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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57화 (157/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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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57화

    61. 일곱 번째 장인(2)

    그 발언에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다짜고짜 아버지 운운이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뭐라는 거야? 내가 왜 네놈 …… 으잉? 너, 설마 래디오냐?”

    “저, 정말 아버지십니까?”

    다소 요상한 부자의 재회.

    그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아비는 맞긴 한데…… 왜 그렇게 늙었느냐? 몇 년이 지난 거지?”

    “그, 그러니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부터 겨울이 스물여섯 번 지나갔습니다.”

    “그럼 네가 올해로 몇 살인고?”

    “서른하고도 일곱입니다.”

    “허어……!”

    뜬금없는 상황이 계속 펼쳐졌다. 그러니까, 래디오의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비가 되살아난 건가? 아니, 되살아났다기보다는…….

    ‘설마.’

    이안이 두 눈 가늘게 떴다.

    무언가 감이 잡힌 모양새였다.

    “이십육 년이라니, 고작 이십육 년이라니! 이백육십 년도 아니고 이십육 년?! 허어, 내가 고작 이십육 년 자빠져 자자고 그 고생을 했단 말인가……? 이런 제기랄!”

    혼란과 비통함에 푹 절인 중년인, 그가 털썩 주저앉았다.

    “이런 낭패가 있나……!”

    “어, 어떻게 되신 겁니까? 아버지께서는 분명…… 분명 그때 돌아가시지 않으셨습니까? 사고, 제가 기억하기로 큰 폭발이…….”

    래디오는 자신의 아비가 연금술 사고로 죽은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조금 전 폭발과 어떤 상관관계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랬지. 내가 원했던 전개가 그거야. 분명 그러려고 했는데…….”

    중년인, 래디오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남자가 비통한 듯 말문을 잇지 못했다. 정말 슬프다기보다는, 분노에 분노가 겹쳐 결국 슬픔으로 화해버린 느낌이 강했다.

    “혹시…….”

    혼란스러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안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사방을 일깨웠다. 그 대상은 래디오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남자, 당연하게도 초면이었다.

    “두드리는 섬을 아십니까?”

    “뭣……?”

    이안의 물음은 전혀 뜬금없지 않았다. 검은 머리칼, 조금 창백한 피부, 저 방대한 연금술 도감을 남겼을 정도의 지식.

    그리고 영원한 안식이니, 원했던 전개니 하는 꼬락서니가 꼭 죽음을 바라는 장인들, 그들과 똑같았다.

    “원래는 그곳에 여덟의 장인 분들이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제가 여섯 분을 모시고 있죠.”

    저 중년인은 분명 ‘장인’이다.

    프란의 여덟 장인 중 한 명.

    그것도 연금술 분야의 장인!

    이안의 직감이 그렇게 소리쳤다.

    “당신이 그놈들을? 어째서?”

    “이안 페이지라고 합니다.”

    “엉? 아, 내 이름은 바이온…… 자, 잠깐. 지금 페이지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제가 여섯 명의 장인 분들을 모시고 있는 까닭, 짐작이 조금 되는지요?”

    “……과연, 그 이름이라면…….”

    장인들은 모두 프란 페이지란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래디오의 아버지이자 눈앞에 나타난 괴인, 바이온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 나를 깨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알겠지?”

    “물론입니다. 다만 해명하고 싶은 것이, 바이온 님을 일부러 깨운 건 절대로 아닙니다. 저희는 단지 심상 세계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었을 뿐이니까요.”

    “심상 세계? 누가 그 페이지의 후손 아니랄까 봐, 취향 한 번 똑같구먼. 혹시 뭐냐, 그 시간의 분열이라든지, 다른 차원이라든지, 그런 헛소리에도 관심이 있나?”

    “최근에 생겼습니다.”

    “염병, 똑같은 또라이구먼.”

    래디오의 아버지, 바이온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그는 다른 장인들과 달랐다. 이안은 물론 프란을 지칭할 때에도 거침이 없었다. 하수인이라기보다는 동급의 위치에 있었거나, 혹은 그보다 높은 곳에서 프란을 대하는 느낌이 강했다.

    “아버지? 이안 님? 지, 지금 두 분이서 무슨 말씀을 나누시는 겁니까? 제게도 설명을 해주셔야죠! 아버지는 어떻게 되신 거고, 이안 님께서는 저희 아버지를 어찌 아시는 겁니까? 이거 너무 혼란스러워서…….”

    래디오가 두 눈을 껌뻑거리며 말했다. 그는 지금 어안이 벙벙하다 못해 터질 지경까지 이렀다.

    “엄밀히 따지자면, 아는 사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모자란지라…….”

    “그, 그게 무슨…….”

    “말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저도 이렇게 만나 뵐 줄은 몰랐습니다.”

    이안의 말은 한 점 거짓조차 없었다. 이안에게도 래디오의 아버지이자 연금술 장인, ‘바이온’의 등장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표현 그대로 갑작스러운 경우였다.

