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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30화 (13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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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30화

    52. 무차원의 공간(1)

    말리오투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산맥 가장 높다란 봉우리에 동굴 입구가 보였다. 어지간한 생물이라면 올라올 수 없는 높이에 위치한 까닭일까? 입구를 은폐하거나 교란시키려는 흔적조차 없었다.

    “바로 보일 거라더니, 정말이네요.”

    (그러게 말이다. 다른 입구도 없는 것 같고.)

    듣기는 들었으나, 그럼에도 너무 개방적인 모습에 당혹스러움을 느낀 이안이었다. 당당함을 넘어서 함정처럼 느껴졌다.

    “씨어 디텍션.”

    이안이 마지막으로 씨어 디텍션 주문을 펼쳤다. 과연 드래고니안 부자가 속수무책으로 걸려들 만했다. 산맥 어디서도 가고일의 반응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석화의 여파였다. 오직 저 동굴로부터 한 마리 가고일만 감지될 뿐이었다.

    ‘아마 가고일의 왕이겠지.’

    놈은 홀로 석화에 빠지지 않았다.

    개방된 입구와 혼자처럼 위장된 기운.

    누가 봐도 함정처럼 보일 따름이었다.

    ‘정말 함정이라면, 누굴 노린 걸까?’

    이 특별한 함정에 걸려들 존재는 지극히 한정적이다. 먼저 자유로운 비행이 가능한 존재이며, 상당한 수준의 디텍션 주문까지 갖춰야만 한다. 이안의 상식으로만 놓고 보자면 드래고니안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전부인 것 같았다.

    ‘……지금은 놈을 잡는 일에만 집중한다.’

    이안이 머릿속을 비웠다. 쉽게 생각하기로 했다. 모든 것은 동굴 속 가고일의 왕이라는 존재, 오랜 세월 끝에 다시금 나타난 저 고대의 괴물로부터 얻어낼 수 있으리라.

    “저쪽이 알아채기 전에.”

    이안이 모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먼저 진입하죠.”

    빠른 속도로 착지하는 이안.

    다른 구성원들도 뒤를 따랐다.

    울퉁불퉁하게 뚫린 동굴의 입구.

    그야말로 엄청난 넓이였다.

    “변경 사항은 없습니다. 여왕님을 제외한 모든 분들은 여기 남아서 가고일을 막아주세요. 늦지 않게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이안이 몇 가지 주문을 모두에게 발동시켰다.

    신체나 정신력 등을 보좌해주는 마법이었다.

    “서비스입니다. 힘들 내시길.”

    긴장 풀라는 듯 한마디 던져준 이안.

    그가 동굴 아래로 깊숙하게 들어갔다.

    (아무도 죽지 마라. 내 금방 돌아올 터이니.)

    페어리 퀸 역시 일족들에게 명령했다.

    물론 그 내용까지 명령조는 아니었다.

    자신의 일족을 향한 정성이 느껴졌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여왕 폐하.)

    (그러마.)

    이안과 페어리 퀸이 본격적으로 진입을 시작했다. 산맥이 높은 만큼 동굴 또한 깊고 넓었다. 과연 산맥 전체를 관통하는 동굴다웠다.

    “왜 여왕님만 동행하는지 아십니까?”

    다소 뜬금없는 이안의 물음.

    페어리 퀸이 대답했다.

    (내가 저중에서 가장 강하기 때문에?)

    “비슷하긴 한데, 조금 다릅니다.”

    (모르겠구나. 말해보아라.)

    “여왕님께서 여왕이시기 때문이죠.”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설명해라.)

    “저쪽은 왕이지 않습니까?”

    가면 갈수록 삼천포로 빠지는 대화.

    페어리 퀸이 살짝 짜증을 섞어 말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왕 중 왕이 누군지 가려보는…….”

    (크르르르륵……!)

    이안의 실없는 농담이 이어지는 그때.

    동굴 안쪽으로부터 혀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리를 가져보려고 했는데 말이죠.”

    (헛소리가 늘었구나. 긴장이라도 했느냐?)

    그녀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이안은 그답지 않게 긴장했다.

    강한 적과 맞닥뜨렸기 때문에?

    아니, 그러한 이유는 아니었다.

    “그런 것 같네요.”

    (흥! 네놈도 별수 없는 인간이구나.)

    상대의 강함이 긴장의 요소였다면 본 드래곤 앞에서도 그랬어야 할 터. 하지만 이안은 그렇지 않았다. 가고일의 왕 역시 마찬가지였다.

    ‘본 드래곤과 큰 차이는 없다.’

    진정한 드래곤의 본신, 혹은 환술 속에서 최초의 마법사 정도 되는 존재감이 아닌 이상, 강함만으로 이안을 긴장시키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단지.

