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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66화 (166/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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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66화

65. 자아각성(1)

“정말 괜찮은 겐가?”

“글쎄 그렇다니까. 잠시 좀 어지러웠을 뿐이네.”

“흠, 그렇다면 다행이고. 허면 어서 큰 형님의……. 이런. 또 형님 소리가 절로 나오는군. 안 되겠어. 오늘부터라도 확실하게 고쳐봐야지.”

이안이 눈앞에 펼쳐진 또 다른 ‘세상’, 혹은 또 다른 ‘차원’의 자신과 완벽하게 동화되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고 긍정적이며 평화롭게만 흘러갔던, 프란으로 하여금 무수히 분열된 차원 중 가장 ‘순탄한 삶’을 영위 중인 자신의 몸뚱이에 깃든 거다.

“한데, 다른 분들께서는?”

“어머니께서는 하이리와 먼저 황궁으로 입궁하셨네. 오래간만에 황실 하녀들의 솜씨를 받겠다며 아침녘부터 일찌감치 나섰지. 아버지께선 더글라스와 또 새로운 연구에 한창이신지라, 시간 맞춰 입궁하시겠다 말씀하셨고.”

“즉슨, 자네만 할 일 없는 백수구먼.”

“하하! 그런 셈이기도 하지.”

여유로이 농이나 주고받은 이안과 라그나르, 실없게 웃었던 그들이 곧 주제를 돌렸다.

“그럼 할 일 없는 한량끼리 뭉쳐서 가세.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실 터이니. 아우인 나보다도 자네를 더 반겨주실 터이지만 말이야.”

“에이, 그래도 피는 물보다 진한 법 아니겠나?”

이윽고 새하얀 빛줄기, 텔레포트 주문이 두 중년인을 집어삼켰다. 목적지는 ‘그린리버 통일 대제국’의 황궁, 그 내부에서도 곧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의 명명일을 기념하는 축제가 열릴 ‘대정원’이었다.

“우리가 일등인가?”

라그나르의 물음에.

“항상 그러지 않던가.”

중년의 마법사 이안도 가볍게 대꾸해줬다. 물론 진정한 의미의 일등은 아니었다. 황궁 내 모든 하인이 파티 준비에 한창이었으니까. 더욱 확실한 표현을 빌리자면 ‘고위 인사’ 중 첫 번째란 뜻이리라.

“일단 페하께 먼저 가보겠나?”

“되었네. 지금쯤이면 복장 고르시느라 민감하실 테지.”

“자네라면 새벽녘에 찾아가 잠을 깨워도 반겨주실 텐데?”

“그래도 예의가 아니지. 취미활동 중이시지 않던가?”

“하기야, 폐하께서도 취미는 필요한 법이지.”

그들의 소소한 대화가 얼마나 지속하였을까? 이안은 여전히 두통을 느꼈으나, 아주 미미하게 거슬리는 수준에 불과한지라 애써 무시로 일관했다.

“흐음…….”

잠시 라그나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이안은 통증의 근원지를 찾기 시작했다. 확신하건대 물리적인 통증은 아니었다. 정신적 문제로부터 발생한 두통이 분명할 터.

‘도통 모르겠단 말이지.’

엄밀히 따지자면 그랬다. 두통이라기보다 간지러움에 가까웠다. 너무 가려운 나머지 머리가 아파지는 경우, 딱 그러한 경우였다. 단지 그 부위가 머릿속 정신일 뿐이리라.

‘미치겠군.’

가렵고, 찝찝하고, 무언가 낀 듯 답답하기만 했다.

아무리 마나 호흡으로 하여금 정신을 깨끗하게 비워보고자 해도 소용없는 짓이었다. 자그마치 삼십 년 이상 마법사로 살아오며 처음 겪어보는 문제였다.

‘뭔가 잊어버린 것 같은데…….’

이안의 고민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그때, 명명일 축하 파티에 참석하기로 예정된 인사들이 본격적인 입궁을 시작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황제의 명명일인 만큼 온갖 영지의 대영주와 귀족, 고위관료와 마법사까지. 그야말로 제국을 쥐락펴락하는 거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오, 이안 공이 아니십니까?”

