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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47화
59. 계기가 필요할 때(1)
이안의 머릿속이 생각으로 가득했다. 차원을 아무리 분열시켜봐야 무한대에 닿을 수는 없을 터. 언젠가 반드시 마지막 영혼마저 소멸되지 않겠는가.
‘가만, 그럼 저들은…….’
그렇다고 보기에는 저 불사의 군단이 눈에 밟혔다. 설마 라그나르를 처리할 때 이안의 시간을 멋대로 되돌린 것처럼, 저 수많은 원주민과 몬스터들의 시간도 여러 번 되돌려버린 걸까?
“뭐 하나만 묻지.”
“역시, 똑똑한 아이일수록 호기심이 많은 법이라고 하더라.”
“헛소리 집어치우고.”
이안이 작게 으르렁거리며 의아함을 풀었다. 저 불사의 군단과 관련된 질문이었다.
“저들은 다 어떻게 만든 거지?”
[오, 누구와는 달리 말 잘 듣는 친구들 말인가? 저긴 좀 달라. 말해줬잖아? 불사의 힘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나와 장인들처럼 자아와 육신 양쪽이 멀쩡한 경우가 첫 번째. 자아를 포함한 모든 것이 붕괴하는 경우가 두 번째지. 저쪽은 당연하게도 후자 아닐까?]
마치 아이 다루듯 대답해 주는 프란의 모습에 이안은 오장육부가 뒤틀림을 느꼈다. 그러나 계속 마찰을 일으킬 수도 없는 노릇, 꾹 참으며 내뱉었던 질문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그 후자는 어떻게 불사를 누리느냐, 궁금한 건 이거야. 혹시 대답하기 곤란하다면…….”
[곤란할 건 없어. 별거 아니니까. 일종의……. 아류라고 말할 수 있겠군.]
아류라 함은 불사의 힘의 아류를 뜻하는 걸까? 이안이 집중했다.
[먼저 장인들, 그 여덟 명의 대단한 친구들은 내가 직접 키워낸 실력자들이야. 시간의 힘을 반복하며 최대한으로 공부시켰지. 시간과 연관된 기억은 싹 지워버렸다만.]
프란의 말에 따르자면 그랬다. 장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수많은 시간 회귀를 경험했고, 그 결과 아티펙트마저 손쉽게 다루는 장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거다.
[덕분에 그 친구들도 영혼을 쌓을 수 있었지. 이왕 그렇게 된 김에 불사의 힘까지 내려줬다. 기껏 다 키워놨는데 죽어버리면 곤란하잖아? 평생 내 곁에 두고 아티펙트나 연구시킬 생각이었는데, 하필 내가 요 모양 요 꼴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에휴!]
프란이 장난 반, 자조 반의자 어조로 말했다. 미안함보다는, 기껏 키워놓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주류인 것 같았다.
[반면 저들은, 뭐라고 부르는 게 좋을까? 음, 죽지 않는 자들의 군대니까…… 불사의 군단, 그래. 저 불산의 군단은 표현 그대로 언데드일 뿐이야. 불사의 육신을 얻는 대신 백치가 되어버린 셈이지. 불사의 완벽함만 따지자면 나보다 더 상위의 존재들이라고. 자아와 미각만 유지할 수 있었다면 나도 저쪽을 택했을 텐데. 쩝. 자아는 둘째 치더라도 맛까지 못 느끼더라. 그래서야 뭔 소용이 있겠어?]
본론보다 잡설이 긴 프란의 설명.
물론 잘 걸러 듣는 이안이었다.
되물음 역시 핵심만 꼬집었다.
“그럼 정말로 불사의 존재라는 건가?”
[왜? 한계가 있다면 죽을 때까지 때려죽여 보려고? 생각보다 무식하구먼. 답지 않게시리.]
그 말에 이안이 조금은 흠칫거렸다. 생각을 읽힌 기분이었으니까. 물론 최대한 의연하게 반응했다.
“못할 것도 없지.”
[하하! 그래, 그것도 방법처럼 보이긴 하겠지. 말리진 않으마.]
이안의 생각을 비웃어준 프란, 그가 다시금 본론으로 들어갔다.
[자아가 온전한 불사의 힘을 원한다면,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시간의 힘을 남용하려무나. 도마뱀들이 개수작을 부리기 전까지 심상 세계에 차곡차곡 쌓아놓으란 얘기다. 네 여분의 영혼을 말이지. 다루는 법은 그때 알려주마.]
프란은 치밀한 자였다. 모든 걸 다 내어주는 것 같으면서도 선을 명확하게 그어버렸다. 덕분에 이안 역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대가를 치르든, 영혼을 다루는 법까지 알아두는 게 좋을까?’
