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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34화 (13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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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34화

    54. 갑작스럽게(1)

    (정말……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처음 약속드렸듯, 저 말리오투스는 오늘부로 이안 님께 헌신토록 하겠습니다.)

    이안이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 그리고 하루가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장 격한 반응을 보여준 것은 당연하게도 에반투스의 아들, 말리오투스였다. 기운을 차린 그가 이안에게 넙죽 엎드렸다. 어투조차 어느새 극존칭으로 바뀌어 버렸다.

    (시키실 일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말씀만 해주십시오. 무엇을 명하시든, 설령 죽는 한이 있더라도 따르겠습니다!)

    그의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거짓 한 점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만큼 이안을 향한 고마움이 한계치에 도달했다. 무지막지한 괴물들의 손아귀로부터 아버지를 구해준 ‘일생일대의 은인’ 아니겠는가?

    (헤르넬리아, 무얼 하고 섰느냐?)

    (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이안을 향한 충성을 강요하는 오라비 말리오투스, 그리고 그 강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동생 헤르넬리아였다. 물론 그녀도 이안이 베풀어준 은혜가 작지 않음을 알기에 완강한 거부의 뜻을 보이기란 어려웠다. 그저 버티는 것만이 최선일 뿐이었다.

    “그만하세요. 충분히 알았으니까.”

    이안이 그런 말리오투스를 일으켜 세웠다. 이처럼 호들갑 떨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 않아도 자주 부려먹을 예정이었다. 아직 고민해 본 바는 없으나, 조만간 써먹을 구석이 생길 거다.

    “그보다 에반투스 님은 좀 괜찮으십니까?”

    (예? 아, 괘, 괜찮으십니다. 다행히 치명적인 부상은 없으셨고, 저희 일족들이 원래 회복속도가 남다른 지라. 기운만 잘 다스린다면 며칠 내로 쾌차하실 것 같습니다.)

    잠시 머뭇거렸던 말리오투스가 대답을 이어갔다. 세상에 의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의술이란 회복마법의 하위호환과도 같은 존재였다. 한데 8클래스씩이나 되는 마법사가 어찌 에반투스의 상태를 물어보는 걸까?

    “다행이군요.”

    가볍게 대꾸한 이안이 탁자에 약병 몇 개를 올려뒀다. 레디오와 더글라스로부터 받아온 비약이었다. 드래고니안과 인간의 육신은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같은 약을 써도 괜찮았다.

    “때 되면 복용시켜 드리세요.”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감사도 여러 번 받으면 질립니다.”

    (죄, 죄송…….)

    “그것도 마찬가지고요.”

    (…….)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린 말리오투스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던 고고하신 드래고니안께서, 이번 일로 완벽한 아랫사람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럼 쉬십시오.”

    에반투스의 방을 빠져나온 이안.

    그가 서재에 도착했다. 이 서재만큼은 누구도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을 터, 숨겨뒀던 근심걱정이 표정에 내리깔렸다. 하루가 지났음에도 돌아오지 않는 마나 탓이었다.

    ‘일시적인 현상은 아닌 것 같은데.’

    단순한 불안함과 기우를 넘어섰다.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두려움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 드래곤의 짓거리가 확실해.’

    따지자면 별거 아니었다. 놈이 이안에게 했던 짓이라고는 손톱으로 톡 건드린 게 전부였으니까. 한데 그 결과가 이 정도라니? 박탈감마저 드는 이안이었다. 드래곤과 최초의 마법사, 그러한 존재들에게 닿고자 부단히 노력했거늘.

    ‘수백 년이 지나도 좁혀질 차이가 아니었어.’

    8클래스라는 경지.

    무한대의 마나 보유량.

    여타 동급의 아티펙트들.

    그 모든 것으로도 어려웠다.

    ‘드래곤’으로부터 도망치기란.

    나아가 살아남기란 말이다.

    ‘그런데, 왜?’

    몇몇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놈들은 분명 용아병과 본 드래곤으로 하여금 이안 자신을 제거하고자 했다. 한데 어째서 제 발로 발 굴러들어간 이안을 죽이지 않았을까? 아니, 죽이기는커녕.