    '모든 일의 실마리가 될지도 몰라.'

    리시스 라덴쥬의 정신체가 말했던 것처럼.

    이 세상에서 드래곤 일족이 사라진 이유.

    그 이유와 엮여있을 최초의 마법사.

    이안 페이지 자신과의 연관성.

    실로 많은 문제가 겹쳐 있을 터.

    (크르르르륵……!)

    쇳소리로 끓어오르는 기괴한 울음소리, 평범한 가고일보다 수 배는 큼직한 덩치와 날개, 한껏 치솟은 들창코, 메마른 보랏빛 입술에 싯누런 송곳니까지. 그 모든 조건이 회색 가죽과 어우러져 참으로 흉물스러운 피조물이 빚어졌다.

    (크륵! 크르륵!)

    물고 있던 무언가를 뱉어낸 ‘가고일의 왕’.

    그것은 놀랍게도 ‘동족의 시체’였다.

    반쯤 뜯긴 탓에 너덜너덜했다.

    (저런 게 왕이라니, 가고일 놈들도 운이 없구나.)

    "동감입니다."

    동족을 죽이다 못해 잡아먹는 왕이라니.

    그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그쪽이 가고일의 왕인가?”

    이안이 한 발짝 다가서며 말했다.

    “용들에게 봉인되었다고 하던데.”

    (크르륵……!)

    “무슨 수로 풀려난 거지?”

    (크르르르르……!)

    말이 통하지 않는 존재인 것 같았다.

    그저 괴물에 불과한 놈인 걸까?

    고대의 포식자로 군림했던 존재가?

    “여왕님.”

    (듣고 있다.)

    “에반투스 님을 찾으세요. 놈은 제가 맡겠습니다.”

    (괜찮겠느냐?)

    "충분합니다."

    (……알겠다. 조심해라.)

    “여왕님도 조심하십시오.”

    동굴은 넓었다. 여러 갈래 깊숙한 통로가 남아있었다. 아직 에반투스가 잡아먹히지 않았다면, 어떠한 형태로든 살아있다면 동굴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터. 이안은 그 수색을 페어리 퀸에게 맡겼다.

    (크르르르륵……!)

    더 이상 지켜볼 것도 없었다.

    이안이 곧장 마나를 끌어모았다.

    명백한 적의가 사방으로 드러났다.

    “말은 통할 줄 알았는데.”

    그 모습에 가고일의 왕이 입맛을 다셨다.

    비록 말은 하지 못해도 감정이 전해졌다.

    침입자를 향한 경계라곤 보이지 않았다.

    한때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포식자.

    그러한 존재만이 보일 수 있는 여유였다.

    (크그그그그극……!)

    쩍 갈라진 날개를 위협적으로 펼쳐 보인 가고일의 왕. 그럼에도 이안은 일말 머뭇거림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저만한 덩치야 지금껏 봐온 괴물 중 하위권에 맴돌았으니까. 시간의 보고 속 리시스 라덴쥬의 정신체도, 본 드래곤도, 심지어 용용이마저 가고일의 왕보다 거대했다.

    (캬아아아아아악-!)

    기괴한 울음소리가 놈의 아가리로부터 흘러나왔다. 단순함을 넘어선 음역대의 소리였다. 아마 이 소리가 빗물받이 산맥 전체의 가고일을 집결시키는 수단일 터.

    쿠구구구구-!

    그러자 산사태라도 일어난 것처럼 산맥 전체가 요동쳤다. 엄청난 머릿수의 가고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이는 까닭이었다.

    ‘도대체 몇 마리나 되는 거야?’

    쉬이 가늠해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큼은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만약 저 수많은 가고일들이 산맥 아래로, 그러니까 세상 바깥으로 나가 날뛰는 날엔…….

    ‘재앙.’

    드래곤의 정신체가 했던 말에 따르자면, 놈들은 조화를 이룰 수 없는 족속이라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체계적인 군대를 일으킬 때 필요한 덕목일 뿐. 놈들이 인간이든 동족이든, 제3의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죽이며 날뛴다고 생각해보라. 그거야말로 대륙 전체의 재앙이나 다를 바 없으리라.

    “……여러모로.”

    이안이 여러 구의 얼음덩이를 소환했다.

    실로 오래간만에 맛보는 클래식한 전투였다.

    “개체수를 줄여둘 필요가 있겠어.”

    ‘고대의 포식자’와 ‘현세의 최강자’.

    두 괴물이 격돌하기 시작했다.

    * * *

    “우와앗!”

    한편 입구를 지키는 이안의 소수정예, 그중 외관상으로 가장 어린 클레반이 외쳤다. 녀석은 용용이와 함께 산맥 전체를 감시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가고일들의 움직임이 포착된 모양새였다.

