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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65화 (16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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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65화

    64. 비정(3)

    “뭐?”

    이안이 되물었다. 대체 저 미치광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가장 완벽한 사념체? 최후의 사념?

    “궁지에 몰리더니 헛소리를…….”

    무시와 외면, 불안으로 뒤엉킨 이안의 목소리, 그 한마디가 채 끝맺음을 이루지도 못하는 순간이었다.

    화아아아아아악-!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방은 일종의 ‘대립 구도’를 펼치고 있었다. 프란이 내뿜는 흑색 마기와 이안의 푸른빛 마나가 서로를 밀어내기 바빴으니까. 한데 지금, 프란이 도통 이해할 수 없는 헛소리를 중얼거리기가 무섭게.

    “……?”

    이안의 푸른색 기운, 그 순수했던 마나의 근원이 변질되기 시작했다. 뿐일까? 어둠으로 잠식되어 버린 프란의 눈동자처럼, 이안 역시 똑같은 모양새를 빚어내기에 이르렀다. 흡사 광기라는 독극물에 중독이라도 당한 것처럼 말이다.

    “윽……!”

    이안이 고통으로 가득한 신음을 토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태어나 처음 맛보는 강도의 두통이 몰려왔으니까. 이 비정상적인 고통을 계속 버티다가는 몇 초 내로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받아들여라.)

    “그, 그만……!”

    (오랜 잠에서 깨어나라.)

    “크으윽……!”

    (온전히 살아남고 싶다면, 그 고통에서 영원히 해방되고 싶다면 당장 저항을 멈춰라!)

    “도, 도와……. 저놈을……!”

    당장이라도 모든 이성이 날아갈 것만 같은 상태, 이안이 마지막 이성을 쥐어짜내며 외쳤다. 그 대상은 드래곤 일족, 아직 상황조차 파악하지 못한 그들이었다.

    [전원, 준비해둔 그대로 프란 페이지를 친다. 아타르 하카, 그대가 폭발의 여파를 조절하도록.]

    [음.]

    이안의 요청 탓일까, 지금부터 시작될 예정이었을까. 수장 리시스 라덴쥬의 명령과 앞장섬에 모든 일족이 준비된 움직임을 펼쳤다.

    [휩쓸릴 것을 걱정하지 마라. 지금은 이안 페이지에게 뻗친 마수부터 잘라내는 게 최우선, 저 수작질을 끊어내기만 한다면 그가 알아서 빠져나올 터이니.]

    붉은 가죽과 비늘을 가진 용. 일족 중 가장 호전적이며 전투에 능한 ‘레드 드래곤’ 일족이 이른바 ‘집중폭격’에 나섰다.

    겉보기로는 사살에 모든 초점을 맞춘 듯 엄청난 규모의 폭격이 프란에게 펼쳐졌으나, 실상은 프란의 수작질을 잠깐이라도 끊어내기 위한 ‘방해공작’에 불과했다.

    이 정도 화력만 가지고는 놈을 사살하기는커녕 상처조차 낼 수 없음이 첫 번째 까닭이요, 이보다 강도를 올렸다간 무방비 상태인 이안까지 온전치 못할 거라는 걱정이 두 번째였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광-!

    물론 상황이 좋지 않았을 뿐, 엄연한 드래곤의 힘 아니겠는가?

    조절된 폭격이라 할지언정 본연의 질과 규모부터 우월함을 자랑했다. 만약 인간도시에 떨어졌다면 그 전체를 불태워 버리다 못해 녹여 버릴 만한 열기였으니 말이다.

    [그만!]

    검게 피어나는 연기와 안개를 바라보며 리시스 라덴쥬가 외쳤다.

    [이 정도면…….]

    이 정도라면 놈의 정신집중에 큰 유감을 주지 않았을까?

    별다른 반격의 기세는 느껴지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그랬다. 반격이나 방어보다 이안에게 뻗친 마수의 유지가 더 중요한 걸까?

    [전원 위치로.]

    일족 모두 숨죽인 채 폭격의 여파가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과연 어떠한 결과로 말미암아 상황이 전개될 것인가?

    지금으로선 이안에게 뻗어진 마수가 잠시나마 끊어지는 게 최선의 결과이리라.

    […….]

    폭발의 여파가 빠르게 옅어지기 시작했다. 이 보랏빛 공간에서 유일한 인간이라 볼 수 있는 두 남자의 실루엣 역시 뚜렷해졌다.

    [음……?]

    한데 그 실루엣의 형태가 조금 이상한 것 같았다.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마주 보고 있었던 두 부자가 어느새 한 곳을 바라봤다.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안이 프란 앞을 가로막은 모양새였다.

    “…….”

    마침내 모든 시야적 장애물이 사라졌다.

