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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26화
50. 가고일의 왕(1)
“어떻게 된 겁니까?”
갑작스런 저택의 방문객.
그것은 드래고니안이 맞았다.
가고일을 찾아 나섰던 그들.
다만 에반투스는 아니었다.
그의 아들, ‘말리오투스’였다.
(나도 자세한 것은 모르니라. 정원으로 추락하더니 그대로 기절했어. 깨어나야 뭐라도 물어보든 할 터인데…….)
페어리 퀸이 고개를 살며시 저으며 대답했다. 그녀는 인간의 모습으로 말리오투스를 저택 내부까지 들여놨다.
“상태가 좋지 않군요.”
(그러게 말이다.)
젊은 드래고니안 말리오투스의 육신은 성한 데가 없었다. 아주 격렬한 격투 끝에 도망친 것 같았다. 도대체 어떤 존재가 말리오투스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버렸을까?
(에반투스놈은 또 어디에 있는 건지…….)
불안한 듯 읊조리는 그녀였다. 이미 돌변해버린 스파르토이를 봤다. 심지어 본 드래곤과 융합 후 소멸해버리기까지 했다. 평소 티격태격하긴 했으나 오랜 세월을 알고 지낸 친구사이 아니겠는가?
가뜩이나 마음이 무거웠거늘, 이제는 에반투스의 행방까지 오리무중이라니. 불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으리라.
“이 자손분께서도 저희 기준으로 따지자면 5클래스 상당의 마법사입니다. 5클래스 마법사를 이렇게까지 엉망으로 만들어버릴 존재, 세상에 몇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만.”
말리오투스는 5클래스의 마법사다.
그런 자를 압도할 수 있는 존재.
세상에 얼마나 존재하겠는가?
해봐야 그 아비인 에반투스.
그리고 이안 페이지 본인.
더 높은 곳으로 가자면.
‘드래곤이나 최초의 마법사 정도일 텐데.’
이안의 고민이 깊어질 무렵.
말리오투스가 눈을 떴다.
(크으윽……!)
그는 통증이 심한지 정신을 차리자마자 신음부터 뱉었다. 하나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곧바로 이안부터 찾아내더니 애원하듯 중얼거렸다. 입술 안으로 내뱉을 얘기가 많아 보였다.
(아, 아버지를……! 아버지를 구해 주시…… 쿨럭!)
특유의 푸른 피를 토해내는 말리오투스.
그러면서도 할 말을 멈추지 않았다.
(가고일의 왕이 아버지를……!)
(……뭐? 가고일의 왕?)
가고일의 왕.
이안에겐 생소한 이름이었다. 하나 페어리 퀸은 그 가고일의 왕이란 존재를 아는 듯했다. 안색마저 딱딱하게 굳혔다. 표현상으로는 사라진 가고일의 우두머리쯤인 것 같은데.
(놈이라면 그분들께서 봉인하셨을 텐데?)
(저도 자세한 건 모릅…… 쿨럭! 아버지께서 분명 가고일…… 가고일들의 왕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운 좋게 도망쳤지만, 아버지께서…… 아버지께서 놈들에게……!)
말리오투스가 피를 토하며 소리쳤다.
아들을 지키고자 한 몸 내던진 아비.
에반투스의 모습이 떠오른 탓이었다.
(이안 페이지…….)
“듣고 있습니다.”
이안을 바라보는 말리오투스,
그가 힘겹게 손을 뻗었다.
(바, 받으시오. 아버지께서 목숨 걸고 얻어낸 눈이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신께 전해주라 하셨소. 다른 권속들, 여, 여왕님이나 용아병께서 계신다면 이해가 빠를 거라…… 쿨럭!)
말리오투스가 건넨 물건은 보랏빛의 보석, 바로 ‘가고일의 눈’ 한 쌍이었다. 단 한 마리의 가고일로부터 어렵사리 적출해 온 모양새였다.
(놈들은 빗물받이 산맥…… 가장 높은 봉우리를 중심으로 숨어있었소. 머릿수가 무지막지하더군. 특히 왕이란 자는…… 감히 말하건대, 지금껏 만나봤던 그 누구보다 강했소.)
‘빗물받이 산맥’이라면 이안도 알고 있었다. 대륙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북부 지역, 그러니까 콜드우드 제국의 영토 내에 존재하는 대산맥이니까. 대륙 5대 산맥 중 하나이기도 했다.
(제발…… 제발 부탁하겠소! 아버지를…… 내 아버지를 구해 주시오. 이미 돌아가셨다면 시신이라도, 살아 계신다면 목숨이라도 구명해주시오! 그렇게만 해준다면 내 남은 평생을 이안 페이지, 그대에게 헌신토록 하겠으니 제발……! 쿨럭! 쿨럭!)
말리오투스의 남은 체력이 밑바닥을 보이는 것 같았다. 비록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어 보였으나, 본디 그 생명의 불씨란 언제든 예고 없이 꺼져버리는 법 아니겠는가? 이변이 생기기 전에 쉬도록 해주는 편이 옳았다.
‘듣고 받을 건 다 끝났으니까.’
