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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50화 (15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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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50화

    60. 반격의 서막 (1)

    ‘놈은 분명 내 목소리와 마법, 생체적 반응으로 나를 감시하고 있다.’

    이안이 확신을 품는 이유, 이는 프란이 종이에 적힌 글자를 읽어내지 못해서가 아니다.

    이안은 현재 물약 하나를 복용 중이다. 오래전, 상아탑의 심문마법으로부터 피해 나갈 수 있었던 비약이자, 오로지 그린리버 황궁 지하 무덤에서만 자라나는 신비의 약재, ‘돌 심장 버섯’으로 조제된 ‘돌 심장 비약’을 복용한 상태였다.

    ‘지금 내 생체반응은 일정 구간에서만 머무는 중이야. 아무런 감정적 기복도 감지할 수 없겠지.’

    심지어 마법은커녕 일말의 목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 결과 프란은 이안의 문자를 통한 부름에 반응하지 못했다. 필시 한계가 있을 터.

    ‘이마저도 계략일 수 있다만.’

    프란이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경우 역시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에 제약을 준다면, 지금 이안은 아무런 행동도 추진하기가 어려울 거다.

    ‘지금은 과감하게 움직일 때다.’

    몇몇 실험으로 최소한의 추측과 이론을 도출해냈다. 지금은 그 추측과 이론을 근거 삼아 앞으로 나아갈 차례였다.

    ‘마법, 목소리, 기척, 감정의 기복. 최소 이 네 가지만큼은 완전히 배제하고 움직여야 한다.’

    생각보다 까다로운 조건.

    그러나 못할 것도 없다.

    이안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향후 계획을 위해서라도 가장 먼저 만나봐야 하는 존재, 드래곤과의 협상을 대신 진행해줄 아군, 페어리 퀸이 안성맞춤 아니겠는가?

    ‘아무리 신뢰를 쌓았다고는 해도, 그들은 근본적으로 드래곤의 권속이야. 아직 전부를 믿을 순 없어.’

    그렇기에 더더욱 대화가 필요했다. 드래곤을 만났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드래곤과 이안 사이에 생겨난 문제를 어찌 생각하는가, 어떻게 반응하고 싶은가. 더욱 확실하게 알아놔야만 했다. 그래야 앞으로의 계획도 뚜렷하게 세울 수 있을 테니까.

    ‘지금이 기회다. 마침 대화를 나눌 방법도 생겼으니까.’

    돌 심장 비약과 필담.

    두 가지면 충분하리라.

    이안이 서재 문을 나섰다.

    에반투스 구출 이후, 페어리 퀸은 쭉 에반투스가 휴식을 취하고 있는 방에서 좀처럼 나오질 않았다.

    명백한 간호나 마찬가지였다. 겉보기론 까칠함으로 똘똘 뭉친 그녀였으나, 사실 그 누구보다 깊은 속정의 소유자 아니던가? 특히 용아병 스파르토이를 잃어버린 이후, 그녀는 오랜 동료들의 영구적 소멸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똑 똑 똑!

    에반투스의 치료실 문을 두들긴 이안, 그가 몇 초간 기다린 뒤 안으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역시나 에반투스, 그는 래디오와 더글라스의 특제 수면제를 마셨는지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그 곁으로 에반투스의 자손 말리오투스와 헤르넬리아는 보이지 않았다. 오직 페어리 퀸만이 탁자 위에 앉아 빈둥거리고 있었다.

    [뭐냐?]

    “좀 괜찮으신가 해서요.”

    [이 밤중에?]

    “잠도 잘 안 오고요.”

    [흐응, 내 듣기로 인간의 발정기는 19세 전후라더니, 네 녀석도 곧 발정기가 올 모양이로구나?]

    “무슨…….”

    정말이지 훅 들어오는 페어리 퀸의 농담이었다. 밑도 끝도 없이 발정기라니,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이안도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당황하긴, 찔리는 게냐?]

    “어디서 그런 농담을 배우신 겁니까? 주변에 그럴 만한 분은…….”

    하나 이안은 당황한 게 아니었다. 아니, 당황은 했으나 그리 크진 않았다. 오히려 이 상황을 기회로 여겼다.

    입으로는 농담에 대해 말했으나, 손은 따로 놀았다. 조용히 해달라는 손짓과 더불어 돌 심장 비약을 페어리 퀸에게 건넸다.

    “없는 것 같은데 말이죠. 인간 사회에 너무 오래 계신 모양입니다.”

    이안의 손짓은 곧장 비약을 마시라는 표현으로 이어졌다. 페어리 퀸 역시 이안의 행동을 금방 이해해냈다. 까닭까진 알 수 없으나, 장단부터 맞춰줌이 옳다고 여겼다.

    [언제든 말만 하여라. 당장 내 보금자리로 돌아갈 터이니. 나는 뭐 좋아서 여기 있는 줄 아느냐?]

    짐짓 새침하게 대꾸하며 약병을 받아든 페어리 퀸, 그녀가 돌 심장 비약을 목구멍으로 조용히 넘겼다.

