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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55화 (15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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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55화

    60. 반격의 서막(6)

    이윽고 제국 최정상의 인사, 상아탑주 이안 페이지와 황제 테리 그린리버의 독대가 시작되었다. 물론 시작만 했을 뿐, 짧지 않은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흘러내렸다.

    “동부 대초원에.”

    그 침묵의 종결자는 이안이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떤 문제를 말씀하시오?”

    “초원에 존재했던 모든 생명, 원주민부터 몬스터까지 끔찍한 봉변을 당했습니다. 죽음으로부터 되살아난 존재, 언데드가 되었더군요.”

    “무, 무어라? 그게 사실인가?”

    “한 치의 거짓 없는, 사실입니다.”

    갑작스럽고도 믿기 힘든 얘기에 황제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거대한 땅의 모든 생명이 봉변을 당했다니? 선뜻 믿을 수 없는 얘기였다.

    “으음…··.”

    이안의 보고를 사실로 가정한 황제, 그가 계속해서 질문을 이었다.

    “상아탑주. 짐은 그대의 말을 누구보다 신뢰하오만, 그래도 그 말을 확인할 방법이 필요하오.”

    황제는 이안의 말을 믿었다. 하나 그다음이 문제였다. 어떤 대책을 내놓기 위해서라도 확인이 필요했다. 그래야 인력이 되었든, 다른 무엇이 되었든 행동할 수 있을 터.

    “물론입니다.”

    이안도 공감한바, 집무실 허공에 거대한 마력의 구체가 생성해 냈다. 그 반투명 구체로부터 대초원의 여러 풍경이 비쳤다. 표현 그대로 텅텅 비어버린, 무생명의 초원으로 전락한 모습을 말이다.

    “지, 지금 이게 정말 동부 대초원의 모습이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육안으로 보이지는 않사오나, 땅속에 숨어들어 있더군요. 다음 장면을 보시면…··.”

    구체의 장면이 전환되었다. 바로 ‘불사의 군단’이 땅속으로부터 나오는 장면이었는데, 이안의 기억을 통하여 비치는 시각적 정보였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허어, 어찌 이런…··!”

    황제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물론 그것도 잠시간일 뿐,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았다. 현 황제의 특기이자 통치의 요소 중 하나였다.

    “상아탑주, 솔직히 다른 이가 이런 보고를 올렸더라면 쉽게 믿지 않았을 것이오. 저 구체의 장면 역시 조작된 술수쯤으로 여겼겠지. 원칙대로 조사단을 파견해 진실부터 파악하는 것이 순서겠으나, 지금은 얘기가 조금 다르겠지.”

    다른 누구도 아닌, 이안 페이지가 최초 보고자다.

    그 이름이 갖는 의미를 모를 리 없을 터. 황제 특유의 재빠르고 정확한 판단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렇게 급히 보고부터 올린다는 것은 그대가 직접 처리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란 뜻일 터.”

    “폐하의 혜안이 옳으십니다. 소인은 동부 대초원을 죽음의 땅으로 만든 존재, 그 거악의 계획에 대항하는 것만으로도 여유가 부족합니다. 하여, 초원의 일은 저를 제외한 모든 분에게 맡기고자 합니다.”

    “그 거악이란 존재가 누구인지, 아니 무엇인지 알 수 있겠소?”

    “최초의 마법사를 아십니까?”

    “알지. 탑주 그대가 처음 세간에 이름을 알렸을 때, 그 존재의 환생이라며 소문이 자자하지 않았소?”

    “그랬었지요.”

    새삼 옛 기억을 되짚어봤던 이안. 그러나 실상은 환생이 아니라 핏줄. 아니, 과거로 돌아간 본인이었을 줄이야.

    물론 그렇게 구구절절한 이야기까지 나눌 수는 없었다.

    “그 이름으로 알려진 존재, 최초의 마법사가 바로 거악입니다.”

    “…··.”

    정말이지 얼토당토않은 소리, 하지만 발언자가 이안이기에 외면하기도 힘들었다.

    “아마 그 대답에는, 짐이 가늠한 수준보다 훨씬 더 심대한 배경을 품고 있겠지.”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런가.”

    황제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탓이었다.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많은 것을 묻고 싶지만, 또 들어야 마땅하나. 탑주의 얼굴을 보아하니 아직 때가 아닌 것 같군.”

    “송구하옵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촌각을 다투는 문제입니다.”

    “해서, 짐이 어찌해 주기를 바라시오?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보시게.”

    “이 도시를, 제국을 노리는 적이 발견되었습니다. 가히 대군을 이루었죠. 바로 그러한 적을 발견했을 때, 폐하께서 내리실 판단을 하여주셨으면 합니다.”

