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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75화 (17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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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75화

    68. 마지막 매듭 (4)

    “이안 님께서는…….”

    뒤따라 침실로 들어온 래디오.

    그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아직 끝내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시는 중이라고 하셨습니다.”

    “끝내지 못한 일이라니?”

    “소인도 자세한 설명은 드릴 수가 없습니다만, 분명 그리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여기, 편지로 말이죠.”

    침대 옆 탁자에 놓인 양피지 한 장을 집어 황태자한테 건네는 래디오였다. 이안이 직접 자초지종을 설명해 놓은 ‘친필서신’이기도 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황태자가 편지의 내용을 살폈다.

    꽤 장문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나의 가족, 그리고…….”

    [나의 가족, 그리고 친구들에게.]

    [많이 놀랄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더군요.]

    [먼저, 저는 죽은 것이 아닙니다.]

    [잠시 다른 세상에 있을 뿐이죠.]

    [반드시 매듭을 지어야 하는 일.]

    [그 일을 마저 끝내고자 합니다.]

    [자세한 건 설명이 어렵습니다만.]

    [곧 돌아올 테니, 걱정 마십시오.]

    “다른…… 세상?”

    다른 나라도 아니고, 다른 대륙마저 아닌, 다른 ‘세상’이라니? 황태자로서는, 아니 이안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는 뜬구름과도 같은 얘기였다.

    하지만 이 편지의 필자가 이안이라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결코 허언은 아닌 것 같았다.

    “이 편지를…….”

    [이 편지를 전할 만한 분들께 모두 보여드렸다면, 과감히 찢어주세요.]

    “찢어라……?”

    마지막 글귀는 그랬다. 찢어달라는 내용이었다.

    보여줄 사람이라면 가족, 그리고 황태자 정도일 터. 즉 지금이 찢어야 할 순간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전하께 편지를 보여 드린 뒤, 편지에 적힌 그대로 행하여 주심을 부탁할 계획이었습니다. 혹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래디오가 정중하게 부탁했다.

    황태자 역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못할 것도 없지.”

    마침내 이안의 바람 그대로, 래디오의 요청대로 편지지가 쭉 찢어지기에 이르렀다. 모든 것은 황태자의 손아귀로부터 비롯되고 있었다.

    찌이이이익……!

    천천히, 신중하게 갈라진 편지지.

    처음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평범한 종잇장이나 마찬가지.

    바로 그때였다.

    화르륵!

    두 쪽이 나버린 편지지가 푸른 불꽃으로 휘감겼다. 하지만 뜨겁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분 좋은 포근함이 황태자의 손끝에 전해져 왔다.

    “……?”

    편지를 집어삼킨 푸른색 불꽃, 그 불덩이가 이내 문자를 그렸다. 한 가지 내용이 아니었다. 총 네 부류의 글귀를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내기 시작했다.

    [어머니, 많이 당황스러우시겠지요. 갑작스레 나타난 아버지, 그리고 이후의 일들 전부. 돌아가서 그간의 모든 이야기를 다 해드리겠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전언의 첫 번째 대상은 어머니, 베네사 페이지였다. 비록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지금 가장 당혹스러움을 느낄 사람은 그녀였다. 오래전 죽은 줄만 알았던 남편, 프란 페이지와 관련된 일이었으니까.

    [래디오 님, 그리고 더글라스. 뭐 딱히 드릴 말씀은 없군요. 전 인정했으니까, 알아서 잘 해보세요. 새 아버지가 되시든, 족보에 동생을 하나 추가해주시든, 북치고 나팔을 부시든. 뭐가 되었든 힘내시길.]

    새 아버지라 함은 래디오. 동생이라 함은 더글라스를 뜻할 터. 래디오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커, 커흠……!”

    그의 헛기침과 동시에.

    세 번째 전언이 나타났다.

    [장인 분들께는 여러모로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말씀밖에 드리지 못하겠군요. 하지만 일전에 맺었던 약속만큼은 반드시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방법을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장인들에게 내려진 영생의 축복, 혹은 불사의 저주를 거두어주겠다고 약속했던 이안이 아니겠는가? 바로 그 약속에 관한 이야기였다.

