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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36화 (136/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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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36화

55. 고대의 기억 (1)

‘비약?’

책을 읽던 이안의 눈앞에 나타난 물건. 그것은 황금색 액체가 담긴 약병이었다.

자그마한 쪽지 한 장도 함께였다.

내용은 더더욱 간단했다.

[쭉 들이켜라.

겁나면 말고.

네 개의 이름을 가진 아비가.]

쪽지를 보니 확실해졌다. 그 옛날 용언서와 함께 있었던 쪽지. 그리고 권속의 주문이 담긴 수첩과 함께 있었던 쪽지. 모두 프란 페이지의 소행이 분명하리라.

“날 가지고 놀았군.”

예상은 했으나 현실로 다가오니 짜증부터 났다.

누군가 자신의 인생을 배후에서 조종해 왔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절망이나 허탈함으로 물들겠지만, 이안의 최종 결론은 ‘짜증’이었다.

“이젠 내 차례야.”

다짐하듯 읊조렸던 이안.

그가 황금색 비약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자 사방의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책장만 가득했던 서재.

그 모습이 점점 뒤바뀌면서 야외로, 푸른 하늘 아래 드넓은 평야로, 녹색 수풀 위로 변해 버렸다.

“……?”

이는 풍경만 변한 것이 아니었다.

이안 자체가 다른 장소로 이동된 거다.

혹은 저번처럼 환술 속일지도 모르겠다.

‘마나가 돌아왔다.’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마나. 드래곤에게 빼앗겼던 마나가, 프란에게 돌려받은 뒤 다시금 빼앗겼던 그 마나 하트가 심장 속으로 돌아왔다. 형용할 수 없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사박!

안도감을 느끼는 그때.

수풀 밟는 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존재의 접근이었다.

프란 페이지, 그 남자였으니까.

“여긴 어딥니까?”

이안이 다시 만난 프란에게 존대를 붙여줬다. 물론 표면만 존대일 뿐, 여전히 까칠함으로 범벅된 목소리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판국에 말이 곱게 나올 리가 있겠는가?

“…….”

하나 이안의 물음에도 프란은 입을 꾹 다물었다. 대신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이안을 관찰했다.

마치 생소한 존재를 ‘경계’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 무슨 짓거릴 시작하려는 걸까?

“설마…… 당신이오?”

드디어 떨어진 프란의 입술.

문제는 내뱉어진 내용이었다.

“또 무슨 개수작입니까?”

“선지자께서 사람을 보내주시겠다 약속하셨소. 나와 똑같은 머리카락을 가진 청년이라고 들었는데…… 당신이 맞는 거요?”

“선지자……?”

참으로 알아듣기 힘든 헛소리.

덕분에 이안의 고개만 갸웃거려졌다.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지?’

분명 똑같은 존재였다.

환술에서 봤던 프란 페이지.

그 존재와 정확하게 일치했다.

밝은 갈색의 머리칼, 못난 얼굴.

한데 어딘가 좀 이상한 것 같았다.

“맞겠지. 지금 우리가 말하는 이 언어야말로 선지자께서 직접 내려주신 것이니 말이오. 만나서 반갑소. 프란이라 하오.”

이안은 그린리버 제국의 언어를 말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프란이 먼저 그린리버 제국어를 사용했으니까. 한데 ‘선지자의 언어’라니? 대화하면 할수록 헛소리가 늘어났다.

“……이안 페이집니다.”

이안이 마지못해 자신을 소개했다.

돌아오는 반응은 실로 가관이었다.

“오! 페이지! 부족장의 핏줄이셨소? 가만있자. 페이지 부족이라, 페이지 부족. 으음, 어디서 들어본 것도 같은데…….”

프란으로부터 느껴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전혀 다른 사람이라 해도 믿을 지경이었다. 그 변화에 대한 감상을 조금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좀 모자라진 것 같은데.’

그만큼 사람이 허점투성이였다.

동일인물이라고 믿기가 어려웠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걸까?

“페이지 부족은 처음 듣는 것 같소만. 흐음, 하기야! 세상은 넓은 법 아니겠소? 아니면 혹시…… 저 하늘 세상에서 내려오신 분이시오? 선지자께서 친히 내려보내…….”

“뭐하자는 겁니까?”

“주신 분이시니…… 예?”

“뭐하는 짓이냐고 물었습니다.”

“뭐하는 짓…… 아!”

이안의 날 선 물음.

프란이 손뼉을 쳤다.

“선지자께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하신 모양이로군!”

“…….”

“아무래도 내가 급히 요청을 드린 바람에 선지자께서도 급히 보내주신 것 같소. 물론 시급한 일이긴 하오만 설명은 드려야겠지.”

“…….”