    ‘나를 아예 모르는 눈치였다.’

    분명 그랬다. 단언할 수 있었다.

    드래곤은 이안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들에게 이안은 ‘목표물’과 같았다.

    어찌 그 목표를 모를 수가 있을까?

    ‘확실히…….’

    이안이 당시의 일을 곱씹었다.

    그 보랏빛 공간의 풍경부터.

    드래곤과 가고일의 대화까지.

    처음부터 줄곧 생각해왔다.

    이상하고 의심스러운 부분들.

    그런 점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나아가 추측해 볼 것도 넘쳐났다.

    ‘아마 최초의 마법사겠지.’

    놈들은 황금색에 가까운 머리칼, 즉 밝은 갈색의 머리칼을 가진 ‘인간 마법사’를 경계했다. ‘사념체’란 표현도 들었다. ‘육신’은 ‘이곳’에 있다고도 했다. 실로 많은 추측들이 떠올랐다.

    “특히 그 보라색 구체.”

    이안이 확신하듯 중얼거렸다. 수많은 드래곤 일족에게 거의 강제로 유지당하고 있었던 보랏빛 구체, 어쩌면 그 거대한 구체가 일종의 ‘감옥’은 아닐까? 최초의 마법사 ‘프란 페이지’의 ‘육신’을 봉인시킨 감옥이자 족쇄 말이다.

    ‘세상 곳곳에 사념체를 남겼다고도 했어.’

    그렇다면 얘기는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드래곤들이 그 공간 속에 숨어든 것도.

    최초의 마법사가 잠깐씩만 등장한 것도.

    심지어.

    ‘나를 향한 행동들까지 전부.’

    최초의 마법사는 육신을 되찾고자.

    드래곤 일족은 그 결과를 막아내고자.

    각자 목표대로 움직이고 있는 거라면.

    ‘최초의 마법사는 나를 성장시켜야겠고.’

    예컨대 이안이 마법적 성장에 끝없이 집착할 수 있도록 선택과 판단을 유도했을 것이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용언서의 이해력, 즉 언어의 힘을 전수해줬을 가능성이 컸다. 그래야만 자신의 육신을 되찾는데 활용할 수 있을 테니까.

    ‘드래곤은 그 성장을 막는다.’

    문제는 바로 이 부분에서 발생했다. 용아병 사태까지만 놓고 보자면 완벽한 추측이었지만, 이번 드래곤과의 만남을 계기로 그 완벽함이 크게 어긋나버렸다. 제 발로 굴러 온 제거 대상을 제거하기는커녕, 면전에서 알아보지도 못했으니까.

    “…….”

    생각보다 이안을 향한 경계심이 떨어지는 걸까? 딱히 요주의 인물이 아니라든가. 아니, 그렇게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그랬다면 굳이 용아병과 본 드래곤으로 공격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이해할 수 없군.’

    뭐가 어찌되었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좀 더 확실하게 표현하건대, 불쾌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마음 같아선 전부 다 박살을 내버리고 싶었다. 최초의 마법사부터 드래곤이란 족속들까지.

    “……박살은 무슨.”

    이안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여전히 마나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러한 처지일 지언데, 박살은 무슨.

    동시에 품속으로 왼손을 가져갔다.

    약병을 꺼내 들기 위함이었다.

    붉은색의 액체가 담긴 비약.

    ‘시간의 보고’로 통하는 열쇠.

    ‘붉은 용의 다섯 숨결.’

    ‘일단 힘부터 되찾는 게 우선이다.’

    이안은 분명 드래곤에게 당했다.

    해답 역시 드래곤에게 구해야 할 터.

    조금 꺼림칙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다른 방법이라도 존재한다면 모를까.

    설령 존재한다한들 문제였다. 더는 방법을 찾아낼 여유도, 여력도 존재하지 않았다.

    끼이익…….

    이안이 비약을 들이키려는 그때, 서재의 문이 스르르 열렸다. 노크 없이 함부로 들어올 만한 사람은 극히 일부였다. 어머니조차 이렇게 덜컥 들어오진 않는다. 꼽아봐야 페어리 퀸, 혹은 장인 중 몇몇에 불과할 테니까. 대체 누구일까?

