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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29화 (129/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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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29화

51. 소수 정예(2)

“이야기…… 말씀이십니까?”

“대련하던 시절에는 이런저런 얘기, 자주 나누지 않았습니까? 여기 오니까 생각나네요.”

이안이 연무장을 둘러보며 말했다.

12살부터 17살까지 진행되었던 대련.

덕분에 올리버는 엄청난 성장을 이뤘다.

“많이 바빴습니다. 물론 이안 공께서 더 바쁘셨지요.”

“그러게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때가, 올리버 경의 대련을 도와드렸던 그 5년이란 시간이 특히나 한가로웠던 것 같네요.”

정말 그랬다. 이안의 두 번째 삶도 어느덧 7년 차에 접어들지 않았던가? 그 7년 중 올리버의 대련을 봐준 5년이 가장 평화로웠다. 그리 오래된 기억도 아니거늘,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그 5년, 언제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러셔야죠.”

겸손 하나 없는 이안의 대꾸.

올리버 역시 미소를 지었다.

“공께서 친구가 없으신 이유를 알 것 같군요.”

“친구 없는 건 경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제게는 충직한 부하들이 여럿 있습니다.”

“저도 상아탑의 마법사분들이 계십니다만.”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이십 년 이상을 함께해 온 수하들입니다. 공과 상아탑의 관계에 비할 바가 아니지요.”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

때 아닌 친구 논쟁에 붙은 두 남자.

어찌 되었든 둘 다 친구는 없었다.

“뭐, 인정합니다. 인간관계가 좀 협소한 편이죠.”

그래도 저번 삶보단 넓어졌다.

믿기 힘들지만 사실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알아봤습니다.”

올리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옛 생각에 떠오른 모양새였다.

“처음부터요?”

“7년 전 모그리안 영주성에서 처음 대화를 나누었을 때, 기억하십니까? 첩자로 밝혀진 세실리아를 공께서 생포하셨었지요.”

이안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기억하지 못할 리가 있겠는가?

“당시 공께 드렸던 첫마디가 보상에 관한 얘기였습니다. 황궁으로 돌아가거든 폐하께 오늘의 일을 고해드리겠다, 모든 정황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합당한 보상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 식으로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기억납니다.”

복수를 향한 본격적인 시작점.

정말이지 옛날 얘기처럼 느껴졌다.

“전혀 내색하지 않으시더군요. 평범한 아이였다면 얼떨떨해하거나, 좋아서 방방 뛰거나, 마냥 이해하질 못하거나, 어느 쪽이 되었든 일정한 반응이 있기 마련인데, 공께서는 그야말로 평온하셨습니다. 표정 관리가 아주 기막히셨지요.”

분명 그랬다. 당시만 해도 이안은 어린아이의 행색에 익숙하지 못할 때였다. 하여 건조한 반응을 보인 것이 사실이었다.

“그때 느꼈습니다. 어린놈이 음흉하구나.”

“…….”

“그 흔한 마을친구도 하나 없겠구나.”

“…….”

“제가 사람 보는 눈이 좀 정확합니다.”

저 ‘사람 보는 눈’이라는 표현에서부터 황태자를 향한 자부심이 드러났다. 순간 전생에 목격했던 황태자와 올리버의 결말을 말해주고 싶었으나, 이성을 되찾고 꾹 참는 이안이었다.

“……계속 인정은 합니다만, 면전에서 들으니 또 복잡해지네요. 요즘 들어 사람들이 절 괴물 보듯 하는 경향이 생겼는데, 경께선 그러시지 않아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말은 그렇게 해도 내심 흡족한 이안이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이안을 아무런 선입견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존재, 장인들과 권속들을 제외하자면 손가락으로 꼽힐 정도였으니까.

“괴물은 맞지요. 기사단에 글쓰기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가 말하길, 요즘은 이야기책에서도 공처럼 강한 주인공은 다루지 않는답니다.”

"왜죠?"

