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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63화 (16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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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63화

    64. 비정(1)

    불사의 힘을 몰아내는 검은색 구체가 대초원 중앙에 떨어졌고, 삼국 토벌군이 약화된 불사의 군단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으며, 올리버가 본 드래곤을 혈혈단신으로 물리친 그때.

    이안은 인세에서 벗어나 드래곤 일족의 공간, 즉 프란 페이지가 봉인된 보랏빛 무차원 속으로 진입했다. 오늘이 벌써 세 번째 방문이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가능성도 농후할 것이리라.

    [왔는가.]

    이안의 등장에 수장 리시스 라덴쥬가 친히 배웅을 나왔다.

    물론 그 배웅은 이안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안의 뒤로 감시자였던 검은 용 아타르 하카 역시 돌아왔으니까.

    이로써 프란에게 대항할 수 있는, 최소한의 힘을 갖춘 ‘강자’들이 전부 다 소집된 셈이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인사는 나중으로 미루되, 계획부터 진행하는 편이 옳을 것으로 압니다만.”

    배웅에 대한 이안의 반응은 생각보다 쌀쌀맞기 그지없었으나, 발언 자체가 틀리진 않았다. 정말 시간이 없었으니 말이다.

    동부 대초원에 이변이 생긴다면 그 즉시 프란의 사념체가 눈치를 챌 터. 그 전에 거사를 진행함이 백번 옳았다.

    [음, 알 만하군. 허면 인사는 나중으로 미뤄주도록 하지.]

    마치 선심이라도 쓰는 양 말하는 리시스 라덴쥬의 어투가 거슬리는 이안이었으나,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드래곤의 오만함이야 아이들이 보는 이야기책에서조차 흔히 다룰 정도로 유명한 특성 아니던가?

    ‘역시 이 드래곤이란 족속들도 썩 믿을 만한 족속은…….’

    이안의 불만과 고정관념이 거기까지 이르렀을 무렵, 수장 리시스 라덴쥬가 의외의 본론을 꺼냈다.

    [하나 그 전에, 확고한 동맹의 징표이자 이번 거사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그대, 이안 페이지에게 내어줄 것이 있다. 다른 뜻은 없으니 사양치 말고 받아줬으면 좋겠군.]

    그러한 설명과 함께 이안의 앞으로 무언가가 천천히 떨어졌다. 저속낙하 주문이 동반된 물건이었는데, 일단 겉보기로는 갓난아기의 주먹보다 작은 구체의 형상이었다.

    “뭡니까?”

    [내단.]

    “……내단?”

    [나의 심장에서 생성된 내단이다. 일족의 어린 용들은 모두 태어나자마자 이 내단부터 복용하지.]

    “이걸 왜 저한테 주는 겁니까?”

    [이상하군. 너희 인간들은 우리의 내단, 그러니까 용의 심장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고 들었는데. 직접 먹어본 경험도 없는 족속들이 참 신기하단 말이지.]

    용의 심장. 즉 비행포격선의 원료로 쓰이고 있는 가짜 심장이 아닌, 살아있는 용으로부터 추출된 진짜배기 심장이라는 얘기였다.

    “확실히 몇 년 전에 받았다면 절이라도 해드렸겠습니다만, 지금은 별로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이안의 말이 실로 정확했다.

    시간을 되돌린 직후, 혹은 성장을 해가는 과정에서 받았다면야, 리시스 라덴쥬의 표현처럼 사족을 쓰지 못했겠으나, 지금은 얘기가 달라졌다.

    그깟 용의 심장에서 추출된 내단 하나 삼킨다 하여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아니면 혹시, 그 내단에 특별한 힘이라도 담겼습니까? 저도 무슨 브레스를 뿜을 수 있다든가…….”

    [그저 동맹의 선물일 뿐, 다른 힘이나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쓸데없이.”

    이안이 김빠진다는 어조로 손아귀까지 내려온 내단을 가볍게 낚아챘다. 겉보기와는 달리 상당한 무게감이 손목으로 전해졌다.

    “뭐, 어쨌든 선물이라고 하시니.”

    직접 복용하지는 않았다. 다만 챙겨둔다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써먹을 구석이 생길 터, 아공간 주머니로 쏙 집어넣는 이안이었다.

    “고맙게 받도록 하죠.”

    [음…….]

    내심 이안이 먹어주기를 바랐던 걸까, 어딘가 모르게 침울함이 느껴지는 리시스 라덴쥬였다.

    아직 기억의 보고 속 정신체, 그 천 년 전까지만 해도 장난스러웠던 모습이 작게나마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그래, 프란 페이지의 불사를 저지할 방법은 찾아왔는가?]

    “물론입니다.”

    리시스 라덴쥬의 물음에 곧바로 비약 한 병을 꺼내 든 이안. 그것은 연금술사 바이온의 정수를 흡수해낸 더글라스, 그 재능이 탄생시킨 비약이자 불사를 저지할 핵심적인 열쇠이기도 했다.

