

    “그만…….”

    “그래도 반반하긴 하다니까? 교태부리는 창녀도 좋지만, 가끔은 또 이렇게 별미를…….”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 손!”

    ‘꼬맹이 이안’의 고성이 터져 나왔다. 뿐만 아니라 대칭으로 모은 손바닥 사이로부터 푸른빛 구체가 진동하며 빚어졌다. 이안이 남겨두고 간 유일한 기억, ‘매직 미사일’이었다.

    “치우라고!”

    유일하게 남겨졌던 기억은 마치 본능처럼, 육신에 새겨진 버릇처럼 행동으로 먼저 나타났다. 특히 끓어오르는 분노야말로 그 기억을 끄집어내기에 적절한 자극제였다.

    “이 개자식아아아아-!”

    아까부터 떠올렸던 의문.

    도대체 왜 태어난 걸까?

    두들겨 맞다가 죽으려고?

    그 의문이 방금 해소되었다.

    ‘꼬맹이 이안’이 태어난 이유.

    그것은 어머니, 베네사였다.

    쾅-!

    이윽고 ‘꼬맹이 이안’의 손아귀를 떠나 폭발해 버린 매직 미사일 한 구. 그 폭발의 표적은 당연하게도 불량배 중 하나, 람바오의 흉측한 ‘머리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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