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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28화
51. 소수 정예(1)
이쪽은 ‘소수 정예’로 가보겠다.
그 발언에 말리오투스가 반응했다.
성치 못한 몸뚱이를 가까스로 일으켰다.
(나도 돕겠소!)
아비를 구하는 여정 아니겠는가?
당연하면서도 절실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이안의 생각은 달랐다.
“그쪽은 몸부터 챙기시는 게 좋겠습니다만.”
(그럴 수는 없소! 아버지를 구하는 일이오. 나와 내 동생 헤르넬리아가 함께 돕겠소! 당신이나 아버지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우리도 나름대로 보탬이…….)
“압니다. 도움이야 되겠죠. 물론 그 동생분, 헤르넬리아 님의 힘도 빌릴 겁니다. 그렇다 해도 말리오투스님은 그냥 쉬고 계시는 편이 좋을 것 같군요.”
단호함이 묻어나는 이안의 어조.
말리오투스가 당혹감을 표했다.
(어, 어째서 그러는 거요? 내가 다쳤기 때문이오? 상관없소. 아버지를 구하는 일이라면 당장 죽더라도 여한이……!)
“그러니 남아계셔야 합니다.”
이안이 설명을 늘어놓았다.
말리오투스가 남아야 하는 이유.
그 까닭은 생각보다 논리적이었다.
자기중심적이며 현실적이기도 했다.
“만약 에반투스 님께서 돌아가셨고, 그 아들과 딸 되시는 말리오투스님과 헤르넬리아 님까지 죽어버린다면, 저한테도 막대한 손해가 일어납니다. 리시스 라덴쥬님의 보고로 들어갈 방법이 사라질 테니까요.”
리시스 라덴쥬의 정신체가 담긴 공간, 그곳으로 진입하기 위해선 리시스 라덴쥬의 혈통을 물려받은 ‘직계 반룡인 후손’이 필요하다. 즉 에반투스와 말리오투스, 헤르넬리아의 브레스가 있어야만 보고 속 리시스 라덴쥬를 만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분의 드래고니안 혈통은 당신들이 전부 아닙니까? 그쪽 할아버지나 아버지한테 숨겨둔 자식이라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 쉽게 죽진 못할 겁니다.”
(하, 할아버지라니…….)
그 표현에 어색함을 느끼는 말리오투스였다. 물론 혈통적인 측면으로만 따지자면 틀린 말도 아니긴 했다. 리시스 라덴쥬란 존재는 분명 할아버지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여분 삼아 쉬고 계십시오.”
(…….)
말리오투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이안 페이지란 희망이나 마찬가지다.
자신의 아버지를 구해줄 유일한 희망.
어찌 그에게 무례를 범하겠는가?
그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랬다.
(……아버지와 동생을 부탁하겠소.)
“현명하십니다.”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어낸 이안.
그가 다시금 페어리 퀸에게 말했다.
“여왕님. 보금자리로 포탈을 열어 드리겠습니다.”
본디 드래곤의 둥지였던 페어리들의 보금자리.
이안이 그곳으로 통하는 포탈을 열었다.
“다녀오세요.”
(흥, 당연한 걸 가지고 생색을 내는구나.)
페어리 퀸은 아까부터 왜 심통이 난 걸까? 이안은 도저히 그녀의 감정 기복을 읽어낼 도리가 없었다. 그저 이렇다면 이렇습니다, 저렇다면 저렇습니다하는 수밖에 없으리라.
“……그럼 저는 도움이 될 만한 분들을 찾아보도록 하죠.”
(에반투스의 그 딸내미 말고도 쓸만한 자가 남았느냐? 상아탑의 마법사란 놈들은 아직 쓸 만한 수준이 아닌 것 같던데. 해봐야 그 칼잡이놈 뿐이려나?)
페어리 퀸의 언급이 실로 정확했다. 아직 상아탑에는 4클래스를 뛰어넘은 마법사가 없었다. 그나마 로난이 진입 직전까지 닿았으며, 몇몇 마법사들도 가능성만 보이고 있었다. 하여 지금부터 찾아갈 존재는 그녀가 언급한 둘, 드래고니안 '헤르넬리아'와 단장 '올리버 레이우드'였다.
(뭐, 알아서 하여라. 준비가 끝나거든 찾아오려무나.)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페어리 퀸은 포탈 너머 자신의 보금자리로, 이안은 텔레포트 주문을 발동시켰다. 목적지는 보르돈 마을, 무작정 헤르넬리아에게 떠넘겼던 바로 그 마을이었다.
“그럼.”
새하얀 빛줄기와 함께 사방의 풍경이 변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저택에 있었으나, 어느덧 로 공국 서쪽 구석진 마을 한복판에 서 있었다. 한데 조금 이상했다.
“…… 잘못 온 건가?”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나 많은 게 변해 버렸다. 전체적으로 발전된 모양새의 마을풍경이 펼쳐졌다. 정착민도 예전보다 많아진 것 같았다.
‘그때 그 마을이 아닌데……?’
