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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72화 (17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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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72화

    68. 마지막 매듭(1)

    “뭐, 뭐라고……?”

    “거짓말 좀 그만하라고.”

    싸늘하게 읊조린 이안.

    그가 손바닥을 쭉 펼쳤다.

    표현 그대로 펼쳤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무지막지했다.

    쿠웅!

    프란의 몸뚱이가 마치 투석기로 쏘아진 바위처럼 튕겨버렸으니까.

    어디 그뿐일까? 땅바닥에 처박힌 채로 엉금엉금 기어 나와야만 했다. 언어의 힘은커녕 단순한 플라이 주문조차 방해를 받았으니 말이다.

    “이, 이놈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군.”

    쿠우웅-!

    응징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안의 가벼운 발길질 한 번에, 프란이 엉금엉금 기어서 올라왔던 땅덩어리 일대가 움푹 꺼지기 시작했다. 마치 모래 늪처럼 빨려 들어간다고도 표현할 수 있으리라.

    “크허어……!”

    어렵사리 빠져나온 프란, 그가 구토라도 하듯 숨을 내뱉었다. 동시에 절망감을 느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맛봤다. 봉인을 당했을 때에도, 그 후 수백 년을 보낼 때에도 느껴볼 수 없었던 감정이었다.

    “어찌, 어떻게 이럴 수가……!”

    더는 상황을 반전시킬 수단도, 계략도, 일말 기회조차 사라진 것 같았다. 자신의 힘이 통하기는커녕 시도조차 해볼 수 없는 상대, 이안은 그러한 존재가 되어버린 거다.

    “발버둥 쳐도 소용없어. 더는 당신의 세 치 혀에 놀아나지 않아.”

    “크으…….”

    “당신의 기억, 지식, 계획. 그 전부 다 내 수중으로 들어왔거든.”

    물론 모든 것이 거짓은 아니었다. 오히려 진실에 가까웠다. 문제는 단 하나의 거짓, 프란과 베네사가 함께 죽는다는 그 ‘협상의 수단’만큼은 명백한 거짓말이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지 않는다.’

    단, 프란과 베네사의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존재함은 사실로 드러났다.

    때문에 프란이 사망한다면, 해서 그 고리가 끊어진다면, 오랜 세월 프란의 도구로서 존재했던 베네사는 평범한 인간이 된다.

    평범하게 늙고, 허락된 세월을 소진한 뒤 죽음을 맞이한다는 얘기였다.

    ‘괜찮아.’

    그 기억을 읽어낸 순간.

    이안은 그렇게 여겼다.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

    한 번의 삶만 주어지는 것.

    진심으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모든 것을 끝내고…….’

    눈앞에 닥친 모든 일이 끝난다면, 해결해야 할 실타래들을 전부 다 풀어낸다면 이안 자신도 평범한 인간으로서 자연 만물의 섭리에 따라 흘러가고자 했으니까.

    만약 그 이상을 바랐다가는, 프란과 똑같은 괴물이 될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될 수는 없지.’

    이안의 뜻은 확고했다.

    그렇기에 똑바로 볼 수 있었다.

    자칫 미래가 될 수도 있는 존재.

    한때는 인류의 수호자였던 존재.

    최초의 마법사, 프란 페이지를.

    “……아버지.”

    이안이 속삭이듯 읊조렸다. 지금껏 프란에게 일관했던 목소리 중 가장 적의가 없는 음성이었다.

    “과거의 당신은, 마땅히 존경받을만한 존재였어. 먹이사슬에서도 하층이었던 인류, 그 보잘것없었던 족속들을 오직 혼자의 힘과 의지로 지켜냈으니까. 당신이 아니었다면 세상은, 지금과 많이 달랐겠지.”

    이안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 여느 때보다 말이다.

    “나는 그릇이 좁아서,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좁아터져서, 설령 몇 번의 삶을 반복한다 해도 아버지, 당신처럼 할 순 없을 것 같아. 고작해야 기억 조금 읽었을 뿐인데도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거든.”

    이안은 스스로의 한계를 알았다. 그렇기에 진심으로 인정할 수 있었다. 적어도 과거의 프란 페이지는, 세상 누구보다 위대한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의 당신.”

    물론 모든 것은 과거일 뿐.

    지금은 얘기가 달랐다.

    “너무 많은 것을 감당하고자 했고, 끝내 감당할 수 없었던 당신.”

    지금부터 이안이 말하고자 하는 존재란 바로 ‘현재의 프란’이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분별하게 차원을 분열시켰고, 봉인 속에서 탈출하고자 천년가약을 맺었던 아내, 그리고 핏줄마저 도구로 전락시켰으며, 대초원의 수많은 생명조차 협박의 수단으로 희생시켜 버린 당신. 더는 인류의 수호자란 칭호가 무색하기만 한 당신.”

