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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37화 (137/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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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37화

    55. 고대의 기억(2)

    ‘이건 뭐, 진짜 괴물밖에 없네.’

    수천 년 전의 과거. 며칠 간 그 세상을 살아본, 그리고 그 세상의 사람들을 지켜보고 때론 구해주기까지 했던 이안의 ‘소감’이었다. 가는 곳마다 온갖 종류의 괴물이 다 나타났다. 이안의 시간대에선 이미 멸종해 버린 괴물이나 생물도 많았다.

    ‘인간들이 살아남은 게 용할 정도야.’

    그에 비해 인간은 소수였다. 심지어 문명의 수준조차 낮아 더더욱 소수처럼 느껴졌다. 대체 인류는 이 난관을 어찌 극복하고 살아남았을까? 답은 간단했다. 그리고 가까이 있었다.

    (검은 불꽃이여.)

    ‘과거의 프란’이 구사하는 ‘언어의 힘’.

    그것은 정말이지 ‘언어’의 ‘힘’ 그 자체였다.

    말하는 대로, 내뱉는 대로 이루어졌으니까.

    (저들을 소각해 다오.)

    실로 엄청난 규모의 아타르 하카, 즉 ‘검은 불꽃’이 인간 부족을 침략했던 한 무리 오우거에게 뻗어 나갔다. 말이 한 무리지, 사실상 몇 개 부족의 연합체나 다를 바 없었다.

    물론 이안 역시 저 정도 화력의 마법이 불가능하진 않았다. 다만 본질적인 차이가 컸다. 이안이 주문 한 번에 낼 수 있는 최대치가 저렇다면, 과거의 프란은 최대와 최소의 개념조차 없어 보였다.

    ‘마음만 먹으면 세상도 끝장내겠어.’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무섭게도 느껴졌다. 드래곤 일족 전체가 달라붙어 프란의 육신을 봉인시킨 이유, 그리고 그 봉인을 유지 중인 까닭. 적어도 그중 한 가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괴물이 다 불쌍할 지경이군.’

    저 괴물들의 처지에서 보자면 그랬다. 놈들에게 프란이란 가히 ‘재앙’이나 마찬가지일 터.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프란이 살육광은 아니었다. 철저히 인간에게 위협을 주는 괴물들만 골라서 제거해 왔으니까.

    “황금색 머리칼의 구원자시여!”

    “구원자를 뵈옵니다!”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구원자시여!”

    “구원자시여!”

    프란의 등장에 도움을 청했던 부족민들이 넙죽 엎드렸다. 마치 신이라도 만난 것처럼 애절하게 울부짖었다. 부족의 족장이든 노예든 중요치 않았다. 모두가 프란 앞에서는 평등했다.

    ‘신처럼 보이긴 하겠네.’

    용아병 사태 이후, 이안 역시 괴물 내지 반신 취급을 당하지 않았던가? 하물며 이런 시대의 프란이라면 신이 아니랄 것도 없었다. 오히려 신보다 더 신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원하는 신이라면 말이지.’

    인간이 원하는 신. 동물도, 몬스터도, 나무와 잡풀의 신도 아닌 오로지 ‘인간’을 위한 신. 인간을 위해서라면 짐승이든, 몬스터든 아무런 거리낌 없이 몰살시켜줄 수 있는 신. 자신들의 생존에 편의를 봐주는 신. 과거의 프란은 바로 그러한 존재였다.

    “그만 돌아갑시다. 이안 님.”

    얼마나 기다렸을까? 사람들에게서 벗어난 프란이 말했다. 그러더니 부족의 군락 구석에 설치해둔 포탈 쪽으로 다가갔다. 언제든 프란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설치된 포탈이었다.

    “아직 사람들이…··.”

    “제가 돌아갈 때까지 저러고들 계십니다. 말리고 달래도 어쩔 도리가 없더군요. 제가 그냥 빨리 가버릴 수밖에요. 하하.”

    멋쩍게 웃어 보인 과거의 프란. 그와 함께 포널 너머로 돌아왔다.