    “……에밀리?”

    의외의 인물이 문을 열었다.

    바로 저택의 하녀장 ‘에밀리’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노크도 없이.”

    그래서 더더욱 이상했다. 그녀는 이 저택의 하인이며, 이안은 이 저택의 주인이다. 비록 신분의 격차와 예법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이안이라 할지라도, 지금의 경우는 충분히 문제로 삼을 만 했다. 에밀리 역시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을 터.

    “급한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아주 급한 일로 말미암은 ‘절차생략’.

    이안은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당하고도.”

    하지만 에밀리의 입술로부터 새어 나온 목소리와 말투, 그리고 내용은 이안이 예상한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도마뱀을 믿는 건가?”

    하녀장 에밀리.

    아니, 에밀리의 얼굴을 가진 존재.

    그 존재가 이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확히는 이안이 든 비약을 노려봤다.

    “내 핏줄치곤 조금 멍청한 것 같군.”

    “……뭐?”

    놈이 다가왔다.

    이안 역시 일어났다.

    하나 그것이 전부였다.

    “금제 당한 몸뚱이로 무얼 하겠다고. 쯧쯧.”

    “…….”

    이안은 이해력이 빠르다. 일련의 상황과 말소리에 어떠한 뜻이 담겼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아무래도 드래곤이 언급했던 존재, 그 ‘사념체’란 존재가 나타난 것 같았다. 아니, 확실했다.

    “그러지 말고 앉아.”

    에밀리의 얼굴과 목소리를 가진 ‘사념체’.

    그가 건너편 탁자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베네사, 그녀는 여전히 잘 지내나?”

    “…….”

    최초의 마법사, 프란 페이지의 사념체가 대뜸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물론 이안의 대답을 들어볼 수는 없었다.

    “흐음. 이 하녀 아이의 기억으로는 그럭저럭 지내는 것 같군. 참 좋은 여인이었지. 아름답고, 착하고, 구김살 하나 없이 올바르고.”

    놈이 멋쩍은 듯 중얼거렸다. 그저 오래간만에 만난 사이처럼 근황을 묻는다. 너스레까지 떤다. 하나 이안은 놈의 말부터 행동, 그 모든 것을 조금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당신, 누구지?”

    고심 끝에 내뱉은 이안의 첫마디.

    그것은 무의미하면서도 유의미했다.

    “이미 알 만큼 알아내지 않았나?”

    “그러니까 묻는 거야.”

    추측의 끝에 마침표를 찍어낼 확신.

    이안에게는 그 확신이 필요했다.

    “하기야, 중요하겠지. 너한테는.”

    사념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 이해한다는 표정과 말투였다.

    “너는 나를 총 네 가지 이름으로 알고 있어.”

    총 네 가지의 이름.

    그가 말문을 이어나갔다.

    “먼저, 최초의 마법사란 이름.”

    마법사들의 신이나 다를 바 없는 존재.

    최초로 술식의 마법을 고안해 낸 존재.

    최초의 마법사, 그것이 첫 번째 이름.

    “황금용이란 이름.”

    시간을 되돌리게끔 유도한 장본인.

    황금색 가죽과 비늘을 가진 드래곤.

    그것이 두 번째 이름.

    “프란이라는 이름.”

    이안을 두드리는 섬의 장인에게로, 혹은 장인들을 이안에게로 이끌어준 공통된 이름이자 최초의 마법사가 지닌 본명, 그것이 세 번째 이름.

    “마지막으로.”

    프란 페이지의 목소리가 끊겼다. 아주 찰나였지만 수많은 생각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프란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초조하게 대답을 기다렸던 이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너의 아버지란 이름.”

    이안의 숨이 일순간 턱하고 막혔다.

    생각하고, 생각했으며, 또 생각한 이름.

    혹은 혈연적 관계이자 호칭, ‘아버지’.

    그것이 바로 눈앞에 나타난 존재.

    ‘최초의 마법사’이자 ‘골드 드래곤’.

    ‘프란 페이지’의 마지막 이름이었다.

    “반갑다.”

    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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