“너무 그렇게 노려보지 마시오. 공사가 다망하신 선지자께서 이토록 빨리 응답해 주실 줄이야, 나라고 짐작이나 해봤겠소?”

전혀 말이 통하지가 않는 자다.

뭐라고 떠드나 듣기라도 해보자.

지금 이안의 심정이 딱 그랬다.

“그러니까, 선지자께서 친히 보내주신 하늘 세상의 귀인이시며 페이지 부족의 핏줄이신 이안 페이지 님께서는…….”

“그냥 이안이라고 부르십시오.”

“……이안 님께서는 지금부터.”

재빨리 호칭부터 축약시킨 두 사람.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내가 성공적으로 ‘인세의 혼란’을 잠재울 수 있도록, 언어의 힘을 체계적으로 완성시키는 데 도움을 주셨으면 하오.”

인세에 닥친 혼란?

언어의 힘을 완성?

이안이 되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하늘 세상과는 달리, 땅 세상의 인간들은 지금 목숨 하나 제대로 부지하기 어려운 실정이오. 가고일부터 오우거, 트롤, 고블린까지 다양한 종, 그리고 어마어마한 머릿수의 괴수로부터 도망치며 살기 바쁘지. 특히 가고일이란 놈들은 그 말도 안 되는 번식력으로 세상을 아예 집어삼켜 버리고 있소.”

여기까지 들었을 때.

이안은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이 공간의 ‘정체’를 말이다.

‘과거.’

물론 이안이 과거로 온 건지.

혹은 환상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세상.

그 배경이 과거임은 분명했다.

‘그것도 엄청나게 오래전이다.’

‘가고일이 세상을 위협한다,’ 그 이야기로 추측해보건대 지금 이곳은 드래곤조차 언어의 힘을 전수받기 이전인 것 같았다. 그 세월의 격차를 숫자만으로 따져본다면.

‘최소한으로 잡아도 수천 년 전이겠지.’

천여 년 전 기억을 가진 리시스 라덴쥬의 정신체, 그 존재조차 가고일이 최상위 포식자였던 시대를 아주 고대의 일처럼 말했다. 즉 수천 년 전이라는 표현이 절대 모자라지 않았다.

‘오히려 부족할 수도.’

이안이 매끈한 턱을 쓰다듬었다.

영겁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왔다.

정말 과거로 왔든, 환상이든 그 여부는 중요치 않았다.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다.

단지…….

‘무슨 꿍꿍이지?’

‘현세의 프란 페이지’는 분명 이안을 자신의 수준까지 끌어올려 주겠다고 말했다. 한데 다짜고짜 과거의 본인과 세상을 보여준다?

어떤 꿍꿍이인지 짐작해 볼 도리가 없었다.

“듣고 계시오? 설명이 너무 어렵나?”

“……계속 말씀해 보십쇼.”

달리 방도가 있겠는가?

일단은 들어볼 수밖에.

“지금까지는 내 힘으로 어떻게든 지켜낼 수 있었소. 땅 세상의 사람들을 말이오. 하나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사람을 지켜낼 순 없더군. 내 몸뚱이는 하난데, 세상은 너무나도 광활하니.”

수천 년 전에 존재했던 프란 페이지.

그는 세상의 괴수로부터 인간을 지켰다. 하지만 모든 인간을 지키기란 불가능했다.

그의 말처럼 세상은 넓고, 사람도 많으니까.

“설령 인간이 멸종하고 그 자리를 괴수가 차지하는 게 자연의 이치라 해도, 그 뜻에 가만히 순응할 생각은 없소. 나는 인간이며, 앞으로도 쭉 인간일 테니까. 해서 고민했소. 그리고 결론을 내렸지. 최대한 많은 사람을 지켜낼 방법 말이오. 먼저…….”

잠시 말문을 멈췄던 ‘과거의 프란.’

그가 오른손을 뻗으며 읊조렸다.

(열어라.)

성대가 아닌, 마나로부터 피어난 소리.

그러자 곧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프란의 손 앞으로 펼쳐진 모든 존재, 예컨대 작은 풀떼기부터 멀찍이 산맥까지,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공간’이 종잇장처럼 차곡차곡 접혀버렸다. 아니, 접힌다는 표현조차 부족할 정도였다. 꿈속에서도 쉬이 볼 수 없는 괴현상이었으니까.

(무너져라.)

이번에는 하늘이었다.

하늘 위로 프란의 왼손이 뻗어졌다. 그러자 푸른 하늘마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절대 농담 따위가 아니다. 허언도 아니다. 정말로 하늘이란 공간 일부가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단 소리였다.

(되돌려라.)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되돌리라는 그 나지막한 읊조림.

이안도 알아들을 수 있는 한마디.

그 말소리에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

종잇장처럼 구겨졌던 수풀과 산맥도. 와르르 무너져 내렸던 푸른색 하늘도.

