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56화 (156/342)

156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56화

61. 일곱 번째 장인(1)

“저는, 여왕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그릇이 작습니다. 그래서 그럴까, 어떤 심정으로 말씀하시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겠음에도, 기분 좋은 대답을 드리기가 힘드네요.”

결국 거절의 답변을 주는 걸까?

페어리 퀸이 표정을 굳히는 순간.

“그렇지만, 거악을 상대하는 일입니다. 그 싸움에 드래곤 일족까지 적으로 맞이할 필요는 없겠죠.”

그렇다, 프란 페이지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런 존재와의 싸움에서, 그와 필적한 힘을 가진 드래곤 일족마저 적으로 돌린다? 미친 짓이나 마찬가지이리라.

“아마 그쪽, 드래곤 일족의 입장도 저와 비슷할 겁니다. 하루빨리 처리를 하든가, 아군이 되든가. 이렇게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기에는 여러모로 불편할 테니까요.”

아마 드래곤 일족의 입장도 이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다. 봉인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벅찬 상황 속에서, 이안 페이지란 적까지 추가로 만들 여유가 없을 터.

“그러니 제가 지금 여왕께 드려야 할 대답은 긍정입니다. 말씀하신 동맹, 받아들이도록 하죠.”

이안의 선언과도 같은 말에 페어리 퀸이 표정을 풀었다. 아니, 풀림을 넘어서 환하게 빛났다.

당당함, 혹은 오만함과 농익은 고혹으로 가득했던 그녀의 얼굴이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빛깔을 머금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여왕께서 계속 움직여 주셔야 할 것 같군요.”

(괜찮다. 내가 또 무얼 해주면 좋겠느냐? 어서 얘기해다오.)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페어리 퀸, 실로 흔치 않은 모습에 이안조차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다시 그분들, 드래곤 일족에게 돌아가 제 뜻을 전해주세요. 이쪽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합류할 테니, 당신들은 ‘거악의 본신’에 맞설 준비를 시작하라, 이렇게 말이죠.”

프란 페이지를 완벽하게 소멸시키기 위해서는, 그 봉인부터 풀어준 뒤 본신을 제거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만반의 준비가 필요했다. 프란 페이지의 본신은 절대로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닐 테니까.

(전할 말은 그것뿐이냐?)

“당장은 그렇습니다. 제 얘기를 전한 뒤 다시 돌아오세요.”

(하! 이건 뭐, 내가 무슨 네놈의 심부름꾼도 아니고.)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어색했던 모양일까? 다시금 본연의 말투와 표정으로 되돌아온 그녀였다.

“여왕님.”

(듣고 있다.)

“적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말,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

“설령 그 불상사가 벌어지더라도, 여왕께서 생각을 바꾸시지 않는 한, 저 역시 여왕님을 적으로 맞이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이안의 말에 잠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던 페어리 퀸, 그녀가 조막만 한 몸뚱이를 휙 돌렸다.

(흥! 상황이 상황인 만큼 아무런 말이나 대충 내뱉었을 뿐이니라. 괜한 의미 따위 부여하지 마라!)

그녀가 부끄러운 듯 소리를 치더니 곧장 이안이 만들어준 포탈 너머로 들어갔다.

가고일의 왕이 기거 중인 빗물받이 산맥, 인즉 드래곤 일족에게 이안의 뜻과 요청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적이라…….”

적.

확고한 피아의 갈림.

그것이 점점 더 뚜렷해졌다.

과거 인류의 수호자였으며, 항간에는 최초의 마법사로 알려졌던 마법사. 드래곤 일족의 스승이자 이안 페이지의 아버지가 되는 존재.

‘프란 페이지.’

이안이 그 거악을 떠올렸다. 한편으로는 이상한 기분도 들었다.

드래곤, 페어리, 드래고니안 등, 핏줄은커녕 종족조차 다른 그들과 손을 잡고 아비에게 대항하는 꼴이 우습게도 느껴졌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 아버지란 존재가 누구던가?

이미 미칠 대로 미쳐 버린 광기의 결정체가 아닌가? 그대로 뒀다간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 어찌 그런 자를 아비랍시고 따를 수 있을까?

‘그럴 순 없겠지.’

장장 수천 년에 걸쳐 응집된 광기의 결정체, 언젠가는 반드시 이안과 주변에게까지 흉악한 마수를 뻗쳐올 거악, 그것이 바로 프란 페이지다.