작년까지만 해도 누추한 촌구석 마을에 불과했다. 이안이 가짜 교단원들을 몰아내고 조각가 클레반을 빼돌린 뒤, 헤르넬리아에게 통째로 떠넘겼던 당시만 해도 그랬다. 분명 그러했을 지언데, 벌써부터 이렇게 바뀌었다고?
“요, 용의 사자시여!”
마침 지나가던 중년 여인이 이안을 알아봤다.
빵 바구니마저 놓칠 정도로 놀란 눈치였다.
“이크, 죄송합니다.”
그 모습에 이안이 마법을 발동시켰다. 떨어진 빵으로부터 흙먼지만 떼어낸 뒤 바구니 위로 차곡차곡 담아줬다. 마법사가 간단한 마법으로 편리함을 누리는 모습이야 당연한 이치였으나,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신비로운 현상이었다.
“받으십시오. 깨끗해졌을 겁니다.”
“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용의 사자시여!”
깨끗하게 정리된 빵 바구니를 건네받은 중년 여인, 그녀가 감격이라도 한 듯 어깨까지 들썩거렸다. 어째 작년보다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용이라는 존재를 향한 맹목적인 신앙심이 말이다.
‘그래도 때깔은 좋아졌군.’
바뀐 건 마을만이 아니었다. 겨우 입에 풀칠만 하며 살아온 탓에 피골이 상접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나름대로 잘 먹고 잘 자며 생활한 것 같았다. 눈앞 중년 여인의 얼굴만 봐도 느껴졌다.
‘마을이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나?’
구석진 촌구석 마을이 이토록 단기간에 성장하는 방법,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한 가지였다. 헤르넬리아의 마음에 들었고, 그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헤르넬리아 님을 뵈러 왔습니다만, 어디 계시죠?”
“요, 용의 자손이시라면 아마 지금쯤…….”
중년 여인이 가리킨 곳은 마을 바깥.
멀찌감치 떨어진 높다란 야산이었다.
“저 산에 가셨다는 뜻입니까?”
“그, 그렇습니다! 용의 사자시여!”
“흐음.”
산중으로 직접 찾아가야 하는 걸까?
그러한 고민이 떠오르는 그때였다.
이안의 귀에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마을 사람들 전부 배에 기름칠 좀 하겠군요.”
(언제는 못했던 것처럼 얘기하는구나?)
“용의 자손께서 오시기 전까지는 항상 그랬습죠.”
(잊어라. 엉터리들에게 놀아났을 뿐이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야산으로부터 걸어왔다. 날개와 꼬리, 뿔이 달린 여인을 중심으로 몇몇 남자들이 포진되어있었다. 이 마을에서만큼은 제법 젊은 축에 속하는 남자들인 것 같았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속에서 열불이 나는데, 그러다가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따지고 보면 말이죠. 그 못된 놈들 덕분에 자손분께서 직접 저희를 찾아와주시지 않았습니까?”
“저 친구 말이 백번 옳습니다. 원래 저 산도 몬스터 놈들 탓에 함부로 드나들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그 몬스터 놈들이 먼저 알아보고 슬금슬금 물러나더라 이 말입니다!”
(내가 돌봐주는 건 당분간일 뿐이다. 너희들 스스로 자립할 힘을 키워야…….)
“예 예! 물론입죠. 항상 명심하고 있습니다요.”
남자들은 하나같이 땔감이나 물이 담긴 양동이를 짊어지고 있었다. 사냥된 사슴과 멧돼지를 짊어진 자들도 여럿 보였다. 오직 날개와 꼬리가 달린 여인, 헤르넬리아만이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특유의 붉은 머리칼만 찰랑거리며 걸어왔다.
“헤르넬리아 님.”
이안이 그 무리 앞으로 다가섰다. 순간 경계했던 마을의 남자들도 곧 이안을 알아봤다. 용의 자손을 모셔온 용의 사자가 아니던가? 마을의 은인 중 한 명이나 마찬가지였다.
“오오! 용의 사자시여!”
“오랜만에 뵙습니다!”
동시에 그들 사이로 불안함이 맴돌았다.
용의 자손을 손수 모셔온 용의 사자다.
하면 모셔갈 때도 찾아오지 않을까?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은 아니겠지?
그러한 걱정거리가 줄을 이었다.
“잠시 헤르넬리아 님을 빌려 가도록 하겠습니다. 금방 돌려 드릴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넉넉잡아 며칠이면 될 겁니다.”
분위기를 읽어낸 이안이 말했다. 그러자 마을주민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졸지에 물건취급을 당해버린 헤르넬리아만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멋대로 던져놓을 때는 언제고, 이젠 또 잠깐 빌려 가겠다고? 도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빌려 가겠다니?)
“급한 일입니다. 제 손을 잡으십시오.”
(그러니까 갑자기 또 뭐냐구!)
버럭 소리치는 헤르넬리아.
하나 그 반항도 오래가지 못했다.
돌아온 대답은 충분히 심각했으니까.
