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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39화
56. 언어의 힘(2)
사실 그랬다.
시작은 ‘오기’에 가까웠다.
프란이 열흘 만에 깨우쳐버린 술식의 마법, 그 가공할 만한 배움의 속도를 쫓아보고 싶었다. 언어의 힘을 단숨에 숙달함으로써 꿀리지 않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흠집난 자존심에 말이다.
“후!”
한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 마음가짐부터 달라져 버렸다. 빠르게 전수받기보단 완벽하게 전수받고자 하는 욕심이 생겼다. 그만큼 매력적인 힘이었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익혔을 때와 여러모로 차원이 달랐다.
(뒤엎어라.)
사방으로 펼쳐진 들판.
이안이 그 공간을 둘러보며 명령했다. 그러자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들판 한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꼴이었다. 심지어 그 구멍으로 모든 게 빨려 들어갔다. 온갖 잡풀부터 흙, 돌, 하늘과 구름까지. 일대의 공간 자체를 통째로 흡입해 버리는 모양새였다.
“흡……!”
이안이 왼쪽 손목을 낫처럼 꺾어 허공으로 치올렸다. 그러자 모든 것을 흡입했던 구멍이 하늘 높은 곳으로 옮겨졌다. 하늘마저 흡입된 탓에 어둠만 남은 그 한복판에 말이다.
“타핫!”
하늘에 뜬 구멍으로부터 다시금 모든 공간이 토해지기 시작했다.
요컨대 대지, 흙, 돌, 먼지, 들풀, 나무, 하늘, 구름, 공기. 그 모든 요소가 제자리를 찾아갔다. 순식간에 흡입되기 전과 똑같은 구성을 이루어낸 셈이었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정반대라는 거다.
하늘과 구름이 존재했던 자리에 흙과 들풀이, 흙과 들풀이 있었던 자리에 하늘과 구름이 채워졌다. 세상천지의 위아래가 뒤엎어진 꼴이었다.
(사라져라.)
위아래가 뒤바뀐 세상, 그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그대로 선 이안. 그가 읊조리자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원상태로 돌아왔다.
“후우…….”
이안도 들쑥날쑥했던 호흡을 갈무리시켰다. 동시에 어마어마한 희열이 느껴졌다. 몽환 약이라도 들이킨 기분이었다. 완벽한 언어의 힘을 숙달한 이후에는 항상 이랬다.
‘어째 쓰면 쓸수록…….’
언어의 힘, 그 완벽하고도 황홀한 권능에 중독되어가는 기분이었다. 아니, 이미 중독되었다 표현해도 틀리지는 않으리라.
“장족의 발전이시오.”
그때 프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안 역시 접근을 알아채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감지하지 못했을 접근.
하나 이제부터는 얘기가 달랐다.
“가셨던 일은 잘되셨습니까?”
이안이 모든 기운을 거둔 채 물었다.
“말도 마시오.”
그 물음을 기다리기라도 한 걸까?
풀이 죽은 프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패하신 겁니까?”
“그렇소. 또 실패요. 또!”
프란은 언어의 힘을 체계화시키기 무섭게, 이미 선별해 뒀던 사람들한테도 전수를 시작했다. 선하고 정의로운 자들에게 언어의 힘을 가르쳐 세상 곳곳의 담당 수호자로 임명한다, 그 원대한 계획이 실현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니, 직전인 줄 알았다.
“인간의 몸뚱이로는 한계가 있는 것 같소.”
한숨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던 프란.
그가 이안을 바라보며 말문을 이었다.
“나, 그리고 이안님의 몸뚱이가 특별했던 모양이오. 아니지, 애당초 이안님은 하늘 세상의 사람이시니 가능했던 걸지도. 나는…… 나도 좀 이상한 놈인 것 같고.”
“그럴 수밖에요. 평범한 힘은 아니니 않습니까?”
이안은 이미 예상했던 결말이었다. 그렇기에 드래곤 쪽으로 순서가 돌아가지 않았겠는가? 조만간 타 종족을 거쳐 드래곤에게 눈과 마음이 향할 터. 얼마 남지 않았으리라.