제아무리 혈연으로 맺어졌다 한들 아군이 될 수도, 같은 세상 속에 공존할 수도 없으리라.

‘이제 3일.’

총 열흘이 주어졌던 시간.

그중 7일을 소모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3일.

‘딱 하나 남았군.’

지금부터 이안이 집중해야 할, 그럼에도 엄청난 대운을 필요로 하는 문제, 바로 프란 페이지 본인이 가진 ‘불사의 힘’. 그 힘을 파훼할 수 있는 ‘약점’과 ‘수단’이었다.

‘심상 세계에 쌓인 영혼을 전부 소모할 때까지 싸운다, 물론 그것도 방법의 하나긴 하겠지만.’

드래곤 일족 전체와 동맹을 맺었으니 한 번쯤 시도해 볼 만한 방법이기도 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놈의 소멸을 확신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드래곤들이, 어쩌면 이안 본인까지 희생될 수도 있으리라.

‘보다 근본적인 약점이 필요해. 영혼을 쌓아둔 심상 세계, 분명 거기에 해답이 있을 텐데…….’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안, 그가 곧 발걸음을 옮겼다.

‘심상 세계로 통하는 비약’의 조사, 나아가 조제 의뢰까지 맡겨둔 래디오와 더글라스 부자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 * *

“계십…….”

래디오와 더글라스 부자의 저택지하 연구실, 그 앞에 도착한 이안이 노크를 시도하는 순간이었다.

콰앙-!

연구실 안으로부터 들려오는 폭발소리, 큰 규모의 폭발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연금술 실험 도중 발생한 부작용인 것 같았는데…….

“무슨 일입니까?!”

이안이 급하게 문을 열었다. 아무리 작은 규모의 폭발일지언정, 평범한 사람이 휘말린다면 꽤 큰 부상을 피하지 못할 터.

“우와아! 죽는 줄!”

“콜록! 콜록! 콜록!”

(그대들은 목숨이 여러 개인가? 아님 연금술사라는 족속들이 원래 이런 건가? 나약해 빠진 몸뚱이로 물불을 가리지 않는군.)

연구실에는 래디오와 더글라스 말고도 손님이 하나 더 있었다. 그는 드래고니안 ‘에반투스’였다. 이안의 요청에 따라 래디오와 더글라스의 연구를 도왔다. 자신의 회복을 도와준 이들의 연구이기에 흔쾌히 받아들였다.

“……괜찮으십니까? 다들?”

이안이 주변을 살피며 물었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약병과 도구들, 이안이 가져다준 마나 호흡 이론서부터 온갖 연금술 고서, 대대로 물려받았다는 연금술 도감까지.

그야말로 난장판이나 마찬가지였다.

“하핫, 보시다시피 저희는 멀쩡합니다. 뭐…… 연구실 상태는 좀 그렇습니다만.”

래디오가 주섬주섬 일어나며 말했다. 더글라스도 몸을 가누었다. 에반투스만 멀쩡했다.

“그…… 저…… 아! 계획하신 일은 잘 진행되고 계시는 겁니까?”

“순조롭습니다. 이제 곧 마무리단계에 접어들 것 같습니다.”

“그 말씀은, 저희의 성과가 마지막 열쇠다. 이런 말씀이군요.”

“부담 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차선책도 준비해 뒀으니 말이죠.”

“아무리 그렇게 말씀하셔도, 이거 참 대단히…… 걱정되네요.”

이안의 대답에 래디오가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웃음으로부터 성과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송구하지만, 아직 자신 있게 말씀드릴만한 성과가 없습니다. 무차원의 공간이란 곳으로 진입한다는 붉은 용의 다섯 숨결, 그 비약의 조제법과 원리를 견본으로 삼아 연구하고 있기는 한데, 솔직히 심상 세계라는 개념 자체부터가 너무 모호한지라…….”

지난 몇 년 동안 들어봤던 래디오의 목소리 중, 가장 자신감이 없고 축 처진 어조였다.

그만큼 ‘심상 세계로 통하는 비약’이란 과제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다.

애당초 심상 세계란 개념 자체가 추상적이지 않던가? 마법사들도 실존한다고만 믿고 있을 뿐, 실제 마나 호흡을 통해 진입해 본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적어도 상아탑의 기록상으로는 말이다.

