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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40화
57. 폭풍전야 (1)
“……역시 하늘 세상의 분이신가.”
패배를 인정한 프란의 첫마디였다.
그는 좀처럼 놀라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패배할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엄청나게 강해졌단 사실이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이 정도까지 강해져 버렸을 줄이야.
“다른 누구에게 전수할 것도 없겠소. 이안 님과 제가 의기투합한다면…….”
“아뇨,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함께 하자는 프란의 제안.
이안이 그 제안을 고사했다.
“어찌 어렵단 말이오?”
“저는 하늘 세상의 백성이 아닙니까? 곧 돌아갈 시간이 오겠죠. 도와드리는 건 잠깐일 뿐입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거의 다 되었을 것 같군요.”
대충 적당하게 둘러대는 이안이었다.
언제까지고 이 시간대에 머물 수는 없는 법.
그러자 상심 가득한 프란의 대꾸가 돌아왔다.
“으으음……. 선지자께 더 오래 빌려달라고 요청을 드리고 싶은데 요즘은 통 말씀이 없으시오. 선지자께서 말이오. 무슨 일이 있으신 건지…….”
“그 양반도 바쁠 겁니다. 그러니까 저를 대신 보냈겠죠.”
이안이 다소 무책임하게 말했다.
차마 그 선지자가 당신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 양반…… 아무튼 아쉽소. 되도록 함께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방법을 고민해 보세요. 그 드래곤이란 존재들도 괜찮은 것 같고, 제가 가르쳐 드린 술식의 힘도 꾸준히 전파하시고요.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이 다르고 노력의 척도가 다르니, 계속 가르치다 보면 언젠가 훌륭한 조수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지극히 정석적인 조언 몇 마디.
그 말에 프란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헌데 말이오. 그 술식의 힘을 익혀 부리는 자들, 그들을 통틀어 어찌 부르는 게 좋겠소? 무릇 양성을 하려면 그럴싸한 이름도 하나 있어야겠지. 그렇지 않소?”
“술식의 힘을 마법이라 부릅니다. 저희 하늘 세상에선 말이죠. 그 이름을 따서 마법사가 어떻겠습니까?”
이안은 사실 별다른 고민 없이 대꾸했다.
마법사를 마법사라 하지 무어라 부르겠는가?
하나 돌아온 대답은 생각 이상으로 뜻밖이었다.
“으음, 마법사라. 어감이 괜찮은 것 같소. 그럼 이안 님께선 땅 세상에 처음으로 술식의 힘…… 마법을 전파해 준 은인이 되시겠구려. 따지자면 최초의 마법사라고나 할까.”
최초의 마법사.
그 호칭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최초의 마법사라면 프란 페이지다.
지금 말하고 있는 저 남자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소리란 말인가?
‘내가…… 최초의 마법사라고?’
이 세상, 이 풍경.
설마 허상이 아니라는 걸까?
실존하는 과거로 돌아온 걸까?
“참, 내 자꾸 말씀을 드린다 드린다 하고 깜빡했는데.”
이안이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그때.
“그 드래곤의 수장과 접선할 때 말이오. 글쎄 드래곤도 부족장 가문처럼 이름 뒤에 성씨를 붙이더군.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리시스…… 라덴쥬였던가?”
프란의 쐐기와도 같은 말소리가 이어졌다.
“이쪽도 명색이 인류 대표로 만나는 건데, 프란이란 이름만 딸랑 얘기하려니 좀 심심하더이다. 면도 안 서고. 그래서…….”
설마.
이안의 그 설마는 곧 현실로 돌아왔다.
“급하게 이안 님이 성을 빌렸소. 페이지, 프란 페이지라고 말이오.”
‘최초의 마법사’에 이어 페이지라는 ‘성’.
그 성씨의 시작까지 순서가 뒤바뀌어버렸다.
“혹시라도 쓰면 안 되는 이름이라거나, 뭐 다른 문제가 있다면 말씀만 하시오. 금방 가서 정정해 드리겠소. 금방 다녀올 수 있으니 말이오.”
이안에게 의견을 묻는 프란.
하나 이안은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이 혼란스러움부터 잠재워야 했으니까.
‘그자가 장난질을 하는 걸까?’
현세의 프란 페이지.
모두 그자의 농간일까?
이런 농간을 부려 무슨 득이 있다고.
‘도대체 뭐가 어떻게…….’
혼란스러움이 깊어지는 그때.
이안의 시야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직감할 수 있었다.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이안 님? 갑자기 왜 그러시오?”
그러자 과거의 프란이 놀란 듯 이안을 부축했다.
진심 어린 걱정스러움으로 가득한 얼굴이었다.
“……슬슬 돌아갈 때가 된 것 같네요.”
“벌써 말이오? 이, 이렇게 갑자기……?”
상황이 조금 우습게 돌아갔다.
미래의 프란은 명백한 적이었다.
음흉한 속내를 숨긴 채 접근했다.
