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53화 (153/342)
  • 153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53화

    60. 반격의 서막(4)

    [옳지, 이 강령술. 네놈도 흑마법에 매료된 모양이로구나. 클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나를 되살려 다오. 우리가 힘을 합치면 세상 그 무엇이든……!]

    “대답부터.”

    이안이 한껏 낮아진 어조로 허버트의 말문을 잘랐다. 일부러 그리 낸 것은 아니었다. 아타르 하카의 선물이 마법은 물론 목소리마저 어둡게 변질시킨 탓이었다.

    [그래, 그래. 급할 게야. 처음에는 다 그렇단다. 평범한 마법과 비교가 힘들지. 중독성 말이야. 집착할 만해.]

    이안이 흑마법에 중독되었음을 확신하며 말하는 허버트. 그 영혼뿐인 망령의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안을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단 망상이 꿈틀거린 까닭이리라.

    [네 말이 맞다. 상아탑이라는 이름의 감옥에선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지. 기껏해야 고서 몇 권 구해 탐독하는 정도가 최선이었으니까. 그래서 찾았다.]

    “뭘 찾았지?”

    [흑마법사. 대부분 토벌되었다고는 해도, 생존자가 전무할 린 없겠지. 당시 나를 도왔던 모든 정보통을 뿌려 찾아냈다. 흑마법사 중에도 언데드와 영혼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종파, 네크로맨서란 족속들이 음지에서 활동하고 있었더군.]

    네크로맨서, 이안도 몇 번 들어본 바가 있었다. 비록 실제로 본 적은 없었으나, 흑마법과 관련된 서책이나 소문이라면 반드시 언급되는 이름 중 하나였으니까.

    “어디서 만날 수 있지?”

    [나도 모른다.]

    “그래?”

    이안이 품속에서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마기를 퇴치하는 권능이 내재된 가루, 페어리 퀸의 가루가 담긴 주머니였다.

    망령 허버트 역시 그 치명적 기운을 감지한 듯 황급히 물러났다.

    [자, 잠깐! 거짓을 말하는 게 아니야! 놈들은 오랫동안 토벌과 배척에 시달려왔다! 그런 족속들이 상아탑주인 내게 위치까지 알려줬겠느냐? 천만의 말씀! 접촉할 방법이 따로 있단 말이다!]

    동시에 목청 터지라 외쳤다.

    네크로맨서의 위치는 모른다.

    하지만 접촉의 방법은 안다.

    [그러니까 그 빌어먹을 가루! 내 눈앞에서 당장 치워라! 당장!]

    발광을 하는 허버트의 모습에 이안이 가죽 주머니를 거두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격렬한 호응이 만족감마저 일으켜 줄 정도였다.

    [으으……!]

    가루의 기운이 사라지고도 한참을 머뭇거렸던 망령 허버트. 그 존재가 천천히 다가왔다. 잔뜩 경계했던 손과 표정도 조금씩 풀렸다.

    “치웠으니까 말해.”

    [어, 어렵지 않다! 방금 했던 것처럼 망령을 끌어모아라. 네크로맨서 족속들의 영적 감지를 자극할 정도로 많이! 놈들에게 영적 감지란 마법사의 마나 호흡과도 같은 이치, 자극만 된다면 그쪽에서 먼저 접촉을 시도할 게다!]

    강령술로 하여금 망령을 불러 모아라. 모으고 모으며 또 모으다 보면 네크로맨서란 족속들에게 그 기운이 닿을 테니까.

    “그거, 확실한 건가?”

    [무, 무슨! 확실하다! 네놈이 직접 해보면 알 거 아니냐!]

    “오래 걸릴 것 같은데.”

    [그럴 리가! 꼭꼭 숨어도 모자랄 그놈들이 미쳤다고 직접 나오겠느냐? 혼백부터 보내 네놈과 접촉할 거다. 네크로맨서란 족속들이 하수인처럼 부리는 혼백 말이지.]

    “흐음…….”

    이안이 팔짱을 끼며 생각했다. 강령술을 한번 사용하는 것도 꺼림칙하기가 도를 넘어섰는데, 실로 마음에 들지 않는 방식이었다.

    “하여간 음지 놈들 아니랄까 봐.”

    혀를 끌끌 찬 이안.

    별 도리가 없었다.

    해보는 수밖에.

    “그 전에.”

    이안이 다시금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곧장 주둥이를 풀어 속에 담긴 내용물, 페어리 퀸의 가루를 허공으로 흩뿌렸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망령 허버트가 화들짝 놀랐다. 완전한 소멸이 눈앞에 들이닥쳤으니 당연한 반응이리라.

    (멈춰.)

    허공으로 흩뿌려졌던 가루가 추락을 시작하는 그때, 이안이 펼친 언어의 힘이 모든 가루를 정지시켰다. 다른 명령이 추가되기 전까지는 언제나 멈추어 있을 터.

    [네, 네놈! 또 무슨 짓을……!]

    “내가 잘못되면 당신도 소멸하는 거야. 그러니까 헛소리 지껄인 거 있으면 지금이라도…….”

