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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35화 (13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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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35화

54. 갑작스럽게(2)

“헛소리는 집어치우고.”

하나 이안의 입에서 튀어나온 소리, 나아가 앞으로 튀어나올 소리는 결코 곱지 못했다. 아비와 아들이라는 혈연적 관계 따위 전혀 중요치 않았으니까. 무릇 피붙이들이 그러는 것처럼 왜 이제야 나타났느냐며 책망할 생각도 없었다.

“용건이 뭐지?”

이안에게 저 존재는 그랬다.

최초의 마법사라는 호칭? 인정한다. 골드 드래곤? 그것도 인정할 수 있다. 프란? 이름을 쓰든 말든 하등 상관없다.

그러나 마지막 네 번째 이름, ‘아버지’.

그 이름만큼은 용납하기 힘들었다.

“섭섭하군. 그래도 명색이 아비인데.”

“내 아버지란 자는 오래전에 죽었어.”

이안의 목소리에 냉기가 묻어났다.

마치 마법이라도 발동된 것 같았다.

“내가 태어나기 얼마 전에.”

“그건 어쩔 수 없었다.”

하녀장 에밀리의 몸을 빌린 프란.

그가 극구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너와 네 어미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지. 거기서 더 버텼다간 눈치를 챘을 테니까. 도마뱀 놈들이 말이야.”

프란은 나름대로의 까닭을 주장했다.

하나 이안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난 지금 당신이 왜 우리를 버렸느냐, 왜 이제야 나타났느냐, 그런 유치한 가족놀음이나 하자는 게 아니야. 잘 알고 있을 텐데? 내가 궁금한 건 하나, 어머니를 속여 나를 낳게 한 이유. 그 짓거리에 깔린 의도가 궁금할 뿐이지.”

천 년이 넘도록 살아온 존재, 그런 존재가 뜬금없이 순수한 사랑에 빠졌을 리는 없을 터. 다분히 의도적인 접근이었으리라.

“의도라…….”

이안의 말에 프란이 고개를 까닥거렸다.

물론 그 겉모습은 여전히 에밀리였다.

“이미 짐작하는 바가 있겠지?”

“물론.”

이안의 짐작이라면 간단했다.

육신을 되찾을 때 써먹을 ‘도구’.

그 도구를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

여기서 ‘도구’란 이안 페이지를.

‘과정’은 바로 어머니를 뜻한다.

“그 짐작이 맞을 거다.”

망설임 하나 없는 프란의 인정.

이안의 눈매가 옅게 떨렸다.

“그렇군.”

잠시 생각했던 이안.

그의 입술이 떨어졌다.

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시 묻겠어. 용건이 뭐지?”

“도박이나 한번 해볼까 해서.”

“도박?”

“묵혀둔 패가 제법 그럴싸해졌거든.”

프란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도박이긴 한데, 지금까진 성공할 확률이 낮았어. 비협조적으로 나올 게 뻔했으니까. 재능이나 절박함도 부족했지. 아, 네 얘기야.”

재능이 부족하단 얘기는 난생처음 들어봤다. 절박함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안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으니까. 하나 저 존재, 프란의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 보다.

“그래도 자극만큼은 잘 받는 성격이라, 툭 건들면 움직이긴 하더군. 조금만 더 숙성시켰으면 좋았을 텐데. 뭐, 지나간 이야기고.”

툭 건들면 어떻게든 움직인다.

해서 그런 식으로 나타났던 거다.

환술로 나타나 용을 믿지 말라느니, 용으로 나타나 시간을 조심하라느니.

“물론 나도 쉽게 접근하긴 힘들었지. 내 사념을 쫓는 도마뱀 추격대가 따로 있어서 말이야. 지금처럼 느긋하게 설명할 시간이 없기도 했고, 지겹지도 않나? 그놈들.”

너스레를 떨었던 프란.

그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는 곧 죽어.”

“……뭐?”

“조만간 도마뱀 놈들이 찾아올 거야. 내가 시간을 좀 벌어두긴 했는데, 그것도 슬슬 바닥이 난 것 같거든. 워낙 의심이 많은 족속들인지라…….”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흐음, 막상 설명하려니 어려운데.”

프란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고민인 듯 눈살도 찌푸렸다.

“먼저 내 육신이 갇힌 공간, 봤지?”

“보라색 공간을 말하는 거라면…….”