그리 생각한 이안이 주문을 발동시켰다.
말리오투스를 한숨 재워주기 위함이었다.
“일단 쉬십시오.”
“부디 아버지를…….”
“슬립.”
평소였다면 씨알도 먹히지 않았을 주문.
하지만 지금은 체력적 한계에 놓인 상태다.
그를 어렵지 않게 재워줄 수 있었다.
“그 가고일의 왕이란 게 정확히 뭡니까? 봉인했단 얘기는 또 무엇이고요. 설명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여왕님. 자세할수록 좋습니다.”
말리오투스를 재운 이안이 페어리 퀸에게 물었다.
(……그때는 나도 어렸던 탓에, 자세한 것들은 모른다. 단지 그러한 존재가 있었고, 그분들께서 봉인시켰다는 사실만 알고 있느니라.)
“죽인 것이 아니라, 봉인이라고요?”
(그래. 확실히 봉인으로 기억한다.)
“그 정도로 강한 존재입니까?”
(글쎄, 거기까진 알지 못한다.)
“그러시다면…….”
(아마 기억의 보고 속 그분께 자세한 내막을 여쭐 수 있을 거다. 천여 년 전까지의 기억을 품고 계신 분 아니더냐? 아마 가고일의 눈을 목숨 걸고 가져온 까닭도 그 때문이겠지.)
페어리 퀸의 말에 설득력이 있었다. 주변에 권속들이 있다면 이해가 빠를 거란 에반투스의 전언, 그 말은 실로 정확했다.
‘기억의 보고라…….’
이안은 페어리 퀸에게 최초의 마법사에 관한 얘기를 해주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돌변해버린 용아병 스파르토이, 그리고 본 드래곤이 나타나 자신을 죽이고자 하지 않았던가? 본디 드래곤의 권속이었던 페어리 퀸 또한 경계의 대상, 기억의 보고 속 리시스 라덴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직 내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총 세 가지의 계획 중 마지막, ‘프란 페이지의 행방’을 쫓기 위해서는 과거의 기억과 경험이 반드시 필요할 터. 예컨대 페어리 퀸이나 드래고니안, 보고 속 정신체가 갖고 있는 ‘고대의 기억’ 말이다.
‘여전히 쓸모가 많다.’
고대의 기억을 제외하고도 페어리 퀸은 이안의 가족들에게 헌신적이다. 보고 속 정신체 역시 오래된 기억 속에 머물고 있다. 스파르토이처럼 돌변하지 않을 거라 단언할 순 없겠으나, 적어도 당분간은 써먹을 데가 한두 곳이 아니리라.
‘좀 더 신경을 써서 감시할 수밖에.’
이제 남은 것은 에반투스를 구해주느냐 마느냐다.
이안이 쉽게 이길 수 있는 적이라면 고민할 것도 없었다. 구해주고, 이를 빌미로 무언가 요구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생각보다 강한 적이라면?
자칫 이안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적이라면?
‘신중해서 나쁠 건 없겠지.’
이윽고 판단을 내린 이안.
그가 조용히 읊조렸다.
“바로 만들어야겠군요.”
시간의 보고로 진입하는 열쇠.
이른바 ‘붉은 용의 다섯 숨결.’
그 비약을 제조할 때가 왔다.
“레디오 님.”
레디오는 말리오투스를 눕힌 침실의 뒤편에 서 있었다. 응급처치가 시급했기에 이안보다도 먼저 들어와 있었던 거다.
“오늘 내로 조제하도록 하겠습니다.”
레디오는 눈치가 빨랐다.
곧장 가고일의 눈을 받아 작업실로 향했다.
보고의 열쇠를 조제하기 위함이었다.
(……인간. 내 부탁 하나만 들어다오.)
레디오가 방을 빠져나간 그때.
여왕이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상당히 이례적인 얘기였다.
부탁이라니?
“말씀하세요.”
(시간의 보고로 들어가 그분을 만나거든, 스파르토이에 대하여 여쭈어다오. 에반투스의 상황이 좋지 않으니 여유는 없겠다만, 간략하게라도 말이지. 그래 줄 수 있겠느냐?)
그녀는 스파르토이가 돌변해버린 까닭, 나아가 생사까지 확인하고 싶은 눈치였다. 비록 정신체에 불과하나, 그래도 리시스 라덴쥬라면 무언가 알지 않을까? 그러한 기대감의 결과물이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뭐……?)
“여왕께서는 저와 함께 들어가실 테니까요.”
드래곤의 권속이라면 언제든 스파르토이처럼 돌변해버릴 가능성이 있다. 희박한 확률이라도 안심하기 힘들다. 하여 이안은 당분간 페어리 퀸과 함께 움직일 작정이었다. 그녀 자체로도 훌륭한 보조 마법사였으며, 가족들의 안위야 용용이들이 지켜줄 테니까.
(하, 하지만 나는 네놈의 가족 곁을 지켜야…….)
“당분간은 저와 함께 움직이실 겁니다.”
(……나를 믿지 못하는 모양이로구나.)
직설적인 페어리 퀸의 물음.
