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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60화 (16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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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60화

    63. 드래곤 슬레이어(1)

    본디 세상에 마법사란 존재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이후부터는, 마법사를 중심으로 두는 전략전술이 인류 전쟁사 내내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지금, 삼국 대토벌의 전투는 그 주류와 정반대의 행보를 보여줬다. 사뭇 생소하며 원시적이기도 했다. 진보되기는커녕, 오히려 ‘퇴보’된 모양새였으니까.

    “후방의 마법사가 그대들의 상처를 치료해줄 것이니, 부상자는 망설이지 말고 후퇴하라! 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다! 반드시 살아남아 끊임없이 창칼을 들어라!”

    황태자 하이든의 외침으로 알 수 있듯, 동부 대초원 토벌에 참전한 마법사들은 연신 후방만을 지키며 도우미 역할에 치중하고 있었다. 원래대로였다면 이미 전투 시작부터 대규모 합동 마법, 혹은 고위급 주문을 몰아치고 있었을 터.

    하나 지금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총 두 부류의 까닭이 존재했는데, 먼저 대초원 중앙에 떨어뜨린 구체가 첫 번째 이유였다.

    불사의 군단으로부터 ‘불사’를 벗겨준, 이안과 스람의 합작 말이다.

    “상태가 심각한 부상자는 우리 고위마법사 중 치료 마법에 능한 자가, 상대적으로 가벼운 부상자는 여타 마법사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진다!”

    대초원 중앙에 떨어진 구체, 그 구체는 불사의 군단에게서 불사를 벗겨 내는 강력한 흑마법이 담겼다.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그 ‘해제의 기운’을 끊임없이 내뿜고 있었다.

    이게 바로 마법사들의 전투참여가 소극적인 원인 중 ‘첫 번째’이기도 했다. 마법사가 펼치는 여러 대규모 마법이, 오히려 저 흑마법의 지속과 효과에 불순물로 작용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단, 저 구체로부터 뿜어지는 흑마법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 선에서! 즉 엄호 수준의 미약한 주문 정도는 허용되었으니, 치료 마법에 능숙하지 못한 이들은 스스로 판단하여 아군의 지원 및 엄호에 집중하도록!”

    삼국 토벌대 중 그린리버 측 마법사의 총지휘관으로 임명된 고위마법사 로난, 그가 침착하면서도 능수능란하게 휘하 마법사들을 통솔했다. 타국의 마법사들 역시 각각 비슷한 명령 하에 움직였다.

    “으아아아아아아!”

    “죽어! 이 괴물 새끼야!”

    "부상자를 후방으로 인솔하라!"

    “길을 열어! 길을!”

    생소하고 원시적이며 퇴보되었다 함은 바로 그러한 이유였다. 마법사의 본격적인 참전 없이, 오로지 칼과 창, 방패와 갑옷, 잘 훈련된 군마와 병사만으로 전장의 판도가 좌지우지되는 상황 아니겠는가?

    “하악! 헉! 허어억! 후우우…….”

    그 숨 막히는 토벌의 현장 한가운데서, 유독 거친 숨소리를 내쉬는 남자가 보였다.

    대초원의 동남쪽을 담당하는 그린리버 제국 측 보병이었는데, 휘장을 보아하니 모그리안 영지군 소속인 것 같았다.

    “그어어어어-!”

    “으아아악!”

    그 병사가 눈앞까지 달려든 오크 좀비에게 창 끝을 내질렀다. 본능적인 반응이었으나, 그 결과는 제법 괜찮았다. 오크 좀비의 목에 바람구멍이 뚫려버렸으니 말이다.

    “으……!”

    창대 쥔 손을 부르르 떠는 병사였다. 자신이 해내고도 당혹스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곧 주변부터 경계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진정하자 루카. 네 생에 이런 경험, 그리고 이런 취재! 또 언제 해보겠어? 절대로 흔치 않잖아! 아니,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겠지. 그러니까, 그러니까 무슨 수를 써서든 현장에서 버텨야……!”