    [마지막으로, 제가 예상하기로는 한달음에 달려왔을, 해서 편지까지 직접 찢어주셨을 황태자 전하.]

    네 번째 전언에 모두가 흠칫했다. 특히 황태자의 반응이야말로 일품 그 자체였다. 어디선가 지켜보기라도 하는 걸까? 그런 의심이 들 정도로 정확하게 들어맞았으니까.

    [성공적인 토벌을 축하드립니다. 아마 깨달으신 바가 많으시겠죠. 없다고 하셔도 있는 걸로 하겠습니다. 능히 그러셔야 하니 말입니다.]

    가벼운 농담으로 시작된 전언.

    황태자가 피식 웃었다.

    [곧바로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과, 그 원인으로부터 파생된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자 부득이하게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부재의 기간이 길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전하께오선 지금처럼만, 계속 그렇게만 앞으로 쭉 나아가십시오.]

    이안의 전언은 딱 거기까지였다.

    “…….”

    잠이 든 이안의 주변, 그 침소로 모여든 황태자, 래디오, 더글라스, 베네사까지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하니, 어쩌겠는가? 마음씨 넓은 우리가 기다려주는 수밖에.”

    그 침묵을 깨는 쪽은 황태자였다.

    분위기를 풀기 위한 농담이었다.

    나아가 정답을 얘기하기도 했다.

    “전하의 말씀이 옳으시옵니다. 이안 님이 괜한 소리를 하실 분은 아니니까요. 금방 돌아온다고 하셨으니, 모두 조금만 더 기다려봅시다.”

    래디오 역시 공감을 표했다.

    애당초 이안 페이지가 누구던가.

    범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높다란 경지를 거니는 존재가 아니겠는가? 오직 그곳에서만 보이는 풍경들이 존재할 터.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리라.

    “그래도.”

    황태자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해는 하지만, 그럼에도 일말 아쉬움이 묻어났으니까.

    “좀 쉬다 갔으면 좋았을 텐데.”

    금방 돌아오겠지.

    곧 만날 수 있겠지.

    황태자를 비롯한 가족들.

    모두가 그렇게 여겼다.

    * * *

    “……!”

    이안이 눈을 떴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여긴 또 어디지?”

    익숙한 듯 주변부터 둘러봤다.

    동시에 자신의 몸뚱이도 살폈다.

    작은 손, 작은 발, 작은 다리.

    흡사 아이와도 같은 몸이었다.

    “어우, 따가워.”

    심지어 누워 있는 장소도 저택의 침대처럼 고급스러운 침구가 아니었다. 어디 창고에라도 처박힌 듯 푸석푸석하고, 냄새나며, 더러운 짚단에 나뒹굴고 있었으니까.

    ‘이 나이, 그리고 이 정도의 푸대접이라면…… 아, 생각났다.’

    이안은 이안이 아니었다. 갑자기 무슨 헛소리냐? 표현 그대로다. 정신은 이안이되, 몸뚱이와 환경은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안이란 거다. 이안은 벌써 수백 번째 차원을 돌아다니며 심상 세계의 영혼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있었다.

    ‘내가 겪어본 차원 중에서…….’

    일개 ‘인간의 기준’으로서 가장 불행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이안 페이지, 그 소년이 속한 세상이었다.

    ‘제자리로 되돌려놓는 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대로 괜찮을까?’

    본래의 주인, 소년 이안 페이지의 영혼을 활성화하고 떠나는 것쯤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심상 세계로 들어가 해당 영혼을 자유롭게 풀어준 뒤, 그 안에서 목격한 모든 기억을 지워주고, 조용히 빠져나가면 그만이었으니까.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손쉬운 일이긴 한데, 문제는…….’

    더는 심상 세계로 진입하고자 특별한 비약을 조제하고 마실 필요가 없었다. 하고자 한다면 능히 궁극적인 마나 호흡의 경지로서 단번에 진입할 수 있었다.