“그래도 그 술식의 마법이란 힘은 익혀낸 사람들이 있었소. 그래 봐야 이안님께서 말씀하신 그…… 1클래스? 2클래스? 그 수준의 힘밖에 발휘하지 못했지만 말이오.”
당연한 얘기였다. 마법사 양성이 체계화된 이안의 시간대에도 1클래스와 2클래스 마법사가 대다수 아니겠는가? 심지어 이 시간대라면 언급할 가치도 없었다.
“아무래도 대체자를 찾아봐야겠소.”
프란이 혼잣말하듯 얘기했다.
물론 진짜 혼잣말은 아니었다.
“언어의 힘을 습득할 수 있는 힘을 가졌고, 단순한 괴물처럼 포악하지 않으며, 인간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의 지성을 가진 존재. 인류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성품을 타고난 존재…….”
실로 까다로운 조건.
답을 아는 이안조차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류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성품.
그러한 성품을 드래곤이 가졌던가?
이안이 기억하기에는.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분명 그랬다.
하지만 머나먼 미래의 일.
이 시대는 다를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한 무리의 존재들을 만나긴 했는데, 꽤 많은 부분을 충족시키는 것 같았소. 드래곤이라고, 흡사 거대한 도마뱀과도 같더군. 말하자면 날개 달린 거대 도마뱀이라고나 할까.”
‘날개 달린 거대 도마뱀.’
그 별명은 꽤 유서가 깊은 별명인 것 같았다.
“대단한 존재였소. 혈혈단신으로 수만 마리 가고일을 감당하더이다.”
드래곤이란 이미 육신만으로 완벽에 가까운 존재, 수만 마리쯤이야 능히 감당할 수 있을 거다. 문제는 가고일의 머릿수가 고작 수만 마리에서 그칠 리 없다는 점이었지만.
“그런 생물이 세상에 있었습니까?”
이안이 시치미를 뚝 떼며 물었다.
“나도 얼마 전에 처음 봤소. 본래는 산맥 높은 곳에 숨어 둥지를 이루고 산다더군. 산맥 아래의 사정엔 좀처럼 관심이 없었다던데, 이번 괴수들의 발정기가 심하긴 심한 모양이오. 그 높은 곳까지 여파가 닿을 정도로 말이오.”
아무래도 프란은 그 존재들, 드래곤 일족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하기야, 마음에 들었으니 언어의 힘도 전수해 줬으리라.
“아, 그들의 수장이란 자와도 얘기를 나눠봤소.”
“어떻던가요?”
“말이 제법 잘 통하는 자였소.”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화답했던 프란.
하나 말미에 첨언을 두며 그 미소가 옅어졌다.
“다만 우리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 미묘하더이다. 뭐 약간의 견해 차이일 뿐, 크게 문제는 없었소. 차차 알아가며 설명하고, 또 타협을 해나가면 되겠지. 별거 아니오.”
프란이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러나 이안의 눈에는 빤히 보였다.
미래로부터 올라온 존재의 특권이었다.
프란의 말마따나 아주 ‘사소한’ 견해 차이. 그 차이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져갈 터.
결국은 예정된 역사 그대로 흘러가겠지.
“어련히 잘 해결하실 거라 믿습니다.”
“물론이오. 내 마지막 사명 아니겠소?”
하지만 이안의 입은 생각과 다른 말을 내뱉었다. 환술이든, 현실이든. 그 흐름이란 대맥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나저나, 아무리 봐도 믿기지가 않는군. 처음이오. 나 이외에 언어의 힘을 구사하는 존재라니. 내가 전수해 드리긴 했소만, 뭐라고 해야 좋을까. 으음…….”
이안을 위아래로 훑으며 고민에 빠진 프란.
생소한 감정이라 그럴까, 표현이 힘들어 보였다.
“근질근질하십니까?”
하나 이안은 알 것 같았다.
지금 프란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근질근질?”
“온몸이 말입니다.”
“으음, 뭔가 그런 것 같기도…….”
“저와 한번 붙어보시겠습니까?”
