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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38화
56. 언어의 힘(1)
“……어머니?”
다른 그 누구도 아니다.
바로 어머니의 얼굴이다.
어찌 착각할 수가 있겠는가?
어찌 혼동할 수가 있겠는가?
환각이 아닌 이상 확실하다.
“어머니.”
“네…… 네에?”
이안이 그 여인을 똑바로 응시하며 불렀다.
그녀 역시 화들짝 놀라면서 대답했다.
다짜고짜 어머니라니, 잘못 들은 걸까?
“…….”
갑작스러운 상황에 몸 둘 곳을 모르는 여인.
그저 덜덜 떨며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두 번째 구원자, 이안의 눈치 말이다.
‘어머니가 확실한데.’
아들의 눈을 속일 수는 없다. 단지 딱 하나 차이점이 있다면, 어머니보다 열 살가량 어려보인다는 거다. 얼굴에서부터 앳된 나이가 느껴졌다. 해봐야 스무 살도 넘어가지 못했을 얼굴, 그 앳됨만 제외하자면 거의 쌍둥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봐도…….’
이안이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하는 그때. 황태자와 비슷한 분위기의 족장이 나섰다. 마치 부족의 자랑감이라도 소개하는 듯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목소리였다.
“아, 저희 부족에서 신녀로 키우고 있는 아이입니다. 구원자께서 방문하실 때마다 성심껏 모실 수 있도록 엄격한 조건으로 선별한 뒤, 구원자의 신녀로서 필요한 교육을 받고 있지요. 물론 아직 부족합니다만…….”
구원자를 모시기 위한 ‘신녀’.
또한 그 구원자의 이름은 ‘프란’.
프란 페이지와 베네사 페이지.
무언가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몸과 마음이 전부 눈송이처럼 하얗고 깨끗한 아이입니다. 49일간 진행되는 정화의식까지 성공적으로 받아냈지요. 감히 구원자께 누가 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옵니다.”
49일간의 정화의식?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이안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무슨 소리인지 캐묻고 싶었다.
하지만 어렵사리 말을 삼켰다.
지금은 말을 아끼는 편이 좋다.
아직 이 과거가 단순한 환술인지.
혹은 진짜 과거인지 알 수 없었으니까.
‘만에 하나, 정말 과거라면…….’
시간의 흐름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컸다. 심지어 상대는 어머니로 추정되는 존재 아니겠는가? 이안 자신에게 직결되는 문제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과거 이안이 언어의 힘으로 일으켰던 ‘회귀’와는 질적으로나 근본적으로나 다른 문제였다.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이안이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인.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소, 소녀의 이름은…….”
그 물음에 여인이 머뭇거렸다.
족장을 바라보며 눈빛으로 물었다.
자신의 이름을 말해도 되느냐고.
족장 역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베네사라고 합니다! 구원자시여.”
베네사.
페이지란 성만 빠져 버렸다.
이안이 잠시간 입을 다물었다.
이 모든 게 환상이든, 현실이든 눈앞에 존재는 어머니가 확실했다.
얼굴도, 이름까지도 똑같지 않던가?
‘이게 무슨…….’
동시에 이안의 머리가 하얘졌다.
이 광경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
허상일 뿐이라고 무시해야 옳을까?
아니면 일의 진상을 파헤쳐야 할까?
“어, 어찌 그러시는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머릿속으로 어떤 생각을 떠올릴지언정.
일단 저 여인부터 자유롭게 풀어줬다.
붙잡고 있어봐야 알아낼 것도 없으니까.
“가보십시오.”
“하, 하오시면 소녀는 그만…….”
도망치듯 후다닥 물러나는 여인.
그 뒷모습을 이안이 바라봤다.
우두커니 서 생각에 잠겼다.
‘이 과거가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모든 게 허상이 아닌 사실이라면. 실재 수천 년 전이라면 어떨까?
‘어머니도 영생을 살았다는 건가?’
이안이 알아낸 바로, 영생을 살 수 있는 조건은 총 두 가지다. 먼저 프란이나 드래곤 일족처럼 언어의 힘에 숙달하는 것, 혹은 여덟 장인의 경우와 같이 언어의 힘 아래 ‘최상위 언데드’가 되는 것.
‘전자일 리는 없고, 후자?’