    오크 좀비를 찌르고 혼잣말까지 중얼대는 병사, 모그리안 영지군의 휘장을 가슴팍에 걸친 남자의 정체는 ‘루카’였다. 과거 이안의 근처를 서성거리며 소설가의 꿈을 키웠던, 먼 훗날 ‘루카 루카’라는 필명의 소설가로 대성하게 될 그 말단병사 말이다.

    “우와악!”

    이제는 모그리안 영지군의 선임병사이자 소설가이기도 한 루카, 그가 전장 한복판에서 쉴 새 없이 괴성을 내질렀다. 그러면서도 싸우기는 곧잘 싸웠다. 오래전부터 연마해 온, 스스로 자부심까지 갖춘 창술 실력이 빛을 발휘했으니까.

    채앵-!

    창끝으로 트롤 좀비의 도끼질을 막아낸 루카가 민첩하게 뒤쪽으로 물러났다. 물론 기껏 해봐야 다섯 걸음 정도 거리를 벌리는 것이 전부였다. 워낙에 난전인지라 공간적 여유가 크지 않은 까닭이었다.

    “……?”

    문제는 그때부터 발생했다. 딱 다섯 걸음 물러났을 뿐인데도 누군가와 등이 부딪쳤다. 아군이었으면 다행일 터, 하나 불행하게도 아군이 아니었다.

    본디 대초원의 원주민이었던 좀비와 부딪치고 만 거다. 서로가 자연스레 목을 돌렸고, 눈까지 마주쳤다. 앞서 서술했듯 난전 아니던가? 충분히 염두에 뒀던 상황임에도 피할 길이 없었다.

    “제국…… 인……! 죽인…… 다!”

    “이런!”

    루카가 황급히 창대를 들어 검은 피부 원주민 좀비의 검을 막아냈다. 그 여파로 창대가 두 동강이 나버렸으나, 곧장 창날이 달린 창대로 원주민 좀비의 옆 목을 노렸다. 기민한 판단력의 승리였다.

    “크허억-!”

    비명을 토하는 원주민 좀비. 그러나 루카는 안도할 수 없었다. 지금쯤 먼저 마주했던 트롤 좀비가 등 뒤를 노려올 터, 재빨리 경계가 필요한 방향으로 몸뚱이를 돌렸다.

    “……망했다.”

    예상대로라면 한 마리여야만 했다. 원주민 좀비와 등을 부딪치기 직전에 마주쳤던 트롤 좀비 한 마리 말이다.

    한데 그 짧은 사이 네 마리가 늘어나 버렸다. 총합 다섯 마리의 트롤 좀비가 루카 자신을 향해 달려들고 있다는 얘기였다. 심지어 함께 싸워줄 ‘살아있는 아군’조차 가까운 거리에는 없었다. 오롯이 일 대 삼의 싸움을 펼쳐야 하는 상황, 말이 상황이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지금처럼 물불 가리지 않고 살다 보면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은 했지만, 심지어 오늘이 일 수 있다고도 예상했지만…….’

    루카는 약 8년 전. 이안 페이지란 희대의 천재 마법사를 만난 이후, 본격적으로 꿈을 좇기 시작했다. 아주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소설가, 그중에서도 영웅의 멋들어진 일대기를 창작하는 꿈 말이다.

    ‘그래도 현실이 될 줄은…….’

    그때부터였다. 루카는 영지의 군인으로서 온갖 위험한 일에 자원하고 또 자원했다. 이유는 그랬다. 무릇 많은 경험을 해봐야 좋은 이야기, 재미있는 소설, 박진감 넘치는 영웅의 일대기를 쓸 수 있을 거라는 믿음 탓이 컸다.

    ‘책 하나 내본 걸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 좀 아쉽긴 한데…….’

    그 결과, 생애 첫 번째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기도 했다. 고작 1년 전쯤의 일이자 영광이었다.

    모그리안 영지 출신으로 어느덧 대상단이 된 포이언 상단의 도움 덕에 나름대로 유명세까지 떨쳤다. 하지만 그 유명세에서 멈추고 싶지 않았다. 더 증진하여 일생일대의 대작을 남기고 싶었다.

    지금도 그 대작의 재료로 쓰이기 위한 절정의 경험을 바라며 창을 들었던 거다.

