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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69화
66. 결착(2)
프란 페이지가 향한 곳. 그곳은 이안이 가족을 피신시켜둔 은신처, 자세하게 말하자면 드래고니안 일족의 거주지인 ‘드래곤 레어’였다.
이안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가족들을 모두 피신시켜 뒀다. 물론 사념으로서 연결되어 있었던 만큼 소용없는 짓이었지만 말이다.
“프, 프란 님……?”
그 난데없는 등장에 가장 먼저 놀라는 쪽은 장인들이었다.
동부 대초원의 스람과 클레반을 제외한 다섯 장인 모두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오랜 세월 사라졌던 존재, 또한 그만큼의 세월을 기다렸던 존재가 눈앞에 나타났으니까.
“나의 장인들아. 오랜만이구나.”
“어째서…… 어째서 이제야…….”
“바빴다. 지금도 바쁘지. 그러니까 나중에 얘기하도록 하고…….”
프란이 한쪽 손을 들었다.
동시에 옆으로 휘휘 저었다.
저리 비켜보라는 의미였다.
“잠시 자리 좀 비켜주겠나? 그 뒤쪽 동굴에 숨겨둔 내 아내, 베네사와 이야기를 나누어야겠으니.”
드래곤 레어의 깊숙한 곳에는 베네사와 래디오, 더글라스가 있었으며, 그 입구를 장인들이 틀어막은 상태였다. 물론 클레반의 일부 조각상도 방어진을 함께 구축했다.
“머, 멈추십시오. 프란 님.”
프란의 등장에 우물거리는 장인들, 그중 재봉사 베르톨도가 용기를 내며 나섰다.
“대단히 외람되옵니다만, 이 뒤로는 오직 이안 페이지. 그분의 통행만 허락되었습니다. 설령 그분의 아버지이신 프란 님이라 해도 비켜 드릴 수가 없습니다. 부디 양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조금은 위축되었으나 또박또박한 어조, 프란도 그런 베르톨도가 의외인 듯 입술을 동그랗게 떴다.
“호오, 베르톨도. 언제부터 그렇게 배짱 있는 사내가 되었지?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음, 세월의 힘이란 게 대단하긴 대단하구먼.”
너스레를 떠는 입과 달리, 프란의 눈매는 사뭇 날카로워졌다. 정갈하게 흘러나오는 마기 또한 짜증이 나는 듯 부르르 떨렸다.
“하나 거기까지, 이 이상의 반항은 나도 눈감아줄 수가 없겠어. 그러니까 비켜다오. 밀린 대화는 이후에 천천히 나눠줄 테니까.”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베르톨도의 마음가짐은 완고해졌다. 다른 장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안에게 들었던 프란 페이지의 변화를 쉬이 믿을 수 없었다. 해서 직접 만나보고자 했고, 그 뜻을 방금 이뤘다.
“더 이상의 접근을 금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뒤로는 오직 이안 페이지님만이 지나가실 수 있습니다.”
더불어 깨달을 수 있었다.
이안 페이지의 말이 사실임을.
장인들이 알던 프란 페이지.
그 존재가 영영 사라졌음을.
“하하, 이런…….”
프란이 웃었다.
헛웃음에 가까웠다.
“도마뱀도 그렇고, 핏줄도 그러더니만, 이제 네놈들까지 나를…….”
헛웃음의 다음은 ‘일그러짐’.
흉악하게 일그러지는 표정이었다.
“배신해?”
그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앞을 지키던 장인들도, 용용이를 포함한 클레반의 전투용 조각상들도 모조리 튕겨 나갔다. 아니, 튕겨 나가다 못해 박살이 나버렸다.
“바로 이래서 필요하다는 거다. 이래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인간과, 무리에서 쳐내야 할 인간의 구분 말이다! 너희처럼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는 기회주의자들, 그 쓰레기들을 걸러내기 위해서라도!”
