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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70화
67. 제로 클래스(1)
“위험한 물건부터 치우고.”
이안이 가벼운 마법으로 래디오의 폭약을 몽땅 끄집어냈다. 그러더니 아공간 주머니 속에 담았다.
“이, 이안 님……!”
“그만 물러나세요. 여기서부터는 제가 이어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래디오 앞에 우뚝 서 프란을 고요한 눈으로 바라봤다. 이제부터는 제2차전의 서막이자, 긴 싸움의 막바지였다.
“처리? 네놈 혼자서, 나를?”
“그래. 나 혼자, 당신을.”
가벼운 말장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도마뱀 족속들은 어디 가고?”
“모르는 척 좀 그만하지.”
이안이 낮게 으르렁거리며 말하자, 프란 역시 차갑게 웃어 보였다.
“네놈은 빠져나오지 않았더냐?”
프란은 단순히 자리만 옮긴 게 아니었다. 보랏빛 무차원의 공간을 빠져나옴과 동시에, 강력한 안티매직 주문으로 하여금 이안과 드래곤 일족의 추적을 늦추고자 했다.
“솔직히 말하는데, 조금 놀랐다. 한평생 발전이 없는 도마뱀 족속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네놈 역시 당분간은 그 방해의 기류에 묶여있을 것이라 생각했거늘…….”
프란의 여유로움에는 근거가 존재했다. 애당초 지금처럼 빠르게 추적해올 줄 예상치 못했던 거다. 아무리 짧아도 반나절은 족히 걸릴 것이라 여겼으니까. 한데 설마하니 몇 분도 채 버티지 못할 줄이야.
“아마 예전 같았다면, 그러니까 당신을 봉인에서 끄집어낸 직후까지만 하더라도 불가능했을 거야.”
“뭐 얼마나 지났다고? 설마 그 짧은 사이에 깨달음이라도 얻었다,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려는 거냐?”
“……당신. 이제 보니 시간만 되돌릴 줄 알지, 분열된 세상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나 보군.”
이안의 목소리가 확신으로 가득했다. 애당초 프란 페이지는 차원을 분열시킨 근원 아니겠는가? 이안처럼 차원마다 또 다른 자신이 존재하지 않을 터, 경우부터가 달랐다.
“내가 분열된 세상을 모른다니? 너, 이안 페이지란 이름의 실패작 중 인간으로서 가장 이상적인 평온을 누리는 개체, 그놈이 속한 세상을 찾아 친히 보내주지 않았더냐?”
분명 그랬다. 프란은 그러한 세상을 잘도 찾아 선물이랍시고 이안을 이동시켰다. 하지만 이안의 말뜻은 그러한 뜻이 아니었다. 프란과 이안에게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했으니까.
“지금껏 당신에게 분열된 차원이란 그랬겠지. 어떤 시간적 소모도, 큰 고민도, 혼란도 없이 그저 산책하러 나가는 것처럼, 그렇게 드나들 수 있었던 곳. 맞나?”
“뭐, 크게 다르지는 않다만.”
“나는 달라. 아니, 달랐었다.”
이안의 두 눈에 이채가 서렸다.
젊은 얼굴과 전혀 상이한 눈빛.
전보다 더 노회해진 느낌이었다.
“당신과 달리 나는 이곳, 본래의 차원으로 돌아오기까지 수많은 차원을 떠돌아다녔다. 상상하는 그 이상의 세월이 필요했지.”
그 말에 프란도 조금은 놀란 기색이었다. 하지만 담긴 뜻까지 이해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처음 듣는 얘기에 대한 반응이었을 뿐.
“당신 눈에는 내가 단숨에 돌아온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아. 실로 긴 시간 떠돌았고, 많은 것을 고민했지. 그리고…….”
이안의 말문이 잠시간 멈췄다.
전율하듯 손까지 떨었다.
어째서일까?
“깨달았다.”
깨달음을 얻었다는 한마디, 그 말에 프란의 경계심이 솟았다. 단순한 허언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무엇을 깨달았지?”
“언어의 힘보다 높은 곳.”
“……뭐?”
“마법의 정점을.”
‘마법의 정점’ 그 표현에 한껏 치솟았던 프란의 경계심이 풀어졌다. 옅은 미소마저 지어보였다. 의도가 명백한 미소, 분명한 비웃음이리라.
“무슨 헛소리를 하나 했더니.”
프란이 조소로 일관하는 순간.
실로 경악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적어도 프란에게는 그랬다.