“관련된 기록이라곤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고…… 남은 시간을 아무리 매달려 봐야 도움이나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거 뵐 면목이 없군요.”

“아닙니다. 저는 괜찮…….”

(근데 말이다.)

이안이 축 처진 래디오를 위로하려는 그때, 가만히 지켜보던 에반투스가 한마디 툭 끼어들었다.

(저 가문의 도감이라는 책, 혹시 아티펙트같은 물건이었나?)

“예? 그럴 리가요. 내용만 방대할 뿐이지, 책 자체는 평범…….”

에반투스의 물음에 대답하던 래디오, 그는 물론 더글라스와 이안의 눈까지 동시다발적으로 휘둥그레졌다. 그것도 그럴 것이, 바닥에 널브러진 연금술 도감으로부터 은은한 마나가 피어올랐으니까.

“……?”

여러 의문이 느껴졌다. 도감으로부터 왜 저런 기운이 피어나는 걸까? 정말 무언가 비밀이 있는 물건이었다면 왜 하필 지금일까?

“설마 방금 그 폭발 때문에……?”

아무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그때, 더글라스의 나지막한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그렇지 않아도 방금 전 폭발은 더글라스가 주도했던 연구였다. 심상 세계로의 진입에 관한 연구 말이다. 문제는 그 실험으로부터 일어난 폭발에 어째서 책이, 집안 대대로 내려왔다는 연금술 도감이 반응하느냐는 거다.

“모두 제 뒤로!”

이안이 더글라스와 래디오의 앞으로 나섰다.

언어의 힘이 가미된 보호막까지 펼쳤다. 이중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 아니겠는가? 만약을 대비한 보호막이었다.

우우우우우우우웅-!

하나 연금술 도감으로부터 쏟아진 빛, 그 빛은 공격적이지 않았다. 단지 세기가 강렬해질 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머리와 몸통, 어깨부터 팔과 손, 다리에 발까지.

그것은 누가 봐도 명백한 ‘사람의 형상’처럼 보였다.

“…….”

갑작스러운 누군가의 등장에 이안 역시 긴장했다.

이것도 프란 페이지의 수작질이 아닐까 싶은 탓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이안이 며칠간 쌓아온 모든 계획과 행보가 일순간 물거품으로 돌아갈 터.

‘처음부터 염두에 두곤 있었다만.’

물론 프란 페이지가 이 모든 것을 감시하고 있을 가능성, 이안의 빈틈없이 준비한 은밀함에도 불구하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었을 가능성은 전혀 배제한 바 없었다. 다만 그 최악의 가능성이 현실로 나타나지 않기만을 바랐을 뿐.

‘이렇게 꼬여 버리는 건가?’

이안이 모든 정신을 눈앞 형체에 집중시켰다. 만약 저 형체가 프란 페이지의 또 다른 사념체라면, 그 사념체가 이안을 만나고자 나타나는 것이라면, 표현 그대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펼쳐지리라.

“……네놈들은 뭐냐?”

그러나 이안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생김새는 물론 목소리까지도 프란 페이지와 전혀 딴판이었으니까. 저번처럼 다른 누군가의 육신을 빌려 왔을 가능성도 있겠으나, 그리 생각하기엔 저 중년 남자의 행동이 이상했다.

이안 일행 모두가 당혹감에 빠진 것처럼, 도감으로부터 빚어진 중년 남자 역시 누구보다 당혹스러워 보였다.

“뭔데 지금 내 앞에서…… 자, 잠깐. 나는 분명 영원한 수면의 봉인식으로 가둬졌을 텐데……?”

도감에서 나타난 중년인, 그가 혼란스러운 듯 검은색 머리칼을 쥐어짰다. 그러더니 발밑에 놓인 도감을 발견하고는 이안과 래디오, 더글라스와 에반투스까지 차례차례 훑었다.

“야! 이 염병할 새끼들아!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엉? 내가 어떻게 만든 봉인식인데! 어떻게 누리기 시작한 안식인데!”

중년 남자가 길길이 날뛰며 고함쳤다. 조금만 더 지나면 주먹이라도 한 방 날릴 기세였다. 물론 그 전에 이안과 에반투스의 방해를 받겠지만, 그 기세만큼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아, 아버…….”

모두가 혼란에 빠진 그때, 단 한사람만 안색을 달리 가졌다. 그 사람은 바로 레디오였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듯 들썩거리기도 했다.

“아버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