    돌아온 곳은 프란의 본부이자 연구실. 그곳은 크게 두 가지의 주제를 가졌다.

    먼저 수많은 ‘서책’들, 그리고 수많은 ‘포탈’.

    “저 책들은 볼 때마다 대단하네요.”

    비록 제작 기술의 문제가 있어서 그런지 현세보다 조잡한 서책들이었지만, 며칠간 살펴본 결과 그 내용만큼은 전혀 조잡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 프란이 몸소 집필한 서책이었다. 여러 연구부터 일지까지 종류가 참으로 다양했다.

    “남는 게 시간이었죠. 예전에는.”

    “대체 얼마나 사신 겁니까?”

    “글쎄요. 나이 세는 건 포기했습니다.”

    이안이 며칠간 알아낸 사실 하나. 프란은 이 고대의 시간대보다도 훨씬 더 오래전부터 생존해 왔다. 다만 본격적으로 인류의 구원자 노릇에 나선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유까지 말해주진 않았으나, 영생의 까닭은 알려줬다.

    ‘언어의 힘.’

    언어의 힘에 숙달한 순간.

    바로 그때부터 늙지 않았다.

    프란의 설명대로라면 그랬다.

    “근데 쉴 시간은 있으십니까?”

    이안이 포탈을 바라보며 말했다.

    수천 개 정도야 우습게 넘는 포탈.

    세상 곳곳으로 연결된 통로였다.

    “그래도 꽤 됩니다.”

    “요 며칠은 계속 바쁘시던데.”

    “말씀드렸지만, 요즘 가고일 놈들이 발정기 아니겠습니까? 다른 괴물들도 다 비슷한 시기에 시작하죠. 원래 요맘때가 제일 바쁜 구간입니다. 이놈 저놈 다 발정이 나버리거든요.”

    세상천지가 몬스터로 들끓는 시기, 그 다양한 위기를 프란 홀로 짊어진 꼴이었다. 모든 인류를 완벽하게 지킬 순 없겠으나, 적어도 ‘인류존속’의 ‘일등공신’임은 분명한 것 같았다.

    “그래도 이번 시기만 지나면 편해질…….”

    프란의 말문이 이어지는 그때.

    포탈로부터 사람이 나타났다.

    한 곳도 아니고 두 곳이었다.

    “구원자님! 살려주십시오!”

    “구, 구원자님! 구원자님!”

    두 곳에 동시다발적으로 문제가 일어난 모양이었다. 보통 이럴 때는 더 심각한 곳부터 가곤 했지만, 이제 프란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선지자께서 친히 보내주신, 아주 믿음직하고 강력한 도우미가 하나 생기지 않았던가?

    “음, 이안 님께서…….”

    “제가 저쪽으로 가보죠.”

    “고맙습니다.”

    “별말씀을.”

    이안이 도움을 청한 두 고대인 중 한 명, 밝은 금발을 가진 남자와 포탈로 들어갔다. 저 머리카락을 보고 있자니 꼭 그린리버 황족들을 보는 것 같았다. 백색에 가까운 금발이야말로 그들의 특별함이었으니까.

    “족장님! 구원자님의 동료 분을 모셔왔습니다.”

    “뭐? 동료? 구원자께 동료가 있었나?”

    포탈 너머는 나름 큼직한 규모의 군락이었다. 며칠간 봐왔던 고대부족 중 가장 으뜸에 속하는 크기인 것 같았다. 현세로 따지자면 고대의 대도시가 아닐까? 물론 대도시라 부르기엔 턱없이 부족했지만, 시대를 고려하자면 충분히 대도시였다.

    “흐으으음…….”

    ‘족장’이라고 불린 남자, 그 밝은 금발의 사내가 의심 어린 눈으로 이안을 바라봤다. ‘의심’이라기보다도 ‘불신’에 가까웠다. 정말 이안이 구원자처럼 강한 존재일까? 부족과 군란에 닥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 그런 종류의 불신이었다.

    ‘어디서 많이 봤는데.’

    한편 이안은 그 족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자, 분명 누군가와 많이 닮은 것 같은데…….