그 강력했던 용용이마저 손짓 한 번에 박살이 났다. 장인들이라고 다르겠는가?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저세상으로 건너갔을 터. 하지만 그들에게는 ‘불사의 힘’이 존재했다. 다시금 형체를 이루어냈고, 자리에서 일어나 프란을 가로막았다.
“…….”
그 끈질긴 모습에 프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감정의 발현이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냐? 죽음을 내려주겠다는 약속 때문에? 그 정도야 내 손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지금 당장에라도 말이지. 그러니까 잠깐만 물러나 있으라는 거다. 너희들이 원하는 그 죽음, 내 친히 내려줄 터이니.”
“물론, 그 약속이 가장 중요합니다. 저희들은 이만 질긴 생을 마감하고 싶으니까요. 단.”
프란의 말에 베르톨도가 답했다. 어느 때보다도 결연한 목소리였다.
“이왕 같은 값이라면, 조금이라도 선한 쪽과 도움을 주고받는 게 마음 편하지 않겠습니까? 마지막 가는 마당에 말이죠. 물론 그 이안이란 분도 크게 선한 양반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지금의 프란 님께서는 변해도 너무 변하셨습니다.”
“내가 그리도 많이 변했나.”
“네. 확실히 변하셨지요.”
“흐음, 그렇단 말이지.”
베르톨도의 일갈에 수긍이라도 하는 것처럼 턱을 만지작거린 프란, 그가 뿌연 입김을 내쉬며 말했다.
“뜻은 알았다.”
그러자 사방으로부터 촉수가 튀어나와 다섯 장인을 붙잡았다. 몸뚱이는 물론 입도 뻥긋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포박했다. 단 몇 초 사이에 이루어진 완벽한 제압이었다.
“동의하진 못하겠다만.”
훤히 뚫려버린 길목, 둥지의 안쪽 동굴을 향해 프란이 나아갔다.
“베네사, 내 아내여.”
동굴의 안쪽은 불빛 한 점 없이 어두웠다. 소란을 듣고 급히 꺼버린 것 같았다.
그래 봐야 프란을 속일 순 없겠지만, 무슨 바람인지 장단에 놀아나주는 프란이었다.
“내가 왔소. 그대와 무려 천 년 가약을 맺은 프란 페이지, 당신의 하나뿐인 동반자 말이오.”
그 어둠 속으로 프란의 나직한 목소리가 퍼져 나갔다. 광기라곤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청명한 목소리였다. 특유의 너스레조차 없었다.
“너무 먼 시간으로부터 돌아왔구려. 한시라도 빨리 그대의 아름다운 미소를, 입술을 만나고 싶소.”
프란의 계속되는 부름에.
“프란……?”
어둠 속으로부터 이안의 어머니, 베네사가 대답했다. 그녀는 프란의 변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유일하게 듣지 못한 사람이었다. 큰 충격을 받을까 염려했던 이안의 배려였다.
“정말…… 당신인가요?”
“그렇소. 어서 이쪽으로.”
이윽고 어둠 저편으로부터 사람의 인기척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 기척은 베네사의 소유가 아니었다.
“페이지 부인, 저 남자는 부인께서 기억하시는 그 남자가 아닙니다. 이안 님께서 설치해 준 보호막으로 돌아가십시오. 절대 한 걸음도 나오시면 안 됩니다.”
베네사와 프란의 사이를 가로막은 존재, 그 남자는 래디오였다. 그가 품속에 감췄던 매직 랜턴을 앞세우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
“오, 연금술사여.”
프란 역시 래디오를 알아봤다.
이안의 눈과 감정으로 익숙하게 봐왔던 존재였으니까.
“그간 내 아내, 그리고 아들을 정성껏 보살펴 줬더군.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가족 간의 문제, 낄 자리가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겠지.”
프란이 가족이란 선을 그었다. 한데도 레디오는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콧방귀를 뀌며 일갈했다.