"주인공은 굴려야 제맛이라든가? 그런 소릴 하더군요."

올리버가 양쪽 손에 붕대를 휘감으며 말했다. 마나 블레이드를 발동시킬 때마다 일정량 피를 봐야 했기에, 그는 얼마 전부터 여분의 붕대를 항상 지니고 다녔다. 훈련이든 실전이든 필수품이었다.

“그 손, 그래서야 어디 남아나겠습니까?”

“별수 없지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이안의 우려 섞인 물음에 올리버가 대꾸했다. 굳이 뒷말은 내뱉지 않았다. 하고자 했던 바가 충분히 전달되었을 테니까.

“다른 방법이 있다면 좋을 텐데요.”

“알게 되시거든 꼭 알려주십시오.”

장난처럼 대답한 올리버.

하나 이안은 장난이 아니었다.

물론 내색까지 하지는 않았다.

“물론입니다. 대신 공짜는 좀.”

“딱히 드릴 건 없습니다만.”

“제일 자신 있는 놈으로 내어주시죠.”

“자신 있는 놈이라…….”

올리버가 잠시 고민했다.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것.

검술? 물론 검술에도 자신이 있다.

하지만 ‘제일’이라는 강조가 붙었다.

그렇다면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결코 꺾이지 않는 우직한 ‘충성심.’

올리버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황태자 전하께만 드릴 수 있는 가치인지라.”

“물론 전부를 달라는 건 아닙니다. 전하께 소홀하지 않은 선에서 말이죠. 말로 표현하자면 2순위 정도가 좋겠네요.”

“2순위에는 폐하께서 계십니다만.”

“그럼 3순위라도…….”

“3순위는 제국입니다.”

“……오기가 다 생기네요. 4순위 갑시다.”

“으음.”

올리버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나왔다.

4순위까지 오자 단호함이 사라졌다.

그 나름대로 진지한 고민이었다.

“그쯤이면 괜찮을 것도 같군요.”

“휴우!”

이안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4순위라도 되었으니 다행 아니겠는가?

5순위까지 추락하는 굴욕이나마 벗어났다.

“4순위, 그거라도 받도록 하죠.”

“필요나 있으시겠습니까?”

“개똥도 약에 쓸 때가 있는 법이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제가 개똥은…….”

“농담입니다. 아시다시피 마을친구 하나 없는 음흉한 놈이라서요. 가끔가다 농담도 진담처럼 하곤 합니다. 이해해주시길.”

이안의 소심한 복수.

올리버도 지지 않았다.

"연장자로서 이해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하네요."

두 사람의 대화는 누가 봐도 장난 같았다.

올리버 역시 장난으로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아닌 것 같았다.

이안의 두 눈에 광채가 서렸다.

“슬슬.”

아공간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던 이안.

그가 메마른 입술을 천천히 떨어뜨렸다.

“본론으로 넘어가도 되겠습니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후로부터 펼쳐진 두 남자의 대화.

밤마저 꼬박 지나 아침까지 밝았다.

이야기와 침묵이 반복하기를 수십 번.

제법 만족스러운 대화가 오간 것 같았다.

* * *

일명 ‘에반투스 구출 작전’은 그로부터 이틀 후에 개시되었다. 이안 페이지를 중심으로 소집된 소수정예의 구성원들은 그야말로 든든했다. 이안이 빠지더라도 일개 영지쯤이야 손쉽게 정벌해버릴 기세였다.

“에반투스 님과 비슷한 방식으로 접근해볼 생각입니다.”

빗물받이 산맥과 조금 떨어진 숲속.

먼저 강력한 번개 마법으로 무장한 페어리 퀸과 일족들이 힘을 보탰다. 에반투스의 딸이자 5클래스 마법사인 헤르넬리아 역시 붉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집중했다. 6기의 드래곤 골렘 용용이 중 5기는 각각 장인들이 올라탔다. 그들이야말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단어 그대로 ‘불사의 용사’ 아니겠는가? 다만 공학자 스람이 뒤늦게 합류하겠다고 선언한 탓에 나머지 1기는 자유로웠다. 올리버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뭘 준비하겠다는 건지.’