    ‘이 꼴로 두고 떠나기가 좀 그렇단 말이지. 아무리 그래도…….’

    이안이 정석대로 육신의 영혼을 주인에게 되돌려준 뒤, 곧장 다른 차원으로 향한다면 이 세상의 이안은 예전과 같은 삶을 살게 된다.

    ‘명색이 이안 페이지인데.’

    이 세상의 이안은 정말이지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 전 차원의 이안 중 가장 비참할 정도였다.

    ‘어떻게 그 재능을 가지고도 이럴 수가 있냐. 세상 모른다니까.’

    다른 차원의 이안들은 그래도 마법사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자연히 삶의 질도 높았다. 하지만 이 세상의 이안 페이지는 크게 달랐다.

    ‘마법사는커녕, 매질이나 당하는 주점 하인이라니.’

    이 세상의 이안 페이지, 그 13살 소년의 인생은 기구했다. 콜드우드 제국 태생이며, 아픈 어머니를 보살피고자 불량배들이 운영하는 주점에 하인으로 들어갔다. 하루가 다르게 매질만 당하며 노동을 해온 세월이 어느덧 3년째, 입에 풀칠하는 것조차 버거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어지간하면 넘어갈 텐데.’

    명백히 다른 차원의 일이다.

    어떻게든 간섭을 줄여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백 번 천 번을 양보한다 해도.

    ‘이건 좀 아니지.’

    그렇다.

    이건 아니다.

    외면하기가 힘들다.

    이 또한 이안 페이지.

    자기 자신이 아니던가?

    심지어 어머니까지 편찮으시다.

    ‘조금만 도와주자. 조금만.’

    적어도 매질은 당하지 않으며 살 수 있도록, 아무한테나 무시당하며 살지 않도록 약간의 도움만 주자.

    “뭐야, 이 새끼 일어났네?”

    바로 그때였다. 굳게 닫힌 창고 문 바깥으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껏 째진 남성의 것이었는데, 콜드우드 제국의 언어였다.

    “그렇게 뺨을 후려쳐 지랄을 해도 깜깜무소식이드만, 꼴에 살고는 싶었나봐? 엉? 오늘도 못 일어나면 아주 강물에 처박아버리려고 했었거든.”

    무척 야비한 인상의 콜드우드인.

    놈이 킬킬거리며 문을 열었다.

    “아무튼 잘됐다. 그 썩은 동태눈깔 좀 그만 껌뻑거리고 튀어나와봐. 네놈 할 일이 쌓여있으니까.”

    이 세상의 기억을 살피자면, 눈앞에 저놈이야말로 매질의 주범이었다. 이름은 람바오, 주점을 운영하는 뒷골목 일파의 일원이었다.

    “어쭈? 한숨 때리더니 미치기라도 했냐? 말로 할 때 안 나와? 엉?”

    이안이 꼼짝도 하지 않자 건들거리며 접근하기 시작한 불량배 람바오, 놈이 평소처럼 주먹을 올렸다.

    “와 나, 요 새끼 봐라? 오냐, 기억이 안 난다면 나게 해줘야지.”

    이안의 머리채, 혹은 귀때기를 잡아 비틀기 위해서였다. 구타의 본격적인 서막이기도 했다. 하지만.

    “속상하네.”

    “엉? 뭐라고?”

    “고작 이따위 놈들한테 착취당하고 사는 나라니, 이거야 원.”

    당하고만 있을 이안이 아닐 터.

    이 상황에서 아주 적절한 대응.

    두말할 것도 없이 마법이었다.

    간단한 마법이면 충분했다.

    꽈드드드득……!

    웬 소리 하나가 터져 나왔다. 손가락뼈가 부러지는 소리 같았는데.

    “크허억……?”

    그 후속작은 ‘비명’이었다.

    의문으로 잔뜩 뒤엉킨 소리였다.

    “끄…… 끄아아아악-!”