    어째서 두 남자가 같은 방향을 쳐다보고 있는 걸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안이 프란 앞에 우두커니 서 강력한 실드 주문을 펼치고 있었으니까. 명백히 폭격으로부터 프란을 보호하기 위한 마법이자 위치, 그리고 자세였다.

    [이안……. 페이지?]

    리시스 라덴쥬가 그 이름을 조심스레 불러봤다. 하나 이안은 아무런 반응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어둠으로 물든 마나의 기운, 마찬가지로 잠식되어 버린 눈동자만 공허하게 뜨여져 있을 뿐이었다.

    “크크……!”

    그때였다.

    프란이 광소를 터뜨리자.

    “크크……!”

    이안 역시 똑같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비록 목소리와 생김새는 달랐으나 명백한 프란 페이지, 그의 사념으로 거듭난 것 같았다.

    “뭐? 타락한 나를 정화하겠다고?”

    프란이 말하면.

    “뭐? 타락한 나를 정화하겠다고?”

    이안도 말했다.

    “뭐라고 했더라? 가장 강력한 동맹, 이안 페이지와 함께?”

    “뭐라고 했더라? 가장 강력한 동맹, 이안 페이지와 함께?”

    “그러니까 이거? 나?”

    “그러니까 이거? 나?”

    프란, 그리고 이안이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껏 조롱 섞인 표정과 말투는 덤이었다.

    “멍청한 놈들. 그 도마뱀 같은 얼굴에도 표정이 다 드러나. 보아하니 설렜나 보구먼.”

    “멍청한 놈들. 그 도마뱀 같은 얼굴에도 표정이 다 드러나. 보아하니 설렜나 보구먼.”

    프란과 이안은 그야말로 일심동체처럼 행동했다. 제아무리 ‘최후의 사념’이라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움직일 필요는 없겠지만, 반전된 상황을 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한 프란 페이지의 노림수였다.

    “이제 좀 알겠나? 네놈들은 미끼를 문 거야. 내가 자그마치 수백 년간 깔아둔 떡밥 말이지.”

    “이제 좀 알겠나? 네놈들은 미끼를 문 거야. 내가 자그마치 수백 년간 깔아둔 떡밥 말이지.”

    “아, 정말이지 오늘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이때가 오면 네놈들이 어떤 얼굴을 할까, 무슨 헛소리를 지껄일까, 그리고…….”

    “아, 정말이지 오늘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이때가 오면 네놈들이 어떤 얼굴을 할까, 무슨 헛소리를 지껄일까, 그리고…….”

    프란 페이지와 이안 페이지.

    두 존재의 입이 동시에 움직였다.

    “멸종 직전에는 어떤 표정일까.”

    프란의 드래곤 일족, 그중에서도 수장 리시스 라덴쥬가 위치한 방향으로 한 발짝 다가서며 말했다. 물론 이안의 육신도 함께였다.

    [……그는 어떻게 된 거지?]

    실로 당혹스러움이 한계치를 넘어선 상황, 리시스 라덴쥬가 최대한으로 침착하게 물었다.

    [영혼까지 소멸된 것인가?]

    “오, 영혼이라니. 애당초 이놈은 도구에 불과했어. 진짜 육신을 가진 사념, 표현 그대로 사념‘체’ 말이야. 오랜 세월 실패작만 낳아 우여곡절이 좀 있었는데, 이번에는 꽤나 만족스럽더라고.”

    프란이 이안의 육신을 멈춰 세웠다. 그러더니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자랑하듯 중얼거렸다.

    사람을 칭찬한다기보다는, 잘 만들어진 예술품의 자랑을 늘어놓는 느낌이었다.

    “뭐, 물론 영혼 비스무리한 건 있었지. 어쨌거나 제 어미의 뱃속에서 잉태된 생명체였으니까.”

    프란은 이미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애초에 이안과 힘을 합쳐 드래곤을 멸족시킬 확률이 7할이라는 발언도 거짓이었다. 봉인에서만 온전히 풀려난다면 혼자서도 가능했으니까.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그간의 노고를 생각해서 특별한 선물을 내려줬거든. 도구로서 쓰임을 완수한 대가, 잘 키운 몸뚱이를 통째로 바친 대가로 말이지. 음, 지금쯤 행복에 겨워하고 있겠군.”

    어떤 선물을 내려줬다는 걸까? 알 수 없는 발언의 뜻을 채 알아내기도 전에, 프란과 이안의 몸뚱이로부터 방출되던 마기, 그 속에 내제된 광기가 한껏 요동쳤다.

    “도마뱀들아. 오랫동안 이 몸을 가두고 지키느라 수고가 많았다. 고생한 너희에게도 상을 줘야겠지. 음……. 이건 어떤가? 고생했던 시간 이상으로 달콤한 휴가를 떠나는 거야. 가만있자, 휴양지는 어디가 좋을까. 공기 좋고, 물 좋고, 조용하고, 너희 덩치를 감당해 줄 만한 휴양지가…….”