“가족 간의 문제? 웃기는 소리 집어치우시오. 이안 님께 다 들었소. 그대가 어떤 존재인지 말이오.”
래디오의 음성은 명백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안만큼, 어쩌면 이안보다 강한 존재를 가로막지 않았던가?
“당신이란 자는 더 이상 베네사 부인의 반려자도, 이안 님의 아버지도 될 수 없소. 단지.”
그럼에도 밀리지 않았다.
물러날 생각조차 없었다.
기세만큼은 호각을 이뤘다.
일생을 몽땅 털어낸 기백이리라.
“추악한 괴물에 불과할 뿐!”
그 단호한 외침과 함께, 래디오가 두꺼운 겉옷을 좌우로 펼쳤다. 랜턴 불빛이 그 내부를 비췄다.
“다가오지 마라. 거기서 한 걸음만 더 뻗는 즉시, 여기 달린 모든 폭약을 터뜨려 줄 테니까! 당신도 연금술을 좀 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이 약들이 무얼 뜻하는지,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겠지?”
프란의 외투 안쪽으로 다양한 ‘약병’이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펄펄 끓어오르는 비약, 회복약인지 폭약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순한 비약 등 가짓수만 수십에 달했다.
“그것은 바이온의 폭약인가?”
“알면 그쯤에서 멈춰. 손끝 하나 움직이지 말라고! 알고 있잖아? 조금만 자극해도 터지는 거.”
단순한 폭약이 아니었다. 무려 연금술사 바이온의 정수로부터 탄생한 폭약, 거기다 래디오 부자의 특제 폭약까지 다양하게 섞였다.
“확실히, 정면에서 휘말린다면 위험할 것 같군. 다른 폭약도 아니고 바이온, 그 친구의 작품이라…….”
엄살이라도 떨어주는 걸까.
아니면 진심으로 말하는 걸까.
알 수 없는 프란의 어조였다.
“하지만, 연금술사여.”
프란이 하던 말을 이어갔다.
“그 폭약, 터뜨릴 수나 있겠느냐? 나의 죽음은 고작해야 일 할 미만의 가능성이겠으나, 그대는 필시 죽게 될 터인데.”
옳은 얘기였다. 죽음이 확정적인 쪽은 래디오뿐이었으니까,
“그 폭약은 많이 고통스러울 거다. 육신이 촛농처럼 녹아내리겠지.”
래디오 또한 그 사실을 알기에 식은땀만 주룩주룩 흘렸다. 헌데도 물러나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있는 힘껏 소리치기에 이르렀다.
“하! 대단한 마법사라고 하더니만, 보아하니 물에 빠지면 입만 둥둥 뜨겠어? 엉? 어디 자신 있으면 들어와 보든지! 들어와! 들어오라고!”
래디오의 도발이 통한 걸까?
이윽고 첫발을 내디딘 프란.
그가 건조한 육성으로 말했다.
“당최 이해하기 어렵군. 그대가 나의 아내를 어찌 생각하는지는 알고 있다. 하나, 목숨마저 내던질 정도였던가? 정녕 그럴 가치가 충분한 감정이었나?”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말투였다.
그 말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진심이라면, 정말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면 즉시 행하여 보아라. 정신과 육체가 녹아내리는 고통을 감수해보라는 얘기다. 하지만 허세에 불과하다면, 그쯤하고 비켜서는 게 좋을 거다. 난 지금 인내심이 바닥났거든.”
한 걸음, 또 한 걸음.
프란의 보폭이 점점 뻗어왔다.
“……모르긴 몰라도.”
놈의 접근에 식은땀만 흘렸던 래디오, 그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당신을 막아야 한다는 것. 아니…… 막는다고 막아질 위인은 아니겠지만, 하다못해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늘어져야 한다는 건 알겠어.”
“…….”