“대륙일통의 주역을 봬옵니다.”

“저희 막내가 공을 그렇게나 존경한답니다. 제 아비보다 이안 공을 더 좋아할 정도이지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여기에 싸인 한 번만 해주십사…….”

분명 황제 하이든의 명명일이다. 한데 사람들은 자연스레 이안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 정도가 과할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황제가 아직 입장하지 않았으며, 대륙적으로 떨친 이안의 명성으로 미루어보건대 잘못된 상황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결과 아니겠는가? 이안에겐 익숙한 상황이니만큼 크게 괘념치 않았다.

“음…….”

그런데 오늘만큼은 달랐다. 모든 접근이 기이할 정도로 피곤하게만 느껴졌다. 당장 자리를 피해 버리고 싶었으나, 입장과 위치가 있기에 그럴 수도 없었다.

‘정말 몸에 문제가 생긴 건가? 아까부터 왜 이러는 거지?’

그 순간이었다.

[황제 폐하께서 입장하십니다!]

파티장 인근에 설치된 음성 증폭구로부터 황제가 입장한다는 알림이 들려왔다. 덕분에 이안 쪽으로 쏠렸던 모든 이목 또한 그쪽으로 모조리 돌아갔다.

“폐하를 뵈옵나이다.”

“폐하를 뵈옵나이다.”

“폐하를 뵈옵나이다.”

더불어 파티장 내 모든 참석자가 황제 하이든의 입장에 예우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안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그 인사의 행렬 속으로 스며들었다.

“오, 상아탑주 아니신가?”

예우를 받으며 지나가던 황제 하이든, 그가 인파 속 이안을 발견하더니 반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중년의 나이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빛을 발하는 미남자였다.

“아우가 일러주기를 자네 몸이 조금 불편하다고 하던데. 이렇게 나와 있어도 괜찮은 게야? 응?”

“폐하의 걱정은 은혜와 같사오나, 그 친구가 괜한 말씀을 올렸군요. 소신은 괜찮습니다.”

“그래? 하면 다행이다만…….”

하나 그 반가운 대화도 잠시, 자리가 자리인지라 평소처럼 계속 이야기를 나누기도 어려웠다. 결국 아쉬움만 잔뜩 남겨둔 채, 나중을 기약하며 지나칠 수밖에 없는 황제였다.

‘조금만 참자. 조금만.’

한편 이안이 구석진 자리를 잡고 앉아 가벼운 마법부터 펼쳤다. 모두의 시선으로부터 멀어질 만한 주문이었다. 제 존재감을 옅게 만드는 일종의 환술 계열 주문이었는데, 어떻게든 파티 중반까지만 버티다가 적당히 빠져나갈 요량이었다.

“폐하, 저희 영지는 언제나 폐하께서 내려주신 은총과 통치에 감복하고 또 감복하기를 반복하고 있나이다. 지금껏 받기만 해왔던 은혜를 어찌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을까, 그럼 고민 끝에 준비해온 저희 영지의 명명일 선물을, 부디 기쁘게 받아주셨으면 하옵니다.”

이안이 침묵과 함께 자리를 지키는 사이,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의 자리 앞으로는 각지에서 올라온 명명일 선물이 줄을 지었다.

전 대륙에서 올라오는 만큼 각양각색의 진귀한 선물들이 앞다투어 진상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구 콜드우드 제국 출신의 대영주 하나가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비단에 가려진 선물을 대령시켰다. 심지어 하나도 아닌 여럿이었다.

“그것들이 다 무엇이오? 보아하니 동물을 가둔 우리 같은데……. 새장처럼 말이오.”

“과연 예리하십니다. 그렇사옵니다. 새장이지요.”

“허면 새가 선물이라는 겐가?”

“그렇게 말씀드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폐하께서 직접 보시고 판단을 내려주시옵소서.”

“어디 대단한 새라도 잡아온 모양이로군. 그럼 구경이나 해볼까?”

