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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31화 (13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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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31화

52. 무차원의 공간(2)

‘아직 속단하긴 이르다. 허상일 수도 있어.’

이안이 놀란 가슴부터 진정시켰다.

그리고 상황을 면밀히 살펴봤다.

‘저 구체는 뭐지?’

드래곤으로부터 거둬온 관심이 이번에는 보랏빛 구체로 향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거대했다. 드래곤 수백 마리가 사방으로 포진했음에도 가려지지 않는 크기였다.

‘계속 유지하고 있는 건가?’

그리 보일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들이 내뿜는 마나의 파동과 줄기가 구체 속으로 계속해서 투입되고 있었으니까. 유지, 존속, 강화. 그러한 단어들을 연상시키기 충분했다.

‘왜?’

궁금증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저 구체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도대체 어떤 효력을 가졌기에?

(놈이 왔다고! 저기 저놈 말이야!)

그때였다. 가고일의 왕, 놈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얼음의 손아귀에 찢겼던 날개는 물론이거니와, 쳐다보기 거북할 정도로 훼손된 눈알 역시 깨끗하게 회복되었다.

(황금색에 가까운 머리, 인간, 마법사. 맞잖아?)

놈은 이안을 가리키며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었다. 마치 고자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잔뜩 흥분된 목소리였다.

(그런 인간이 오면 알아서 발동될 거라며? 너희 도마뱀 놈들이 동굴에 걸어놓은 그 뭐냐, 힘인지 나발인지 그거 말이야! 근데 왜 저 인간 놈은 멀쩡한 거냐고!)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이안이 잠시간 생각에 빠지는 찰나.

“윽······!”

피부가 오싹 거리기 시작했다.

식은 땀방울이 전신을 적셨다.

무의식 속에 숨어있던 본능.

오감을 넘어선 육감의 영역.

놈들이 이안에게 소리쳤다.

엄청난 존재가 나타났다고.

(입을 다물어라. 가고일.)

지금껏 이안은 생각해왔다. 드래곤이라면, 도마뱀을 닮은 족속의 외형이라면 정신체부터 조각상까지 숱하게 봐왔다. 그 때문에 자신할 수 있었다. 만난다 한들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라고.

‘이건······.’

하지만 그 자신감은 허세에 불과했다.

이안의 눈앞으로 나타난 ‘최강의 생물’.

언제나 그렇듯 압도적인 크기의 몸뚱이.

그에 걸맞은 뿔과 날개, 가죽과 이빨.

파충류를 닮아 소름이 끼치는 동공까지.

‘진짜다.’

단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진정한 드래곤’이 눈앞에 나타났단 사실을.

결코 정신체도, 허상도, 비슷한 무언가도.

그 어떤 유사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

오싹거림과 식은땀은 시작에 불과했다. 단지 눈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다리마저 후들거렸다.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단 생각까지 들었다. 그만큼 압도적이었다. 단언하건대 이안의 경지로는 흠집 하나…… 아니,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을 것이리라.

‘이길 수 없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그랬다.

이안은 약간의 자만심을 품고 있었다.

리시스 라덴쥬의 정신체를 쓰러뜨렸다.

뼈로 현신한 본 드래곤도 이겨냈다.

가고일의 왕 역시 만만한 상대였다.

하여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이쯤이면 닿지 않았을까?

‘저 드래곤이란 존재에게.’

한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닿기는커녕 먼발치도 접근하지 못했다.

모든 본능과 육감이 그렇게 아우성쳤다.

‘끝인가.’

드래곤의 목적은 이안이 확실한 것 같았다. 도시를 침공했던 수만 마리 용아병 부대와 본 드래곤, 심지어 ‘황금색에 가까운 머리칼의 인간 마법사’라니, 누가 봐도 이안을 뜻하는 외형묘사 아니겠는가?

‘고작 이렇게?’

이안의 생각이 체념으로 물들어가는 그때, 드래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이안을 향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가고일의 왕, 놈에게 내어주는 대답인 것 같았다.

