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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43화 (14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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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43화

    57. 폭풍전야 (4)

    (그는 우리 일족 전체를 합친 것보다 더 높은 수준에 닿기를 바랐다. 우리의 육신을 탐냈고, 결국 얻어냈더군. 스스로 황금용이란 이름까지 천명했었다. 이후부터는 그대가 알고 있는 그대로다.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지.)

    프란 페이지와 드래곤 일족의 전쟁.

    리시스 라덴쥬가 그때의 일을 회상했다.

    떠올리기 무척 고통스러운 기억이었다.

    (드래곤의 몸을 얻은 프란 페이지, 그 불완전한 존재를 상대하는데 일족 절반이 희생되었다. 그마저도 불사의 몸, 죽일 수가 없으니 차선책으로 봉인을 선택해야만 했지.)

    일족 절반이 희생되었던 전투.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을 뿐, 단언하건대 이 세상에서 벌어졌던 전투 중 가장 치열했으며 거대한 규모의 대전쟁이었으리라.

    “그 불사의 몸이라는 거.”

    가만히 듣고 있었던 이안.

    그가 한 가지 화두를 던졌다.

    “정확히 어떤 겁니까?”

    드래곤 일족 전체의 힘은 결코 약하지 않다. 이안과 비교하더라도 이상이면 이상이지, 결코 아래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 존재들조차 결국 끊어내지 못한 불사의 힘이라니? 쉬이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불로 태워도, 잘게 쪼개도, 소멸을 시켜버려도 끝내 본연의 형태를 이루어냈다. 물론 완벽하게 살아나기도 했지. 인간의 범주, 아니 생명체의 범주를 벗어난 것 같더군.)

    그 대꾸에 이안의 눈매가 좁혀졌다.

    어딘가 매우 익숙한 방식이었으니까.

    ‘장인들과 똑같다.’

    프란 페이지가 남긴 여덟 명의 장인.

    그중 이안의 수중으로 떨어진 여섯 명.

    그들과 똑같은 방식의 불로불사였다.

    장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영생의 축복’.

    그 저주와도 같은 축복과 동일한 것 같았다.

    “혹시 그 불사의 힘에 대해서 짐작되는 바가 있으십니까? 파훼법이라든지, 근본적인 출처나 원리라든지. 무엇이든 다 좋습니다.”

    (그걸 알았다면 봉인이란 차선책을 선택하지도 않았겠지.)

    리시스 라덴쥬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하기야, 알고 있었다면 진즉에 써먹었으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말문을 멈추지는 않았다.

    이안의 물음에 내어줄 대답이 있어 보였다.

    (확실한 건 프란 페이지, 그 존재의 능력은 마법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로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지. 그중 연금술, 연금술이란 분야에 지대한 족적을 남겼다. 평소 그가 말하길, 마법과 연금술은 절대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 하더군.)

    연금술과 마법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 이안 역시 익숙한 표현이었다. 현재의 세상에서도 통용되는 얘기였으니까. 물론 마법사가 조금 더 상전 취급을 받고, 또 스스로도 상전 대우를 바라기는 했지만, 어찌 되었든 수천 년을 관통하는 진리인 것 같았다.

    (나와 내 일족이 오랜 세월 추측해 보기로, 그 불사의 힘은 단순한 언어의 힘, 혹은 술식의 힘만으로 비롯된 결과가 아닐 거로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시간의 보고, 나의 정신체를 만났다는 것은 곧 시간의 보고에 진입했었음을 뜻하겠지?)

    “시간의 보고, 그렇습니다.”

    (그 공간으로 통하는 비약도 프란 페이지의 작품이다. 가고일의 눈에 담긴 무차원의 힘을 연금술로 추출해 낸 셈이지. 이처럼 불사의 힘도 여러 분야의 결합적인 결과물이 아닐까 추측했었다. 물론 확신할 순 없으며, 사실이라 해도 약점까지는 알지 못한다.)

    가고일의 눈으로 무차원의 공간을 만들어낸 것처럼, 불사의 힘 역시 마법 외의 재능으로 만들어낸 건 아닐까? 드래곤 일족의 수장 리시스 라덴쥬의 추측은 그러했다.

    ‘연금술이라…….’

    그러고 보니 프란의 장인은 여덟 명.

    두 명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그중 하나가 연금술사는 아닐까?

    ‘한번 장인들에게 물어봐야겠군.’

    프란 페이지의 약점.

    알아둔다면 분명 도움이 될 터.

    깊이 새겨둔 이안이 질문을 이어갔다.

    “하나 더 여쭤도 되겠습니까?”

    (말하라.)

    “봉인, 언제까지 유지할 생각입니까?”

    (시간이 허락하는 한, 영원히 지속시킬 생각이다.)

    “봉인이 풀릴 불안 요소는 없습니까?”