황제 하이든이 자리에서 일어나 선물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더니 직접 비단 덮개의 끝 부분을 가볍게 낚아챘다.

“봐도 되겠나?”

“물론이옵니다. 폐하.”

“하면…….”

이내 비단 덮개를 틀어쥔 황제 하이든의 손아귀가 확 당겨졌다. 더불어 새장을 덮고 있었던 붉은색 비단 덮개까지 깔끔하게 걷어졌다.

“……?”

일차적인 내용물은 예상대로 '새장'이었다. 문제는 새장 속에 갇힌 존재였다. 언뜻 새처럼 보이기는 했다. 자그마한 몸집, 새하얀 날개가 일품이었으니까. 그러나 마냥 새라고 볼 수도 없었다. 세상 그 어떤 새가 인간과 흡사한 얼굴, 몸통, 팔다리를 가졌겠는가?

“저게 뭐죠?”

“그, 글쎄요…….”

“새는 아닌 것 같은데…….”

“드워프나 엘프같은 이족인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 작은 이족이 존재한다고요?”

자그마하고 아름다운 여체, 등으로 돋아난 한 쌍 날개까지. 정말이지 진귀하고도 신비로운 존재가 아니던가? 파티 참석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한 존재였다.

“어, 어서 말해보아라. 이 새……. 아니. 새가 맞기는 하는가?”

황제 하이든이 선물을 진상한 구 콜드우드 제국 출신 대영주에게 물었다. 대영주 또한 제 생각대로 분위기가 흘러가는 듯, 만족스러운 어조로 대답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새 종류는 아니옵니다. 보시다시피 그보다 더 아름답고 신비로운 생물이지요.”

“그래. 그건 알겠다. 잘 알겠는데, 대체 무엇이란 말이더냐?”

“폐하께오서는 혹, 페어리란 이름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페어리? 전설 속에나 등장하는 숲 요정의 이름이 아니던가? 드래곤만큼이나 허무맹랑한 존재로 아는……. 가만. 설마 요 자그마한 생물이?”

“예. 그렇사옵니다. 오직 전설과 신화, 옛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해 왔던 ‘숲의 요정’들을 폐하의 마흔하고도 여덟 번째 명명일 선물로 바치겠나이다.”

숲의 요정 페어리, 그 예상치도 못한 존재의 등장에 장내가 술렁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페어리라니, 이 무슨 얼토당토않은 선물이란 말인가? 존재 여부부터 획득 경로까지 모든 요소가 몽땅 의심스러웠다.

“이런 영물을 무슨 수로, 어디서 포획했단 말인가? 내 직접 보고도 믿을 수가 없구나.”

“폐하, 외람되옵니다만, 아직 놀라시기는 이르십니다.”

“이르다? 그게 무슨 뜻이지?”

“여기 안쪽, 가장 큰 새장도 확인을 해보셔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허어, 그러고 보니…….”

과연 그랬다. 순백의 페어리가 담긴 새장들보다 훨씬 더 커다란 새장, 심지어 새장을 감싼 비단조차 으뜸으로 고급스러웠다.

도대체 어떤 영물이 기다리고 있기에? 황제는 물론 파티에 참석한 고위층 모두의 이목이 그 한곳으로 쏠렸다.

“존경하는 황제 폐하, 그리고 폐하의 명명일을 축하드리고자 모인 여타 귀빈 여러분. 지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전설 속 숲의 요정들을 오랜 세월 통치해온 단 하나의 여군주.”

이번에는 황제 하이든이 아닌, 페어리를 진상한 구 콜드우드 출신의 대영주가 비단 덮개를 잡았다. 그러더니 있는 힘껏 거두며 소리쳤다.

“페어리의 여왕을!”

드디어 가장 큰 새장의 덮개가 거두어졌다. 동시에 분홍빛 머리칼과 날개를 가진 ‘페어리의 여왕’이 진귀한 자태를 모두에게 선보였다.

“오오오…….”

“저게 페어리의 여왕이라고?”

“확실히 다르긴 다르구먼.”

“저거 봐, 우릴 쳐다보고 있어!”

