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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61화
63. 드래곤 슬레이어(2)
[캬오오오오오-!]
유명을 달리한 토벌군과 대초원 좀비의 뼛조각으로부터 빚어진 본 드래곤. 그 마룡이 토해낸 울음소리가 대초원 전역을 진동시켰다.
대다수 병사들은 그 울음소리만 듣고도 전의를 상실할 정도였으며, 심할 경우 귀와 코로 피까지 흘리기에 이르렀다.
“큭……!”
“이게 무슨 소리지……?”
“가, 갑자기 웬 용이……!”
방금 전, 그러니까 본 드래곤이 나타나기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토벌군의 기세는 대단했다.
좀비들을 압도적으로 밀어붙이지 않았던가? 한데 그 기세가 마룡의 울음소리에 한풀 꺾여 버린 거다. 이는 곧 대초원의 좀비들에게도 기회나 마찬가지일 터. ‘기세’라는 두 글자가 순식간에 역전되어버렸다.
“마나의 아들딸들이여! 저것은 진정한 용이 아니다! 그럴싸한 껍데기를 뒤집어쓴 아류에 불과하다! 허니 당황하지 말고 사슬의 진을 펼쳐라! 놈의 움직임부터 봉쇄해야 한다! 토벌의 성공이! 토벌대의 생사가! 인류 전체의 미래가 우리 손에 달렸다!”
고위마법사 로난이 잔뜩 머금은 마나의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이야말로 후방에 물러나 있었던 삼국 마법사들이 진가를 발휘할 차례였다.
“속박의 사슬이여!”
“속박의 사슬이여!”
“속박의 사슬이여!”
그린리버 측 상아탑 마법사를 시작으로 로 공국 마나탑의 마법사, 콜드우드 제국 마탑의 마법사까지 일시에 합동 주문을 펼쳤다.
그러자 곧 푸른빛을 뽐내는 마나의 사슬이 본 드래곤을 향하여 뻗어 나갔다. 그 수가 엄청났는데, 눈대중으로도 수만 갈래를 훌쩍 넘었다.
“마수를 구속하라!”
“마수를 구속하라!”
“마수를 구속하라!”
그 수만 갈래 사슬이 본 드래곤의 몸뚱이를 마디마디 옭아맸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진 모르겠으나, 최소 몇 분간은 꼼짝도 할 수가 없을 터.
[어리석고 아둔한 미물들이여……. 죽음이 두렵지 않거든 계속 발버둥을 쳐보아라.]
대규모 사슬의 진으로 온몸을 속박당한 본 드래곤, 그럼에도 일말 당혹감조차 내비치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인간들의 발악이 가소로운 듯 묵직한 음성으로 뇌까렸다.
[무의미한 저항의 끝은 오직 죽음과 절망…… 파멸만이 앙상한 가지처럼 남게 되리라.]
본 드래곤이 죽음과 절망, 파멸을 언급했다.
나아가 위턱뼈와 아래턱뼈를 쩍 벌리며 보랏빛 브레스를 머금었다. 대상은 당연하게도 동부 대초원의 지면, 즉 토벌군 전체를 겨누고 있었다.
그 브레스에 아군이나 다름없는 좀비까지 휩쓸리든 말든, 조금도 상관치 않는 것 같았다.
“…….”
한편, 올리버와 스람이 탑승 중인 비행포격선은 본 드래곤보다 높은 곳에 머물고 있었다. 갑판 끝으로 뚝 뛰어내릴 경우 마룡의 흉악한 아가리 앞을 정확히 스쳐 갈 위치였다.
“스람공.”
비행포격선 위에서, 올리버가 면갑의 안면 보호대를 내리며 말했다. 올리버의 복장은 평소처럼 활동성에 무게를 두지 않았다. 그보다 훨씬 더 단단하게 무장한 상태였다.
“말씀하시오.”
“내가 뛰어내리거든, 즉시 먼 곳으로 피신하시오. 브레스가 선박을 스칠 수도 있으니.”
“그리하리다. 그쪽도 조심하시길.”
공학자 스람과 짤막한 대화를 나눈 올리버, 그가 검 대신 등에 차고 있던 원형의 은빛 ‘라운드 실드’를 꺼냈다. 올리버의 듬직한 몸뚱이가 보호받기에는 턱없이 작은 방패였으나, 이래 보여도 대장장이 할리아의 온 힘을 다한 손재주로부터 창조된 ‘빛의 방패’였다.
“내 걱정은.”
양손으로 라운드 실드를 단단히 잡은 올리버, 그가 갑판 끄트머리로 터벅터벅 걸어가며 읊조렸다.
“거두시오.”
그 한마디와 동시에 올리버의 몸뚱이가 비행포격선 위를 가볍게 벗어났다. 즉 본 드래곤의 정면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보랏빛 브레스를 잔뜩 머금은 본 드래곤의 아가리 앞으로 말이다.