“당신이 왜 여기까지 찾아왔을까, 쉬운 이유겠지. 페이지 부인을 간악한 마법의 재물로 쓴다든가, 인질 삼아 이안 님을 협박한다든가. 무엇이 되었든 나와 내 아들, 페이지 부인과 이안 님께 엿 같은 상황을 선사해 줄 거야. 내 말 틀렸나?”
래디오의 추측은 정확했다.
프란은 불사의 힘을 잃었다.
궁지에 몰린 셈 아니겠는가?
“아니라고는 못 하겠군.”
“그럼 됐어. 충분해.”
홀가분한 어조로 중얼댄 래디오.
그가 뒤쪽의 베네사에게 말했다.
“페이지 부인. 아니, 베네사 부인. 더글라스를 잘 부탁합니다. 뭐, 이제 다 크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말이죠. 아직 애니까요. 애.”
드래곤 레어 깊숙한 곳에 이안이 설치해둔 보호막, 그 내부로 돌아간 베네사와 더글라스에게 말하는 래디오였다.
비록 들리지 않을 거리였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덤덤한 어조를 이어갔다.
“더글라스, 잘 지내라. 애비가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이 방법밖에는 없을 것 같구나.”
이윽고 래디오의 손아귀가 품속 폭약으로 향했다. 동시에 약병 하나를 잡았다. 이제 깨뜨리기만 하면 연쇄적인 대폭발이 벌어질 터.
“자, 그럼 이제.”
래디오도 잘 알고 있었다. 목숨을 걸어도 저 프란 페이지란 괴물을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이안이 말하길 자신과 필적하거나, 혹은 그 이상의 존재라고 경고했으니까.
하지만.
“바짓가랑이나 붙잡아볼까?”
시간이나마 끌어볼 수 있으리라.
놈의 수작질을 늦출 수 있으리라.
곧 모두를 구하고자 나타날 이안.
그에게 시간적 여유를 선사하리.
"흡!"
레디오가 약병을 꽉 움켜잡았다.
원채 강도가 약해빠진 유리였다.
이런 상황에 최적화된 병이니까.
곧바로 으깨지기에 이르렀다.
“어리석은…….”
래디오의 마지막 선택에 조소를 선사하는 프란이었다.
그는 자신감으로 넘쳤다. 저깟 연금술사가 아무리 희생한다 한들, 일말 손해조차 입지 않고 목적에 도달해낼 자신 말이다. 단지 흥미로운 장단에 박자만 맞춰줬을 뿐. 적어도 프란 스스로가 생각하기로는 그랬다.
“바로 이래서 인간이란 구분이 필요하다는 거다. 네놈처럼 어리석은 자들이 멸종한다면, 세상은 그 자체로 완벽하며 무한한 평화와 번영을 누릴 테니까.”
아까부터. 아니, 어쩌면 인류의 수호자를 자처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늘어놓았을 궤변과 함께, 프란이 강력한 보호막을 구축했다. 폭발의 여파에서 자유롭기 위함이었다.
“……?”
하지만 래디오와 프란.
두 남자의 예상과는 달랐다.
분명 래디오는 약병을 으깼다.
한데도 폭발이 발생하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뭐가 어찌 된 상황일까?
불발탄이라도 만들어온 걸까?
“그 정도 했으면…….”
래디오는 물론 프란조차 의아함으로 물든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특히 래디오에게는 구세주처럼 느껴질 법한 목소리였다.
“충분하십니다.”
폭약의 문제가 아니었다.
으깨진 약병이 문제였다.
으깨졌지만, 으깨지지 않았다.
갑자기 무슨 헛소리냐고?
간단했다.
“래디오 님. 아니…….”
누군가의 마법으로 약병의 형태가 완연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애당초 내용물이 외부 공기와 만날 수 없었으니, 불발은 당연한 이치였다.
“새아버지라고 불러드릴까.”
마법의 술자는 이안 페이지.
그가 래디오 앞에 등장했다.
시간 벌이는 성공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