    (가고일이 멸종해 버린다면 위태로울 수도 있다. 저 봉인은 전적으로 가고일의 눈에 담긴 무차원의 힘, 그 힘을 기반으로 두었기 때문이지.)

    “…….”

    이안은 순간 뜨끔함을 느꼈다. 이 공간으로 진입하기 직전에 벌인 짓이 떠올라 버린 탓이었다. 9클래스의 마법 ‘다이아몬드 더스트’. 그 냉기의 주문으로 산맥 일대 모든 가고일을 전멸시키지 않았던가? 물론 잘 찾아보면 몇몇 남아 있긴 하겠지만 말이다.

    (왜 그러지? 표정이 좋지 않군.)

    “그게, 꽤 많이 죽인 것 같아서 말이죠.”

    (무엇을? 가고일 말인가?)

    “자꾸 앞길을 막아서서…….”

    지금껏 당당하기만 했던 이안의 목소리.

    그 어조가 조금은 기어들어가기 시작했다.

    (괜찮다. 가고일의 왕이 살아 있지 않던가? 그의 번식력이라면 걱정할 것 없다.)

    “……다행이군요.”

    이안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말 진심으로 다행이었다.

    “프란의 사념체는 완벽하게 방비가 된 겁니까?”

    (사념체들은 이 공간의 매개체, 즉 가고일과 그 왕이 기거하는 산맥에 한 걸음도 들어올 수 없다. 접근하는 즉시 언어의 함정에 소멸될 터이니.)

    "그 함정의 파훼 방법을 찾았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어떤 일이든 변수의 가능성이 존재하겠지.)

    “결국 불안정하다 이거군요.”

    간단하게 결론을 내린 이안.

    그가 끼었던 팔짱을 풀며 말했다.

    “……만약에 말입니다. 프란 페이지가 불사의 힘을 잃는다면,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소멸된다면, 해서 당신들도 봉인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면. 앞으로 어쩔 생각입니까?”

    모든 억압과 책무가 사라졌을 때.

    세상으로 돌아온 드래곤의 행보.

    그 행보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일단은 좀 쉬고 싶군.)

    “다 쉰 이후에는?”

    (다 쉰 이후라, 글쎄…….)

    한참을 고민했던 리시스 라덴쥬.

    그가 다짜고짜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

    붉은 머리칼의 훤칠한 미남자의 풍모였다.

    (달라진 세상구경이나 해보고 싶다. 아주 천천히 말이지.)

    “그게 전부입니까?”

    (그렇다.)

    세상 구경.

    문득 페어리 퀸의 얘기가 떠올랐다.

    본인의 기나긴 이름을 소개하며 했던 말.

    ‘나를 유독 아껴주셨던 분이 계시다. 그분께서 인간 세상을 유람하고 오실 때마다 내게 인간들의 이름을 하나씩 붙여주셨지. 마음에 들었던 인간의 이름이었거나, 혹은 어감이 좋다 하여 붙여주시기도 하였단다. 네놈이 어찌 생각할지는 안다만, 내게는 하나뿐인 소중한 이름이니라.’

    아마 그 ‘유독 아껴주셨다는 분’이 리시스 라덴쥬일 터, 이로 미루어 볼 때 드래곤이란 족속들이 평소 세상 구경을 즐기는 것은 사실인 것 같았다.

    “얘기 잘 들었습니다.”

    (끝인가?)

    “일단은 그런 것 같군요.”

    당장 듣고 싶었던 얘기는 모두 들었다.

    사실과 거짓을 걸러내는 잔업이 남았을 뿐.

    “아, 그리고.”

    이안이 무언가 떠오른 듯 말미를 붙였다.

    “혹시 그 인간의 모습 말이죠. 일부러 그런 겁니까?”

    (그게 무슨 뜻이지?)

    “인간의 미적 기준에 맞춰서 변한 거냐는 뜻입니다.”

    다소 뜬금없는 이안의 질문.

    리시스 라덴쥬가 여유로이 대꾸했다.

    (이왕이면 아름다운 게 좋지 않겠는가?)

    “요즘 세상에 미남 행세하려면 그보다 조금 더 잘 꾸며야 할 겁니다. 그만큼 생긴 사람, 아니 더 잘생긴 미남자가 존재하니까요. 요즘 사람들, 눈 높아졌습니다.”

    이안이 황태자, 하이든 그린리버를 떠올리며 말했다.

    가히 조각상마저 넘어서는 미남자 아니겠는가?

    아무리 봐도 황태자가 더 잘생겼다.

    훨씬.

    (……참고하도록 하지.)

    “그럼 조만간 다시 뵙도록 하죠. 적으로 만날지, 아군으로 만날지, 또 다른 무언가로 만날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안의 작별인사가 이어지려는 그때.