    [없다! 없어! 헛소리고 뭐고 그런 거 없다는 얘기다! 도대체 사람이 몇 번을 말해야 믿는 게냐!]

    “그쪽이 사람은 아니니까.”

    사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망령은 곧 기억과 감정의 농축이나 마찬가지 아니던가? 그 속에 담긴 기억쯤이야 손쉽게 엿볼 수 있으리라.

    단지 놈을 최대한 몰아세우고 싶었다. 그래야 마무리도 만족스러울 테니까. 고개를 끄덕거린 이안이 강령술을 펼쳤다.

    “얼마나 불러야 하지?”

    [으으……! 최대한 많이!]

    “그러니까, 얼마나?”

    [저 가루부터 치우라고!]

    "대답을 해야 치워주든, 뿌리든 결정할 거 아니야?"

    [이익! 산! 이 산에 파묻힌 망령들을 전부 다 끄집어내라! 네크로맨서 놈들이 안 나오고 배기나!]

    망령 허버트가 고통 반, 신경질 반으로 울부짖었다. 이안 역시 그 조언 아닌 조언을 충실하게 이행했다. 강령술의 세기와 범위를 가능한 최대치까지 끌어올렸다.

    “일어나라.”

    그러자 어마어마한 머릿수의 망령이 사방으로부터 몰려왔다. 그 숫자만 봐도 아까와는 차원이 다름을 확신할 수 있었다.

    [꺄아아아아아아-!]

    [살려줘…… 살려줘……!]

    [너,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내 아들…… 하나뿐인 아들!]

    [알폰소, 모든 건 놈이 꾸민 짓이야. 나는 억울해. 억울하다고!]

    망령들의 절규가 사방에서 휘몰아쳤다. 남자의 절규, 여자의 절규, 아이의 절규, 어머니의 절규, 귀족의 절규, 천민의 절규. 오래도록 처형된 시신을 파묻었던 야산이라 그럴까? 절규의 종류 또한 다양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얼마나 더 불러야 하지?”

    [아, 아직 기다려야…….]

    허버트의 망령은 이제 대답할 기운조차 없어 보였다. 머리 위로 펼쳐진 분홍빛 가루의 영향이었다.

    [출중한 강령술…….]

    바로 그 순간, 허공으로부터 보랏빛 망령 하나가 스멀스멀 가까워졌다. 놈은 여타 몰려들었던 망령과 달리 침착한 어조를 유지했다.

    [네놈, 정체가 뭐냐……?]

    “그쪽이 네크로맨서인가?”

    [우리를 알고 있군…….]

    이름 모를 네크로맨서로부터 보내진 망령, 그 보랏빛 망령이 이안의 앞에 똑바로 마주했다. 비록 눈은커녕 눈구멍조차 존재하지 않았으나, 눈이 마주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망령의 건너편에서 이안을 주시하고 있으리라.

    “이안 페이지라고 한다. 그린리버 제국의 전대 상아탑주 허버트 레온으로부터 당신들, 네크로맨서와 접촉할 방법을 소개받았는데…….”

    이안이 평소보다 느릿한 어조로 말문을 이어갔다. 물론 노림수가 있었다. 허버트의 망령에게는 일부러 펼치지 않았던 능력, 그 능력을 이제야 사용해 보기 위함이었다.

    [이안 페이지, 이안 페이지. 그 이름이라면 아마……. 그린리버 제국의 상아탑주가 아니던가……?]

    보랏빛 망령이 이안을 보다 가까이서 관찰하고 싶은 듯 접근했다.

    이안도 그에 호응하는 척 한 걸음씩 다가갔다. 이내 두 존재의 거리가 빈틈없이 가까워졌다.

    [마치 드래곤과도 같은 힘을 부리는……. 심지어 백색의 드래곤조차 수족으로 부린다던 그…….]

    보랏빛 망령의 중얼거림이 그쯤에 닿았을 때, 이안으로부터 뻗어진 손아귀 또한 보랏빛 망령에게 닿아 쑥하고 들어갔다.

    [뭣……?!]

    그뿐만이 아니었다. 망령의 안쪽으로 파고든 이안의 손바닥으로부터 황금빛 파동이 뿜어졌다. 그러자 망령을 이루었던 보랏빛 아지랑이 역시 황금빛으로 물들어갔다.

    “메모리 이터.”

    메모리 이터.

    기억을 먹는 자.

    이안으로부터 탄생된 ‘9클래스 마법’이자, 대상의 기억을 단숨에 읽어내는 주문이었다.

    과거였다면 방법을 알아도 감히 펼칠 수 없었던 주문이었지만, 지금은 얘기가 달랐다. 언어의 힘을 숙달함으로써 상당히 많은 요소가 평범한 인간에서 벗어나 버렸으니까. 가히 진화되었다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무, 무슨 짓을……!]

    “꼭꼭도 숨어 있군.”

    네크로맨서가 보낸 망령, 그 망령의 기억을 읽어낸 이안. 덕분에 은신처 또한 파악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한순간에 일어난 사태였다.