모든 것이 ‘원상복구’가 되어버렸다.

마치 시간이라도 되돌린 것처럼.

“내가 타고난 이 힘.”

막간의 힘자랑을 선보였던 프란.

그가 제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힘을 내가 아닌 다른 인간에게 전수해 줄 수 있도록 ‘체계’란 것을 잡아볼 생각이오. 그 과정을 도와주셨으면 하오.”

프란 자신이 타고난 언어의 힘.

그 힘을 타인에게 전수하고자 한다. 하지만 전수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러니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

“그리고 두 번째 부탁은…….”

(크그그그그극-!)

(캬아아아아-!)

프란의 말문이 막 이어지려는 찰나.

초원 너머로부터 기괴한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개인이 아닌, 다수의 괴성이었다.

심지어 이안에게도 익숙한 소리였다.

바로 수백 마리의 ‘가고일 무리.’

놈들이 프란에게 몰려왔다.

“……싸움 좀 할 줄 아시오?”

과거의 프란이 속삭이듯 물었다.

싸움이란 게 주먹질만 뜻하진 않을 터.

이안이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거렸다.

“실력 한번 볼 수 있겠소?”

“원하신다면.”

그렇지 않아도 마나를 빼앗긴 이후로부터 쭉 좀이 쑤셨다. 특히 저 가고일 놈들이라면 기꺼이 몰살시킬 의향이 있었다.

“아이스.”

이안의 두 팔이 허공으로 향했다.

강렬한 냉기가 하늘 높이 몰려왔다.

마치 번개를 머금은 먹구름과 같았다.

“스톰.”

아이스 스톰.

인즉 ‘얼음 폭풍’.

단순한 냉기가 아니었다. 수많은 얼음덩어리가 우박처럼 섞여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블리자드’ 주문이 범위 내 대상을 단숨에 동사시켜 버리는 마법이라면, ‘아이스 스톰’은 그야말로.

(캬아아아아악-!)

(쿠에에에엑-!)

(크아아악-!)

수많은 얼음덩이가 범위 내 모든 대상을 물리적으로 ‘박살’ 내버리는 마법이었으니, 단순히 시각적인 측면으로만 따져 봐도 매우 파멸적인 마법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정도면 싸움 좀 하는 겁니까?”

“과연, 하늘 세상에서 내려주신 귀인답소.”

과거의 프란이 엄지를 들어 보였다. 보면 볼수록 현세의 프란 페이지와는 영 딴판이었다. 혹시 저 모습도 함정일까?

“내가 이안 님께 드릴 두 번째 부탁은 간단하오. 딱 이맘때가 저 가고일 놈들의 발정기요. 지들끼리만 난리면 문제가 안 되는데, 꼭 세상 곳곳으로 뛰쳐나와 사람들을 해치더군.”

조목조목 설명을 이어가는 프란, 그가 작게 손짓했다. 그러자 가고일의 잔해들이 모조리 ‘소멸’되었다. 절대 추상적인 표현이 아니다. 표현 그대로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는 거다.

“나 혼자서는 한계가 있소. 둘이 나선다 해서 완벽하게 막아내진 못하겠으나, 그래도 나 하나 뛰는 것보단 낫지 않겠소? 인명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하오.”

첫 번째 부탁은 바로 언어의 힘, 그 힘을 타인에게 전수할 수 있도록 ‘개량’ 및 ‘체계 세우기’에 도움을 달라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당장 인간들을 더 많이 지킬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

‘……이건가.’

자신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주겠다.

그 말은 곧 언어의 힘을 완벽하게 전수해 주겠다는 소리일 터. 즉 과거의 프란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스스로 깨우쳐 보라는 뜻이리라.

‘그 선지자란 존재도 내 시간대의 프란이겠지.’

과거의 프란이 말하는 ‘선지자’.

그것은 아마 현세의 프란일 터.

참 쓸데없고도 재미난 판을 깔았다.

‘이런 판이라면, 놀아나 줄 수밖에.’

이안이 희미한 미소를 흘렸다.

놈의 뜻대로 움직이는 건 불쾌하다. 그러나 이것 말고는 달리 방법도 없다.

심지어 벗어날 수조차 없는 것 같다.

이 ‘과거’라는 허상으로부터 말이다.

‘단, 이번을 마지막으로.’

놀아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다.

그가 지닌 힘, 앞으로 전수받을 힘.

'언어의 힘'을 완벽하게 숙달하는 순간, 그 힘이 이안의 방식대로 진화되는 그때.

‘그때부터 시작이다.’

모든 것은 이안을 중심으로, 이안의 뜻으로부터 재편성되리라.

“좋습니다. 돕도록 하죠.”

과거의 프란과 이안 페이지.

다소 기묘한 동행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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