    [시간의 보고로 통하는 비약과 비슷한 기운이 느껴지는군.]

    “아마 비슷할 겁니다.”

    [조금 더 설명해 다오. 그 비약으로 무엇을 어찌하겠단 얘기지?]

    “아주 간단합니다. 방법만 놓고 보자면 말이죠.”

    이안이 비약의 마개를 가볍게 뽑았다. 그러자 약병 내부로부터 몽환적인 향취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걸 먹여야 하거든요.”

    [먹인다?]

    “프란 페이지에게 직접.”

    […….]

    “성공만 한다면, 제가 놈의 심상 세계로 진입하게 될 겁니다. 아, 정확히는 ‘사념체’가 진입한다는 뜻입니다. 사념 좋아하는 그놈한테 한방 제대로 먹여줄 수 있겠죠.”

    [해서?]

    “그곳에 쌓인 불사의 근원을, 모조리 다 제거해 버릴 생각입니다.”

    [심상 세계, 그러니까 정신의 영토에 불사의 근원이 숨겨져 있다는 듯인가?]

    "이해력이 좋으시군요.."

    [확실한가?]

    "확실합니다."

    그렇다.

    방법만 놓고 보자면 간단하다.

    이안의 표현이 참으로 어울렸다.

    “간단하죠?”

    바이온의 정수를 흡수한 더글라스의 야심작, 그 심상 세계로 통하는 비약은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비약이란 보통 복용자가 효과를 보기 마련이지만, 더글라스의 비약은 약의 조제 과정에서 이안의 사념체를 불어넣었다.

    즉, 이 비약을 프란 페이지가 복용할 경우 심상 세계에 진입하는 것은 프란이 아니라, 이안의 사념체란 소리였다.

    [그것 참…….]

    가만히 듣고 있던 검은 용 아타르 하카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로군.]

    “바로 맞추셨습니다.”

    [방법은?]

    “없습니다.”

    이안의 대답은 단호했다.

    [……정말 없는가?]

    이번에는 리시스 라덴쥬가 물었다. 가장 중요한 해결책이 없다는 발언에 조금 당황한 눈초리였다.

    “바빠 죽겠는데 말장난이나 하고 앉았겠습니까?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거기까진 모르겠더군요.”

    [하면 어째서…….]

    “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동맹은 왜 맺었을까요?”

    이안이 답답하다는 말투로 읊조렸다. 여지없는 진심이기도 했다.

    “영겁의 세월을 살아오신 드래곤 일족 아니십니까? 이럴 때 그 세월의 지혜라는 것 좀 빌려주시고 하셔야죠. 어떻게 당신네들 발톱의 때만큼도 살지 못한 저한테 맡기려고만 하시는지요?”

    지금 이 공간 속 드래곤 일족 전체의 삶을 합계한다면 수만 년쯤이야 우습게 넘어설 터.

    심지어 평균적인 지능조차도 인류를 아득하게 뛰어넘는다. 그런 위대하신 일족께서 이안 페이지라는 일개 인간만 멀뚱멀뚱 쳐다보는 꼴이라니, 어처구니가 도를 넘어섰다.

    [크흠……!]

    리시스 라덴쥬가 침묵에 잠겼다. 다른 일족들도 마찬가지였다. 봉인에서 풀려난 프란 페이지에게 저 비약을 먹인다, 말이 쉽지 사실상 최고난이도의 난제였으니까.

    [단순하게 생각해 보도록 하지.]

    침묵의 끝은 검은 용 아타르 하카로부터 맺어졌다. 그가 특유의 낮고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불사의 힘이 발동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러니까 놈을 봉인했던 그날처럼 전투불능으로 만든 뒤 그 비약을 먹이면 끝나는 문제 아닌가? 놈은 불사의 권능만 가졌을 뿐, 형체마저 없는 신기루 따위가 아닌 것으로 아는데.]

    참 간단하면서도 엉성한 제안이었으나, 지금으로선 그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았다. 이안 역시 희미한 미를 지어보이며 끄덕거렸다.

    “처음 봉인했을 당시에도 비슷한 흐름이었습니까? 제 말은, 프란을 전투불능에 빠뜨린 상태로 봉인을 했느냐 이겁니다.”

    [그렇다. 일족의 절반을 잃어가며 쟁취해 낸 승리, 그것도 반쪽짜리 승리에 불과했지.]

    비슷한 흐름, 즉 프란을 전투불능으로 만들어 버린 직후, 저 봉인구 속에 가두었다는 얘기일 터. 작금의 상황과 유사성이 짙었다.

    ‘이로서 확실해졌다.’

    사실 이안은 처음부터 아타르 하카의 단순한 제안과 똑같은 생각을 떠올렸었다.