    “와요! 와! 엄청 많아요! 완전 개미 떼 같아요! 개미 떼!”

    어찌 저토록 해맑을 수 있을까?

    그 개미 떼가 누구에게 달려드는지 분명 인지하고 있을 터인데 말이다.

    “그만 내려오렴. 자리를 지켜야지.”

    “넵!”

    꼬맹이 조각가 클레반은 재봉사 베르톨도의 말을 유독 잘 따랐다. 그의 말 한마디에 군말 없이 내려와 동굴 앞을 지켰다. 물론 용용이의 목덜미에서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

    “다들 아시겠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가고일의 진입을 허락해선 안 되오. 적어도 이안님께서 목적을 이루고 나오시기 전까지는 말이오. 그러니까 절대로 앞장서 무리하지 마시오. 대부분은 이 드래곤 조각상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을 터이니.”

    총 여섯 기의 드래곤 골렘 '용용이'는 그 자체로 훌륭한 방패였다. 고통을 느끼지 못할뿐더러 엄청나게 튼튼했다. 아마 이안조차 용용이를 부수기란 불가능할 터. 그런 조각상이 입구만 틀어막아도 어지간한 진입은 막아낼 수 있으리라.

    “허니 반룡인 아가씨와 페어리 분들께서는, 동굴 안으로 흘러들어 오는 놈들만 처리를…….”

    (잠깐.)

    드래고니안 헤르넬리아가 베르톨도의 말문을 가로막았다. 딱히 잘못된 지휘도 아니었는데, 어째서일까?

    “어찌 그러시오?”

    (아가씨라니, 내 비록 겉모습은 이럴지 몰라도, 인간인 당신보다 몇 배는 더 살았을걸? 앞으론 말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하하하!”

    헤르넬리아의 막간을 이용한 경고.

    그 말에 베르톨도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장인들도 마찬가지로 껄껄 웃었다.

    (……왜 웃는 거지?)

    “아, 실례했소. 그래서 아가씨께서는 올해로 나이가……?”

    (새는 것을 포기한 지 오래다. 거의 이백 년 전부터 존재해 왔으니까.)

    “이백? 그 정도면 아가씨 맞구먼. 난 또 얼마나 사셨다고.”

    (……뭐?)

    “아가씨가 정 그러시면, 색시라고 불러드리리다.”

    (무슨 헛소리를……!)

    무려 이백 살이 넘는 헤르넬리아.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존재한 베르톨도.

    두 화석의 대화가 길어지려는 그때.

    “키아아아악-!”

    첫 번째 가고일이 시야에 들어왔다.

    물론 그것은 시작에 불과할 뿐이었다.

    사방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가고일.

    그 수는 클레반의 표현 그대로였다.

    정말 ‘개미 떼’가 몰려오는 것 같았다.

    심지어 사람보다 큰 개미 떼가.

    “모두 자리를 지키시오!”

    동굴 밖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막을 올렸다.

    * * *

    쿠웅!

    가고일의 왕이 흙먼지를 뒤집어썼다.

    별거 아닐 줄만 알았던 먹잇감.

    놈의 반항이 생각보다 거셌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크륵! 크르르륵……!)

    가고일의 왕이 느끼기엔 그랬다.

    저 밝은 갈색 머리의 인간 마법사.

    놈은 아무래도 인간이 아닌 것 같았다.

    ‘생각보다 약한데.’

    반면 이안은 여유로웠다. 적어도 본 드래곤을 상대할 때보다 수십 배는 거뜬한 느낌이었다. 물론 놈이 가진 최고의 힘은 어마어마한 머릿수일 터. 그 강력한 힘의 원천을 동굴 입구에서 봉쇄시켰으니 어쩔 수가 없으리라.

    ‘슬슬 제압하는 게 좋겠어.’

    입구의 봉쇄가 얼마나 버텨줄지 모른다. 제압할 수 있을 때 제압하는 것이 옳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존재였다면 고문이라도 시도하겠으나, 놈의 상태로 미루어볼 때 그 선택지는 폐기해야 할 것 같았다.

    “끝내자.”

    이안의 머리 위로 거대한 손길이 나타났다. 얼음으로 빚어진 한 쌍의 손은 이안의 손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전체적인 생김새부터 움직이는 동작까지 전부 다 똑같았다.

    (크아아아악-!)

    그 거대한 얼음 손이 놈의 날개를 낚아챘다. 뿐이랴? 오른쪽 날개를 그대로 찢어버렸다. 가고일의 왕, 놈이 터뜨린 비명소리가 동굴 전체에 쩌렁쩌렁 울렸다.

    (멈춰라! 멈춰! 인가아아안-!)