이안의 뜻밖의 제안, 그 제안은 프란이 느끼는 생소한 감정을 참으로 적절하게 긁어줬다. 바로 그랬다.
프란은 한번 붙어보고 싶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만나본 ‘호각’의 존재, 언어의 힘에 숙달한 또 다른 인간, 하늘 세상에서 내려준 도우미, 이안 페이지와 정식으로. 말하자면 대련이었다.
“정말 그래도 괜찮겠소?”
“제 걱정하실 때가 아닐 겁니다.”
이안이 순식간에 거리를 벌렸다.
거의 순간이동이나 마찬가지였다.
더불어 마나까지 집중시켰다.
완벽하게 돌입하게 된 전투태세.
사실 이안도 마찬가지였다.
힘에 숙달한 이후부터 쭉.
“저도 바랐던 일이니까요.”
호각지세의 힘을 가진 상태.
바로 이 상태에서 붙어보고 싶었다.
단순한 호승심이나 치기와는 달랐다.
이 싸움으로 많은 것을 가늠할 수 있으니까.
‘내 시간대의 드래곤, 그리고 프란 페이지의 사념체들.’
엄청나게 강한 존재들.
그들과의 격차가 좁혀졌는지.
혹은 어디까지 앞질러버렸는지.
그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터.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소만.”
프란 역시 마음을 먹었다.
이안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마나를 모으기보단 정갈하게 담았다.
육신의 마나가 흡사 호수처럼 잔잔했다.
“왠지 모르게 익숙했소. 먼 핏줄과 마주한다면 이럴까 싶기도 했지.”
프란은 모르겠으나.
이안 역시 인정하긴 싫지만.
둘은 엄연한 부자지간이다.
응당 이끌림을 느낄 수밖에 없으리라.
“한데 이제는 내 생각까지 훤하게 들여다보시는군. 하늘 세상에선 땅 세상이 한눈에 보인다더니,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소.”
나름의 결론을 내린 프란.
그 결론이야말로 ‘신호탄’과 같았다.
두 거함의 격돌을 알리는 신호탄 말이다.
후우우웅……!
적당히 거리를 벌린 두 남자.
그 사이에 냉랭한 바람이 불었다.
둘은 조금의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건 몸뚱이뿐.
양측의 머리는 어느 때보다 활발했다.
펼쳐지는 기세 역시 지옥도를 그려냈다.
(폭발하라.)
(거세게 휘몰아쳐라.)
(몽땅 집어삼켜라.)
(산산이 조각내라.)
(사정없이 내리쳐라.)
(꽁꽁 묶어라.)
(쑥쑥 자라나라.)
(반전시켜라.)
언어의 힘으로서 내려지는 명령들.
(얼음의 불꽃이여.)
(검은 불꽃이여.)
(사막의 칼날 바람이여.)
(징벌의 뇌전이여.)
(들판의 어머니시여.)
(빛을 몰아내는 어둠이여.)
(어둠을 포식하는 빛이여.)
그리고 명령을 수행하는 자연의 일꾼들이 몰아쳤다. 정말이지 쉴 새 없는 수 싸움, 그 공방전으로부터 파생된 여파가 일대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이래도 되는 걸까, 이렇게 모든 것을 파멸시켜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의 흉터가 대지에 새겨졌다.
“쿨럭……!”
먼저 이 싸움의 결말을 암시한 쪽은 프란이었다. 그가 검붉은 피를 목구멍 밖으로 토했다. 짧은 찰나였으나 이미 엄청난 내력, 그리고 체력을 소모한 후유증이었다.
‘내가 조금 더 우세하다.’
그 모습에 이안이 확신을 품었다.
자신은 아직 여유로웠으니까.
내력도, 체력도 마찬가지였다.
‘이대로라면.’
충분히 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인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남자.
수천 년 전의 프란 페이지를.
단언하건대 의미하는 바가 컸다.
‘더는 드래곤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본래의 시간대에 존재하는 프란 페이지, 그 믿을 수 없는 존재의 사념체까지도 어떻게든 극복해 낼 수 있으리라.
‘나를 제어할 수 있다고 판단했겠지.’