    “기다려. 어디 가지 말고.”

    본능적으로 상황이 꼬였음을 감지한 네크로맨서, 그가 황급히 망령을 소멸시켰다. 그럼에도 이안은 여유로웠다. 눈 깜빡하는 새 도착할 수 있는 위치였으니까.

    ‘세상 어디든 마찬가지다만.’

    피식 웃은 이안이 이번에는 허버트의 망령을 바라봤다. 비록 갈 땐 가더라도, 머물었던 자리는 깔끔하게 청소해 놔야지 않겠는가?

    “수고했어. 큰 도움 받았네.”

    [허, 허면 이제 유, 육신을…….]

    “아, 줘야지. 약속했으니까.”

    [오오……!]

    “다시 태어나.”

    [……뭐?]

    “뭐로 태어나든 육신은 있잖아?”

    틀린 말은 아니다.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든, 박쥐로 다시 태어나든, 거미로 다시 태어나든, 무엇이 되었든 육신은 육신 아니겠는가?

    이안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언어의 힘을 펼쳤다. 그 대상은 허공에 멈춰져 있던 페어리 퀸의 가루였다.

    [이 개새……!]

    그것이 전 상아탑주 허버트.

    그가 맞이한 두 번째 죽음이자.

    영원하고도 완전한 소멸이었다.

    * * *

    쿠구궁-!

    이는 네크로맨서들의 은신처, 흑마법으로 꽁꽁 막힌 통로의 결계가 무참히 폭발하는 소리였다.

    퍼어어어엉-!

    곧바로 이어진 폭발음은 조금 더 꺼림칙하고 질척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번 건 입구의 결계가 아닌, 몇몇 네크로맨서들의 육신이 터져나가는 소리였으니까.

    “저놈이 어떻게 여길……!”

    “저, 저게 인간이라고……?”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이안은 은신처를 박살 냈다.

    몇몇 네크로맨서조차 학살했다.

    물론 이안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문제는 네크로맨서들의 보여준 대응이었다.

    적당한 선에서 반항했다면 죽이진 않았을 거다. 하나 놈들은 처음부터 인질극에 나섰다. 온갖 흑마법의 재물 및 실험체로 사용했던 무고한 사람들을 앞세워 이안의 접근을 늦추고자 했다.

    덕분에 이안의 마음 한구석 남아있던 자그마한 자비가 거센 파도로 하여금 말끔히 씻겨나갔다.

    (저놈.)

    퍼엉-!

    (저놈도.)

    퍼어엉-!

    (저기 저놈까지.)

    퍼어어엉-!

    이안이 가리키는 네크로맨서마다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들은 도망치던 모습 그대로, 유언은커녕 일말 비명조차 남기지 못한 채 핏물만 뿌리며 바스러졌다.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가셔서 이안 페이지가 보냈다고 말씀하시면 도움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이안이 페이지 재단 사무실로 통하는 포탈을 생성하며 말했다. 그 호의의 대상은 인질들, 그러니까 흑마법의 실험체 및 재물로 쓰였던 사람들이었다.

    “시간이 없으니, 어서.”

    모두를 포탈 너머로 보낸 이안, 그가 네크로맨서 은신처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내려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언데드 하수인과 네크로맨서의 공격, 마나 트랩 등이 끊임없이 펼쳐졌으나, 그 무엇도 이안을 저지할 순 없었다.

    ‘동굴에 박혀 사는 놈들이 뭘 이렇게 쌓아놨어?’

    은신처 최하층에는 화려한 철문 하나를 비롯해 엄청난 양의 금은보화가 보관되어 있었다.

    아마 전 상아탑주와 허버트 같은 미치광이 마법사들에게 타락한 지식을 팔아가며 쌓아올린 수익이리라.

    ‘엄한 놈들 배만 불려줬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이안, 그가 한구석에 설치된 철문 앞으로 걸어갔다.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열 수 없게끔 만들어진 ‘마법의 철문’인 것 같았는데…….

    쾅-!

    문제는 이안이 ‘어지간한 존재’가 아니라는 거다. 이미 그 표현은 한참하고도 아득하게 넘어섰으니까.

    파스스스스…….

    박살 나버린 채로 무너진 철문.

    그 뒤로 펼쳐진 마지막 공간.

    그곳은 한눈에 보기에도 고가의 보물들이, 몽환 약에 잔뜩 취한 채 널브러진 여인들이, 네크로맨서 종파의 비기가 담긴 흑마법서들이, 마지막으로 살아남아 숨어든 몇몇 네크로맨서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여기 있었네.”

    이안이 만족한 듯 웃었다.

    이 상황을 바꿔 말하자면 그랬다.

    굴러들어온 김에 챙겨갈 보물이.

    찾은 김에 처리할 네크로맨서가.

    발견한 김에 구해줄 사람들이.

    또한 마지막으로.

    “다들.”

    이안의 흑마법적 소양을 높은 곳으로, 한층 더 고강한 수준까지 이끌어 줄 수단. ‘최고급 흑마법서’가 사방에 즐비한 상황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