프란의 말처럼 시간의 힘을 남용하는 한이 있더라도 파악해 두는 게 유리할까? 유리하긴 분명 유리할 거다. 문제는 그에 따른 ‘부작용’일 터. 드래곤 일족이 우려했던 ‘무분별한 차원의 분열’ 바로 그 부작용이 심하게 거슬렸다.
‘게다가 단순한 회귀도 아니잖아? 남용하기에는 여러모로…….’
시간 회귀의 진실을 알았다. 단순히 거슬러 올라오는 원리가 아닌, 그 순간을 기점으로 차원의 분열이 일어난다는 진실 말이다.
‘지금 이 세상도 다른 차원이 되겠지. 그건 용납할 수 없어.’
인즉 지금의 어머니, 래디오, 더글라스, 황태자, 공주, 올리버, 페어리 퀸, 드래고니안 일가, 장인들, 모그리안 영지와 피에릭 영지의 사람들 등 이안과 교감을 나눴던 존재가 다른 이들로 변해버린다는 뜻일 터. 심지어 첫 번째 삶의 어머니조차 지금의 어머니와 다르다는 건데, 용납할 수 없었다.
‘이 삶이 내 마지막 세상이야.’
마음을 굳힌 이안.
하나 포기하기도 어려웠다. 약점을 찾아낼 절호의 기회 아니던가?
“……별로.”
이윽고 이안의 입술이 떨어졌다.
“또 시간을 되돌리고 싶진 않아.”
[허어, 아쉽게 되었군.]
“단.”
[단?]
“그래도 방법은 알려줘야겠어. 당신 수작질 탓에 두 개의 영혼이 생겨버렸잖아? 이건 활용해 줘야지. 두 번이나 살아날 기횐데.”
이안의 선택은 그것이었다. 시간을 되돌리며 추가적인 영혼을 쌓지는 않겠다. 다만 이미 생겨난 영혼은 어떻게든 활용해야겠다. 충분히 설득력을 갖춘 주장이었다.
[그건 불가능하다. 언제든 내 뒤통수를 노릴 남자에게 밑천 다 털릴 정도로 바보는 아니거든. 알잖아? 아, 물론 난 너를 누구보다 아낀단다. 사소한 문제로 갈라지기엔 운명의 고리가 단단하게 메여있지. 더 자세하게 얘기하자면 네가 또 화를 낼 것 같아 표현하지는 않겠다만…….]
이안의 눈치라도 보는 듯 급히 발언을 마무리한 프란, 하나 그 내용만큼은 어느 때보다 완강했다. 완전한 신뢰의 관계로 발전하지 못하는 이상 숨길 것은 철저하게 숨기겠다. 그러한 선언이었으니까.
[이안,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 애써 시간을 확보하려고 애쓸 필요 없어. 여유를 줄 테니까. 다만 길게 줄 수는 없겠지. 드래곤에게 여유가 생길수록 내 계획의 성공률도 떨어져 버리거든. 그러니까 열흘, 딱 열흘이란 시간을 주도록 하겠다.]
이안의 생각을 읽어내기라도 하는 걸까? 그런 생각마저 들게 하는 얘기를 덤덤하게 늘어놓았다.
[이게 마지막이야. 그때까지 제대로 된 결론을 가져와야 할 거다. 내 계획에 동조하든, 뒤통수를 치든, 방관하든. 그 무엇이 되었든.]
열흘 내로 결론을 가져와라.
무엇이든 확실한 결론을.
프란의 말뜻은 그러했다.
“무얼 택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들리는데?”
[상관은 없다. 다만, 기어이 반대편에 서겠다면 적이 될 수밖에 없겠지. 언어의 힘에 숙달했으며 봉인에도 얽매이지 않는 존재, 나로서는 가장 위험한 적이 생겨버리는 셈이니까. 그래도 난 자신이 있다. 너와 네 주변을 단숨에 끝장내버릴 자신 말이야. 그러니까…….]
잠시 말꼬리를 흐렸던 프란.
그가 조금 진득한 어조로 말했다.
[부디, 서로가 만족할 수 있을 만한 선택을 기대하도록 하마.]
* * *
프란이 사라져 버린 서재. 이안은 그 자리에서 하룻밤을 꼬박 새웠다. 열흘이란 시간이 참으로 촉박하게 느껴졌다. 고민하고 강구할 거리가 너무나도 많았다. 어떻게 손을 봐야 하는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여유가 있을 때 '커다란 그림'을 그려둘 필요가 있었다.
