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59화
62. 삼국 토벌대(2)
쿠우우우우웅-!
육중한 구체가 대초원의 바닥을 묵직하게 내리쳤다. 상당한 굉음이 쩌렁쩌렁 울렸다. 그럼에도 구체의 훼손은 크지 않았다. 훼손은커녕 흠집조차 생기지 않았으니까.
파직!
이변, 그러니까 구체의 ‘본질’은 그 순간부터, 자욱하게 만개하기 시작한 흙먼지가 채 가시기 전부터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파직! 파직! 파지직!
바닥에 반쯤 박혀 버린 구체로부터 검붉은 스파크가 튀었다. 처음에는 아주 작게 일어나는가 싶더니만, 곧 그 세기와 범위가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파지직! 파직! 파지지직-!
사방으로 뻗어나간 스파크가 어느새 대초원 땅덩어리 대부분을 아울렀다. 어디 그뿐일까? 지면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 마구잡이로 헤집기 시작했다. 마치 땅속 아래 무언가를 자극하기라도 하는 듯, 혹은 강제로 끄집어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쿠구구구구구……!
동부 대초원 전체를 검붉은 색으로 물들여버린 기운, 타원형의 구체로부터 파생된 현상이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이내 땅속 이곳저곳에서 미묘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이는 프란 페이지의 하수인들, 즉 불사의 군단 전체가 땅속으로부터 기어 나오며 발생하는 ‘진동’이었다. 그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모여 큰 진동을 이루어낸 거다.
“그으으으…….”
“거어어어어……!”
“크륵! 크르륵……!”
동부 대초원의 원주민, 오크, 트롤, 오우거 등 다양한 종족으로 구성된 불사의 군단.
그들이 다시금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일전에 프란의 부름 아래 등장했던 당시와는 두 가지가 달랐다. 먼저 프란 페이지가 아닌, 구체에 담긴 이안의 흑마법이 원인이라는 점부터 달랐다.
“히야…… 안 본 사이에 정말 미치긴 미쳤나 보군. 설마 이런 짓까지 벌였을 줄이야……. 하긴, 우리에게 영생이란 모순을 약속했던 그때부터 예정된 수순이었나.”
그 끔찍한 위용 앞에 침음을 삼키는 공학자 스람이었다. 이안에게 대략적인 설명을 들은 덕분이었다.
“이런! 내 정신 좀 보게.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확인부터…….”
당장 해야 할 일이 떠오른 스람, 그가 포격선의 키를 고쳐 잡았다. 이안의 마법이 새겨진 저 구체에는 불사의 군단을 강제로 끄집어내는 효과만 담긴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 상황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존재했는데.
퍼엉-!
이윽고 비행포격선의 수많은 포신으로부터 불꽃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빗물받이 산맥에서 가고일 무리를 상대로 보여줬던 포격, 가히 ‘비행포격선’이란 이름값에 어울리는 행위가 시작된 것이다.
콰앙! 쾅! 콰아앙! 콰앙-!
하나 그 무차별적인 포격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간단했다. 작금의 포격은 ‘전투’가 아닌 ‘실험’에 목적을 둔 까닭이었다.
“키아아아악!”
“크허억……!”
“쿠엑!”
포격에 묵사발이 나버린 프란의 하수인들, 본래대로였다면 불사의 힘으로 하여금 깨끗하게 되살아나야 할 그들이 놀랍게도, 부활은커녕 아무런 재생조차 이루어내지 못했다.
한두 마리만 우연으로 그런 것이 아니었다. 포격의 범위에 휩쓸린 전부가 똑같았다.
“성공인가?”
대초원 중앙으로 떨어뜨린 구체. 그 구체에 담긴 이안의 마법, ‘언어의 힘’과 ‘흑마법’을 결합하여 탄생시킨 ‘불사 해제 주문’이 성공적으로 발휘된 모양새였다.
“……모두 좋은 곳으로 가길.”
스람이 무로 돌아간 대초원 좀빈들을 보며 잠시간 기도했다. 비록 불사의 성질과 타고난 사정이 다를지언정, 저들 또한 프란 페이지의 뜻에 놀아난 존재가 아니겠는가? 비슷한 처지로서 동질감과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자, 이제…….”