    (모든 일족의 수장이시여! 저희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허공으로부터 여섯 마리 드래곤이 맹렬한 기세로 날아들었다. 이안에게 당했던 문지기 헤르파이 도토스를 필두로 한, 일족 중 가장 젊은 축에 속하는 드래곤들이었다.

    (지금 즉시 저희 여섯을 세상 밖으로 보내주시옵소서! 허락만 내려주신다면 기꺼이 저 인간의 본신, 프란 페이지의 핏줄을 찾아내 제거토록 하겠나이다!)

    젊은 드래곤 무리가 이안에게 명백한 적의를 내비쳤다. 심지어 여타 노련한 드래곤들도 이 난입에 침묵했다. 그들 모두 같은 생각이었으니까. 프란 페이지를 연상케 할 정도로 엄청난 힘의 소유자가 나타났다. 심지어 미래의 아군이 될지 적이 될지 확신하기조차 어려웠다. 그런 존재를 이대로 살려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돌아가라. 원하는 명령을 내려주지 않겠다.)

    (수장이시여! 저자는 프란 페이지의 핏줄……!)

    (지금 내 뜻을 거역하겠다는 건가?)

    단호한 어조로 나선 리시스 라덴쥬.

    그럼에도 어린 용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거역이 아닙니다! 충언을 올리는 것입니다!)

    (음…….)

    리시스 라덴쥬가 잠시간 생각했다. 그는 영겁의 세월을 수장으로서 존재해 왔다. 그만큼 강력한 힘과 현명함으로 일족을 이끌어왔다. 어린 드래곤의 입에서 ‘충언’이란 단어가 나온 이상, 지위를 앞세워 찍어 누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 너희 여섯이서 저 존재, 프란 페이지의 핏줄을 자처하는…….)

    “이안 페이지입니다.”

    (이안 페이지를 쓰러뜨릴 수 있다고 보는가?)

    리시스 라덴쥬의 물음에 여섯 마리의 어린 용들이 가슴을 부풀렸다. 그 몸짓 하나하나에서 스스로를 향한 자부심과 성취감이 느껴졌다.

    (저희 어린 용들도 많은 성장을 이루어냈습니다. 비록 일족의 어르신께 비할 바는 되지 못하옵니다만, 여럿이 힘을 합친다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자부합니다. 봉인 유지에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차출을 허락해주시옵소서. 반드시, 반드시 완수를…….)

    (그럼 지금 당장 붙어보아라.)

    (해보이겠…… 예?)

    실로 갑작스러운 리시스 라덴쥬의 제안.

    어린 용들은 물론 이안까지 놀랐다.

    (저 이안 페이지의 분신과 붙어보라는 얘기다. 만약 완벽하게 제압해 낼 경우 허락도록 하겠다. 그러나 본신이 아닌 분신조차 이기지 못할 경우, 그 충언을 철회해 줬으면 좋겠군.)

    먼저 분신을 상대해 보라.

    제압해 낸다면 보내주겠다.

    하나 패배한다면 포기하라.

    리시스 라덴쥬의 제안은 간단했다.

    (인간, 이안 페이지여. 어떤가. 아무래도 젊은이들이 자네의 힘을 의심하는 것 같은데, 괜찮다면 한수 가르쳐 주지 않겠는가? 내키지 않다면 거절해도 좋다.)

    선택권이 이안에게 돌아왔다.

    물론 거절할 생각도 없었다.

    “상대는 저기 저…… 여섯 분이 전붑니까?”

    (그렇다. 일족의 늠름한 후기지수들이지.)

    “죽거나 죽여도 됩니까?”

    (불가하다.)

    “저 새끼 도마……, 늠름한 후기지수 분들은 피를 보고 싶으신 것 같은데.”

    (안 된다.)

    “흠, 번거롭네요.”

    이안이 앓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행동거지는 정반대였다.

    이곳저곳 관절과 근육을 풀기 시작했으니까.

    그 꼴이 마법사라기보다는 기사처럼 느껴졌다.

    “뭐, 그래도.”

    관절과 근육의 다음 차례는 마나였다.

    예전처럼 무작정 끌어모으지 않았다.

    정갈한 느낌으로 고루 퍼뜨리는 기세였다.

    “못할 건 없죠.”

    그렇지 않아도 좀이 쑤셨다. 저 드래곤이란 족속들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지, 가늠보다 몸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는데, 마침 그 기회가 통째로 굴러들어왔다.

    “어려운 일 아니니까.”

    제안에 대한 수락. 더불어 조롱의 의미까지 담긴 한마디, 그 한마디와 함께 이안의 다리 주변으로 강렬한 마나의 광풍이 방출되었고, 보랏빛으로 자욱한 모래폭풍이 천지사방을 뒤덮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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