“흐읍……!”
올리버가 본 드래곤의 정면을 스쳐 추락하는 그때, 보랏빛 브레스 또한 파멸적인 기운을 방출하며 전력으로 내뿜어졌다. 그 브레스의 첫 번째 희생양은 자연히 올리버로 낙점되는 구도였는데.
우우우우우웅-!
브레스가 올리버를 집어삼키려는 순간, 라운드 실드로부터 영롱하고도 강렬한 빛이 타올랐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은색의 빛줄기가 마치 불꽃처럼, 방패를 장작 삼아 화끈하게 불타올랐으니까.
“빛의 방패여!”
올리버의 외침이 주문이라도 되는 걸까? 방패 전체를 활활 불태우던 은빛 불꽃이 일순간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 퍼져 나가는 불꽃의 넓이와 형태가 흡사 ‘거대한 방패’의 형상을 이루려는 모양이었다.
“모습을 보여라!”
이어지는 명령에 빛의 방패 역시 칼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전까지가 ‘형상’에 불과했다면, 작금의 모습은 그야말로 거대한 라운드 실드나 마찬가지였다.
“큭!”
이윽고 본 드래곤의 브레스가 팽창된 빛의 방패를 강타했다. 흔히 쓰이는 표현처럼 ‘창과 방패의 정면승부’가 시작된 거다. 처음은 올리버가 조금 더 우세했다. 빛의 방패가 브레스를 성공적으로 버텨냈으니까. 만약 버텨내지 못할 경우 올리버는 물론이거니와, 대초원 위에 서 있는 모든 존재가 말끔하게 지워질 터. 올리버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기에, 어금니까지 꽉 깨물며 버텨내고 또 버텨냈다.
‘다 흡수할 순 없는 건가.’
충격의 흡수야말로 방패의 덕목이긴 하나, 저 강력한 브레스의 여파를 몽땅 흡수해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제아무리 대장장이 할리아의 정수가 담긴 아티펙트 방패일지언정 한계는 존재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브레스에 대항하는 자세와 상태 그대로 추락하기 시작한 올리버. 그가 육신의 마나를 양쪽 발끝으로 집중시키자 곧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철컥! 철컥! 철컥!
올리버가 착용 중인 장화, 특수한 금속재질로 보이는 아티펙트 장화의 뒤꿈치가 철컥하며 벌어지더니.
우우우웅-!
마법이라도 발동되는 것처럼 푸른색 마나를 방출시켰다. 이 또한 대장장이 할리아가 만들어준 아티펙트였는데, 고등급 플라이 주문으로 하여금 비행을 가능케 만들어줬다.
“그렇다면!”
속으로 생각했던 말문을 입 밖으로 내지른 올리버. 그가 온 힘을 다하여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은빛의 방패 역시 거대했던 크기와 영롱한 빛을 빠른 속도로 잃어갔다.
심지어 균열까지 일어난 탓에 금방이라도 산산이 조각날 것처럼 위태로웠다.
“베는 수밖에.”
이윽고 빛으로 팽창되었던 방패가 무참히 부서졌다. 뿐일까? 그 본체라고 볼 수 있는 라운드 실드 역시 한계에 도달한 듯 박살이 나버렸다. 그럼에도 올리버는 진격을 멈추지 않았다.
곧바로 허리춤으로부터 대장장이 할리아의 걸작 보검, ‘기다림의 종결’을 뽑아들며 힘껏 고함쳤다. 다 흡수하지 못한다면 베어버리는 수밖에, 그거야말로 올리버가 생각했던 드래곤 브레스의 이상적인 대항마였다.
“하아아아아압!”
과거 이안과의 마지막 수련 당시 ‘화염구’를 베었던 것처럼, 고위마법사 헬레느의 화염구를 반으로 갈라버렸던 그때처럼, 이번에는 올리버의 검이 ‘브레스’를 노렸다. 무려 본 드래곤이 쏘아낸 보랏빛의 ‘드래곤 브레스’를 말이다. 그 기합으로부터 명백한 일도양단의 의지가 폭풍처럼 몰아쳤다.
서걱-!
올리버의 검, 기다림의 종결.
그 검이 수려한 곡선을 그렸다.
날카로운 검기가 창공을 갈랐다.
공간마저 베어버릴 듯 아찔했다.
또한.
“끝이다.”
베어버렸다.
올리버의 검이.
보랏빛 브레스를.
정확히 두 갈래로.
“마룡이여.”
갈라진 틈새를 돌파하며 본 드래곤의 면전까지 도달한 올리버, 그가 재빨리 검을 역수로 쥐었다.
본 드래곤의 커다란 콧등 뼈 언저리에 일격을 가하기 위함이었다. 일련의 모든 행위가 이 순간을 위한 포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터.