공학자 스람은 아직 준비할 게 남았으니 먼저 작전에 돌입하라고 말했다. 뉘앙스로 봐선 ‘용의 심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도 가져올 작정인 것 같았으나, 그 결과물이 무엇인지까진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아니, 제대로 된 물건일지도 미지수였다.

‘기다려 보면 알겠지.’

물론 스람이 결과물을 들고올 때까지 마냥 기다려줄 생각도 아니었다. 에반투스의 안위가 달린 문제 아니겠는가? 한 시가 급했다. 더는 꾸물거릴 여유조차 없으리라.

‘포탈은 열어뒀으니까.’

포탈을 타고 알아서 찾아오리라.

그리 정리한 이안이 모두를 바라봤다.

“앞서 에반투스 님과 말리오투스 님께서 경험해 본 바, 저 산맥 전체가 가고일의 땅이라고 하더군요. 곳곳에 석화된 가고일이 숨어 있다고 합니다. 수풀 사이, 돌무더기 사이, 작은 동굴마다, 웅덩이 아래, 흙바닥 속까지 전부 말이죠.”

콜드우드령 북부에 속한 산맥, 대륙의 5대 산맥 중 하나로 불리는 곳, 웅덩이가 유독 많아 자연스레 붙여진 이름. 바로 그 ‘빗물받이 산맥’은 가고일의 영토나 마찬가지였다. 비록 석화의 영향으로 디텍트 주문에 감지되지는 않았지만, 말리오투스의 증언을 따르자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머릿수의 가고일이 숨어 있었다.

“가장 높은 봉우리의 정상에서 살펴보면, 산맥 전체를 관통할 정도로 깊숙한 동굴이 하나 뚫려있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 아래가 바로 가고일들의 왕이란 존재, 놈이 기거하는 동굴임을 말리오투스 님께서 직접 확인해 주셨고요.”

빗물받이 산맥 가장 높은 곳.

그곳에 자리 잡은 깊숙한 동굴.

그 동굴이야말로 왕의 터전이었다.

가고일의 왕, 고대의 포식자 말이다.

“에반투스 님과 말리오투스 님은 하늘을 날아 동굴로 직행하셨습니다. 가고일들의 감시망을 피하면서 말이죠. 문제는 그 선택이 패착으로 돌아왔단 겁니다. 왕이 지른 울음소리 한 번에 산맥 전체의 가고일들이 몰려왔고, 입구가 막혀 꼼짝없이 당해버렸다고 합니다. 물론 그 왕이란 놈도 강했고요.”

동굴 안에는 가고일의 왕과 몇몇 우등한 일족들이, 동굴 바깥으로는 엄청난 머릿수의 가고일들이 물 밀듯 밀려왔단 것이다. 드래고니안 부자는 순식간에 고립되었고, 에반투스의 마법 덕에 말리오투스만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잠깐, 이해가 좀 안 되는데.)

잠자코 듣고 있던 페어리 퀸.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말씀하세요.”

(에반투스도 네놈처럼 텔레포트란 거, 가능하지 않았느냐? 그럼 그냥 아들놈 손 붙잡고 도망쳤으면 되는 거 아니야?)

그녀의 의문은 타당했다. 에반투스 역시 7클래스 상당의 마법사, 이안과 비슷한 공간이동 마법이 가능한 존재였다. 하나 이안과 에반투스의 텔레포트 사이에는 차별점이 있었다.

“엄연히 따지자면 다른 마법입니다. 아마 에반투스 님의 텔레포트는 시전자만 이동이 가능한 걸로 추정됩니다만, 맞습니까?”

이안이 에반투스의 딸, 헤르넬리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 역시 침통한 표정으로 끄덕거렸다.