    다만 프란의 ‘불사’가 문제였다. 전투불능조차 빠지지 않는 힘이라면 소용이 없을 테니까. 한데 과거에도 비슷한 흐름을 통하여 봉인에 성공했다고 한다.

    [아마 오늘도, 그때처럼 큰 희생을 피해 갈 순 없을 것 같군.]

    한숨 섞인 리시스 라덴쥬의 중얼거림에 이안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때와는 다를 겁니다.”

    그는 리시스 라덴쥬와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다. 아니, 다른 견해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남이기에 가능한 객관적 시야였다.

    “그땐 무작정 놈을 제거하고자 시작된 싸움이 아니었습니까? 불사의 힘을 파악하지도 못한 상태였죠. 소모전이 너무 길었다는 얘기입니다. 희생이 많았을 밖에요.”

    프란 페이지의 봉인 당시, 드래곤 일족은 프란이 가진 불사의 힘을 처음부터 알지 못했다.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 힘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다를 겁니다. 그 불사의 힘을 알고, 대책도 마련했으며, 제거가 아닌 제압에 무게를 실었습니다. 물론 희생이 없을 거라고 말할 순 없겠습니다만…….”

    일족의 절반을 잃어버렸을 정도로 비극적이었던 기억, 적어도 오늘은 그만한 참사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리라.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며, 그리될 거라 믿어야 했다.

    [그래, 그렇겠지.]

    그럼에도 작은 희생은 존재할 터.

    씁쓸하게 읊조린 리시스 라덴쥬.

    그 일족의 수장이 말문을 이었다.

    [사실,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대를 믿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 그대는 장차 우리 일족에게 있어 가장 거슬리는 위협으로 자라날 가능성이 농후할 터이니까.]

    리시스 라덴쥬의 다소 솔직한 발언을 묵묵히 듣는 이안이었다.

    [하나, 오늘 이 순간만큼은 완전히 믿고자 한다. 그대를 피로 이어진 일족처럼 여기겠다는 뜻이기도 하지. 하여 부탁하건대, 그대도 가진바 전력을 다해주길 바란다.]

    실로 복잡하게 얽힌, 아슬아슬한 동맹관계 아니겠는가? 프란 페이지란 공공의 적이 사라진 뒤에는 또 어찌 변할지 장담할 수 없는 관계였다.

    하여 마음 편히 모든 힘을 소진하기가 애매했다. 그 즉시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을 테니까. 수장 리시스 라덴쥬는 바로 그러한 점을 언급하고 있었다.

    “그러죠.”

    딱히 가식적이지도, 그렇다 하여 크게 진심이 담기지도 않은 이안의 대답. 그거면 충분했다.

    [하면, 지금부터.]

    리시스 라덴쥬가 한 쌍의 거대한 날개를 올곧게 펼쳤다. 나아가 드래곤 특유의 활력 넘치는 마나를 몽땅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봉인의 해제를 시작도록 하마.]

    그 말은 곧 일종의 ‘명령’이 되어 모든 드래곤 일족에게 전해졌다.

    [저 괴물을 다시금 세상 밖으로 꺼내는 게 옳은 선택일지, 아직도 판단을 내리긴 어려우나…….]

    이윽고 모든 드래곤 일족이 특수한 마나의 파동을 일으켰다. 그 파동은 곧 완연한 일직선을 그리며 프란 페이지가 봉인된 구체에 파고들었다. 그 모습이 흡사 사방으로부터 가시에 찔린 모양새였다.

    [기회가 왔을 때 손을 뻗는 것 또한, 수장된 자의 덕목이겠지.]

    드래곤 일족 전체가 뿜어낸 마나의 파동, 그 곧게 뻗어 나간 파동이 얼마나 봉인구를 자극했을까?

    꾸룩! 꾹! 쿠구구국-!

    보랏빛 봉인구가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봉인구의 표면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혹은 안으로부터 찢고 나올 듯 불규칙한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기에 이르렀고.

    쩌적……!

    그 결과 봉인구의 구속력이 빠른 속도로 소멸되었다. 작은 균열이 곧 되돌릴 수 없는 훼손을 일으켰으며, 그 틈새로부터 비집고 나온 심대한 ‘마의 기운’이 공간 전체에 스며들었다.

    쩌적! 쩍! 쩌저적……!

    균열이 커졌다. 틈새가 벌어졌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단지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광기에 물들 것 같은 마의 기운이 끝없이 휘몰아쳤다.

    “결국.”

    결국 껍데기밖에 남지 않은 보랏빛 봉인구, 그 속으로부터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로를 반대편에서 바라보는구나.”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

    그럼에도 이질적인 목소리.

    “아들아.”

    프란 페이지.

    그 이름을 가진 거악이 깨어났다.

    지금껏 보여줬던 사념체가 아닌.

    완벽한 육신으로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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