    “……황태자?”

    황태자보다 덩치가 작긴 했다.

    하나 고대의 인간들은 대부분이 그랬다.

    거의 모든 인류가 평균적으로 작았다.

    물론 생김새 역시 차이점을 가졌다.

    “방금 뭐라고 하셨소?”

    “……아닙니다. 그보다.”

    이안이 내뱉었던 말을 거두었다.

    무려 수천 년 전의 고대다.

    어찌 황태자가 존재하겠는가?

    “급한 일이 있으신 게 아니었습니까?”

    “아! 그, 그렇소! 어서, 어서 군락 밖으로……!”

    족장과 그 무리를 따라 나선 군락 바깥의 풍경. 그곳으로는 실로 엄청난 머릿수의 ‘트롤 부족’이 보였다. 물론 트롤 부족과 대치중인 인간들도 있었다. 그러나 쌍방의 기세 차이가 제법 컸다.

    트롤들은 인간을 공격하고자 집결했다기보다도, 인간 부족의 땅을 빼앗기 위하여 집결된 모양새였다.

    “트롤이라.”

    그럴 만도 했다. 그만큼 이 밝은 금발의 부족장이 소유한 군락은 지리적으로 우수한 위치에 자리 잡았다. 특히 군락 전체를 관통하는 강물 줄기가 참으로 이상적이었다. 일대의 생존을 책임지는 강물이니만큼 괴물들도 탐이 날 터.

    “저 트롤들을 처리해 달란 말씀입니까?”

    “그, 그렇소. 어떻게, 가능하시겠소이까?”

    “흐음, 생각보다 많네요.”

    “구원자셨다면 충분히…….”

    “저도 못할 건 없습니다.”

    물론이다. 단지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안은 과거의 프란과 달랐다. 딱히 ‘인류의 수호자’를 자처한 적이 없다. 수많은 트롤을 단숨에 몰살시키는 일도 내키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학살 아닌가? 그러나 반드시 해야 한다면 못할 것도 없으리라. 그 옛날, 고블린 무리로부터 모그리안 대영주를 구해줬던 당시처럼 말이다.

    “후우……!”

    짧은 숨을 토해낸 이안.

    그가 대량의 마나를 끌어냈다.

    동시에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간만에.”

    뾰족한 수라도 떠오른 걸까?

    아니, 그러한 표정은 아니었다.

    ‘뾰족한 수’가 떠올랐다기보다도.

    “한번 해볼까.”

    재미난 생각 한 가지가 떠올랐다.

    이 상황에 어울리는 마법이기도 했다.

    “프로스트.”

    아주 광범위한 냉기 계열 마법.

    모그리안 대영주를 구해낸 수단.

    두 번째 삶의 시작을 알렸던 주문.

    “노바.”

    ‘프로스트 노바.’

    그 강렬한 냉기가 몰려든 트롤 부족 한가운데를 비집고 발동되었다. 물론 파괴력, 그리고 범위의 수준이 예전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단언하건대 과장된 묘사가 아니었다.

    콰득, 콰드드득, 콰드득, 콰드드드득-!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냉기.

    속속들이 얼어붙기 시작한 대지.

    다시 한 번 ‘얼음 지옥’이 펼쳐졌다.

    이번엔 트롤 부족이 그 ‘피해자’였다.

    “괜찮네.”

    문득 오래 전, 프로스트 노바 주문으로 마법적 감각을 끌어올릴 당시. 원래의 힘이었다면 연무장이 아니라 영주성을 통째로 얼려 버렸을 거다, 그렇게 자신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그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결과가 발생했다. 마치 조각상처럼 얼어붙어 버린 트롤들, 그 살벌한 광경이야말로 증거였다.

    “허, 허어어……!”

    그 광경을 똑똑히 지켜본 족장.

    그리고 부족의 전사와 사람들.

    모두가 일순간 얼어붙어버렸다.

    주문의 여파는 아니었다.

    심리적인 동결의 효과였다.

    “이 정도면, 만족하십니까?”

    다시금 군락 가까이 날아온 이안.