    ‘역시…….’

    루카가 부러진 창을 움켜쥐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련이 남았다.

    무슨 수를 써서든 살고 싶었다.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넘쳤다.

    ‘이대로 허무하게 죽을 순……!’

    루카의 생존의지가 여느 때보다도 확고하게 빛나는 순간이었다.

    “쿠억!”

    달려들던 트롤 좀비 한 마리가 저 스스로 나자빠졌다. 적어도 루카의 눈에는 그리 보였다. 분명 자기 혼자 죽일 듯이 달려들다가 뒤로 벌러덩 넘어져 버린 꼴이었으니까.

    “캬아악!”

    “키엑!”

    갑작스러운 이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두 마리가 단말마를 내지르며 똑같이 널브러졌다. 루카 자신의 등 뒤로부터 날아든 무언가가 이유인 것 같았다.

    “무, 무슨…….”

    세 마리의 트롤 좀비가 순식간에 쓰러졌다. 아직 두 마리가 더 남아있긴 했으나, 그럼에도 루카는 자신의 등 뒤를 돌아봤다. 원인부터 확인해보고 싶었으니 말이다.

    “……?”

    루카의 등 뒤, 그러니까 달려들던 다섯 마리 트롤 좀비와 마주한 그곳으로 어떤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 남자는 실로 보기 드문 밝은 금발을 가졌으며, 그보다 수백 배는 더 보기 힘든 미남자였다.

    “화, 황태자 전하……?”

    루카는 황태자와 일면식이 없다. 그저 먼 발치에서 봤을 뿐이다. 그럼에도 황태자의 모습을 단번에 알아챘다. 백금의 머리칼, 절세의 미남자, 화려한 갑옷과 망토, 결정적으로 저 기이한 형태의 지팡이까지. 토벌군 진영에서 봤던 황태자 하이든 그린리버와 똑같았다.

    “가만히 있거라.”

    “……예?”

    루카의 되물음과 동시에, 황태자가 든 지팡이 끄트머리로부터 정갈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피슝 피슝 피슝!

    소리는 정확하게 세 번이었으며.

    “쿠억!”

    “캬아악!”

    “케헥?!”

    트롤 좀비의 단말마 역시 종류만 다를 뿐, 정확히 세 번 울렸다.

    “…….”

    순식간에 다섯 마리 트롤 좀비가 쓰러졌다. 모두 저 백금발 황태자의 지팡이로부터 펼쳐진…….

    “마법……?”

    마법, 그래. 마법이다. 저건 분명 마법일 거다. 루카는 당연하게도 그렇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병사, 부상을 당했나?”

    “예? 아, 아닙니다! 부상은…….”

    “무리하지 마라. 비록 중요한 싸움이긴 하나, 아바마마와 나의 백성이 허무하게 죽는 꼴을 보고 싶진 않으니까. 허니 전력을 기울이되, 목숨만큼은 우선으로 챙겨라.”

    루카에게 당부의 말을 전한 황태자 하이든, 그가 한쪽 손을 치켜들자 주변을 지키던 황실기사들이 사방으로 달려들었다. 동시에 사방의 좀비 떼가 무참할 지경으로 도륙 나기 시작했다. 하나하나가 모두 올리버 레이우드의 직속제자나 마찬가지인 제2 황실기사단 아니겠는가? 그 무위는 일개 칼잡이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었다.

    “내 말, 명심하겠느냐?”

    “……예? 아, 예! 이놈 반드시 명심하겠사옵니다. 화, 황태자 전하!”

    “창이 부러졌군.”

    황태자가 자신의 두 자루 검 중 하나를 뽑아들었다. 그러더니 대뜸 루카의 손에 쥐어줬다. 일개 병사가 휘두르기에 너무나도 고급스러우며 잘 만들어진 ‘보검’이었다.

    “창만큼 손에 익진 않겠지만, 그 부러진 창대보다야 낫겠지. 이 검이라도 쥐고 반드시 살아 남거라. 검은 이후에 돌려받을 터이니.”

    “저, 전하…….”

    “부디 끝까지 살아남아서, 그대의 손으로 돌려줬으면 좋겠구나.”