(이자는 그 인간이 아니다.)

‘이자’는 ‘그 인간’이 아니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뭐? 너희가 말한 조건이라면 전부······.)

(모발의 색깔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존재다.)

드래곤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외모나 힘은 충분히 숨길 수 있지.)

붉은 드래곤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허나 제대로 된 육신을 가졌다. 놈이 세상 곳곳에 숨겨둔 사념체 따위가 아니란 얘기지. 가고일의 왕, 그대도 알다시피 놈의 육신은 여기 있다. 알아듣겠는가?)

이안의 머리가 바삐 굴러갔다.

‘사념체’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난무했다.

(하! 그래. 너희한테 힘을 준 인간 놈, 그놈이 고작 저 정도 수준일 리 없겠지. 그랬다면 우리가 덩치 큰 도마뱀 따위에게 당했을 리도 없겠······.)

가고일의 비아냥거림은 거기까지였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크아아아아악-!)

가고일의 왕.

그의 턱주가리가 박살 났으니까.

드래곤은 그저 눈짓만 했을 뿐이었다.

(나가라.)

(어으으으······!)

(헛된 일에 낭비할 시간 없으니.)

그 말이 단순한 의미는 아닌 것 같았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하나 가고일의 왕은 물러나지 않았다.

아니, 물러나긴 했다. 비굴해졌으니까.

다만 용에게 부탁 한 가지를 말했다.

(자, 잠깐!)

무차원의 공간이라서 그럴까?

터져나갔던 턱이 금세 재생되었다.

(이놈도 제법 강하다고! 지금 내 상태론 못 이긴다니까? 가져간 힘을 돌려주든가, 대신 죽여주든가! 뭐라도 좀 해줘야 할 거 아니야? 엉? 너희도 내가 죽으면 곤란할 텐데?)

고래고래 소리치는 가고일의 왕.

협박이라기보다는 애원에 가까웠다.

(으음.)

그 말에 설득력이 있었던 걸까.

잠시 생각에 잠겼던 ‘진정한 드래곤’.

그가 시선을 돌려 이안에게 다가왔다.

여전히 무관심한 얼굴, 또한 눈빛이었다.

(가만히 있어라.)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이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도망치기는커녕 호흡조차 어려웠다.

‘이대로······.’

드래곤의 커다란 앞발.

그 끝으로 솟은 손톱이 가까워졌다.

이안의 자그마한 머리통으로 말이다.

정말 저 손톱 하나에 죽는 걸까?

이토록 허무하게 가는 걸까?

‘이대로 죽을 수는······.’

그와 동시에 톡, 하고 닿았다.

놈의 손톱과 이안의 머리통이.

이변은 바로 그 순간 일어났다.

“허어억!”

시야가 순식간에 바뀌어 버렸다.

더는 보랏빛 구체도, 보랏빛 모래도.

보랏빛 번개와 드래곤도 보이지 않았다.

어둡고 칙칙한 동굴만이 눈앞에 펼쳐졌다.

무차원의 공간으로부터 튕겨 나온 거다.

“허억! 헉! 허어억······!”

이안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물론 막혔던 숨이 터지기도 했다.

하나 진정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직 살아있어.’

그 숨으로부터 생명이 느껴졌다.

아직은 멀쩡하게 살아있었다.

(크그그그그극······!)

고민과 혼란은 오래가지 않았다.

무차원의 공간으로부터 퇴장당한 존재.

그것은 이안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저놈이라면 어렵지 않다.’

이안이 서둘러 몸을 가누었다.

함께 쫓겨난 존재는 가고일의 왕.

불행 중 다행이라고 볼 수 있었다.

다시 물리치면 그만 아니겠는가?

‘현실에서도 회복되었군.’

놈은 무차원의 공간 그대로였다.

찢겨진 날개도, 몸뚱이도 회복되었다.

반절씩 뜯겨나갔던 안구만 여전했다.