‘우선, 놈의 감시에서 벗어나 활동할 방법이 필요하다.’
언어의 힘이 가미된 퍼핏 플레이와 텔레포트까지 활용했거늘, 프란은 이안의 일거수일투족을 여전히 감시하고 있었다. 뿐일까? 허공에다 부르는 것만으로도 즉각 나타나기까지 했다. 도대체 어찌 되어 먹은 힘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확실한 건 프란 페이지가 아주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는 거다. 육체적인 거리든, 정신적인 거리든.
‘벗어나야 드래곤을 만나보든, 다른 대비책을 세우든 할 터인데.’
그 음흉한 자의 눈을 어찌 속인단 말인가? 이안이 골머리를 썩였다. 그렇게 꼬박 하루를 더 썩히고 나서야 길이 보이는 것 같았다.
‘역시 대리인이 필요해.’
감시에서 벗어나 이안의 손과 발, 눈과 귀, 입이 되어줄 ‘대리인.’
‘하지만 누구를?’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누구를 대리인으로 쓴단 말인가?
“흐음.”
이안이 미간을 꾹꾹 눌렀다. 이 상황에서 무조건적으로 믿을 수 있으면서도, 대리인 노릇까지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 그런 자가 이안의 주변에 있었던가?
“……일단 좀 둘러나 볼까.”
이안이 기지개를 켜며 서재에서 빠져나왔다. 이제 그의 보금자리는 예전보다 수십 배 이상 커져 버린 상태였다.
이른바 ‘이안의 장원’이 저택을 중심으로 널따랗게 증축된 구조였으니까. 각 분야 장인들의 작업실 및 터전, 어머니 베네사와 공주 하이리의 구호재단, 창고와 소규모 재배지 등 도시 속 자그마한 자치국이나 마찬가지였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특히 어머니 베네사와 공주 하이리의 재단 사무실이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바빠 보였다. 용아병 사태 이후, 도시는 빠르게 복구되었지만 빈민들은 여전히 넘쳐났다. 용아병 사태 이전에도 빈민은 한둘이 아니었는데, 하물며 한차례 폭풍마저 지나간 지금은 어떻겠는가?
“또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망설이지 말고 찾아오세요. 오늘 드린 비약도 꼭 챙겨 드시고요. 몸이 다 나으셔야 일자리도 연결시켜 드리죠. 제 말, 잘 아셨지요?”
이안의 어머니, 베네사가 재단을 찾아온 빈민의 손을 꼭 붙잡아주며 말하고 있었다. 어머니와 하이리의 구호재단, 일명 ‘페이지 재단’은 빈민들에게 구호물품과 임시거처, 건강관리 및 일자리까지 연결해 주고 있었다.
정말이지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으나 문제 될 건 없었다. 이안 개인의 재산과 황실 및 귀족들의 지원, ‘역대급 상아탑주’에게 잘 보이기 위한 여러 상단의 후원까지 줄을 서고 있었으니까.
“후우……!”
이안이 뿜어낸 입김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린리버 제국의 수도, 그린리버디움은 어느새 겨울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재단에서 빈민들한테 나눠주는 저 두툼한 외투, 무려 프란의 여덟 장인이자 재봉술의 달인 ‘베르톨도’의 작품이 분명했다. 빈민 구호품으로 보온 마법이 걸린 아티펙트가 지급되는 세상이라니.
‘세상은 여전히 평화롭네.’
그 모습에 이안이 무심코 ‘평화’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먹고 살기 힘든 빈민과 그를 돕는 재단의 모습을 보며 떠올릴만한 단어는 아니었으나, 이안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그에겐 인간사의 모든 흐름이 평화롭게만 느껴졌다.
‘나만 동떨어진 기분이야.’
근래에 들어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인간사를 아득하게 넘어선 존재와 엮이기 시작하더니만, 이제는 자신의 삶에 사사건건 개입해 온 실체와 마주쳤다. 그중 하나는 드래곤이었는데, 심지어 반대쪽은 아버지란다.
어디 그뿐인가? 두 존재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마저 시작해버렸다. 제아무리 어마어마한 경지의 대마법사 이안이라 할지라도, 정신적인 피로감을 피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루만.’
까닥하면 세상이 박살날 문제가 사방에, 마치 시한폭탄처럼 도사린다고는 해도, 이안의 솔직한 심정은 그랬다. 하루만, 딱 하루만 마음 편하게. 아주 속이 편하게.
‘쉬고 싶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이안, 그가 산책로처럼 꾸며진 장원의 길을 천천히 걷던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