    무려 뼈가 꺾인 거다. 그것도 오른쪽 손가락 전체가 말이다. 고통은 빠르게 퍼졌다. 미약했던 신음이 괴성으로 번질 만큼 엄청났다.

    “무, 무슨…… 무슨 짓을……?!”

    “다행인 줄 알아. 손가락 몇 개면 싸게 먹힌 거니까.”

    곧장 주점을 빠져나온 이안,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과연 이 상황에서 무엇을 어찌 바꿔줘야 할까?

    ‘우선 어머니부터.’

    이 세상의 기억을 따르자면, 젊은 어머니는 병석에 누워 있었다. 다른 세상일지언정, 어머니는 어머니 아니겠는가?

    일단 그 건강부터 되찾아줄 필요성이 강하게 느껴졌다.

    “어머니.”

    어머니를 모신 누추한 흉가. 아닌 말이 아니라 정말로 ‘흉가’였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으니, 병세가 호전되기는커녕 악화만 되었을 뿐이리라.

    “일이 바빴던 거니? 요 며칠 오지 않아서 걱정…… 콜록! 콜록콜록……! 으음…….”

    어머니 베네사가 힘겹게 몸을 가누며 말했다. 그 모습에 이안의 표정 역시 안타까움으로 물들었다. 제아무리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한들, 가슴이 미어터질 것 같은 슬픔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잠시만 누워 계세요.”

    이안이 발휘할 수 있는 치료계열 마법을 총동원하기 시작했다. 제로 클래스의 영역은 마나가 필요하지 않기에, 덜 성장한 마나하트의 한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 이안? 이게 무슨…….”

    “한숨 푹 주무시고 나시면.”

    몸속 깊은 곳으로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변화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베네사, 그런 그녀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이안이었다.

    “달라지실 겁니다. 많은 것들이.”

    “무, 무슨 말…….”

    “깨어나시면 봬요.”

    치료의 다음은 간단한 수면 마법. 지금으로선 한숨 주무시는 편이 여러모로 옳았다.

    ‘자, 그럼.’

    이 세상의 이안 페이지, 평생 당하고만 살아온 13살배기 꼬마에게 ‘기반’을 마련해줄 차례가 왔다.

    ‘아무래도 마법사가 좋겠지.’

    마나 반응 검사를 통해서 마나브레인과 마나하트의 존재만 인정받은 상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선에만 걸쳐둔다면 앞으로의 생은 탄탄대로일 터. 문제는 시기가 지났다는 거다.

    길바닥을 전전하는 사이, 대대적인 검사가 펼쳐지는 시기를 놓쳐 버린 것이다.

    ‘뭔가 괜찮은 방법이…….’

    여러 달을 기다려 다시금 대륙적으로 펼쳐질 마나 반응 검사에 참여할 수도 있겠으나, 너무 멀었다.

    “흐음.”

    한참을 고민했던 이안, 그가 마침내 그가 방법 한 가지를 떠올렸다.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이었다.

    ‘역시, 그 수밖에는 없겠어.’

    결정까지 내려졌다.

    이제 남은 건 행동뿐.

    이안이 자리에 앉았다.

    나아가 마나호흡을 펼쳤다.

    심상 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궁극적 형태의 마나호흡이었다.

    팟!

    이윽고 이안의 정신체가 심상 세계로 진입했다. 그곳에는 프란과의 격전 도중 본래의 차원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삼켜버린 영혼들이 잠들어있었다.

    ‘그래도 많이 줄였다.’

    이안은 수많은 차원을 떠돌며 심상 세계 속 영혼을 제자리로 돌려놨다. 그래서 망정이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선홍빛 공간이 잠든 영혼으로 가득했었다. 흡사 프란 페이지의 심상 세계처럼 말이다.

    “어디 보자, 이 꼬맹이가…….”

    그가 찾는 ‘꼬맹이’란 작금의 세상, 인즉 ‘13살배기 이안 페이지’의 영혼을 뜻했다.

    “찾았다.”

    구석진 곳에 자리 잡은 꼬맹이.

    이안이 그 잠든 영혼을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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