“그래, 거기. 봤겠지만 대부분의 도마뱀 놈들은 그 공간에 있어. 하지만 전부는 아니지. 아주 극소수, 방금 말한 추격대가 그 소수에 속하는 종자들이야. 대부분 어려.”

프란의 사념체를 쫓도록 만들어진 추격대. 소수의 ‘어린 드래곤’들은 여전히 세상에 활동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다만 누구보다 은밀히 움직이는 탓에 알아볼 수 없었을 뿐.

“너에게 보내졌던 용아병 부대, 그리고 본 드래곤. 그것들은 전부 추격대의 힘이다. 아마 내 사념을 쫓는 과정에서 뭔가 알아냈겠지.”

이안이 프란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었다. 조금씩 이해가 되는 것도 같았다. 보랏빛 공간 속 드래곤이 이안을 몰라봤던 이유, 또 조만간 죽게 될 거라는 언급까지도.

“그 뼈다귀들이야 네 녀석이 어떻게든 이겨낼 거라고 여겼다. 대신 난 추격대를 막았지. 보고를 늦출 필요가 있었거든. 덕분에 사념 대부분을 잃어버렸다만, 지금은 너를 지키는 편이 나로서도 이득이라서 말이야.”

그래서였다. 보랏빛 공간 속 드래곤들은 이안 페이지란 존재를, 그 최초의 마법사가 남몰래 준비해 둔 ‘비밀무기’이자 ‘핏줄’을 단 한 번도 보고받을 수가 없었다.

“이제 슬슬 움직일 거다. 추격대에게 받아야 할 정기적인 보고가 끊겼을 테고, 몇몇 일족을 세상 밖으로 보내겠지. 딱히 수소문해 볼 것도 없잖아? 도시가 도마뱀의 두개골을 가진 괴물들에게 공격당했고, 그 위기를 엄청난 경지의 인간 마법사가 해결해 냈다?”

용아병 부대가 일개 인간의 도시를 침공했다. 게다가 드래곤이라면 본 드래곤의 흔적도 느껴낼 수 있을 터. 그것들을 어떤 인간 마법사가 혈혈단신으로 해치웠다고 한다. 밝은 갈색의 머리칼을 가진 마법사가 말이다. 가히 확신에 가까운 의구심을 품을 수 있으리라.

“그 즉시 제거하겠지. 아마 네 주변에는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걸? 그래야 후환이 남지 않거든. 도마뱀 놈들 방식이 그래.”

이안뿐만 아니라 이안의 주변.

좁게는 가족부터 넓게는 도시까지.

프란의 어조로부터 확신이 느껴졌다.

“그 비극, 피하고 싶지 않아?”

“…….”

물론 피하고 싶다. 어떻게든 피하고 싶다.

이안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무조건 믿을 수도 없어.’

의심스러운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평범한 인간조차 믿지 못하는 성정이거늘, 하물며 천 년 이상 묵은 능구렁이의 말을 어찌 믿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거부감이 들었다. 이안 자신을 도구쯤으로 여기는 음흉한 존재, 상대는 바로 그러한 존재였다. 결코 통상적인 피붙이가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그 의심스러움만 차치한다면.

놈의 말에는 설득력이 존재했다.

믿기 싫어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뭐지? 그 비극을 피할 방법이라는 게.”

“간단해. 너를 내 수준까지 끌어올려 주마.”

“당신의 수준이라고……?”

프란 페이지.

측 최초의 마법사가 이루어낸 경지.

그것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모든 마법과 힘의 시작이자 끝.

그래서 다시금 의심부터 생겼다.

불가능한 얘기처럼 들렸으니까.

“나도 얼마 전까지는 불가능하다 여겼거든. 헌데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어. 보아하니 금제의 힘에 당한 것 같은데…….”

“금제의 힘?”

그 물음에 프란이 오른손을 뻗었다.

그러자 곧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마나가…….’

드래곤이 손톱으로 툭 건드렸던 것처럼.

프란도 손바닥을 쭉 뻗은 것밖에 없었다.

한데 그 결과는 지나치게 놀라웠다.

‘돌아왔어……?’

오리무중이었던 마나.

그 힘의 반응이 느껴졌다.

“당연시 여겼던 힘을 잃어봐서 그런가? 절박함의 농도가 근본적으로 짙어졌더군. 저번 생에 비하자면 지킬 것도 많아졌고. 무언가 익히고 깨우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야.”

그 말소리가 멈춤과 동시에.

뻗어졌던 프란의 손이 거둬졌다.

그러자 마나의 반응도 사라져 버렸다.