한데 저 프란은 이안을 동지로 여겼다.
그 마음에 조그마한 불순함조차 섞이지 않았다.
“다시 만날 수 있겠소?”
“아마 힘들 것 같습니다.”
“그, 그런…….”
이 순간, 이안은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
비록 저자는 ‘미래의 원흉’이 되겠지만 지금 이 시간대에서만큼은 선한 존재다.
반드시 필요한 인류의 영웅이기도 했다.
“부디…….”
그런 자에게 괜찮은 작별인사 한마디.
굳이 인색하게 굴 필요는 없으리라.
“지금의 그 이상향, 변치 마셨으면 합니다.”
그 당부와도 같은 작별인사에.
“……물론이오.”
과거의 프란 역시 굳은 어조로 화답했다.
“내 숨이 다하는…….”
하지만 그 대답은 끝맺음을 이룰 수 없었다.
사방의 풍경이 물에 물감 풀리듯 번져갔다.
그 번짐으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아주 익숙한 공간이 펼쳐졌다.
저택의 서재였다.
“…… 마지막 순간까지, 변치 않을 것이오.”
한데 프란 페이지의 목소리.
미처 듣지 못했던 대답만큼은 완성이 되었다.
“……?”
이유는 간단했다.
말소리의 출처가 달랐다.
아니, 같지만 다르다고 해야 할까?
“믿지는 않겠다만, 난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
과거의 프란과 똑같은 얼굴.
그리고 똑같은 목소리의 남자.
현재의 프란 페이지가 말했다.
아무래도 사념체인 것 같았다.
“도마뱀 놈들에게 뒤통수를 맞았을 뿐이지.”
“……당신이 먼저 친 건 아니고?”
“설마, 그럴 리가.”
두 부자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럼에도 농도 짙은 긴장감이 느껴졌다.
역시 과거의 프란과는 영 딴판이었다.
그 속내를 전혀 읽어낼 수가 없는 자. 믿을 수도, 안심할 수도 없는 존재.
그것이 바로 지금의 프란이었다.
“이안, 모든 대소사의 흐름은 네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마치 꼬아진 고리처럼 순환을 반복한다. 내가 아닌 네가 최초의 마법사란 이름을 먼저 부여받았단 사실도, 나에게 페이지란 성을 내려준 장본인이란 사실도, 용의 언어인 줄 알았던 힘으로 삼십 년이란 세월을 되돌린 것도. 모두 그 순환의 일부라고 할 수 있지.”
이안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도대체 어찌 되어 먹은 궤변이란 말인가?
“그깟 싸구려 각본에 놀아날 정도로 멍청하진 않아.”
“그래, 아무렴 그렇겠지. 누구 아들인…….”
파스스스스……!
프란의 너스레가 채 끝나기도 직전.
이안이 ‘언어의 힘’을 발동시켰다.
그 결과는 상상의 범주를 벗어났다.
프란의 오른손이 사라져버렸으니까.
터지거나, 잘려나가는 수준이 아니었다.
표현 그대로 순식간에 ‘소멸’해 버렸다.
“한 번만 더.”
이안이 작게 으르렁거렸다.
“아들이니, 아비이니 헛소리만 지껄여봐. 세상에 남겨둔 당신 사념체들, 하나하나 찾아내서 완전히 소멸시켜 줄 테니까. 기대해도 좋아.”
살기가 뚝뚝 묻어나는 경고.
프란이 두 팔을 들며 대답했다.
“워어, 살벌하구먼. 조심하도록 하지.”
아무래도 저 너스레는 수천 년간 변하지 않은 모양이다. 혹은 이안이 과거를 겪고 왔으니, 일부러 그때의 모습으로 위장하려는 속셈일 지도 모르겠다.
“좋아. 어려운 얘기, 살벌한 얘기는 이쯤에서 치워두고.”
“용건만 얘기해.”
“무서워라.”
방금까지만 해도 장난스러웠던 프란의 눈빛.
그 눈빛이 순간 진중함으로 물들었다.
“하면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마. 날 도와다오. 너의 그 목표, 주변의 평화에 방해가 되는 존재를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너는 날 반드시 도와야 해.”
“제거? 당신을 말인가?”
“섭섭하게, 나 말고. 도마뱀 놈들 말이지.”
그렇다. 이안의 그 자그마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강력한 존재의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워야만 한다. 바로 드래곤이란 이름의 절대 강자들을 말이다.
“물론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그쯤은 가늠되겠지?”
이안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언어의 힘을 손에 넣었다 한들 놈들은 수적으로 우세했다. 뿐일까? 오랜 세월 어떠한 변화가 있었을지도 모를 터.
이대로 혼자 해결에 나서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조금 더 과장하자면 자살행위라고도 표현할 수 있으리라.
