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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42화 (14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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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42화

57. 폭풍전야 (3)

(이 건방진……!)

단언컨대 처음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인간 따위한테 이런 망발을, 그것도 면전에서 들어보기란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말 좀 한 번에 알아먹었으면 좋겠는데.”

붉은 용 '헤르파이 도토스'의 반응에 한숨을 푹 쉰 이안, 그가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드래곤이고 가고일의 왕이고, 왜 하나같이 인간이라면 깔보지 못해 안달일까?

“너무 큰 기대를 했나?”

이안이 한쪽 손을 들어 가볍게 내렸다. 자그마한 개미라도 짓누르는 모양새였다. 그러자 붉은 용 헤르파이 도토스의 양쪽 무릎이 꿇어지듯 구부려졌다. 뿐만 아니라 기다란 목과 머리까지 보랏빛 모랫바닥에 쿵, 하고 처박혀 버렸다.

(크읏……?!)

헤르파이 도토스가 때 아닌 당혹감에 물들었다. 작금의 현상 자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자신이 어째서 땅바닥에 처박혀버렸단 말인가? 대체 누구의 영향 때문에? 설마 저 조그마한 인간? 아니, 그럴 리는 없다. 그건 단언할 수…….

쿠웅!

하나 그 확신은 완성되지 못했다. 그러기엔 저 인간의 손짓으로 하여금 어마어마한 중력이 느껴졌다.

육신만으로도 최강의 생물이라 자부할 수 있는 드래곤이, 언어의 힘까지 일정량 숙달해낸 자신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쪽들 우두머리, 리시스 라덴쥬. 불러와.”

(그, 그분께서 네놈 따위가 만나자면 만나…….)

“프란 페이지에 대해 할 얘기가 있으니까.”

(……뭐? 프, 프란 페이지?)

“최초의 마법사라고도 하지.”

드래곤은 프란 페이지를 최초의 마법사로 알고 있다.

구태여 과거와 관련된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다, 당신이 설마……!)

“나 아니야.”

(이런 힘은 우리 일족이 아닌 이상……!)

쿠웅!

헤르파티 도토스의 몸뚱이가 더더욱 깊게 박혀 버렸다.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간다면 생매장이나 다를 바가 없을 정도였다.

“아니라고,”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힘의 차이.

그 차이가 점점 극으로 치닫는 찰나.

(그만.)

먼곳으로부터, 그럼에도 뚜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음성이기도 했다. 시간의 보고 속 정신체의 본신이자 모든 드래곤 일족의 수장, ‘리시스 라덴쥬’의 목소리였으니까.

(그 아이를 놔주어라.)

리시스 라덴쥬뿐만 아니라 수많은 드래곤이 허공으로부터 날아왔다. 프란을 가둔 보랏빛 봉인 구체의 유지인원만 제외하고 모든 일족이 몰려온 것 같았다.

‘확실히 혼자의 힘으론 어렵겠는데.’

상당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예전과는 달랐다. 이안이 처음 드래곤과 마주했을 때처럼 사지가 마비될듯한 위압감이나 두려움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저들과 비슷한 힘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크게 적용했으며, 분신이라는 안전함도 한몫했다.

(프란 페이지, 그 이름에 대해 논하러 왔다고 하였는가?)

리시스 라덴쥬의 나지막한 물음.

이안이 모든 기운을 거두며 화답했다.

“뿔 하나가 더 생긴 것 같네요. 여기, 콧등 맞나?”

(……나를 아는가?)

어찌 모를 수가 있겠는가?

시간의 보고 속에서 몇 번을 봤는데.

시험인지 뭔지에 휘말려 구르기도 했다.

“당신의 정신체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아이, 많이 적적하겠군. 오랜 세월 홀로 버텼을 터이니, 그대에게 감사하다.)

뭐가 감사하다는 건지.

대수롭지 않게 넘긴 이안.

그가 할 말을 이어갔다.

“아무튼 방금 말한 대로 프란 페이지, 그에 대해서 얘기나 좀 나누자고 찾아왔습니다만.”

이안의 제안에 리시스 라덴쥬가 고민했다. 이안은 분명 위험한 존재였다. 그런 존재와 무방비로 대화를 나누는 건 여러모로 위험한 일이었다. 충분한 가늠과 고민이 필요할 터.

(대화가 목적의 전부인가?)

“오늘은 그렇습니다.”

(달라질 수도 있다는 얘기로군.)

“그쪽 말부터 들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이안의 다소 건방진 화법에 드래곤 일족이 꿈틀거렸다. 혹은 발끈했다고도 표현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정작 건방짐의 대상이자 수장인 리시스 라덴쥬만큼은 일말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저 깊숙한 고민 속으로 빠져든 눈치였다.