거기까지 떠올렸을 때.
이안이 생각을 끊어버렸다.
고개가 저절로 저어졌다.
전생의 어머니가 어찌 되셨던가?
병으로 유명을 달리하시지 않았나?
“…….”
이안이 생각을 멈췄다. 이쯤 해서 갈무리시켜야만 했다. 현세의 프란 페이지를 만나 묻지 않는 이상, 그리고 진실을 듣지 못하는 이상, 어떤 정답을 찾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았다.
“슬슬 가보겠습니다.”
“재물은 저희가 신비의 문 너머까지…….”
“아뇨, 그냥 두십시오. 필요 없습니다.”
재빨리 포탈 너머로 걸어간 이안.
한데 그곳으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인류의 수호자, 바로 ‘과거의 프란’.
달리 말하자면 ‘이 세상의 프란’이었다.
“벌써 끝나셨소? 트롤이 제법 많던데.”
벌써 끝났느냐고 묻는 자가 이곳의 상황을 훤히 알고 있다. 바꿔 말하자면, 이안이 트롤을 몰살시키기도 전에 구경하러 왔다는 거다. 물론 본인이 갔던 일은 진작에 끝냈다는 말이겠고.
“그쪽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네요.”
“저야 숙달된 솜씨로 후다닥! 해치워 버리고…….”
또다시 시작되려던 프란의 너스레.
어떤 이유인지 중간에서 멈춰 버렸다.
왜일까? 이안이 프란의 시선을 따라갔다.
‘……어머니를 왜?’
프란의 시선은 바로 베네사를 향하고 있었다. 설마 첫눈에 반한다거나, 운명의 상대를 만났다거나 하는 진부한 전개일까? 만약 그렇다면 환술임을, 프란 페이지가 환술로서 빚어낸 싸구려 각본임을 확신할 수 있으리라.
“쓸 만한 둥지.”
프란의 자그마한 읊조림.
대화가 아닌 혼잣말이었다.
단지 이안에게 들렸을 뿐.
일순간 눈빛마저 번뜩거렸다.
‘둥지?’
이안이 의아함을 느낀 찰나.
프란은 시선을 거둔 채 포탈 쪽으로 돌아섰다.
어서 돌아가자는 손짓과 몸짓도 함께였다.
“갑시다. 연구도 진척을 좀 둬야 하니.”
언어의 힘을 체계화시키는 연구.
그 연구의 진척을 두자는 뜻이었다.
아직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만큼 세상 각지가 혼란스러웠으니까.
“역시 본부가 따뜻하다니까?”
프란이 온몸을 부르르 떨며 본부 겸 연구실의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그러자 사방으로부터 온갖 서책들이 떠올라 펼쳐지기 시작했다. 주문은커녕 손짓조차 없었는데도 자동이었다.
“이안 님. 그 얘기나 또 들어봅시다.”
“얘기?”
“술식의 마법이란 거 말이오.”
“아아.”
며칠간, 이안은 프란에게 술식의 마법을 설명해 줘야만 했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다. 애당초 그 술식의 마법을 창조해낸 존재가 ‘최초의 마법사,’ 즉 프란 페이지 아니었던가? 한데 창조는커녕 원리와 기초조차 모르는 눈치였다.
‘도대체…….’
이해하기가 어려운 일.
하지만 캐묻기도 어려웠다.
결국 설명을 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핵심은 자극입니다. 인간의 머릿속에는 뇌라는 이름의 장기가 하나 있는데, 그 뇌 속에 마나 브레인이란 ’핵‘이 존재합니다. 모든 인간에게 있는 건 아니고, 아주 극소수에 해당하는 사람만 타고나죠. 술식은 그 마나 브레인을 자극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으음, 마나 브레인. 자극, 자극이라…….”
침묵은 곧 생각.
생각은 즉 고민이었다.
제법 길게 고민했던 프란.
그가 천천히 입술을 뗐다.
“따지고 보면, 내가 지닌 힘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소. 나 또한 아무런 노력 없이 얻어낸, 표현 그대로 타고난 힘이니까. 내 계획은 그 마나 브레인을 다른 누군가에게 이식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지도 모르겠군.”
마법사들이 타고난 힘, 마나 브레인.
프란 페이지가 타고난 힘, 언어의 힘.