    “아, 아버지! 아버지께서 뭐라고 말씀 좀 해주십시오! 도대체가 어찌 된 일입니까? 예? 돌아가셨던 아버지가 어떻게…… 어떻게 살아 돌아오실 수 있느냐 이겁니다!”

    “하? 이놈 봐라? 가만히 듣자 하니까 아주 기가 막히는구먼? 애비가 되살아났으면 엉엉 울면서 잔치라도 열어야 정상 아니냐? 엉? 근데 이놈은 왜 살아났느냐며 지랄만 하고 앉았네?”

    “그, 그건…….”

    “에잉……! 이래서 자식새끼 싸질러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니까. 오랜 세월 숱하게 당하고도 또 싸질렀으니 원, 이게 다 내 업보고 잘못이겠지, 암. 내 잘못이야. 잘못.”

    “아, 아버지. 그게 아니라…….”

    “시끄럽다 이놈! 나이 좀 먹었다 이거지? 요만했을 때는 귀여웠는데, 아저씨가 다 되어버렸구먼. 설마 그 옆에 놈이 네놈 아들, 그러니까 내 손자냐?”

    연금술사 바이온이 래디오 옆 더글라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외모적으로는 그다지 닮은 바가 없거늘, 용케도 알아차렸다.

    “예? 아, 그, 맞습니다.”

    “며느리는?”

    “그게…….”

    “됐다. 꼴을 보니 홀아비구먼.”

    “…….”

    죽은 아내의 생각이 난 걸까, 잠시 말문을 잃어버린 래디오의 모습에 바이온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 대상은 이안이었다.

    “내 아들과도 잘 아는 사이 같은데, 설마 이것도 우연이냐?”

    “믿기 힘드시겠습니다만, 벌써 7년째 맺어온 인연입니다.”

    “흠…….”

    이안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던 바이온. 그가 난장판이나 마찬가지인 연구실을 슥 둘러봤다.

    “내 아들놈한테 심상 세계와 관련된 연구를 시켰나 보군.”

    “제가 알기로, 래디오님과 더글라스는 대륙 최고의 연금술사입니다. 하여 부탁을 드리긴 했습니다만.”

    “푸하하핫! 대륙 최고의 연금술사라? 아마 그 정도 수준으로는 갈피도 잡을 수 없었겠지. 알만해. 이 난장판을 보니 잘 알겠어.”

    비록 말버릇은 험했으나 엄청난 내공임은 사실이었다.

    주변을 둘러본 것만으로도 어떤 연구가 진행 중이었는지, 그 성과가 어디에 닿았는지를 파악할 정도였으니까.

    “야, 아들아.”

    “예……?”

    “너도 저 염병할 페이지 놈들한테 코가 꿰인 거냐? 뭔 늙어 뒈질 때까지 아무런 상관도 없을 개나발 심상 세계 연구란 말이냐?”

    “…….”

    “썩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바이온. 진심 어린 한탄스러움이 묻어났다.

    “이리된 마당에 무엇을 더 숨기겠냐? 니 애비, 죽지 않았다. 애초에 죽을 수가 없는 몸뚱이거든. 그냥 시험 삼아서 죽은 척 좀 해봤어. 그럭저럭 성공이었던 것 같긴 하다만, 설마 이렇게 빨리 깨어날 줄은 몰랐지.”

    바이온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외형적으로는 래디오와 동년배 또는 조금 위일 뿐인지라, 대화에서 어딘가 모를 위화감마저 느껴졌다.

    “그. 그렇게 말씀하셔도…….”

    “됐다. 나중에 마저 얘기하도록 하고. 너, 이안 페이지라 했느냐?”

    바이온의 대화 상대가 이안으로 바뀌었다. 이안 역시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예. 그 이름이 맞습니다.”

    “그놈은 죽었냐? 아니, 그 물건이 죽을 팔자는 아니지. 어디 있나?”

    “누구를 말씀하시는지. 다른 장인 분들이라면 모두 근처에…….”

    “아니, 아니. 프란 말이야. 프란.”

    이로써 확실해졌다.

    어떤 이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연금술사 바이온은 프란을 아랫사람처럼 취급했다.

    강한 무력의 소유자 같지는 않은데, 어째서일까? 이안은 일단 사실을 감춰보기로 마음먹었다.

    “죄송하지만, 그자의 행방은 저도 파악한바가 없습니다. 오랜 세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까요.”

    “염병, 난 또 이제야 나타나서 그 엿 같은 저주라도 풀어줬나 했네. 이럴 줄 알았으면 내 지식을 전수해 주지도 않았을 텐데!”

    그 격양된 말소리로부터 바이온과 프란의 관계가 어렴풋이 나타났다. 아무래도 그들은 ‘연금술의 전수’로 이루어진, 일종의 ‘사제관계’인 것 같았다.