(내게 어떠한 대답을 듣길 원하는가?)

긴 고민 끝에 리시스 라덴쥬가 말했다.

무엇을 묻고 싶으냐는 질문이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도록 하죠.”

이안은 정말 간단하게.

단도직입적으로 말문을 이어받았다.

“아무래도 제가 그 프란 페이지의 핏줄인 것 같습니다. 최근 그자의 사념체가 접근해 왔고, 언어의 힘까지 전수받았죠. 자신과 힘을 합쳐 당신네들을 멸종시켜 버리자고 하더군요.”

멸종.

그 단어만으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단순한 분노나 반발심과는 달랐다.

보다 더 깊숙이 우러나오는 적대감.

진하게 농축된 적대감이 표출되었다.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난 살면서 당신네 일족에게 직접적으로, 그리고 간접적으로 여러 위협을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그럴까, 마음 같아선 싹 다 치워버리고 싶네요. 당신들뿐만 아니라 프란 페이지, 그 위험한 족속까지도. 그게 내 솔직한 심정이긴 합니다.”

살기마저 묻어나온 이안의 진심.

하나 그 살기는 곧바로 누그러졌다.

“물론 힘들겠죠. 그래서 얘기를 나눠보려고 왔습니다. 어느 쪽에 장단을 맞춰줘야 하나, 어떻게 상황을 제어해야 뒤통수가 안전할까.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니까요.”

이안이 마나로 하여금 일종의 ‘의자’를 만들어냈다. 그러더니 그 위에 앉아 다리까지 꼬았다. 이쯤 되면 마법이 아니라 창조의 영역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먼저.)

이안의 말과 행동을 음미했던 리시스 라덴쥬.

그가 거대한 입을 천천히 떼어냈다.

(우리 일족은 그대의 삶에 위협을 가한 바가 없다. 간적접인 영향이 어디까지인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직접적인 위협만큼은 단언할 수 있지. 그대라는 존재를 처음 알았으니까.)

단호한 어조.

이안이 반문했다.

“프란을 추격하는 추격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추격대란 족족들이 나와 내 도시를 공격했고요. 용아병 스파르토이와 본 드래곤, 짐작 가는 바가 없으십니까?”

수만 마리 용아병 부대부터 본 드래곤까지.

모두 드래곤과 관련된 존재들 아니겠는가?

(추격대라니, 그게 소리지? 물론 우리 일족이 용아병과 본 드래곤을 부릴 수 있는 건 맞다. 하지만 그 힘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지. 프란 페이지, 그 존재 역시 가능하니까.)

프란 페이지 역시 가능한 힘이라고?

‘그렇다는 건.’

모든 것은 이안을 움직이도록 만들기 위한 프란의 각본이었던 걸까? 아직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마음이 쏠렸다. 적어도 프란의 말보다는 믿음직했다.

“……좀 더 듣고 싶군요. 당신네 일족이 프란 페이지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거, 토씨 하나 틀리지 말고 전부 다.”

이안의 요청에 리시스 라덴쥬가 주변을 돌아봤다.

자신과 함께 몰려든 드래곤 일족, 그리고 어렵사리 몸을 가누고 있는 문지기 헤르파이 도토스가 대상이었다.

(모두 자리로 돌아가 봉인 유지에 힘써라.)

(하, 하오나…….)

(괜찮다. 설마 내 걱정을 하는 것인가?)

(……명 받들겠나이다.)

(음.)

결국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남은 것은 이안과 리시스 라덴쥬.

두 강력한 존재의 독대가 이어졌다.

(프란 페이지.)

리시스 라덴쥬가 고민했다. 프란, 그 존재에 관해서 나눌 얘기가 참으로 많았다. 문제는 어디서부터, 어떠한 방식으로 얘기를 전개해야 하는가. 그 방법에 관한 고민이었다.

(그자는 우리의 육신을 얻기 위해서, 일족 모두를 합친 것보다 강한 힘을 얻기 위해서라면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참담한 짓도 마다하지 않았다. 나약한 인간의 육신에서 탈피하고자 온갖 실험을 자행하더군. 혹 알고 있는 사실인가?)

이안이 고개를 한번 끄덕여 줬다.

본 드래곤에게 들었던 이야기 아니던가?

(……거기서 욕심을 멈췄다면 좋았으련만…… 그럼 의절 정도로 그쳤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프란 페이지. 그 타락할 만큼 타락한 마법사의 욕심은 끝날 줄을 몰랐다. 인류를 수호하는 일, 그리고 본인의 힘을 강화하는데 과도한 집착을 보이기 시작했고, 조금이라도 자신의 계획이 어긋날 경우 시간의 권능을 남용하기 시작했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시간을 되돌려가며 결과 바꾸기에 급급했지.)