    만족? 이 정도면 만족을 하겠냐고?

    저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걸까?

    “구, 구원자의 동료시여!”

    “두 번째 구원자시여!”

    넙죽 엎드리기 시작한 사람들.

    그들은 어느새 이안을 ‘구원자의 동료’로.

    혹은 ‘두 번째 구원자’로 여기기 시작했다.

    “부, 부디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제 목을 거두셔도 좋으니, 부족만큼은, 저희 그린리버 부족만큼은……!”

    “그린리버?”

    “계속 굽어살펴 주시길 간곡히, 간곡히 청하겠나이다! 혹여 노여움이 남아계시다면 이놈, 다시 말씀드리건대 쓸모없는 목이라도 바쳐서…….”

    “방금 그린리버라고 하셨습니까?”

    “구원자께 용서를 구하겠…… 예? 아, 예. 마, 맞습니다. 저희 부족의 이름이옵니다. 부디 저희들을 어여삐 봐주시옵소서!”

    이안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여기는 까마득한 과거의 시간대다.

    실제든 허상이든, 과거임은 분명하다.

    그런 곳에서 ‘그린리버’란 이름.

    그 익숙한 이름을 만났다.

    ‘어쩐지 금발하며, 분위기가 비슷하더라니.’

    거의 백색에 가까운 금색 머리칼.

    저 밝은 금발이란 참으로 희귀하다.

    지금이라고 사정이 다르진 않을 터.

    ‘괜히 황족이 아니었군.’

    뼈대가 깊다. 유서가 깊다. 근본이 바로 섰다.

    그 표현들이야말로 그린리버 가문의 대명사나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이 과거가, 이 환상이 조작된 게 아니라면 말이다.

    “목까지 바칠 필욘 없습니다.”

    “오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묘하게 황태자 하이든을 닮은 조상.

    그린리버 부족의 족장이 탄복하며 말했다.

    “아! 저희를 용서해 주신 답례로 드릴 것이 있습니다. 본래 구원자 프란 님께 바치고자 했던 재물이오나, 이번만큼은 두 번째 구원자께서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재물이야 언제든지, 기꺼운 마음으로 모아두면 되는 문제이니 말입니다.”

    두 번째 구원자 이안, 그 존재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앞섰을까? 약간 성급하게 재물까지 바치고자 나선 그린리버의 족장이었다. 이런 행위는 받는 자의 성질을 제대로 파악해야만 소용이 있을 터인데, 아무래도 너무 흥분해 버린 것 같았다.

    “재물은…….”

    거부하고자 했던 이안.

    그가 천천히 손을 거뒀다.

    궁금함이 앞서버린 탓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구경이나 해보자.

    ‘고대의 조공’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여봐라! 두 번째 구원자께 바칠 재물을 가져와라! 어서!”

    잠시간 후, 이안을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조공의 구성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온갖 보석과 금붙이, 당대의 명품이라 불리는 몇몇 물건들. 그게 전부였다. 심지어 고대의 떨어지는 기술력으로 완성된 물건인지라 조잡하기도 했다. 조금 더 색다른 조공을 기대했거늘, 실망이 컸다.

    ‘하긴, 애초에 기대할 것도 없었지.’

    수천 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인류의 문명은 실로 극과 극이다.

    이런 시간대에 무얼 기대한단 말인가?

    ‘내가 너무 말도 안 되는 기대를…….’

    이안의 고개가 실망감으로 저어지는 그때였다.

    “……어?”

    두 눈이 휘둥그레짐을 느꼈다.

    조공 때문에? 아니, 그건 아니다.

    저따위 조잡한 보석과 금괴들.

    칼과 방패 따위로 미동할 눈이겠는가?

    이유는 따로 존재했다.

    “…….”

    재물이랍시고 가져온 물건들의 보관함. 그 보관함을 옮겨왔던 하인 중에서 아주 익숙한 얼굴을 발견해 버린 까닭이었다.

    황태자처럼 느낌만 닮은 수준이 아니었다. 조금 앳된 감만 제외하자면, 그야말로 ‘판박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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