    “그 말씀은, 프란이 바이온 님께 연금술을 배웠다는 뜻입니까?”

    “왜, 거짓말 같나?”

    “그럴 리가요. 단지 그자가 이룬 연금술의 경지를 목격해 본 바로는…… 생각보다 대단하더군요.”

    “경지? 하도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려 몇 개 가르쳐 준 게 전부이거늘. 경지는 뭔 얼어 죽을!”

    “그러면 말입니다. 혹시…….”

    이안이 조심스레 말문을 이어갔다. 프란 페이지에게 받아 마셨던, 래디오와 더글라스에게 의뢰했지만 아직 성과가 없는 바로 그 비약. 요컨대 ‘심상 세계로 통하는 비약’에 대한 질문이었다.

    “아, 그거? 별거 아니지.”

    바이온이 콧구멍을 살살 긁으며 대답했다. 목소리만 들어도 확고한 자신감이 전해졌다. 결코 단순한 허세 따위가 아니었다.

    “왜? 필요하냐?”

    그 되물음에 이안이 묘한 흥분을 느꼈다.

    바이온이란 연금술사의 갑작스러운 등장, 이건 변수다. 그것도 이안에게 도움이 되는, 상황을 단 한 방에 역전시킬 만한 변수 말이다.

    ‘프란조차 예상하지 못했을 변수.’

    연금술의 장인이자 래디오의 아버지, 바이온이 설마 자신이 엮은 도감 속에 자신을 스스로 봉인했을 거라고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이건 기회다.’

    변수이자 기회.

    이 상황을 놓칠 리 없는 이안.

    그가 빠르게 대화를 이어갔다.

    “필요합니다.”

    “맨입으로?”

    “심상 세계가 열쇠입니다.”

    “열쇠? 그게 뭔 염병할 소리야?”

    “영생의 축복, 혹은 불사의 저주.”

    이안의 작은 읊조림에 바이온이 흠칫했다. 그 또한 오랜 세월 고통받아온 축복 아닌 저주, 그 이름이 구체적으로 언급된 까닭이었다.

    “그 낙인을 풀 열쇠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염병할 놈에 심상 세계가 저주를 풀어낼 열쇠다?”

    “제가 파악한 바, 그렇습니다.”

    “허면 줘야지.”

    시원스럽다 못해 어이가 없을 지경으로 빠른 결정, 그리고 대꾸였다. 죽음을 향한 갈망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단지 너무나도 쉽고 간단한 일이기에, 딱히 재고 뺄 거리조차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일단 가자. 섬으로.”

    두드리는 섬에 남겨진 두 개의 걸작, 그중 ‘연금술사 바이온’의 걸작이 드디어 제 모습을 드러낼 차례였다.

    * * *

    두드리는 섬, 그곳으로 통하는 포탈을 통해 이안과 바이온이 넘어왔다. 함께 있었던 래디오와 더글라스, 에반투스도 얼떨결에 따라왔다.

    “여기도 오랜만이군.”

    대장장이 할리아와 잘 어울릴 것 같은 어투의 연금술사 바이온, 그가 말투만큼 거칠 것 없는 걸음걸이로 걸작이 보관된 조각상, 아직 활동을 시작하지 못한 두 기의 ‘용용이’ 중 한곳으로 다가갔다.

    “자, 받아라.”

    바이온이 걸작을 보관 중인 조각상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드래곤 조각상 ‘용용이’의 아가리가 쩍하고 벌어졌다.

    동시에 그 속으로부터 두꺼운 책 한 권이 둥실둥실 떨어졌다. 겉보기로는 래디오가 보유 중인 ‘연금술 도감’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였는데.

    “그 안에, 내가 쌓아온 모든 정수가 들어있다. 나는 이제 약초니 개나발이니, 손끝 하나 건들기도 귀찮으니까, 대충 내 아들놈이나 가져가서 시키든지 말든지. 손자 놈도 괜찮고, 저놈이 더 똑똑하다며? 내 눈에야 그놈이 그놈이지만.”

    걸작으로 추정되는 서책.

    그 책을 휙 던진 바이온.

    한데 다시 봐도 똑같았다.

    래디오의 연금술 도감과 말이다.

    “이건…… 제게 물려주셨던 도감이 아닙니까? 겉표지에 새겨진 요상한 문양부터…….”

    “아아! 네 녀석한테 물려준 도감은 ‘초심자용’이고.”

    래디오가 물려받았던 연금술 도감, 그 방대하고도 심오한 연금술적 지식이 담긴 서책이 고작 ‘초심자용’이었다는 이야기였다.

    “여기 이 도감은 말이다. 장담컨대 뒷골목 삼류 연금술사조차 대륙에서 제일가는 연금술의 왕으로 만들어줄, 표현하자면 ‘기연 덩어리’나 마찬가지다~ 이런 얘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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