“기꺼이 그 목표를 이루는 데 일조하도록 하마. 너와 내가 힘을 합친다면 그 도마뱀 놈들, 단 한 마리도 남겨두지 않을 수 있어. 옛날 생각나고 좋지 않아? 아, 너는 조금 전에 겪은 일이겠군. 난 벌써 수천 년 전의 일이라 가물가물한데.”
“당신은 육신을 되찾겠고.”
“음? 뭐가 문제지? 나는 육신을 얻고, 너는 평화를 얻고. 서로 원하는 것만 보고, 손을 뻗어 거머쥐면 그만이야. 그 이상으로 뭐가 또 남아 있나?”
“말했잖아. 당신이라고.”
이안이 손가락을 뻗어 프란.
그 사념체의 면전으로 들었다.
“내가 당신을 어떻게 믿지?”
“이안, 나는 인류를 수호하고자 영겁의 세월을 살아왔다. 아니, 버텨왔다고 표현하는 쪽이 옳겠지. 물론 육신을 되찾아도 그 과업은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아주 높은 곳에서 모두를 지켜보는 감시자, 그리고 수호자로서.”
제법 그럴듯한 얘기였다.
적어도 이안에게 보여줬던 과거.
그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너와 네 소중한 주변 역시 인류의 일부, 결국 네가 바라는 평화도 나의 대의와 일치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나를 도와. 아니, 서로를 돕자.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게 될 터이니.”
프란의 계속되는 회유, 그리고 제안.
단언하건대 절대 나쁘지만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과거가 사실이라면 그랬다.
“……듣기 좋은 말이긴 한데.”
잠시 생각했던 이안.
그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문제는 여전히 당신이야. 믿을 수가 없거든.”
“과거까지 보여줬잖아?”
“벌써 수천 년이 지났어. 거짓일 수도 있고.”
“의심이 너무 많군.”
“누구 덕분에 말이지.”
“흐으음…….”
한 치 양보도 없는 이안의 반응.
그러나 더 이상의 회유는 없었다.
오히려 프란 쪽에서 강하게 나왔다.
“믿음의 문제는 네 자유다. 하지만 여유의 문제는 다르겠지. 문제를 하나 내볼까? 내가 지금 너의 믿음을 사는 게 빠를까, 아니면 네 존재를 알아챈 도마뱀들이 저 창 밖으로 들이닥치는 게 빠를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얘기였다. 물론 이제는 드래곤 몇 마리쯤 나타난다 해도 충분히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다만 그 여파로 주변이 입을 피해가 우려될 뿐이었다. 그렇기에 프란의 제안은 설득력이 컸다. 들이닥치기 전에 먼저 친다, 그 선택이 가능해질 테니까.
“……염병할 노릇이네.”
비속어에 약한 이안조차 비속어를 내뱉게 만드는 상황, 표현 그대로 ‘염병할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절대로 믿기 힘든 자와의 동맹이라니, 심지어 그 동맹이 가장 이상적이면서도 안전한 길이라니?
“원래 그렇게 입이 거칠었나?”
“누구 덕분에.”
“아, 또 내 탓이로군?”
프란이 어깨를 으쓱하며 중얼거렸다.
절반 정도는 비아냥거림이 느껴졌다.
“……내가 협력한다면.”
고심 끝에 입을 연 이안.
그의 첫마디는 질문이었다.
“성공할 확률은 얼마나 되지?”
“확률이라…….”
프란이 양손으로 손가락 일곱 개를 펼쳐 보였다.
7할, 즉 70퍼센트의 성공을 뜻했다.
“거짓은 말하지 않으마. 의심이 많은 아이에겐 신뢰가 중요하니까.”
7할의 성공, 3할의 실패.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확률.
혹은 생각보다 낮은 확률이기도 했다.
“만약에, 3할의 확률로 실패한다면…….”
“그야 뭐, 네 녀석도 내 옆에 나란히 봉인되겠지.”
“…….”
“영원토록.”
성공을 하더라도 프란 페이지란 거악이 봉인된다. 실패한다면 그 거악 옆에 나란히 봉인을…….
아무리 생각해 봐도 꺼림칙한 두 갈림길.
그러나 반드시 골라야만 하는 길목이었다.
“……시간을 줘.”
“고민할 시간이라도 필요한가?”
“아니, 그건 방금 끝났어.”
“오, 어떤 결론을 내렸지?”
“함께하겠다. 당분간은.”
프란과 함께 드래곤 일족을 치겠다.
놈들보다 먼저 선공을 가하자는 거다. 다만, 이안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주변을 정리해 둘 필요가 있었으니까.
“대신,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3할의 경우도 있으니까.”
3할의 ‘실패 가능성’.
그 말에 프란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더불어 온몸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사념체가 한계까지 도달한 모양새였다.
“알겠다. 내일 다시 오도록 하지.”
그 한마디와 함께.
프란의 모습이 사라졌다.
창밖은 해가 뉘엿뉘엿한 오후였다.
과거의 세상을 반 년간 누비는 사이.
현실은 고작 몇 분도 채 흐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