    바로 그 순간이었다. 생소한 목소리가 이안의 머릿속을 강타했다. 듣는 것만으로도 불쾌함이 느껴지는 고약한 목소리, 단언하건대 가고일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말할 수 있었어?”

    이안이 얼음의 손아귀에 잔뜩 넣었던 힘을 풀어줬다. 대신 가볍게 잡아 얼굴 앞까지 가져왔다. 이안과 가고일의 왕, 두 존재가 처음으로 눈을 마주쳤다.

    “……?”

    순간 놀라움을 느낀 이안이었다.

    놈의 두 눈이 참으로 괴상했다.

    애꾸라든지, 안구가 없다든지.

    그러한 문제는 아니었다.

    “눈이…….”

    반절, 정확히 반절이다.

    가고일의 양쪽 안구 전부.

    딱 반절씩만 남았다는 얘기다.

    마치 그만큼씩 뜯겨나간 것처럼.

    흉물스럽기가 도를 넘어섰다.

    (알레그라포.)

    바로 그 찰나였다.

    정말이지 잠깐에 불과했다.

    이안이 놈에게 시선을 빼앗긴 시간 말이다.

    초로 따지자면 몇 초도 지나지 않았을 거다.

    분명 그랬는데.

    (훈카나티오, 하그납!)

    알레그리포, 훈카나티오, 하그납.

    해석할 수 없는 언어가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큭……!”

    이안이 고통에 찬 신음을 토해냈다.

    형용할 수 없는 두통이 몰려왔다.

    얼음의 손마저 스르르 녹아내렸다.

    대체 어떠한 사술을 부린 걸까?

    답은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석화……?’

    이안의 육신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단순한 마비증상이 아니었다.

    돌덩이가 되기 시작한 거다.

    표현 그대로 ‘석화’였다.

    ‘침착하자. 침착해.’

    이안이 마지막 정신을 붙잡았다.

    그리고 상황부터 정리했다.

    먼저 가고일의 왕.

    ‘놈의 몸뚱이도 굳어가고 있다.’

    이안만 돌이 된다면 문제가 컸다.

    한데 가고일의 왕도 석화가 진행되었다.

    일종의 자폭과도 같은 능력인 것 같았다.

    ‘석화는 무차원의 공간으로 진입되는 능력.’

    리시스 라덴쥬의 정신체가 내어준 정보를 떠올렸다. 석화가 끝나면 육신은 돌덩이, 정신은 무차원의 공간으로 진입한다. 즉 이안의 정신 또한 무차원의 공간으로 진입할 터.

    ‘놈과 같은 공간으로 진입하겠지.’

    정황상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놈의 노림수일 가능성도 높았다.

    ‘정신만 똑바로 차린다면, 어떻게든…….’

    이안의 생각이 거기까지 닿았을 때.

    흐릿했던 시야가 어둠으로 물들었다.

    생각의 흐름도 일순간 끊어져 버렸다.

    육신이 완벽하게 굳어버린 여파였다.

    ‘……!’

    그 상태로 얼마나 지났을까?

    끊어졌던 정신이 깨어났다.

    어두웠던 시야도 돌아왔다.

    ‘여긴……?’

    방금까지 있었던 가고일의 동굴.

    적어도 그곳이 아님은 확실했다.

    보랏빛의 모래로 가득한 평야.

    보랏빛 번개마저 내리쳤다.

    쿠궁! 쿠구구구궁 - !

    생소하다 못해 이질적인 공간.

    가고일의 왕, 놈의 모습도 보였다.

    놈은 익숙한 듯 어디론가 날아갔다.

    바로 쫓아보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어떠한 마법도 발동되지 않았으니까.

    ‘시간의 보고와는 다르다.’

    이안이 침착하게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가고일의 왕이 날아간 방향, 그 끝자락에 어렴풋이나마 펼쳐진 광경.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

    거대한 보랏빛의 구체. 흡사 가고일의 눈을 수천만 배 확대라도 시킨 듯 엄청난 크기의 구체가 허공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하늘에서 내리치는 줄로만 알았던 보랏빛 번개 역시 저 구체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었다.

    다만 이안의 눈을 사로잡은 존재.

    그것은 보랏빛 구체가 아니었다.

    물론 구체도 놀라웠다.

    하지만.

    “설마…….”

    보랏빛 구체의 주변에 속속들이 모여든 존재들. 저마다 일으킨 마나의 파동으로 구체의 유지를 돕는 존재들. 그 수많은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것들의 정체는 너무나도 확실했으며, 또한 익숙했으니까.

    “……드래곤?”

    리시스 라덴쥬의 정신체.

    그가 언급했던 추측이 옳았다.

    사라진 줄만 알았던 드래곤 일족.

    그들은 ‘무차원의 공간’에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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