프란 페이지가 시간 회귀를 일삼았다?

이건 또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그 여파로 하나였던 차원이 분열되었다. 통제되지 않는 수만 갈래의 차원, 같은 세상이면서 다른 세상인 수만 개의 세상. 생각해 보라. 그 분열의 끝에 무엇이 기다릴 거라고 보는가?)

즉, 시간을 되돌린다 하여 모든 것이 돌려지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되돌릴 때마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독자적인 차원이 생성되는 원리였다. 예컨대 이안이 라그나르에게 독살을 당했던 그 세상 역시 독자적인 차원으로서 지속되고 있을 거라는 뜻이리라.

“…….”

쉬이 믿을 수 없는.

그러나 설득력 있는 이야기.

(그 끝은 나와 내 일족도 감히 예측할 수가 없다. 하여 본래는 프란, 그 존재부터 제거한 뒤 분열된 차원을 일족의 관리하에 두려고 했으나, 이미 불사의 괴물이 되어버린 그에게 죽음을 선사하기란 불가능하더군. 결국 지금처럼 봉인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프란이 ‘불사의 힘’을 손에 넣었다.

봉인은 차선책에 불과할 뿐이다.

요약하자면 그런 얘기였다.

(때문에 이 무차원의 공간을 봉인의 장소로 삼았다. 여긴 바깥세상의 흐름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으니까. 설령 그자가 사념체를 희생시켜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무의미할 뿐이지.)

보랏빛 구체를 바라봤던 리시스 라덴쥬.

그의 이야기는 딱 거기에서 멈췄다.

“……우선 잘 들었습니다.”

이안으로서도 제법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다. 전적으로 리시스 라덴쥬의 공이 컸다. 프란처럼 이죽거리거나 너스레를 떠는 부분 없이, 오래토록 살아온 존재답게 조리 있는 어휘력을 뽐냈다.

얘기의 사실 여부만 제외한다면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근데 한 가지가 빠진 것 같군요.”

(무엇이 빠졌다는 말이지?)

“당신네 일족과 프란 페이지는 본디 친밀한 관계였다고 들었습니다. 스승과 제자, 즉 사제관계였다고 들었는데…….”

이안의 물음에 리시스 라덴쥬 역시 긴 목을 끄덕거렸다.

“어쩌다 적으로 돌아선 겁니까?”

(관점의 차이였다.)

“관점의 차이?”

(그는 우리가 인류를 여러 괴수와 이족으로부터 지켜내고, 나아가 돌봐주길 원했지. 처음에는 그 뜻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충실히 이행하기도 했고. 딱히 문제 될 건 없었다.)

프란 페이지와 드래곤 일족의 협력.

덕분에 인류는 지금껏 존속될 수 있었다.

(모든 문제는 그 인류로부터 시작되었다. 조금 살만해지기 무섭게 자기들끼리 편을 가르더군. 부족을 넘어서 국가란 집단을 세우더니 서로 죽이며, 약탈하고, 빼앗더란 말이지. 그러면서도 우리 일족에겐 자신들만의 편이 되어달라며 아우성을 쳤다.)

당시가 떠오른 듯 침묵했던 리시스 라덴쥬.

그가 한탄스러운 어조로 말문을 이어갔다.

(그 끝없는 분란을 오래토록 지켜본 결과, 일족은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더는 인류를 보호해줄 가치도, 까닭도 사라졌다고. 우리가 부탁받았던 소임은 어디까지나 인류 전체의 수호일 뿐, 인류 중 일부의 편이 되어주는 게 아니었으니까.)

지극히 현명하며 냉철한 결론이었다. 아마 이안이 드래곤의 대표자로서 그 자리에 있었다 해도 비슷한 판단을 내렸을 거다.

(하나 프란 페이지의 생각은 달랐다. 인간 중에도 선인과 악인이 갈리는 만큼, 보다 가치 있는 일부의 인간들을 후원해 주자, 그런 주장을 내세우더군. 우리는 그 생각에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아니, 공감을 넘어서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지.)

보다 가치 있는, 특정한 부류를 돕자는 게 프란의 뜻이었으며, 누가 되었든 공평하게 돕지 말자는 게 드래곤 일족의 뜻이었다. 물론 이보다 훨씬 깊고 심대한 토론이 있었겠지만, 간단히 표현하자면 그랬다.

(그렇게 우리는 오랜 세월 존속되었던 협업의 이행을 멈췄고, 바로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그가 우리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 그리고…….)

리시스 라덴쥬의 눈매에 복잡한 감정이 실렸다.

(그가, 우리의 힘을 두려워하기 시작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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