프란이 어째서 과거라는 이름의 ‘환상’을.
혹은 ‘실제’를 이안에게 겪도록 만들었는지.
이안은 대략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첫째로, 자신의 육신을 찾는데 일조할 힘, 그 힘을 과거의 자신에게 계승 받는 것.
‘또 어떤 수작을 부릴지는 모르지만.’
나아가 공감해 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수호자로서 노력했던 자신의 과거.
사상, 신념, 이상향, 대의, 욕심, 드래곤과의 잘못된 관계까지.
‘당신은 실수한 거야.’
그러나 이안은 단언할 수 있었다.
정말로 그러한 계획을 세웠다면.
해서 이 과거로 보낸 것이라면.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이라고.
‘난 그렇게 대단한 그릇이 못 되거든.’
이안은 자신을 잘 안다.
절대 영웅이 될 그릇이 못 된다.
그럴만한 사상도, 대의도 없다.
그저 바라는 것은 딱 한 가지.
‘나와 내 주변이 평화롭게 천수를 누리는 것.’
그 소소하면서도 어려운 꿈이야말로 이안의 사상이자 대의이며 이상향이었다. 오직 그 목표를 이루고자 끊임없이 강해졌고, 도시와 제국을 지켰으며, 위험천만한 싸움에 기꺼이 뛰어들었을 뿐이다. 가진바 힘이 아깝지 않으냐고? 고작 그 정도의 그릇밖에 되지 않느냐고? 글쎄, 이안은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이게 나, 이안 페이지의 전부니까.’
이안이 그간 연마해온 비장의 ‘언령’을 뿜어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입’이었다. 수많은 입이 사방에 수놓아졌다.
기존의 마법과는 달리 썩 유쾌한 형상은 아니었다. 오히려 공포감과 불쾌함까지 조성할 정도였는데, 꼴이 흡사 악마와도 같았다.
“으읏?!”
그러나 직접 마주해본 프란은 달랐다.
형상의 기괴함보다 가진 바 힘을 측정했다.
그 결과, 저 입의 정체를 단숨에 알아챘다.
“어, 어느새 저런 힘을……?”
프란이 채 대응을 펼치기도 전에, 수많은 입이 저마다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단언하건대 평범한 말소리가 아니었다. 그 모든 소리 하나하나가 전부 ‘언어의 힘’이었으니까.
“크으윽……!”
더 이상 이안은 혼자가 아니었다.
수많은 입과 함께 언어의 힘을 펼쳤다.
과거의 프란마저 압도해 버리는 권능.
그 힘 앞에 결국 결말이 지어졌다.
콰장창창-!
아수라장이 되었던 격전의 장소, 그 공간 자체가 유리창 깨지듯, 혹은 허물을 벗어 던지듯 깨져버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모든 것이 되돌아왔다. 두 남자의 파멸적인 격전이 벌어지기 이전, 멀쩡했던 모습 그대로 말이다.
“허억! 허어억! 흐억……!”
모든 상황이 종식되었다.
프란은 더 이상 힘을 쓸 수가 없었다.
물론 이안도 한계까지 내몰렸다.
하지만 약간의 여력은 있었다.
즉.
“내가, 졌소.”
이안의 승리였다.
“…….”
모든 기운을 거두어낸 이안.
그가 가만히 서 제 손을 바라봤다.
스스로도 감히 실감 나지 않는 힘.
이안에게는 바로 이 힘이 필요했다.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이안의 목표는 분명 작아 보였다. 하나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실로 엄청난 힘이 요구되었다. 이안과 주변의 평화로움을 위협하는 존재가 무엇이던가? 드래곤, 그리고 최초의 마법사 프란 페이지 아니던가?
인즉 그 자그마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이안은 가장 어려운 일을 해내야만 했다.
‘가장 높은 곳에.’
그 어떤 드래곤도, 최초의 마법사도 감히 바라볼 수 없는 존재, 가히 세상의 먹이사슬 최정상에 군림하는 존재.
‘군림한다.’
불과 몇 초 전.
프란이 패배를 인정해 버린 순간.
이안의 발은 그 최정상 발치까지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