    진심으로 고민에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턱을 쓰다듬었던 프란.

    “오, 그래! 딱 한곳이 있긴 있군!”

    그가 곧 손뼉까지 탁 치며 과장된 행동을 보였다. 나아가 하늘을 슥 올려다보더니 작게 읊조렸다.

    (저승, 저승으로 보내주마.)

    만족스러운 어조였다.

    * * *

    “이안? 자네 갑자기 왜 그러는 겐가? 문제라도 생겼나? 말씀을 해보시게. 이안! 이안!”

    이안을 괴롭혔던 두통이 사그라졌다. 대신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두 귀를 시끄럽게 울렸다.

    ‘뭐지……?’

    이안은 의아함을 느꼈다.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프란 페이지와 대치하던 상황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이 목소리는…….’

    이안이 고개를 들었다.

    먼저 주변부터 둘러봤다.

    깔끔하게 정리된 서재였다.

    익숙한 서재이기도 했다.

    이안 자신의 서재였으니까.

    ‘내가 왜 서재에……?’

    한줄기 의문과 함께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시선을 옮긴 이안, 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까부터 이상하다 싶더니만, 설마 어디 아픈 건가? 그런 게야?”

    이안을 향한 걱정 반, 향후 일정에 관한 결정 반의 눈빛으로 중얼거리는 중년 남자. 그 남자는 이안에게도 무척 익숙한 존재였다.

    “라, 라그나르……?”

    “응? 갑자기 왜? 뭔가 필요한가?”

    그렇다.

    눈앞에 뜬금없이 나타난 존재.

    그의 정체는 바로 첫 번째 삶에서 이안을 독살했던 ‘라그나르 그린리버’였다.

    심지어 젊은 나이로 최후를 맞이했던 5황자 라그나르조차 아닌, 훗날 ‘그린리버 통일 대제국’의 황제로 군림하여 이안까지 독살하기에 이르렀던 바로 그 중년인의 얼굴이었다.

    ‘이놈이 왜……?’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던 두통, 그 두통의 후계는 혼돈이었다. 갈피조차 잡히지 않는 혼란 말이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헌데 마법사가 아프기도 하나? 그것도 자네 정도 되는 대마법사가 말이지. 고뿔 한번 걸리는 꼴을 구경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안이 어떤 혼란 속에서 허우적거리든 말든, 라그나르는 자기가 할 말을 이어갔다.

    다시금 살펴보니 첫 번째 삶의 라그나르와도 달랐다. 그때보다 조금 더 선해진 인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나저나 큰일이구먼. 하필 큰 형님의 명명일을 코앞에 두고서 와병이라니. 알다시피, 형님께서 자네가 오기만을 눈알 빠져라 기다리고 계실 게 아니겠나? 이 제국에 그보다 빤한 일이 없지. 흐음, 많이 아쉬워하시겠군그래.”

    큰 형님의 명명일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환술인가?’

    그렇게 판단을 내린 이안, 황급히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으로 하여금 환술을, 혹은 엇비슷한 무언가를 차단하기 시작했다.

    하나 그 어떤 마법으로도, 심지어 언어의 힘으로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지워낼 수 없었다. 오히려 저항하면 저항할수록 아주 이질적인 기억이 이안의 머릿속으로 주입되었다.

    ‘이 기억들은…….’

    그 기억들은 그랬다.

    하나같이 긍정으로 넘쳐났다.

    어긋났던 시절이 있었으나 끝내 성군으로 자란 황태자 하이든, 그런 황태자와 진정한 형제애를 나눈 5황자 라그나르, 그들 모두의 친우이자 존재감 하나로 평화통일을 이루어낸 대마법사, 이안.

    ‘도대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현명한 반려자, 공주 하이리.

    노년의 나이임에도 기품과 건강을 유지하는 어머니, 베네사.

    그런 그녀와 재혼을 이룬 남자임과 동시에, 통일대제국의 초대 연금술사장을 역임 중인 래디오.

    또한 신의 영역까지 닿았다고 칭송받는 연금술사, 더글라스.

    이외에도 수많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 기억들은 마치 물감처럼, ‘기존의 기억’이란 도화지 위에 덧그려지기 시작했다.

    “…….”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덧 이안의 눈에 잔뜩 서렸던 의아함이 사라졌다. 심지어는.

    “아무것도 아닐세. 요즘 들어 유독 이러는 것 같군. 몸뚱이가 예전 같지 않아. 이 마나란 녀석도 세월에는 장사가 없나보이.”

    그 덧씌워진 기억에.

    행복만으로 가득한 추억에.

    완전히 잡아먹혀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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