“…….”

압도적인 힘의 차이.

심지어 상대는 사념체다.

본신의 힘조차 아니라는 거다.

그런데도 이토록 강할 수가 있을까?

“이안, 너에게 선택지는 없다. 머뭇거릴수록 확률만 올라가. 네 어미, 베네사가 도마뱀의 손아귀에 죽어나갈 확률 말이야. 좋은 여자였는데. 그런 꼴을 보게 할 순 없잖아?”

그 언급에 이안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드래곤도 드래곤이지만, 저 프란 페이지의 언행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베네사뿐일까? 이번 생에는 그럭저럭 좋은 인연을 맺은 친구들, 연금술사 부자나 황태자, 공주, 그 기사. 또 누가 있더라? 아무튼 꽤 많은 친구들이 죽어나가겠지.”

이안이 살아가고 있는 두 번째 삶. 그 삶 속에서 특별하다 칭할 수 있는 존재들, 그들의 죽음이 하나하나 나열되었다.

“그 비극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지금부터 내 뜻대로 움직여. 그럼 모든 걸 전수해주마. 그 힘으로 드래곤이란 족속들을 모조리 멸종시켜. 그래야만 너와 네 주변이 살 수 있으니까. 이후 원한다면 더 많은 것을 누려도 좋다. 그럴만한 힘이잖아?”

최초의 마법사로서 모든 것을 전수해주겠다. 그러니 드래곤이란 족속들의 씨를 말려라. 하여 본인과 주변의 목숨을 지켜라. 그럴싸하면서도 달콤한 속삭임이었다. 그 말마따나 선택지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 막다른 골목이나 마찬가지였다.

“드래곤을 멸종시킨다면.”

프란의 말을 가만히 곱씹었던 이안.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당신도 풀려날 텐데.”

“겸사겸사 아니겠어?”

“그게 목적이겠지.”

“편할 대로 생각하렴.”

무에 대수냐는 듯 반문하는 프란.

그가 다시금 이안의 결정을 촉구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선택은 빠를수록 좋아.”

“…….”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상의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불가항력’이란 단어가 딱 어울렸다.

고민은 짧았으나, 깊이만큼은 깊었다.

“……그 방법, 따르도록 하지.”

이안의 결정에.

“현명한 판단이다.”

만족한 듯 화답해 준 프란.

그가 일순간 휘청거렸다.

“이런, 벌써 다 된 것 같군.”

“뭐?”

“이 하녀 아이에게 걸어둔 사념 조각, 아끼고 아끼느라 손톱만 한 조각을 썼거든. 말했잖아? 사념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아껴서 쓰지 않으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프란은 에밀리의 몸을 빌린 처지였다.

에밀리 자체가 사념체는 아니란 뜻이다.

그 말에 이안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 표정, 혹시 이 아비를 걱정…….”

“당신 말고, 에밀리.”

“아, 이 아인 걱정할 필요 없어. 몸뚱이만 빌렸을 뿐이니.”

그 말에 이안이 안도했다.

어머니가 친동생처럼 여기는 아이였다.

물론 프란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 곧 돌아오마. 준비가 필요하니까.”

“준비? 얼마나 걸리지?”

“오래 걸리진…… 않을 거…….”

바로 그 순간부터였다.

프란의 말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에밀리에게 씌워진 자그마한 사념의 조각.

그 힘이 마지막 한계치에 부딪힌 탓이었다.

“며칠이면…… 충분…….”

거기까지였다. 프란 페이지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더불어 에밀리의 육신도 힘없이 쓰러졌다. 이안이 재빨리 그녀를 부축했다. 한숨 자면 된다는 프란의 말이 사실이길 바랄 뿐이었다.

“……당신과 같은 수준이라.”

이안이 쓰러진 에밀리의 얼굴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프란 페이지로서, 프란 페이지의 의사를 대신 전달했던 눈과 코, 그리고 입술이 보였다.

“아니, 나는…….”

어느 때보다 단호한 이안의 어조.

그가 몇 마디 혼잣말을 이어갔다.

“더 위에 서야겠어.”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이안은 확신할 수 있었다. 본능과 경험이 속삭거렸다.

능글맞은 가면에 속지 마라.

아비라는 이름에 속지 마라.

드래곤보다 더 위험한 존재.

그것이 곧 ‘프란 페이지’라고.

“당신보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이안의 눈앞에 사뭇 ‘다른 존재’가 나타났다.

힘을 전수해 줄 가장 ‘이상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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