“무로 돌아가라.”
흡사 선고와도 같은 읊조림과 함께 보검을 내리찍는 올리버였다.
꽈드드드드득-!
살과 근육이라곤 한 점 없는.
오직 뼈로만 이루어진 탓일까?
파고드는 소리부터가 남달랐다.
강제로 욱여넣는 느낌이었다.
[캬아아아아악-!]
콧등을 넘어서 아래턱까지 꿰뚫린 본 드래곤, 그 마룡이 금방이라도 절명할 듯 비명을 토해냈다. 하나 고통에 수반된 비명은 아니었다. 그저 뜻하지 않았던 상황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을 뿐, 애당초 뼈로만 이루어진 ‘모조품’ 아니겠는가? 고통이란 감각을 느낄 수 있을 리 만무하리라.
[죽인다! 반드시 죽여버리겠어!]
극도로 흥분하기 시작한 본 드래곤이 머리를 흔들어댔다. 자신의 콧등 뼈에 대롱대롱 매달린 올리버를 떨어뜨리기 위해서였는데, 그것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올리버의 체력과 근성이라면 수십 일도 버틸 수 있을 테니까.
‘장화도 한계에 도달한 건가.’
부서진 아티펙트는 방패만이 아니었다. 마법사가 아닌 올리버의 비행을 도와줬던 아티펙트 장화 역시, 드래곤 브레스를 지탱해주는 과정에서 한계가 온 모양새였다.
[거머리 같은 놈!]
올리버가 떨어져 나가지 않자 방법을 바꾼 본 드래곤. 놈이 전신을 비틀어대기 시작했다. 삼국 토벌군의 마법사들이 펼친 수만 갈래 사슬 마법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어떻게든 벗어날 수만 있다면 콧등에 매달린 인간쯤, 능히 바닥에 처박아버릴 수 있으리라.
“큭!”
그 의도를 깨달은 마법사들이 사슬의 진을 더더욱 견고하게 강화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이대로라면 그리 오랫동안 버티진 못할 터.
‘벗어나기 전에 끝낸다.’
본 드래곤이 사슬의 진에서 풀려나기 전에 확실히 숨통을 끊어야 한다. 그것이 검공 올리버가 내린 현 상황의 대처이자 해결법이었다.
“흐읍……!”
빠른 판단 이후부터 올리버가 보여준 행동력은 그야말로 절정이었다. 먼저 콧등 뼈에 박아 넣었던 검을 지지대 삼아 본 드래곤의 이마 위로 올라탔다. 잔뜩 흔들리는 와중임에도 완벽한 균형을 유지했다. 천부적인 균형감각에 아티펙트 장화의 능력까지 더해진 결과였다.
“아직.”
올리버의 행동력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콧등에 박아 넣었던 보검으로 최대치의 마나를 주입시켰다. 예리함이 한계를 넘어섰다.
“절반도 보여주지 않았어.”
본 드래곤의 콧등에 박힌 채 한껏 예리해진 검을 두 손으로 부여잡은 올리버. 그가 몇 걸음 떼는가 싶더니만 이내 질주하기 시작했다. 활주로는 놈의 이마를 시작하여 목, 등, 꼬리에 이르기까지, 단언컨대 확실한 직선코스였다.
“죽음은.”
그 질주가 시작됨과 함께, 본 드래곤의 콧등과 아래턱을 비스듬히 꿰뚫었던 보검도 척추를 갈랐다.
“네놈의 몫으로 돌려주마!”
이윽고 올리버의 질주가 본 드래곤의 꼬리 끝에 도달했다. 더는 나아갈 공간조차 없었으니, 온 힘을 다한 일격은 딱 거기까지였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악-!]
육신 전체를 관통하는 최후의 일격 아니겠는가? 전보다 더 어마어마한 비명이 본 드래곤의 목구멍에서 토해졌다, 이번에는 통증을 느낀 것도, 분노가 치솟은 것도 아니었다. 표현하자면 직감, 죽음과 소멸을 직감한 절규의 비명이었다.
“허억! 헉! 후우우……!”
올리버 역시 혼신을 다 쏟아낸 듯 뽑지 못한 검에 매달린 채 숨부터 골랐다.
그가 준비한 시나리오는 여기까지였다. 바꿔 말하자면 밑천을 다 털렸다. 이대로 추락 하든, 또 다른 이변이 일어나든, 더 이상 대처할 방도가 없다는 거다.
쩌적! 쩍! 쩌저적! 쩌적!
바로 그 순간.
놈의 척추에 새겨진 기다란 자상을 중심으로 균열이 발생했다.
균열은 수십, 수백, 수천, 수만 갈래에 이르기까지 전염병처럼 빠르게 번졌고, 이내 그 결을 따라 조각조각 부서지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