이안의 텔레포트는 스스로 창조해 낸 마법, 그에 비해 에반투스의 텔레포트는 아주 오래전, 아비인 리시스 라덴쥬에게 전수받았을 가능성이 컸다. 아마 술식을 개량하지도 않았을 터, 효과가 비슷할지언정 엄연히 다른 마법이란 뜻이리라.

‘물론 나도 두 명 정도가 한계다만.’

페어리 퀸의 궁금증을 풀어준 이안.

그가 계속해서 작전 설명을 이어갔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저희도 그 에반투스 님과 말리오투스 님의 패착을 따라갈 겁니다. 마침 비행들도 가능하시겠다, 빠르게 가고일의 왕이 숨어 있다는 동굴 안으로 진입할 생각입니다. 물론 거기서부터 달리 움직여야겠죠.”

이안, 용용이, 페어리, 드래고니안. 이안을 제외한 모두가 날개 달린 족속들이다. 누구보다 자유로운 비행이 가능하다.

“계획은 간단합니다. 저와 여왕님을 제외한 모든 분들은 입구에 남아 몰려오는 가고일을 막아주세요. 여러분이 가진 힘, 그리고 동굴의 입구라는 공간적 이점으로 볼 때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겁니다. 적어도 제가 그 왕이란 존재와 결판을 내기 전까진 말이죠.”

여섯 기의 용용이와 장인, 헤르넬리아, 페어리 일족들은 모두 동굴의 입구에 남는다. 그 틈을 타 이안과 페어리 퀸이 가고일의 왕을 처리한다. 말만 놓고 보자면 참으로 간단한 계획이었다.

“그러니까, 그쪽이 가고일의 왕이란 놈을 못 이기면 우리도 싹 다 입구에서 뒈져 버릴 계획이구만? 뭐 우리야 그럴 일은 없겠지만서도, 날개 달린 저 계집애들이 문젠데.”

용용이의 목덜미에 올라탄 여인, 대장장이 할리아가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투만 거칠 뿐 틀린 얘기도 아니긴 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

이안은 그 말을 순순히 인정했다.

다만 자신감의 표출도 빼놓지 않았다.

“저희가 패배할 일은 없겠습니다만.”

“그걸 어찌 장담하실 수 있소?”

“딱히 제출할 증거는 없고요.”

베르톨도의 물음에 이안이 대답했다. 그러면서 지팡이와 로브, 귀걸이를 순차적으로 만지작거렸다. 믿기 힘들다면 당신들이 내어준 걸작 아티펙트라도 믿어보란 의미였다.

"더 하실 말씀이 남으신 분, 계십니까?"

이안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지금이라도 빠지시길 원하신다면, 허락해드리겠습니다."

물론 아무도 말소리를 내지 않았다.

“뭐, 우리가 뒈질 것도 아니고.”

“죽여주면 오히려 감사하지.”

“뭔가 재밌을 것 같아요! 그치 용용아?”

(크릉! 크릉!)

장인들이 저마다의 개성대로 말했다.

물론 결론만큼은 하나로 모였다.

딱히 빠질 이유가 없었다.

죽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권속의 힘으로 명령까지 내린 주제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게냐? 도움이 필요 없다고 말만 하여라. 나와 내 일족들은 바로 돌아가 줄 테니까.)

“그건 좀, 여왕께서 빠지시면 손실이 크거든요.”

페어리 퀸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마음대로 빠지기란 불가능했다. 이는 결코 부탁이 아닌, 권속의 힘으로서 받은 명령이었으니까.

(이럴 시간 없어! 아버지께서 저기 계신다고!)

헤르넬리아야 말할 것도 없으리라.

아비의 목숨이 달린 문제 아니던가?

“좋습니다. 그럼.”

모두의 의견을 재차 확인해 본 이안.

그가 허공으로 빠르게 날아올랐다.

목적지는 빗물받이 산맥 정상의 동굴.

단숨에 진입해 버릴 요량이었다.

“출발하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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