새장 속 페어리 퀸, 그 분홍빛 머리칼과 날개를 가진 소녀가 멍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둘러봤다.

날개마저 축 늘어뜨린 꼴이 처량하기도 했다. 하나 사람들의 시선은 그 처량함에 전혀 닿지 않았다. 단지 처음 보는 생물을 향한 일차원적인 호기심과 탐욕만 가득할 뿐.

“폐하, 그리고 귀빈 여러분. 조심하십시오. 물론 지금은 새장 자체가 마나 감옥과 같은 원리로 만들어지기도 했고 채워둔 족쇄 역시 동일한 효과의 물건이기에 문제 될 건 없겠습니다만, 알고 보면 굉장한 힘을 가진 마법사입니다.”

구 콜드우드 제국 소속 대영주가 말문을 이어갔다. 흡사 준비라도 해온 듯 물 흐르는 설명이었다.

“감히 말씀드리옵건대, 번개를 불러내는 마법에 한해서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마법사이신 이안 페이지 공과 필적할 정도의 번개술사이지요. 작고 귀여운 겉모습만 보고 우습게 봤다간 누구든지 크게 낭패를 볼 것입니다.”

“잠깐, 페어리라는 존재의 귀함은 충분히 인정하는 바. 하나 이안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마법사라니. 그런 존재를 어찌 포획했다는 거지?”

그 설명에 황제 하이든이 불신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번개 마법에 한해서는 이안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마법사라니?

말이야 좋지, 사실상 상아탑의 고위마법사조차 가뿐히 뛰어넘는다는 소리가 아니던가? 한데 그런 괴물을 생포해왔다고?

“답은 이것이옵니다.”

황제 하이든의 정당한 의문.

그것을 풀어주고자 품속으로부터 보석 하나를 꺼내 드는 대영주였다.

“보석? 좀 더 설명해 보아라.”

“예. 아시다시피 좀처럼 구하기 힘든, 최고급 중에도 최상급의 보석 ‘하트 루비’이지요. 우연히 알아낸 사실이온데, 잘 세공된 보석만 보면 사족을 쓰지 못하더군요. 저 페어리란 요정들이 말이옵니다.”

페어리 일족에게 보석이란 모든 욕구를 충만토록 만들어주는 쾌락과 만족의 수단, 제대로만 이용한다면 능히 가능했을 터.

“…….”

이처럼 포획의 수단을 시작으로 경로와 위치에 이르기까지, 페어리와 관련된 온갖 이야기가 파티장 내 오고 가는 한편. 유일하게 단 한 사람만 주류에 끼러들지 않았다.

그는 바로 이안 페이지였다. 다만 페어리 퀸 자체에게는 약간의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그 분홍빛 머리와 날개를 가진 생물로부터 좀처럼 시선을 거두지 못했으니까.

‘뭐지? 이 느낌은.’

이윽고 주변을 둘러보던 페어리 퀸과 이안의 시선이 허공에 뒤엉켰다. 페어리 퀸은 여전히 멍한 눈빛으로 일관하는 반면, 이안은 그녀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형용할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흐릿하면서도 단편적인 기억의 조각이 날카롭게 꺾여 머릿속을 쿡쿡 찔러대기 시작했으니까.

“윽……!”

실로 기이한 기억의 연속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저 분홍 머리칼과 날개의 요정과 관련된 장면들이 자꾸만 스쳐 지나갔다.

이안 자신을 인간, 혹은 네놈이라 부르며 마음껏 하대하는 모습, 분홍색 고양이의 모습으로 젊었던 시절의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는 모습, 적이 되고 싶지 않다며 호소하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기억에 존재하기는커녕 한줄기 일관성조차 찾아볼 수 없는 기억의 조각들이 점점 뚜렷해졌다.

[너희를 잃고 싶지 않다.]

이안이 제 머리를 감쌌다. 들어본 적도 없는 저 분홍빛 요정의 목소리가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기꺼이 내 목숨을 내놓겠다.]

[한 번만 그분들을 믿어다오.]

[인간, 이안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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