쾅 - !
자그마한 폭발, 마법으로 빚어진 폭발이 프란의 눈앞에 일어났다. 많이 쳐줘야 벌레 하나 죽일 법한 폭발이었다. 결단코 경악이란 표현을 남발할 규모가 아니라는 거다.
“……?”
그럼에도 프란은 경악했다.
단순하면서도 정확한 이유였다.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았어.’
프란은 마나를 느낀다. 상대의 마법이 발동되는 순간, 그 마법에 소모되는 마나의 흐름과 규모 등을 한 박자 빠르게 감지할 수 있었다. 그것이 프란 페이지가 지닌 ‘특별한 재능’ 중 하나이자, 이안을 손톱만큼도 두려워하지 않는 근거였다.
‘절대로, 절대로 불가한 일이다.’
한데 그 재능이, 마법사로서 최상의 축복이나 마찬가지인 재능이 발동되지 않았다. 자연히 혼란스러울 수밖에, 경악할 수밖에 없으리라.
‘혹 마법이 아니라 속임수인가?’
프란이 다른 경우를 떠올렸다.
분명 그렇게 여기고자 했다.
확신마저 품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콰앙 - !
또 면전에 터져 나왔다.
아주 자그마한 규모의 폭발이.
프란조차 감지할 수 없는 마법이.
쾅! 쾅! 콰광! 쾅!
심지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위치는 각각 프란 페이지의 면전, 귓가, 뒤통수, 정수리 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도 가까웠다.
“언어의 힘은 한계가 있어. 결국 마나를 빌려야 하니까, 하지만 나의 깨달음은 다르다. 마나가 필요치 않아. 자연 만물을 밑거름 삼아,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권능이지.”
프란은 그 말을 믿기 어려웠다. 하나 곧 새로운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정말이지 무심코 지나쳤던 한 가지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 그러고 보니…….’
방금 전. 연금술사 래디오가 자폭을 시도했던 당시, 이안은 분명 마법으로서 폭약병의 깨짐을 막았고, 아공간 주머니로 옮겨 담았다.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마나의 태동조차 느끼지 못했었다는 뜻이다.
“굳이 명칭을 부여하자면.”
마나가 감지되지 않는 혼란. 그 혼돈으로 마비된 프란의 사고에 나지막이 읊조려주는 이안이었다.
“제로 클래스.”
“제로……, 클래스?”
‘제로 클래스’ 마법. 프란이 넋 빠진 사람처럼 그 명칭을 따라 했다.
‘만약에, 앞으로도 계속 마나의 흐름을 감지할 수가 없다면…….’
그 차이는 크다. 표현 그대로 예측할 수 없는 공격, 단순한 변칙을 넘어서 무로부터 펼쳐지는 공격에 노출되는 셈이 아니겠는가? 심지어 프란은 그 당연한 감각에 익숙할 대로 익숙해져버린 상태였다.
‘이건……, 위험하다.’
프란의 본능이 경고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불사의 힘을 잃어버렸다. 한데 이제는 선천적으로 타고났던 마나의 감지력마저 통하지 않는다고?
“하, 하지만…….”
프란은 인정할 수 없었다. 흥분과 긴장으로 말까지 더듬었다. 단언컨대 처음 겪어보는 혼란이었다.
“아까는 어째서……, 도마뱀 놈들과 있을 때는 어째서 이런 힘을 선보이지 않았지? 기회였을 텐데?”
이안이 듣기에도 당연한 물음.
응당 대답을 내어주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확신이 없었거든.”
“확신……?”
그랬다.
이안은 확신할 수 없었다.
깨달은 경지에 대한 확신 말이다.
“그랬었는데, 당신이 내 가족을 본격적으로 노려준 덕에 얘기가 달라졌어. 몸과 마음이 급박해지니까, 내 주변이 당신이란 미치광이의 손아귀 아래 유린당할 거라는 생각을 하니까. 비로소 본능이란 놈이 제 할 일을 하더군.”
프란 페이지.
그자가 찍어준 셈이었다.
모든 깨달음의 ‘마침표’를 말이다.
“아까 해줬던 얘기, 한 번 더 해줄까? 당신은 내게 너무나도 많은 것을 내어줬어. 시간, 반드시 지켜야 할 사람들, 그들을 지켜낼 수 있는 강력한 힘, 게다가…….”
이안이 어깨를 쭉 폈다.
가슴도 당당하게 열었다.
“재능까지 줬잖아?”