프란의 표현이 영 틀려먹은 것은 아니었다.
소수가 타고나는 마법적 역량 아니겠는가?
단지 그 사이에 격차가 존재할 뿐이리라.
“따지고 보면 참 다행이 아니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이 힘을 타고났다 생각해보시오. 아마 세상은 오래전에 뒤집어졌겠지. 아니, 일찌감치 멸망해 버렸을 지도…….”
현세의 프란을 고려하더라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이 과거에서 보여준 프란은 인류의 수호자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본인 스스로도 그 희생과 책무를 즐기는 느낌이 강했다.
“흐음, 아무튼 간에 자극이라. 마나 브레인 자극한다, 술식이란 수단을 통해서. 으으음…… 뭔가 잡힐 것도 같은데.”
프란이 손을 쥐었다가 피며 골똘히 생각했다.
딱히 체계랄 것이 없는 언어의 힘.
그 힘을 체계화시켜 전수할 방법.
분명 존재할 것도 같은데.
“혹시 말이오. 내게 그 술식의 마법이란 것을 본격적으로 전수해 줄 수 있겠소? 하늘 세상의 힘을 익혀보면 어느 정도 길이 보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긴 하오만. 아, 금기시되는 문제라면 거절하셔도 괜찮소. 절대 강요하는 것은 아니니까.”
술식의 마법을 창조했다고 알려진 최초의 마법사, 바로 그 존재가 술식의 마법을 전수해달란다. 거듭 생각해도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지만, 어쩌겠는가?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 버리는 것을.
“금기까진 아닙니다. 알려 드리도록 하죠.”
“오, 고맙소!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오!”
그로부터 열흘, 딱 열흘하고도 반나절이면 충분했다. 프란이 이안에게 모든 술식을 전수받는 데까지 걸린 시간 말이다.
그렇다. 프란은 8클래스의 경지에 오를 때까지 불과 열흘밖에 걸리지 않았다. 심지어 술식의 효력은 이안조차 뛰어넘었다.
‘저게 사람이야, 괴물이야?’
이안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마법적 습득력이라면 이안도 꿀리지 않았다. 한데 이번만큼은 꿀리다 못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두 번의 삶에 걸쳐 완성했던 이안의 모든 것, 그 8클래스라는 정수를 프란은 단 열흘 만에 깨우쳐 버렸으니까. 물론 깨우치기 전에도 이안보다 강한 존재였으나, 단순한 힘의 척도와 깨우침의 속도는 엄연히 다른 얘기였다.
“이안 님.”
술식의 마법, 그 신비롭고도 편리한 힘을 온몸으로 만끽해본 프란이 이안에게 말했다. 무언가 깨닫기라도 한 걸까? 너스레로 가득했던 두 눈이 평소보다 진지하게 가라앉았다.
“알 것 같소.”
“갑자기 뭘 말입니까?”
“언어의 힘, 전수를 받아보시겠소?”
“뭔가 방법이 생긴 겁니까?”
“감이 잡히긴 했는데…….”
잠시 말꼬리를 흐렸던 프란.
그가 조심스레 말문을 이어갔다.
“……아직 확신할 순 없소.”
“그건 전수가 아니라 실험 아닙니까?”
“다 마음가짐의 문제 아니겠소?”
“…….”
본디 드래곤에게 전수되었다고 알려졌던 언어의 힘. 그 힘의 첫 번째 전수자는 드래곤 일족이 아닌, 바로 미래에서 온 마법사 ‘이안 페이지’였다. 알려진 바와 사뭇 달라진 흐름이, 혹은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던 흐름의 일부가 태동하기 시작했다.
* * *
8클래스 마법사, 이안 페이지가 언어의 힘을 전수받기까지 걸린 시간을 약 반년 남짓, 그 힘을 전수받은 끝에 이안은 깨달을 수 있었다. 8클래스보다 높은 경지, 즉 ‘9클래스’라 예상했던 경지는 실존한다. 단지 평소의 방식과으로는 결단코 도달할 수 없었을 뿐.
‘언어의 힘.’
그 힘이야말로 8클래스보다 높은 곳.
술식의 마법 자체를 뛰어넘어버린 경지.
‘9클래스 마법사’로 나아가는 ‘열쇠’임을.
“하하.”
이안이 희미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