물론 괜찮다. 이안에게도 무한대의 마나가······.

‘······?’

마나를 끌어모으려던 이안.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마나가······.’

무차원의 공간 속과 똑같았다.

이안은 여전히 마법을 쓸 수 없었다.

육신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아직 여파가 덜 회복된 걸까?

이안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크그그그그극······!)

바로 시간이 없다는 것.

가고일의 왕이 공격을 시작했다.

놈은 또다시 맹수처럼 울부짖었다.

“큭!”

이안 역시 필사적으로 몸을 던졌다.

하나 육신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가 미지수였다.

(크륵! 크르르륵!)

무차원의 공간과는 달랐다.

가고일의 왕은 말을 하지 못했다.

대신 흉악하게 웃으며 주변을 돌았다.

발걸음으로부터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후우······.”

더는 여유가 없었다.

생각을 고쳐먹어야만 했다.

‘마법은 잠시 접어둔다.’

이안은 누구보다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누구보다 침착해야 한다.

살아서 빠져나가고 싶다면 말이다.

이안이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이렇게 쓸 줄은 몰랐는데.’

동시에 아공간 주머니를 열었다.

스람의 걸작, 난쟁이 광선도 잡았다.

“보아하니…….”

(크극······?)

“그 돌려달라던 힘은 못 받은 것 같은데.”

가고일이 드래곤에게 보낸 요청은 두 가지였다. 자신의 힘을 돌려주든가, 이안을 대신 죽여주든가. 하나 드래곤은 아무것도 허락해 주지 않았다. 그저 이안을 약화시켜줬을 뿐.

“다행이야.”

(크르르르······?)

“아직 약해빠져서.”

이안의 왼손이 아공간 주머니로 들어갔다. 나아가 무언가를 끄집어내 허공으로 힘껏 던졌다. 그것은 물건 따위가 아니었다. 작은 크기였으나, 명백한 ‘인간의 형상’이었다.

지이이이잉-!

그 자그마한 인간의 형상으로 ‘난쟁이 광선’이 비춰졌다. 다만 반대편 수정구로부터 뿜어진 빛이었다. 즉 ‘난쟁이화’가 아니라 ‘정상화’를 이끌어내는 광선이란 얘기였다.

“하아아아압!”

정상적인 크기로 돌아온 인간.

그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동시에 가고일의 몸뚱이를 노렸다.

검 한 자루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가고일이 때아닌 비명을 질렀다.

당황한 표정으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이게 갑자기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전하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 중에, 지루해서 죽을 것 같다는 표현이 있었소. 참 철딱서니 없는 말씀이구나 싶었는데.”

연이어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 치 흐트러짐조차 없는 저음의 어조였다.

“아무래도 그 생각을 철회시켜야 할 것 같군.”

목소리의 주인. 그는 인간의 평균을 한참 넘어선 장신이었으며, 짤막한 갈색 머리칼과 다부진 눈매를 가졌다. 황실 기사가 지녀야 할 품위보다는 오로지 효율성만 노린 갑옷차림이기도 했다.

“지루함은…….”

이안이 남몰래 준비했던 ‘비장의 무기’.

그 무기란 바로 황태자의 호위기사.

대륙제일검, 올리버 레이우드였다.

“충분히 사람을 죽일 수 있더이다.”

주머니 속 지루함을 토로한 올리버. 그는 더 이상 이안에게 극존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틀 전 대화로부터 새롭게 정립된 관계였다. 비탈졌던 상하관계가 조금은 완화된 것 같았다.

“기다림의 종결.”

손에 잡힌 묵직한 장검 한 자루.

올리버가 그 검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대장장이 할리아가 만든 ‘걸작’이었다.

“검의 이름으로 추천 드리겠소.”

사상 최고의 기사가 사상 최고의 검을 만났다.

그 완벽한 조합이 처음으로 맛볼 피와 살점은.

“흉측한 괴물이로군.”

고대에 군림했던 포식자.

가고일의 왕으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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