    “아직 어렵습니다. 나중에, 모든 일이 안정을 되찾으면 돌려보내 드리도록 하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멀진 않을 겁니다.”

    이안이 말문을 이어가며 누런 양피지와 깃펜을 탁자 위로 올렸다. 필담으로 대화하기 위함이었다.

    [흥, 말이나 못 하면.]

    페어리 퀸이 콧방귀를 날리며 양피지 앞으로 다가왔다. 이안과의 필담에 나설 준비가 완료된 거다.

    “그래서, 에반투스 님은 좀 어떠십니까? 아까 보니 래디오 님과 더글라스가 아주 열심이더군요.”

    <사실 드래곤 일족을 찾았습니다. 만나기도 했죠. 아마 어딘가에서 저를 지켜보고도 있을 겁니다. 아타르 하카라는 이름의 검은 용이라고 하더군요.>

    통상적인 ‘가짜’ 대화.

    필담을 통한 ‘진짜’ 대화.

    두 가지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걱정할 거 없다. 하루가 다르게 팔팔 살아나고 있느니라.]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냐?>

    황급히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페어리 퀸이 깃펜부터 집어 들었다. 입 밖으로 쏟아지기 일보 직전인 이야기를 꾹 참아내는 눈치였다.

    “다행이군요. 아, 여왕께서 지극정성으로 간호해 주셨단 얘기를 들었습니다. 에반투스 님께서도 분명 크게 감사하시고 계실 겁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어렵습니다. 지금 저를 감시하는 존재가 하나 더 있거든요. 혹시 최초의 마법사란 존재를 알고 계십니까?>

    최초의 마법사란 말에 페어리 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최초의 마법사를 알고는 있으나, 지금 그 존재의 이름이 나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모양새였다.

    [감사? 감사는 개뿔, 괜히 나한테 시비나 걸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하루라도 빨리 네놈들과 얽힌 악연을 끊고 싶을 뿐이니라.]

    <알다마다. 어린 시절, 그분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본 바가 있느니라. 직접 만나본 적은 없다만.>

    역시 권속들과 프란 페이지는 약간의 시간적, 그리고 상황적 격차가 있었다. 아마 권속들의 어린 시절에는 프란 페이지가 본격적으로 미쳐가기 직전, 한창 드래곤의 육신을 얻을 수 있는 연구를 시작하고자 은둔했을 당시였을 터.

    “이제 돌아가고 말고 하실 것도 없지 않습니까? 제가 둥지까지 포탈로 이어 드렸는데, 그냥 앞으로 쭉 함께하시죠.”

    <그자가 모든 일의 원흉입니다. 제가 드래곤 일족을 만날 수 있도록 해드리죠. 그들에게 자세한 얘기를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대신, 여왕님의 생각을 먼저 듣고 싶습니다. 어떤 대답을 하신다 해도, 지금껏 받은 도움이 큰 만큼 여왕께 누를 끼칠 생각은 없습니다.>

    이안이 침착하게 말했고, 침착하게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대충 빠르게만 휘갈겨 쓰는 것 같으면서도 상당한 명필이었다.

    [흥! 그래 봐야 이 답답한 인간 식 집구석에 꼼짝없이 묶여 있어야 하지 않느냐? 아서라, 기회가 온다면 당장 떠나줄 테니까.]

    <어서 말해보아라. 내 그분들을 만날 수 있다면, 어떠한 대답인들 솔직하게 내어주겠느니라.>

    페어리 퀸 또한 빠르게 글자를 적었다. 드래곤을 만날 수 있다는 말에 적잖이 흥분한 듯 보였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치고는 말이죠. 그쪽 보금자리보다 이쪽에 더 오래 머무시지 않습니까?”

    <그럼 저도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최초의 마법사와 드래곤은 적대적인 관계에 놓여있습니다.>

    “이제 저택에 사람도 많겠다, 침입자와 싸울 수 있는 조각상도 있겠다. 자유롭게 다니시라고 포탈까지 열어놨는데 말이죠.”

    <드래곤 일족이 갑작스럽게 사라진 이유도 최초의 마법사와 관련이 있죠. 문제는, 그 관계 사이에 제가 껴있다는 점입니다.>

    이안의 깃펜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입과 손을 따로 놀리는 것도 생각했던 것보단 곤욕이었다.

    [헛소리가 지나치구나.]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라.>

    두 사람이 잠시 침묵을 지켰다. 대화라 끝없이 이어지는 것도 인위적일 터. 대신 깃펜을 쥔 손만은 멈출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자세한 설명을 드리기에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상황도 여의치 않고요. 다만, 저는 지난 며칠 그 존재들과 필적할 만한 힘을 얻었습니다. 해서 최초의 마법사와 드래곤 일족, 둘 모두에게 견제를 받고 있죠. 어느 쪽과 힘을 합하든 결국, 저는 사냥이 끝난 사냥개 꼴을 면치 못할 겁니다. 이대로라면 말이죠.>

    <사냥이 끝난 사냥개 취급이라니? 그럴 리가 없다. 최초의 마법사는 나도 아는 바가 없지만, 그분들께서는 결코 한번 쌓은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다. 장담할 수 있느니라. 네 말대로 그분들과 필적할만한 힘이 생겼다면, 단순히 도움을 받고자 제안하셨겠지.>

    드래곤의 변호에 나선 페어리 퀸. 그러나 이안에게는 결정적인 한 문제가 있었다. 드래곤을 경계할 수밖에 없는, 드래곤의 토사구팽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 말이다.

