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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71화 (17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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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71화

    67. 제로 클래스(2)

    ‘파쇄 마법인가? 아니, 관통 마법일 수도 있겠군. 아까도 비슷한 선택을 했었으니. 뭐가 되었든 이 보호막만큼은 절대 뚫을 수 없다.’

    프란의 머리가 빠른 속도로 회전했다. 온갖 경우의 수를 나열했고, 이내 안도했다.

    지금 자신의 펼친 보호막은 어떠한 수단으로도 뚫리지 않을 터. 가히 완전무결에 가까운 절정의 보호막이었다.

    ‘감지가 되지 않을 뿐, 위력은 다를 바 없을 거다. 그랬다면 진즉에 보여줬겠지. 굳이 손가락과 팔뚝 가지고 장난만 치지는 않…….’

    계산은 프란의 주특기였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그 특기가 통하지 않는 경지에 이안이, ‘제로 클래스’의 마법사가 있었으니까.

    “흐음.”

    보호막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온 이안, 그가 프란이 펼친 보호막을 위아래로 훑어보는가 싶더니.

    똑똑!

    마치 문이라도 두드리는 것처럼 보호막을 노크하기에 이르렀다.

    “과연, 대단한 방어막이야.”

    짤막한 감상도 빼놓지 않았다.

    그만큼 완벽한 보호막이었다.

    “근데.”

    물론 마법사로서 객관적인 평가로는, 말미에 첨언 한마디가 더 추가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거추장스러워.”

    강력한 보호막에 대응하는 이안의 자세, 그것은 과연 어떠한 마법일까? 프란이 계산했던 대로 파쇄, 혹은 관통 계열의 마법일까?

    “그러니까.”

    이윽고 이안의 팔이 움직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먹’이었다.

    오른쪽 주먹이 강하게 쥐어졌다.

    쿵!

    이안은 마법을 쓰지 않았다.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마법의 일환이긴 했다. 다만 겉보기로는 전혀 마법처럼 볼 수가 없었다.

    저 엉성하면서도 무식한 ‘주먹질’을 보고 어찌 마법이란 단어가 떠오르겠는가?

    쿵!

    하지만 결과를 보라.

    저 엉성한 주먹질이, 보호막은커녕 나무판자조차 제대로 부수기 힘들 것 같은 주먹질이 보호막에 균열을 일으켰다.

    콰지직-!

    마침내 이안의 주먹이 보호막을 꿰뚫었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에 프란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쯤하고 나오자.”

    이안의 주먹이 쭉 펼쳐졌다.

    동시에 프란의 멱살을 잡았다.

    바깥으로 끄집어내기 위함이었다.

    콰장창창-!

    멱살 잡은 손을 무자비하게 잡아당긴 이안, 자연스럽게 프란 페이지의 몸뚱이 역시 보호막을 박살 내버리며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크헉……?”

    보호막 안에서 강제로 뽑혀 나온 프란, 그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 이런……!’

    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처참하게 당하고 있는 자신의 꼴이, 순식간에 초월적인 경지를 이루어낸 이안 페이지의 힘이 말이다.

    ‘말도 안 되는……!’

    무언가 해야만 했다.

    본격적인 대응이든.

    나중을 그리는 도망이든.

    선택이 필요하다는 거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콰앙! 쾅! 콰광-!

    예측할 수도, 감지할 수도 없는 공격이 연쇄적으로, 심지어 다양하게 펼쳐졌으니까.

    심지어 목숨을 단번에 끊어버릴 만한 공격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작은 피해가 깨작깨작 들어오는 상황, 프란의 심리를 극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이 개자식……!”

    “그럼 당신도 개네.”

    어느새 붉은 피가 프란의 몸뚱이를 흠뻑 적셨다. 온갖 살덩이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럼에도 프란은 쓰러지지 않았다. 본능처럼 발동되는 강력한 치유마법이 그의 육신을 재생시켰으니 말이다. 피만 흥건할 뿐, 실질적인 피해는 협소했다.

    “크아아아아악! 죽인다!”

    버티다 못 한 프란이 당장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폭발 마법을 일으켰다. 본인조차 휩쓸릴 정도로 파멸적인 주문이었지만, 그 결과는 미미하다 못해 처참할 지경이었다.

    휘오오오오오오오-!

    이안이 만들어낸 홀, 그 허공에 뜬 새까만 구멍 속으로 프란의 모든 마법이 빨려 들어갔다, 한 점 마나의 찌꺼기조차 남기지 않았다.

    “잘 먹었다.”

    “뭐…….”