    이안은 작금의 프란 페이지, 그가 저지른 만행을 하나하나 읊조렸다.

    “숭고했던 이상은 땅속 깊은 곳까지 떨어져 버렸고, 그 텅텅 비어버린 가슴에 추악함만 욱여넣은 당신, 프란 페이지란 이름의 존재는.”

    “…….”

    “슬슬 퇴장할 때가 온 것 같아.”

    “…….”

    “이 세상에서, 영원히.”

    이안이 프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모든 수단과 계략이 실패로 돌아간 탓일까, 공허함만 남은 듯 초점마저 잃어버린 눈빛이었다.

    “당신이 그랬었지. 인류는 충분히 분류시킬 수 있다고. 나도 일정 부분은 동감해. 비록 그 분류의 조건이 다를지언정 말이야. 다만…….”

    잠시 말문을 멈췄던 이안.

    그가 프란과의 거리를 벌렸다.

    동시에 하던 말을 이어갔다.

    “그 분류라는 건, 피차 똑같은 인간만이 정의할 수 있는 영역이야. 더 이상 인간으로 보기 힘든, 당신과 같은 ‘괴물’의 영역이 아니라.”

    ‘괴물’이라는 표현에 공허했던 프란의 눈빛이 꿈틀거렸다. 의미심장한 눈초리였다.

    화가 난 건지, 혹은 부정이라도 하고 싶은 건지. 단언할 순 없었지만, 적어도 조금 전까지의 공허했던 눈빛과는 달랐다.

    “나는 인간으로서, 당신의 피를 이어받은 혈육으로서, 괴물로 변해버린 당신에게 안식을 선고하고자 해. 그럴 힘이 있고, 책임과 의무가 있으며, 마땅히 매듭을 지어야 할 순간이니까.”

    그 순간, 새하얀 빛으로 이루어진 줄기가 솟아나 프란의 육신을 포박했다. 프란이 불러냈던 시꺼먼 촉수와는 전혀 상이한, 그야말로 깨끗하기 그지없는 빛의 줄기였다.

    “부디.”

    동시에 이안의 두 손이 모아졌다. 손과 손 사이로 약간의 공간까지 만들었다. 그러자 모아진 손바닥 사이로 자그마한 구체가 맺혀졌다. 새하얀 빛의 구체였다.

    “언젠가는.”

    하나 그 구체는 ‘빛’이 아니었다. 커지면 커질수록 빛으로서의 면모, 그리고 구체로서의 면모도 사라져갔다. 대신 활활 타오르는 ‘불꽃’으로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육신은 물론 타락해 버린 영혼조차 말끔하게 정화할 정도로 순수한 백색의 불꽃, ‘백염’이었다.

    “평범한 아버지와 아들로. 사람이 힘들다면 한낱 짐승으로라도.”

    이안으로부터 탄생한 백색의 불꽃, 그 백염이 빠른 속도로 커졌다. 그야말로 ‘제로 클래스’라 명명된 경지의 정수가 담긴 불꽃이었다.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마침내 거대한 백색 불꽃이 이안의 손아귀를 벗어났다. 빠르지는 않았으나, 우직하게 뻗어 나갔다.

    “머, 멈춰…….”

    새하얀 불꽃을 목도한 프란.

    그가 사정하듯 중얼거렸다.

    “멈춰, 멈춰, 멈춰……! 멈춰라! 멈추라고! 당장 이걸 풀어!”

    중얼거림은 곧 증폭되었다.

    절규와 괴성으로 번졌다.

    “이안! 내 말을 들어!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네놈이 읽었다는 그 기억, 전부 다 조작된 거다! 내가 죽는다면 네 어미도 죽어! 후회하지 말고 당장 멈춰라! 이안! 이안!”

    프란이 자신을 포박한 백색 빛줄기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쳤다. 하나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강하게 조여질 뿐이었다.

    “나는 네 아버지다! 조금의 오해가 있었을지언정 네 아버지라는 얘기다! 설마 아비를 이렇게 죽일 셈이냐? 정녕 그럴 셈이냐? 이안!”

    심지어 부모와 자식의 관계마저 들먹거리기 시작했다. 그만큼 절박하고 또 절박했으니까. 실로 오래토로 기다려왔던 복귀이거늘, 죽어버리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아아아안-!”

    프란 페이지, 그 최후를 눈앞에 둔 존재가 이안의 이름으로 울부짖었다. 수천 년간 쌓아온 감정의 소용돌이가 울부짖음에 휘몰아쳤다.