    <제가 그자의 아들입니다.>

    <뭐?>

    <최초의 마법사, 그 존재의 핏줄이라고 하더군요. 때문에 드래곤 일족은 저를 잠재적인 위협으로 취급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나아가 깔끔하게 제거되길 바라겠죠.>

    […….]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페어리 퀸의 입이 일순간 다물어졌다. 펜을 쥐었던 손도 우두커니 멈춰버렸다.

    <이런 상황을 여왕께 말씀드리는 까닭은 간단합니다. 저와 드래곤 간의 협상을 대리인으로.>

    <하겠다.>

    이안의 필기가 끝나기도 전에, 페어리 퀸이 단호한 대답을 내놓았다. 이안은 조금 더 강하게 얘기하고자 했다.

    드래곤과의 협상이 어렵다면 어쩔 수 없이 최초의 마법사와 편을 이루어야 하며, 그렇게 된다면 페어리 퀸과도 적대적인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한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페어리 퀸은 이미 이안의 대리인이 될 준비가 완벽하게 끝난 눈초리였으니까.

    <아직은 모르겠다. 네 설명이 조금 부족하기도 하고, 너무 갑작스럽기도 하니까. 그분들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지. 하나, 네놈이 그분들과의 대화를 원한다면 기꺼이 전달자로서 움직여주도록 하마. 그분들을 설득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뜻이니라.>

    페어리 퀸은 생각보다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이안과 이안의 주변, 특히 어머니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품고 있음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까지 열정적으로 반응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지금까지 봐왔던 네놈, 이안 페이지란 인간은 아주 영악하기 짝이 없으며, 딱히 뚜렷하고 심오한 대의 없이 제 주변의 안녕만을 바라는 좁아터진 그릇의 소유자다.>

    어째 이번 기회로 욕이나 왕창 쏟는 느낌이었으나, 꾹 참고 여왕의 필기에 집중하는 이안이었다.

    <그 그릇만 충족시켜준다면 전혀 문제 될 게 없는 존재, 즉 한계가 명확한 인간이지. 큰 힘을 가졌을지언정, 제 주변을 위해서만 사용할 게 분명하니까 나는 그 사실을 잘 안다. 허니 돕겠다. 그분들에게 말해주겠다. 네놈이란 인간은 전혀 경계할 필요가 없음을.>

    작은 그릇을 가졌기에 오히려 믿을 수 있다. 궤변처럼 들리나, 한편으로는 틀린 말도 아니었다.

    프란 페이지를 보라. 그는 일개 인간이 품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대의를 꿈꿨고, 결국 모두를 적으로 돌렸다.

    그러나 이안은 스스로를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품은 그릇의 크기를,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속 좁아서 다행인 건 또 처음이네요. 여왕님 덕에 귀한 경험해 봅니다.>

    피식 웃으며 휘갈긴 이안, 그가 계속해서 글줄을 이어갔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가득한 감사의 표현.

    이안이 내줄 수 있는 전부였다.

    적어도 지금 당장에는 말이다.

    * * *

    이안은 드래곤 일족과 지속적으로, 프란의 감시망을 벗어나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다.

    그 수단은 바로 ‘페어리 퀸’이었다. 물론 그녀 또한 프란의 감시 대상 중 하나일 가능성이 컸다.

    하여 드래곤과의 육체적인 접근은 보금자리 페어리들이 대신 담당키로 했다.

    아주 먼 거리에서도 정신적 소통이 가능한 페어리 일족 아니던가? 사실상 페어리 퀸이 접촉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리라.

    ‘다음은…….’

    그러나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니다. 한참 남았다. 드래곤과의 지속적인 대화는 시작에 불과할 뿐, 앞으로 남은 9일. 아직 끝을 봐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불사의 군단으로부터 버텨낼 수 있는 대항력이 필요하다.’

    고심 끝에 이안은 결론을 내렸다. 프란이 안전장치로 만들어둔 ‘불사의 군단’. 그것들은 전적으로 ‘현세의 인류’에게 맡기리라. 다만, 불사의 존재로부터 맞서 싸울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주어야 할 터.

    종류가 다른 불사의 힘.

    프란의 말이 사실이라고 가정할 경우, 불사의 군단은 쌓아둔 영혼을 소모하며 되살아나는 존재가 아니다. 오직 자아를 잃어 불사의 힘만 누리는 언데드인 만큼 한계와 원인이 명확하게 갈릴 터.

    흑마법.

    한계는 모르겠으나, 원인만큼은 ‘흑마법’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자면.

    ‘연금술.’

    드래곤은 분명 불사의 힘이 연금술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을 거로 추측했다. 이안 역시 연금술의 힘으로 하여금 수천 년 전 과거를 경험했고, 심상 세계 가장 깊숙한 곳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열쇠는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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