    “맛은 없네.”

    프란은 진심이었다. 조금 전까지는 그랬다. 순간적이나마 함께 죽을 심정으로 펼쳤던 마법이란 거다. 한데 놈은 그 마법을 기괴한 구멍으로 모조리 빨아들여 버렸다.

    “…….”

    프란이 두 주먹을 피가 날 정도로 말아 쥐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굴욕감에 시달렸다.

    본디 상황이란 게 이토록 급변할 수가 있는 것이었나? 그런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머리가 복잡한가 봐.”

    프란 페이지가 생전 처음 맛보는 혼돈과 자괴감으로 몸부림치는 그때, 이안의 음성이 그를 깨웠다.

    “고민 좀 덜어줄까?”

    믿을 수 없는 제안과 함께, 이안의 왼손 끝이 가로를 그었다. 그러자 프란의 머리카락 한 뭉치가 검에 베인 듯 잘려 나갔다. 조금만 더 깊었다면 머리카락이 아닌, 머리통의 윗부분까지 잘려 나갈 위치였다.

    “빗나갔군.”

    “……!”

    후두둑 떨어지는 머리카락에 프란이 정신을 바짝 차렸다. 이러다가는 정말로 죽음을 맞이할 것만 같았다, 고작해야 자신의 사념에 불과했었던 모조품 따위에게 말이다.

    ‘정면대결은 피해야 한다.’

    이안을 이길 수가 없다는 사실, 그 굴욕적인 현실을 인정하는 프란이었다. 적어도 순수한 힘으로는 그랬다. 살고 싶다면, 먼저 엄청난 힘의 차이부터 받아들여야만 했다.

    ‘어떻게든 몸부터 빼내야…….’

    도망은 이미 시도해 봤다. 물론 모조리 실패였다.

    공간이동 계열의 마법 자체가 발동되지 않았다. 자신이 보랏빛 무차원의 공간에 펼쳤던 방해기류, 그보다 더 강력한 무언가가 공간이동을 가로막았다.

    ‘역시…… 감정으로 호소하는 방법밖에 없는 건가? 그래도 아비라는 입장을 잘만 살려본다면…….’

    프란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안의 심리를 그대로 전달받았다. 그렇기에 충분히 알고 있었다.

    겉으론 냉정한 척, 무자비한 척 연기를 하고 있지만, 그 내면에 얼마나 순해 빠진 영혼이 담겨 있는지를.

    “프란. 아니, 아버지.”

    “……?”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자.”

    마침 이안이 먼저 말을 붙였다.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 같았다.

    “내 어머니.”

    모든 대소사를 종결 내기 전에.

    풀어두고 싶은 문제가 있었다.

    이안으로서는 중요한 문제였다.

    “당신이 보여줬던 과거, 그 세상이 조작된 게 아니라면, 어머니께서는 당신과 같은 시대의 사람이셨다. 당신처럼 오래도록 존재했다는 얘긴데, 처음에는 어머니께도 불사의 힘이 깃든 건가 의심했다. 하지만 장인들처럼 과거를 기억하시는 것도 아니지, 심지어 전생에는 돌아가셨다. 병으로 말이야.”

    의문점이 한둘이 아녔다.

    이안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그저 모든 것을 당신의 조작으로 치부한다면 얘기가 편하겠다만, 안타깝게도 믿을 수밖에 없더군.”

    현재의 이안은 프란조차 초월해버린 존재였다. 현실과 환상을 구분치 못할 리가 없을 터.

    “도대체 뭐지? 어머니께 무슨 개수작을 부린 거냐? 대답에 따라서 당신의 처우를 달리할 생각이야.”

    “살려주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아니, 그 선택지는 없어. 아무 탈 없이 편하게 죽느냐, 혹은.”

    이안의 말이 단호하게 떨어졌다.

    “고통 속에서 죽느냐.”

    “크크…….”

    결국 죽음뿐. 한데도 프란은 희망을 느꼈다. 이안의 약점이나 다를 바 없는 어미, 베네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녀석의 감정을 건드리기 충분한 소재였다.

    “내 아내, 그리고 네 어머니인 베네사는 특별한 존재다. 그깟 장인 따위와 비교될 사람이 아니야.”

    “해서?”

    “그녀와 나는 평생을 약속한 동반자이며, 한날한시에 모든 것을 마감할 반쪽이기도 하지.”

    “요점만 말해.”

    “요점을 말하고 있는 거다. 그녀는 나와의 연결로 하여금 오랜 세월을 존재할 수 있었으니까.”