    화아아아악!

    마침내 새하얀 불꽃이 프란 페이지, 그 낡은 존재를 집어삼켰다. 또한 하얗게 불태우기 시작했다.

    “…….”

    동시에 프란의 울부짖음도 점점 잦아들었다. 새하얀 불꽃으로 타들어 갈지언정 한 줌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따지자면 통증이 없는 쪽에 가까웠다. 백염은 단순한 불꽃이 아니었으니까. 단순히 육신을 태운다기보다는, 더욱 근본적인 ‘내면’을 불사르는 쪽에 더 가까웠다.

    쿠구구구구구구……!

    그래서일까? 놀랍게도 불꽃은 프란 페이지 외에 아무 곳에도 옮겨붙지 않았다. 흙바닥은 물론 한 포기 잡풀조차 멀쩡했다.

    오직 프란의 육신과 영혼만을 불태웠으며, 완전한 소멸의 길로 인도했다.

    “편히 쉬어.”

    이는 이안이 ‘이버지’에게 선사하는 마지막 배려였다. 또한 인류의 존속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던 ‘수호자’이자, ‘최초의 마법사’에게 보내는 최소한의 대우이기도 했다.

    “아버지.”

    이안이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프란으로서는 마지막으로 듣게 될 아들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

    새하얀 불꽃과 함께 조금씩 소멸하여가는 프란의 입술이 들썩거렸다.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었다.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안은 그 입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읽어낼 수 있었다.

    [고맙다, 이안.]

    고마움, 그것은 백염으로 모든 광기와 마기로부터 해방된 프란, 그가 영원한 안식 속으로 빠져들기 직전 이안에게 건넨 작별인사였다.

    “고맙기는.”

    이안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프란은 봉인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자신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모든 광기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런 잡다한 생각 말이다.

    화르르르…….

    끝 모르고 불타올랐던 새하얀 불꽃이 조금씩 화력을 잠재웠다. 그 화기에 집어삼켜 졌던 프란의 육체 또한 흔적마저 찾아볼 수 없었다.

    “허억……! 하, 후우우우…….”

    동시에 이안의 무릎도 꿇어졌다. 거친 숨 또한 참아내지 못했다.

    더는 버티고 서있을 기력조차 없었다. 강력한 존재의 영혼을 정화함과 더불어 완벽한 소멸까지 도모했던 마법이 아니던가?

    제아무리 이안이라도 가진바 모든 힘을 남김없이 쏟아낼 수밖에 없었으리라.

    ‘끝난 건가. 정말로.’

    이안이 힘겹게 주변을 둘러봤다.

    광활한 대지가 눈에 들어왔다.

    한 점 바람도 살랑거렸다.

    평화로웠다.

    ‘이렇게…….’

    방금 전까지 겪었던 모든 일이 흡사 꿈자락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니.’

    불어오는 바람을 만끽했던 이안. 그의 스르르 감겼던 두 눈이 일순간 번뜩거렸다. 모든 게 끝나지 않았음을 자각한 탓이었다. 아직 몇 가지 문젯거리가 매듭을 기다렸다.

    ‘가장 중요한 일이 남았다.’

    가장 중요한 일, 이안이 제 가슴팍을, 심장이 뛰는 그 가슴팍의 진동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제자리로 돌려놔야겠지.’

    그렇다. 프란은 본래의 차원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차원을 떠돌아다녔다.

    그 여파로 수많은 영혼을 심상 세계에 쌓아야만 했다. 비록 원했던 일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프란과 똑같은 만행을 저질러버린 셈이었다.

    ‘이대로 내버려둔다면, 영혼을 그저 여분의 생명쯤으로만 여겼던 프란과 다를 것이 없으니까.’

    모든 영혼을 본래의 차원으로 되돌려놔야만 한다. 이안에게는 그러한 의무와 능력이 있었다.

    “당장 움직여야…….”

    이안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윽……!”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모든 힘을 다 쏟아낸 후유증.

    당분간은 거동이 힘들 것 같았다.

    ‘……조금만 쉴까?’

    결국 다시금 주저앉아 버린 이안.

    아예 뒤로 벌러덩 누워버렸다.

    푹신한 흙바닥이 등을 반겼다.

    “좋구나.”

    지칠 대로 지쳐버린 몸뚱이가 노곤함으로 푹 물들었다. 조금이나마 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평생 이렇게 쉬고 싶다."

    실없는 바람.

    하지만 그 바람과는 달리, 이안의 흔적은 얼마 지나지 않아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그가 마지막으로 매듭을 묶어야 하는 일,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한 움직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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