    “짐이 내릴 판단이라…··.”

    황제가 턱수염을 가볍게 매만졌다. 판단이라면 어렵지 않았다. 적이 존재하고, 의도가 분명하다. 심지어 그 위치까지 알고 있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는 없을 터,

    “전쟁보다는, 토벌이 어떻소?”

    “소인의 생각과 같으십니다.”

    콜드우드 제국의 수상쩍은 움직임으로 취소되었던 동부 대초원 토벌, 그 삼국 협정하에 출범되기 일보 직전이었던 대규모 토벌대가 한 박자 늦게 소집될 차례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적 여유가 정확하게 얼마나 되오?”

    “육 일 남았습니다.”

    “촉박하군. 탑주께 부탁을 하나 드리겠소. 도성 내 모든 고위급 관료, 장성 이상급 군인, 고위급 마법사, 단장 이상급 기사는 물론 각 영지의 대영주 및 대리인까지 모두, 지금 즉시 이곳 집무실로 소집해 주길 바라오.”

    그야말로 제국을 쥐락펴락하는 최고위 인사들의 소집령이 방금, 황제의 명령하에 떨어졌다.

    “가능하시겠소?”

    물론 어렵지 않았다.

    상아탑주, 이안에게는 말이다.

    포탈, 그리고 텔레포트 마법.

    두 가지 주문이 존재했으니까.

    “분부대로 하겠나이다. 폐하.”

    * * *

    “협조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흐르는 시간처럼, 삼국 대토벌군의 편성 및 작전 준비도 순식간에, 차곡차곡 진행되었다.

    먼저 이안은 콜드우드 제국과 로 공국의 협조를 구했다. 콜드우드 쪽은 어려울 게 없었다. 이안이 얼굴 한번 비추는 것만으로도 자지러지는 놈이 사실상 최고 통수권자 아니던가?

    “아, 아무리 그래도…··.”

    “이번 일에 전력으로 협조를 해주신다면, 약속하건대 전하의 침소나 집무실을 마음대로 찾아오는 일도 멈추도록 하겠습니다.”

    “……진심이시오?”

    “밑져야 본전 아니십니까?”

    “그건 그렇지만…….”

    “싫으면 마시고.”

    “이,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한 대업! 본국 또한 큰 보탬이 되도록 만고의 노력을 다하겠소이다!”

    물론 로 공국 역시 거절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안이 직접 나선 이상, 아무리 좋은 회유와 제안도 협박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자세한 논의는.”

    이안이 콜드우드 제국과 로 공국에게 통신구 하나씩을 건넸다.

    “이 통신구를 통해 나누십시오.”

    무려 국가 간 통신을 가능케 만들어주는 아티펙트 통신구였다.

    마도 공학자 장인 스람의 작품이었는데, 공개 시기가 최소한 천 년은 이르다며 거절당했으나, 이번 사안에만 사용하고 회수하는 조건으로 어렵사리 대여할 수 있었다.

    “그럼.”

    이안의 다음 행선지. 그곳은 공학자 스람의 ‘지하공방’이었다. 비행포격선 ‘용의 심장’의 보관이 이루어지는 초대형 공간 말이다.

    “오…….”

    동시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이안이었다.

    거대한 거치대로 공중에 붕 뜬 모양새인 비행포격선, 그 아래 달린 거대하고도 묵직한 ‘무언가’를 목격해버린 까닭이었다.

    “벌써 완성된 겁니까?”

    이안의 물음에 마도 공학자 스람이 가슴을 탕탕 쳤다. 온갖 기름과 얼룩으로 범벅된 얼굴, 팔뚝, 옷가지였으나 그 표정만큼은 밝았다.

    “그걸 말이라고. 워낙 어마어마한 놈이라 성능 확인까진 어렵겠지만, 딱히 확인해 보지 않아도 불량 가능성은 없을 거요. 영향력의 오차범위도 마찬가지일 거고.”

    “아무렴요. 누가 만드신 건데.”

    이안이 비행포격선 아래 매달린 ‘타원형의 물체’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마치 비행 도중 뚝 떨어뜨리려고 제작된 모양새였다.

    “그럼 제가 말씀드린 사항들, 염치없지만 계속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중하게 인사를 올린 이안이 저택으로 돌아왔다. 래디오와 더글라스의 연금술 연구실이 오늘 마지막 행선지였다. 그들의 연구 결과에 따라 향후 행방도 달라질 터.

    그때였다.

    (인간.)

    익숙한 여인의 목소리.

    꽤나 반가운 음성이기도 했다.