    두 남자의 대화가 뚝 끊겼다. 이안 쪽에서 끊어낸 거나 다를 바 없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함께 마감한다는, 그 말…….”

    “옳지, 그게 바로 요점이다.”

    “자세하게 말해봐.”

    “내가 죽으면.”

    프란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물론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다.

    “배네사, 그녀 역시 죽게 된다. 이 세상의 베네사뿐만 아니라, 분열된 모든 차원의 베네사가.”

    “헛소리…….”

    “오, 미리 말한다만, 증명할 길은 어디에도 없어. 그러니까 자신이 있다면,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지금 당장 죽여보아라. 나를.”

    이안이 크게 흔들렸다.

    얘기치 못한 당당함이었다.

    “하지만 전생에서는…….”

    “죽지 않았다.”

    “뭐……?”

    “성공작을 잉태해 줬으니 그 답례로 오랜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줬을 뿐이다. 너, 그리고 나와 관련된 기억을 지우고 자유롭게 풀어줬지. 네 녀석에게 선물했던 것처럼, 일개 인간으로서 가장 완벽에 가까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해 줬다.”

    이안의 전생.

    인즉 독살을 당했던 차원.

    그 세상의 베네사는 죽지 않았다.

    “물론 그녀, 네 녀석의 진정한 친모 역시 죽게 되겠지. 영문조차 모른 채로. 내가 죽는다면 말이야.”

    궁지에 몰렸던 프란, 그의 절박함이 점차 옅어졌다. 사태가 다시금 통제권 내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이안, 신중하게 선택하는 편이 좋을 거다. 때에 따라 큰 후회를 맞이할 수도 있으니까. 협박이 아니라 충고야. 부탁이기도 하지. 나도 내 반쪽을 잃고 싶지 않아.”

    “…….”

    “그래, 이렇게 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냐? 나를 보내다오. 보내만 준다면 나 또한 다시는 네 녀석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으마. 지체 없이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 그 세상에서 이상을 실현하도록 하지.”

    미끼는 던져졌다.

    입질도 강하게 왔다.

    이제 건져 올릴 차례.

    프란이 신중하게 말했다.

    “어차피 내 목적은 도마뱀 놈들의 봉인에서 벗어나는 것. 네 녀석의 입장도 마찬가지 아니더냐? 나만 사라진다면 완벽한 삶을 누리겠지. 굳이 어머니를 잃지 않아도 돼.”

    아주 그럴듯한 절충안까지 내놓았다. 어미 베네사를 끔찍이 생각하는 이안이라면 이 먹음직스러운 미끼에 혹할 수밖에 없을 터.

    “정말인가?”

    잠시 침묵에 빠졌던 이안.

    그의 입술이 느리게 떨어졌다.

    “정말 그렇게 해줄 수 있어?”

    드디어, 드디어 물었다.

    프란이 흡족하게 대꾸했다.

    “이제 와서 무슨 수작을 부리겠느냐? 네놈 손짓 한 번이면 모가지가 날아갈 판국인데. 오히려 보내만 준다면 내 쪽에서 환영이다. 이 차원은 오롯이 너에게 주도록 하지.”

    낚싯대가 수면으로 솟아올랐다.

    이제 낚아채기만 하면 그만일 터.

    “그렇다면…….”

    이안이 조심스레 읊조렸다.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팟!

    하지만 그 망설임도 잠시.

    이안의 눈에 총기가 돌아왔다.

    동시에 육신마저 사라졌다.

    블링크 주문과 비슷했다.

    단지 그보다 더 빠를 뿐.

    목적지는 프란의 면전이었다.

    “확인 좀 해볼까?”

    확인을 운운하는 이안.

    그의 양손이 뻗어졌다.

    프란의 머리통을 낚아챘다.

    벗어날 기회조차 없었다.

    워낙에 빠르고 강력했으니까.

    “무, 무슨 짓을……!”

    (기억 훔쳐보는 짓.)

    이안의 영역 ‘제로 클래스’. 그 경지에는 어떠한 술식도, 주문도, 하물며 언어의 힘처럼 한마디 말조차 요구되지 않았다. 필요한 건 오직 이안의 생각, 그리고 행하고자 하는 바, 오직 두 가지뿐이었으니까.

    “음…….”

    프란의 기억을 음미했던 이안.

    음미라고 해봐야 일 초 남짓.

    그럼에도 충분했다.

    “당신, 예전부터 느끼는 거지만.”

    기억을 모두 읽어낸 이안이 잡았던 손을 풀어줬다. 간단하게나마 감상평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입만 열었다 하면 거짓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와.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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