이안 역시 직설적으로 대답했다.
“스파르토이 님께서 이 도시를 침공하셨습니다. 어머니를 노렸고, 마지막에는 본 드래곤에게 융합되어 저까지 죽이고자 하셨죠. 그분과 여왕님, 그리고 본 드래곤 사이에는 명백한 공통점이 존재합니다.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시겠죠?”
(그분들, 드래곤이겠지.)
“바로 그렇습니다.”
이안의 대답에 침묵했던 페어리 퀸.
그녀가 곧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합당한 의심이니라. 받아들이도록 하마.)
“너그러이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흥! 인간들은 의심이 너무 많단 말이지.)
“저는 특히 더 많은 편입니다.”
(안다. 아주 피곤한 족속이라니까?)
“거기엔 사연이 좀 있습니다만.”
(듣기 싫다! 언제든 이 몸을 내치고 싶다면,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면 말만 하여라! 지금 당장에라도 돌아갈 테니까!)
“여왕님을 믿습니다. 가능하다면 계속 믿고 싶군요.”
이안의 말에 페어리 퀸이 머뭇거렸다. 계속 믿고 싶다는 대꾸가 거슬리기라도 한 걸까? 쌍방의 침묵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나, 나는 열쇠가 완성될 때까지 내 방에 있겠느니라. 설마 평소에도 네놈 곁에서 감시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편히 쉬십시오.”
(흥!)
그로부터 정확히 반나절 후, 붉은 용의 다섯 숨결이 두 병 만들어졌다.
비록 에반투스의 브레스는 없었으나 아들인 말리오투스의 브레스로 열쇠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 또한 리시스 라덴쥬의 혈통을 이어받은 손자 격이므로 가능한 결과였다
* * *
시간의 보고는 공허하다. 바로 그 공허 속에서 태어났으며, 먼 훗날 공허 속에서 소멸할 드래곤 로드 ‘리시스 라덴쥬’의 ‘정신체’는 본디 지루함이란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된 거다. 그래야만 영겁의 세월을 무난하게 버틸 수 있으니까.
(으으음…….)
하지만 드래곤 로드, 리시스 라덴쥬의 정신체는 태초로부터 물려받은 특성에서 벗어났다. 정확히 따지자면 얼마 전부터, 이안 페이지란 인간을 만난 직후부터 그랬다. 지루함이란 감정이 느껴졌다. 기억의 보고를 지키는 정신체로서의 의무마저 일순간 망각해버릴 정도였다.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거늘…….)
그의 일상은 간단했다. 기억을 열람하고자 하는 일족의 본신이 찾아온다면 열람시켜줬으며, 방문이 없을 경우 잠을 잤다.
드래곤은 인간과 달라 마음만 먹는다면 수백 년을 몰아서 잘 수도 있다. 한데 지금은 잠을 자고 싶지 않았다. ‘졸리지 않다,’ 혹은 ‘잠이 깼다’라는 인간식의 표현이 실로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난감하구나. 난감해.)
그는 계속해서 과거의 기억들을 재생시켰다. 여러 드래곤 일족들, 최초의 마법사, 몇몇 역사적인 전투와 전쟁, 일족간의 사소한 비밀, 훌쩍 커버린 페어리 퀸과 에반투스의 방문, 그리고 ‘이안 페이지’란 인간이 찾아와 흥미롭게 날뛰었던 나날들까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루해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이럴 때 딱 나타나 준다면, 뭐라도 하나 더 챙겨줄…….)
정신체의 생각이 거기까지 닿는 순간.
눈앞으로 자그마한 빛줄기가 그려졌다.
누군가 보고 속으로 들어올 때의 효과.
크기로 봐서 본신이나 동족은 아니었다.
(……!)
재빨리 사방을 어둠으로 물들인 정신체.
그가 평소처럼 똬리를 틀고 누웠다.
관심 없는 척 눈까지 감아버렸다.
“리시스 라덴쥬 님. 도움을 청하고자 왔습니다.”
이안 페이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미소가 지어지는 정신체였다.
(주, 주인님! 소녀도 왔사옵니다.)
페어리 퀸의 목소리까지 들렸다.
흡족한 방문이 아닐 수 없으리라.
“소녀요?”
(시, 시끄럽다. 인간.)
두 조그마한 존재가 주고받는 사이.
정신체의 커다란 눈이 스르르 떠졌다.
(또 왔군.)
심드렁한 어조로 읊조린 정신체.
그가 똬리를 틀었던 몸뚱이부터 풀었다.
그러자 사방에 깔린 어둠 역시 걷어졌다.
(그래, 열람해 볼 기억이라도 생겼는가?)
(주, 주인님! 소녀도 왔사온데…….)
(꼬맹이는 조금 있다가 이야기하도록 하자꾸나.)
주인님과 꼬맹이, 그리고 소녀. 영 적응이 되지 않는 호칭의 파도 속에서 이안이 입을 열었다. 묻고 싶은 바는 지극히 명확했다.
“가고일의 왕, 그 존재에 관한 기억을 제가 열람해 볼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