스람에게 주어진 임무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완벽한 무대가 조성되었으니, 이제 그 무대 위로 주인공들을 불러와야 할 터.
퍼엉-!
다시 한 번 격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작금의 포격은 대지를 향하지 않았다. 그와는 정반대, 즉 하늘 높은 곳으로 발사되었다.
파아아아아아-!
이는 살상용 포탄이 아니었다. 푸른색 빛줄기가 사방으로 뿜어지는 신호탄이었는데, 푸른색은 ‘성공’이란 의미가 담긴 색깔이기도 했다.
우우우우우우웅-!
각각 동부 대초원의 동남쪽, 서남쪽, 북쪽 부근으로 수많은 포탈이 순식간에 세워졌다.
동남쪽으로는 그린리버 제국의 여러 영토와 연결된 포탈이, 서남쪽으로는 로 공국의 포탈이, 북쪽으로는 콜드우드 제국의 포탈이 생성된 것이다. 그 압도적인 숫자로 미루어보건대, 상당한 대군이 초원으로 몰려올 터.
“이런 구경은 또 처음이군.”
할 일을 끝마친 스람, 그가 조금 더 높은 곳으로 비행포격선을 상승시켰다. 지금부터 시작될 역사적인 전쟁. 아니 토벌의 처음과 끝을 두 눈으로 관전하기 위함이었다.
“그것도 하늘 위에서 말이야.”
스람의 중얼거림이 끝나갈 무렵, 삼방으로 생성된 포탈 속에서 ‘삼국 토벌대’의 ‘선봉 기병대’가 압도적인 기세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각기 다른 갑옷과 휘장, 깃발 등을 앞세워 돌격하기 시작했다. 대상은 당연하게도 ‘불사의 군단,’ 혹은 ‘불사의 힘을 잃어버린 좀비 군단’이었다.
“집중하라 모그리안 기사단! 토벌의 흥망이 우리에게 달렸다!”
그린리버 제국 측 선봉 기병대에는 실로 많은 인물들이 보였다.
과거 모그리안 영지의 평민 출신 기사로서 이안을 호위하기도 했던 ‘에릭’이 어느새 단장이 되어 모그리안 영지군의 선봉장을 맡았고.
“피에릭의 최고 전사들이여! 동부 대초원은 우리의 소임이 아니었던가? 헌데도 우리는 저 끔찍한 참변을 감지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피에릭의 대영주로서, 그대들은 피에릭의 최고 전사로서! 막중한 책임감과 부끄러움을 느껴야한다!”
역사적으로 동부 대초원의 모든 움직임을 견제해왔던 ‘대륙의 방패’. 피에릭 영지 최고 전사들 또한 선봉대의 한 축을 담당했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이 오명을 씻어낼 길이 없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만회할 기회가 지금 생겼도다! 방법은 간단하다! 고삐를 당겨라! 돌격하라! 모조리 섬멸하라!”
여전히 지도자라기보다는 돌격대장에 가까운 대영주 ‘칼리안 피에릭’이 우렁찬 외침과 함께 선봉 기병대의 가장 앞줄을 지켰다. 칼리안의 기마술은 가히 최고 수준에 이르렀으니, 기병대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돌진력을 마음껏 뽐냈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광활한 대지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말발굽 소리, 그로 인한 흙먼지가 삼방으로부터 빠르게 좁혀졌다. 그것들은 곧 동부 대초원의 좀비들을 무자비하게, 사전에 계획된 동선대로 짓밟기 시작했다.
콰직! 콰지직! 콰지직!
불사의 힘을 잃어 벌거벗은 상태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일까? 대초원의 좀비들은 압도적인 기병대의 몰아침 앞에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갔다. 골통이 깨지고, 몸뚱이가 짓밟혔으며, 박살이 나기에 이르며 하나둘씩 무로 돌아갔다.
물론 좀비 군단의 수가 워낙 엄청난 탓에 기병대만으로는 전멸시키기가 어려웠다. 그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좀비 군단의 ‘진영혼란’, 대전투에 앞선 ‘기선제압,’ 아군 본대의 ‘사기증진’이 주된 목표였으니까.
“와아아아아아아아-!”
기병대가 대초원을 한바탕 휘몰아친 직후, 예정되었던 함성소리가 삼방의 포탈로부터 속속들이 들려왔다.