“에반투스 님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급한 일이니만큼 따라주셨으면 합니다만.”
아버지인 에반투스에게 문제가 생겼다.
그리 말하는데 무슨 토를 달겠는가?
헤르넬리아의 안색이 굳어버렸다.
(대, 대체 무슨 문제가……?)
“일단 가죠. 자세한 건 말리오투스님께 들으시길.”
텔레포트 주문으로 하여금 헤르넬리아를 말리오투스 앞으로 이동시켜준 이안, 그의 다음 목적지는 제2 황실기사단의 첫 번째 연무장이었다. 그곳은 올리버의 주된 수련장이기도 했다.
* * *
제2 황실기사단의 첫 번째 연무장.
이안이 예상했던바 그대로였다.
그곳에 올리버가 있었다.
“흐읍!”
대부분 황태자의 곁에 머물러야 하는 호위기사로서, 누구보다 과정 자체를 중히 여기는 올리버로서, 이렇듯 수련에 매진하는 순간이야말로 휴가나 마찬가지였다.
파앙!
올리버의 검이 연무장 허공을 갈랐다. 아니, 소리만 놓고 보자면 허공을 뭉개버리는 것 같았다. 그가 피로 하여금 이루어낸 '마나 블레이드'는 한 단계 더 진화되어 있었다. 단순히 예리함만 더해줬던 단계를 넘어서, 이제는 마법이 그러하듯 마나의 폭발마저 일으켰다. 실로 놀라운 성취가 아닐 수 없으리라.
“후우우……!”
물론 한계만큼은 여전히 극복할 수 없었다. 어느새 피투성이로 변해버린 올리버의 양손이 그 한계를 보여줬다. 피를 봐야만 비로소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의 한계, 가히 태생적인 한계라고 표현할 수 있을 터.
‘저 한계만 뛰어넘을 수 있다면.’
이를 지켜보던 이안이 생각했다. 지금까지 드문드문 봐왔던 성취도, 나아가 용아병 사태 당시의 활약상으로 미루어볼 때, 현재 올리버의 무위는 5클래스 마법사조차 한 수 접고 들어갈 경지였다. 마법사들끼리도 5클래스란 꿈의 경지이거늘, 칼잡이로선 가히 신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으리라.
‘진짜 칼잡이들의 신이 될지도 모르겠군.’
전생에는 참으로 덧없이 죽었던 재능.
그 재능이 정말 무섭게 성장해 버렸다.
‘심지어 지금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
현재의 경지만으로도 충분히 감탄을 자아낼 만했다. 하나 올리버의 그릇은 여기서 멈출 정도가 아니었다. 저 꾸준한 노력에 약간의 운만 더해진다면, 언급한 그대로 ‘칼잡이들의 신’으로 등극할지도 모르겠다.
‘운이라기보다는, 내 결정에 달린 건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안에게는 올리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보검이 존재한다. 심지어 다양한 실전경험을 쌓아줄 방법까지 두루두루 알고 있다.
‘당장 이번 작전에 포함만 시키더라도…….’
충분히 제 몫을 해냄은 물론이거니와, 생소하고도 강력한 가고일 무리를 상대하며 엄청난 양의 경험치가 축적될 터. 거기다 할리아의 걸작 보검까지 쥐어준다면? 음유시인의 노랫말에나 등장할 법한 ‘전설의 기사’. 그러한 존재가 현신하는 거나 마찬가지이라.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느냐가 문제겠지.’
올리버 레이우드는 믿음직한 자다.
그의 충성스러운 마지막을 봤다.
이번 생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직한 성품, 희생적인 면모.
분명 믿을 수 있는 아군은 맞다.
문제가 있다면 그 믿음의 ‘정도’.
혹은 믿음이 향하는 ‘방향’이다.
‘올리버의 충성은 어디까지나 황태자의 것이니까.’
이안은 강력한 힘을 가진 아군이 필요했다. 동시에 드래곤이나 최초의 마법사 어느 쪽과도 연관이 없는 ‘순수한 아군’이 절실했다. 모든 권속들과 여덟 장인을 제외한다면, 남는 것은 결국 올리버뿐이었다. 그렇기에 고심을 피하기가 어려웠다.
‘…….’
제법 긴 시간 고민에 빠졌던 이안.
어느덧 올리버의 수련도 막바지였다.
‘어디 한 번.’
이안이 숨겼던 기척을 ‘살짝’ 내비쳤다. 물론 그 ‘살짝’조차 어지간한 마법사와 기사들은 알아채기 힘들 정도였지만, 올리버는 달랐다.
“웬 놈……!”
즉시 기척의 방향으로 쏜살처럼 달려들었다.
‘역시’라는 감탄사가 누구보다 어울리는 존재.
그것이 바로 그린리버의 검공, 올리버 레이우드였다.
“……이안 공?”
“연무장에서 뵙는 건 오랜만이네요.”
기척의 주인을 확인한 올리버.
그의 검이 빠르게 거두어졌다.
“어쩐 일이십니까?”
“간만에 이야기나 좀 나누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