그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
실로 오만했으나, 근거가 있기에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한마디.
“당신마저 뛰어넘을 정도로 압도적인 재능을, 그게 당신의 실수야.”
이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깊숙한 동굴이었던 사방 풍경이 ‘평야’로 돌변해버렸다. 마음껏 날뛰기에 부족함이 없는 평야 말이다. 단순한 환상 따위가 아니었다. 이안이 직접 펼친 텔레포트였으니까.
“무, 무슨……?”
그 어떤 속임수조차 아닌.
순수한 마법에 당해버린 상황.
당혹감이 물밀 듯 밀려왔다.
수천 년 만에 처음이었으니까.
“내가 이 말을 몇 번이나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할게. 당신과 나의 싸움. 그 질긴 악연, 꼬여버린 시간들.”
참으로 길었다.
라그나르에게 당했던 독살부터.
무려 삼십 년이란 세월의 회귀.
전혀 알지 못했던 인외의 존재.
그리고 모든 문제의 근원까지.
“오늘로서, 모든 것을.”
정말이지 머나먼 길을 걸어왔다.
이제 정착지에 도달할 차례였다.
모든 갈등, 싸움, 악연의 결착.
이안은 바로 그것을 원했다.
“청산하자. 프란 페이지.”
그 말은 제안 따위가 아니었다.
일종의 선전포고와도 같았다.
‘어찌 대응을 해야 하는 거지? 선공? 방어막? 그것도 아니라면…….’
이안이 손을 뻗어 프란에게 겨눴다. 그럼에도 어떠한 마나의 발현, 혹은 일말 흐름조차 감지되지 않았다. 평소였다면 콧방귀나 뀌고 말았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변했다.
‘우선 자리부터 피하고, 놈의 힘을 가늠해보는 것이 우선인가?’
프란이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나아가 온 정신을 한곳으로, 이안이 펼쳐 보인 손끝으로 집중시켰다.
“일단.”
마침내 이안이 입을 열었다.
새로운 경지에 도달한 마법사.
그 존재의 첫 번째 선택.
지이이이익……!
이안이 쭉 펼친 손날을 허공에 대각선으로 갈랐다. 그러자 종잇장이라도 베는 것처럼 쭉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심지어는.
“커헉……?”
좀처럼 듣기 힘든 프란의 신음이 바람 빠지듯 흘러나왔다. 뿐이랴? 놈의 검지 한마디가 붉은 선혈을 흩뿌렸다. 심지어 바닥으로 툭 떨어지기에 이르렀다.
“손가락 하나.”
일말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이안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점점 프란 페이지에게 다가왔다. 그러면 그럴수록 프란의 뒷걸음질은 빨라졌다. 수천 년에 달하는 생애 처음으로 맛보는 어마어마한 공포였다.
“자, 잠깐! 멈춰라 이안!”
그 순간부터 프란은 최강자로서, 아니 최강자‘였던’ 존재로서의 자존심도. 아비로서의 자존심도. 본신으로서의 자존심도 모두 버렸다.
“잠시 말을, 아비의 얘기를……!”
그럼에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안은 결코 멈추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더욱 강하게 압박했다.
“다음은.”
이안의 목소리는 마치 ‘선고자.’
‘죽음의 사신’과도 같았다.
아니, 명백한 사신이었다.
푸확 - !
또 다시 붉은 피가 솟구쳤다.
이번에는 그 양이 다소 많았다.
손가락으로 끝나지 않았으니까.
“팔 하나.”
손가락이 아닌 팔뚝.
왼팔 전체가 뜯겨나갔다.
깔끔하게 소멸시킬 수 있음에도,
이안은 굳이 고통을 증가시켰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악 - !”
프란의 흔치 않았던 비명, 곧 흔해질 예정인 그 단말마가 힘껏 메아리쳤다. 동시에 방어막을 펼쳤다.
“헉! 허어억! 하악……!”
방어막 속에 몸을 숨긴 프란.
당장은 안전하다고 여긴 걸까?
거친 숨을 몰아쉬기 바빴다.
하지만.
“거기 숨는다고 안전할까?”
이안이 고개를 까닥거리며 물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프란 페이지가 악마와도 같았다면, 지금은.
“글쎄, 내 생각은 좀 다른데.”
그 아들이자 본디 사념이었던 존재, 이안 페이지야말로 사악한 악마처럼 느껴졌다. 아무래도 작금의 싸움에, 선악이란 구분되지 않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