삼국 토벌대의 본대, 보병부대 및 기병대에 합류되지 않은 기사단, 그리고 마법사들이었다.
“그린리버의 용사들이여! 저 앞에 보이는 괴물을, 죽지 못한 자들을 똑똑히 마주하라! 우리가 여기서 이겨내지 못한다면! 살아남지 못한다면! 저 괴물들이 도시와 마을로 몰려가 그대들의 부모와 아내, 자식들을 몽땅 먹어 치울 터이니!”
그린리버 진영 본대의 최전방에는 놀랍게도 황태자 하이든 그린리버가 제2 황실기사단을 거느린 채 앞장서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육성 증폭구로 토벌대의 구성원들을 한껏 고양시키기에 이르렀다.
“결코 그 꼴을 볼 수 없는 자! 저 흉측한 것들을 우리들의 삶과 터전 속에서 몰아내길 원하는 자!”
제2 황실기사단, 그리고 몇몇 마법사들의 호위를 받는 황태자가 보검을 높게 치켜들며 외쳤다. 황제와 이안, 올리버를 포함한 모두의 만류에도 그가 본대의 선봉에 선 거다.
단순한 호승심이 아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그리고 신중하게 고민했던 황태자 하이든이었으며, 오롯이 확고한 마음가짐으로 선택한 참전이었다.
“망설이지 말고 나를 따르라! 나와 그대들의 가족과 친우를 위하여! 우리의 조국 그린리버를 위하여! 그리고…… 인류를 위하여!”
그런 황태자의 마음이 전해진 걸까? 그린리버 진영 모두가 진심으로 황태자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또한 황태자가 외친 구호를 목청 터지라 복창하기에 이르렀다.
“인류를 위하여!”
“인류를 위하여!”
“인류를 위하여!”
기병대가 앞서나갔던 길을 본대와 함께 달리기 시작한 황태자 하이든, 그가 치켜들었던 보검을 미련 없이 거두었다. 지난 몇 년간, 올리버에게 검술을 배워봤으나 영 성과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둔재 이하의 재능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황태자에게는 자신만의 특별한 ‘무기’가 생겼다. 이번 대토벌에 나설 수 있었던 용기도 이 ‘필살기’가 크게 작용했다.
철컥!
황태자가 허벅지 바깥쪽으로 착용했던 ‘특수한 띠’의 잠금을 풀었다. 그러더니 꽂혀있었던 무언가를 뽑았는데, 손잡이가 달린 기다란 물체였다. 검이나 활은 결코 아니었다. 석궁 또한 아닌 것 같았다. 단언하건대 그 어떤 살상용 무기보다 조그마하고 가벼웠다. 하물며 용도조차 유추하기 힘들었다.
피슝-!
황태자 하이든의 손에 쥐어진 물체, 그 물체로부터 ‘매직 미사일’ 한발이 대초원 좀비의 머리통을 정확하게 관통해버렸다. 매직 미사일의 크기는 평범한 매직 미사일 주문보다 작았으나, 뻗어 나가는 속도와 관통력만큼은 단언컨대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았다.
“한 놈.”
피슝!
강화된 매직 미사일을 쏘아대는 물체, 그 정체는 바로 공학자 스람의 걸작이기도 했던 마도 공학의 산물, 이른바 ‘붐 스틱’이었다.
대량 생산조차 불허를 받았던 그 애물단지가 황태자의 손아귀로부터 화려하게 불타오르기 시작한 거다.
“두 놈.”
피슝 피슝!
처음 이안에게 선물로 받았을 때만 해도 그저 그렇게 여겼을 뿐이었는데, 심심할 때마다 연습하다 보니 손에 참 잘 맞는 느낌이 들었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이지 쏘는 족족 백발백중에 이르렀으니까.
외모와 혈통 빼고는 어느 것 하나 특별할 게 없었던 황태자 하이든이 생애 처음으로 ‘재능의 맛’에 취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세 놈!”
피슝 피슝 피슝!
이 난전 속에서도 황태자의 붐 스틱은 백발백중이란 정확도를 조금도 잃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황태자가 타고난 ‘의외의 재능,’ 그것도 ‘압도적인 재능’의 산물이었다.
“전진하라!”
인류 최초의 ‘붐 슈터’.
황태자 하이든이 외쳤다.
“인류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