    그 말을 끝으로 황태자 하이든이 기이한 지팡이, 붐 스틱을 고쳐 잡았다. 동시에 붐 스틱의 손잡이 내부로부터 텅 빈 마나 구슬을 꺼내더니만, 곧바로 품속에 모셔뒀던 새 마나 구슬과 바꿔 빠르게 장착시켰다.

    그 일련의 과정이 매우 절도 있고, 신속 정확했으며, 어딘가 모르게 멋들어진 맛이 느껴졌다.

    “허면.”

    결연한 표정의 루카에게 고개를 한번 끄덕여준 황태자 하이든. 그가 또다시 치열하고 복잡한 토벌의 현장 속으로 기사단과 함께 스며들었다.

    “호오, 저것 봐라?”

    그 모습을 대초원의 상공, 비행포격선 용의 심장에서 지켜보던 공학자 스람. 그가 흡족한 미소와 함께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살피는데 사용했던 기다란 원통도 거두었다.

    “저렇게 잘 쓰는 놈은 또 처음이구먼. 저것도 재능을 타나?”

    붐 스틱의 창시자로서 황태자가 새롭게 보이는 스람이었다.

    그야말로 황태자를 위하여 세상에 나타난 무기 같지 않던가? 저리 잘 써먹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지금보다 더 쓸 만한 붐 스틱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욕구마저 일어날 지경이었다.

    “한번 구상해 볼 법도…….”

    스람의 생각이 거기까지 닿았을 때, 크게 삼 방향으로 펼쳐진 대초원의 격전지로부터 새로운 기류가 일어났다.

    시체가 되어 널브러진 좀비들은 물론, 전투 중 최후를 맞이한 토벌대 병사들의 시신마저 빠르게 변질하기 시작했으니까.

    파스스스스스……!

    모든 시신이 빠르게 말라비틀어졌다.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뼈’를 제외한 육신의 모든 요소가 제거되는 느낌이었다.

    피부와 근육, 내장과 핏물까지 몽땅 가루가 되어 흩날렸으며, 오직 뼈만 조각조각 나뉘어 허공으로 떠올랐다. 뿐이랴? 일정한 위치로 모여들어 형체를 이루어내기에 이르렀다. 아마 이안이 있었다면 아주 익숙했을 광경.

    그렇다. 이는 과거 용아병 사태 당시 모습을 드러냈던 ‘본 드래곤’의 탄생과 흡사한 광경이었다.

    “저, 저것인가. 탑주께서 말씀하신, 본 드래곤이라는 괴물이……?”

    서서히 본 드래곤의 모습을 빚어내는 온갖 뼛조각들, 그 놀랍고도 흉측한 광경에 고위마법사 로난이 읊조렸다. 그는 이미 작금의 사태를 이안으로부터 전해 들은 모양새였다.

    “……이럴 때가 아니지.”

    잠시 넋을 놓았던 로난.

    그가 모든 마법사에게 외쳤다.

    인류사상 최강의 무기인 마법사가 후방으로 물러나야만 했던 두 가지 이유, 그 중 ‘두 번째 이유’가 바로 저 ‘본 드래곤’에게 있었으니까.

    “전원! '사슬의 식'을 준비하라!”

    본 드래곤의 등장에 그린리버 측 마법사들은 물론, 로 공국과 콜드우드 제국의 모든 마법사가 일사불란하게 ‘사슬의 식’을 준비하는 찰나, 비행포격선 위에서도 작지만 새로운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이번에도.”

    비행포격선에는 마도공학자 스람만 탑승한 것이 아니었다.

    선박 내부에 마련된 방에서 명상을 하고 있었던 기사, 황태자의 ‘호위기사’이자 제2 황실기사단의 ‘단장’이며 ‘스승’, 나아가 그린리버의 ‘검공’ 올리버 레이우드가 갑판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움으로 가득한 눈빛이었다.

    “이안 공의 말씀대로인가.”

    그 기사.

    올리버가 조용히 응시했다.

    압도적인 크기로 빚어지는 괴물.

    본 드래곤이란 괴물의 탄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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