    이안이 알려준 대로 드래곤을 만나고 돌아온 페어리 퀸이었으니까.

    “오셨습니까. 여왕님.”

    (흐응, 네놈에게 익숙한 기운이 느껴진다. 아타르 하카, 그분께서 내려주신 은총이더냐?)

    “도움을 좀 받긴 했습니다.”

    (항상 어둠 속에만 머물기를 선호하시던 분이거늘, 아무래도 네놈이 꽤 마음에 드신 모양이구나.)

    “뭐, 그런 셈이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타르 하카 역시 ‘마음에 든다’라는 표현을 실제로 사용하지 않았던가?

    (그 말은 즉, 그분들과의 동맹을 환영한다는 뜻이겠지?)

    “그야 여왕께서 가져오신 대답에 따라서 달라질 것 같습니다만.”

    페어리 퀸이 가져왔을 대답.

    수장 리시스 라덴쥬의 의지.

    귀를 기울이는 이안이었다.

    (그분께서는, 너와의 동맹을 모든 일족에게 공식적으로 선언하셨느니라. 모든 사태가 마무리된 뒤에도 너와 네 주변을 해하거나, 주시하시지 않을 것이다.)

    “그것뿐입니까?”

    (무엇이 더 필요하지?)

    “달랑 말 몇 마디일 뿐인데, 어찌 마음을 놓을 수 있겠습니까?”

    (내 목숨.)

    이안의 반발에 페어리 퀸, 그녀가 결연한 어조로 대꾸했다.

    (만약 그분께서 약속을 어기신다면, 기꺼이 내 목숨을 내놓겠다.)

    “부족합니다.”

    (지금 이 몸께서 목숨을 내놓겠다는 데도 부족하다는 게냐?)

    “네. 부족합니다.”

    하지만 이안의 목소리가 더더욱 단호하기 짝이 없었다. 목숨을 내놓겠다.

    참으로 확고한 의지가 엿보이는 말이긴 하다만, 이안에게는 전혀 중요치 않았다. 이미 문제가 발생한 뒤 페어리 퀸을 죽인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저는 보다 확실한 장치를 원합니다. 여왕님의 목숨은 추상적인 의미에 불과할 뿐, 아무런 장치도 될 수 없죠. 잘 아시지 않습니까?”

    (…….)

    페어리 퀸의 말문이 잠시간 멈춰 버렸다. 사실 그녀도 알았다. 자신의 목숨을 걸어봐야 아무짝에도 쓸모없음을, 설득할 수 없음을.

    (그렇게 얘기해도 말이다. 방법이 없지 않느냐? 내 너에게 간곡히 부탁하마. 지금껏 네 가족 곁을 지켜준 노고를 생각해서라도, 그분들의 뜻을 믿어줄 순 없겠느냐?)

    ‘결연’의 다음은 ‘처연’이었다. 항상 오만함을 유지하는 그녀에게 좀처럼 보기 힘든 분위기였다.

    “여왕님의 은혜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 말을 믿어달라는 거다. 네가 그분들을 적으로 간주한다면 너와 나, 그리고 네 가족 또한 적이 되어버리고 말 테니까. 그렇지 않느냐?)

    이안이 침묵하는 가운데, 그녀가 계속해서 말문을 이어갔다.

    (나는…… 솔직히 모르겠다. 네놈과 네놈의 가족, 백 년도 채 살지 못하는 미천한 족속들과 고작 몇 년을 보냈을 뿐인데…… 싫구나. 정말 싫구나. 이리 허무하게 너희와 척을 지고 싶진 않아. 그러니까 제발, 제발 내 말을 믿어다오. 인간. 아니…… 이안 페이지.)

    단언컨대 처음이었다.

    페어리 퀸이 이안을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언제나 ‘인간,’ 혹은 ‘네놈’으로 일관되지 않았던가?

    “…….”

    페어리 퀸의 간곡하고도 간절한 부탁 때문일까, 이안은 한동안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이안이 품고 굳혔던 가치관에 격렬한 진동이 찾아왔다. 처음 라그나르의 손아귀에 독살을 당했을 때, 하여 30년이란 세월을 되돌렸을 때. 다시는 누군가를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분명 그렇게 결심하고, 수없이 되새겨 가슴 한구석에 각인시켰다.

    ‘하지만…….’

    과연 지금 이 순간도 불신으로 일관하는 것이 옳은 걸까? 페어리 퀸의 부탁마저 단칼에 거절하는 것이 더 올바른 결과를 가져다줄까? 글쎄, 확신하기가 어려웠다.

    “……저는.”

    실로 오래도록 지속하였던 적막함의 끝에서, 결심을 내린 이안의 입가가 천천히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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