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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24화 (12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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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24화

    49. 상아탑 의회(1)

    “들어오십시오.”

    상아탑 회의장에 모인 10인의 고위마법사. 그중 제법 젊은 편에 속하는 ‘알버트’가 바깥을 향해 읊조렸다. 의회의 첫 번째 순서는 재판, 불법적인 마법 전수자이자 제국의 공주 '하이리 그린리버’에 대한 마법재판이었다.

    “이쪽으로.”

    상아탑은 국법 처리기관이 아니다. 그 어떤 심문도, 포박도, 까다로운 절차 또한 없다. 그저 고위마법사들의 합동 심문마법으로 거짓과 참만 가려낼 뿐이다.

    “마마께서는 가운데에 앉아주시고, 이번 사안과 관련된 나머지 분들은 저 뒤편 의자에 모두 착석해 주시면 됩니다.”

    알버트의 안내에 따라 공주 하이리, 그리고 그녀에게 불법적인 마법 지도를 행했던 황궁 마법사 케빈, 공주의 친구나 다름없는 하녀들까지 전원 배정된 자리에 착석했다.

    “좋습니다. 그럼 이제…….”

    “잠시.”

    알버트의 말을 끊어낸 이안,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케빈과 하녀들의 곁으로 걸어가 앉았다. 모두가 이해할 수 없는 가운데, 이안이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공주마마의 혐의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 제가 재판을 진행할 순 없겠죠. 로난 님과 데커드님께서 대신 진행해주십시오.”

    갑작스런 이안의 고백.

    고위마법사 로난이 물었다.

    “그,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마마께 마법을 전수해 준 혐의가 있다는 얘깁니다.”

    뜬금없는 얘기에 고위마법사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전후 사정이야 들어봐야 알겠다만, 이미 그 자체로 당혹스러운 상황이었으니까.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런 상황인 거다.

    ‘우리더러 상아탑주를 재판하라고?’

    평범한 상아탑주여도 어렵다.

    하물며 이안 페이지를 재판하라고?

    인간임이 의심되는 경지의 마법사, 백색의 용까지 타고 다니는 존재.

    그런 존재를 앞에 두고 재판?

    제대로 판결이나 내릴 수 있을까?

    심지어 재판의 방식도 문제였다.

    심문마법 자체가 통하지 않을 터.

    이안이라면 파훼하고도 남을 테니까.

    ‘알고 저러는 거야? 모르고 저러는 거야?’

    고위마법사들은 궁금할 따름이었다. 눈앞에 저 어린 상아탑주가 정말 몰라서 이러는 건지, 아니면 아는 데도 이렇게 나오는 건지. 단순히 나이로만 봤을 때는 전자에 해당하겠으나, 지금까지의 여러 행보로 미루어보자면 후자일 것도 같았다.

    “크흠!”

    고위마법사들의 분위기를 살폈던 데커드, 그가 노쇠한 목청을 가다듬으며 환기시켰다. 그는 상아탑의 가장 큰 선배이자 연장자였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이 나서줘야만 했다.

    “탑주님. 아시다시피 상아탑의 재판은 전적으로 고위마법사들의 합동 심문마법에 의지하는 구조가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하나 탑주께서는 다르십니다. 이 늙은이도 잘은 알지 못하지만, 심문마법 정도야 가볍게 무력화시킬 역량이 충분하실 거라고 짐작됩니다. 아, 물론 탑주께서 심문마법을 의도적으로 조작할 거란 얘기는 아닙니다.”

    물론 나이가 많다고 겁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통상적인 수준의 상아탑주라면 모를까, 상대는 그 이안 페이지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꾹 참으며 말문을 이어갔다. 데커드는 나이를 허투루 먹지도, 그 기나긴 세월을 허투루 보내지도 않았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제가 미처 거기까지 고려하지는 못했군요. 까마득한 후배로서 깊이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이안이 예를 차리며 대답했다. 전생이나 이번 생이나 데커드는 모든 마법사의 모범과도 같은 존재였다. 대단한 인격자까진 아니었지만, 충분히 존중받을 만한 어르신이었다.

    “말씀하신 합동 심문마법 파훼, 확실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만, 증명할 방법 역시 없는 것 같군요. 으음, 이를 어찌하면 좋을지…….”

    이안이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어쩌면 고민하는 척일지도 모르겠다.

    “일단 자초지종부터 듣는 것이 순서 아니겠습니까?”

    그때 고위마법사 로난이 나섰다.

    평범한 딸랑거림은 아니었다.

    “탑주께서 본인의 혐의를 인정하셨습니다. 적어도 그 사실을 완전히 은폐하고자 하시지는 않았단 얘기죠. 물론 재판이니만큼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둘 수 있겠으나, 인정하신 혐의에 대한 설명의 기회를 먼저 드리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로난의 말에 제법 설득력이 있었다.

    나머지 고위마법사들도 끄덕거렸다.

    “모두 동의하신다면…….”

    이번에도 분위기를 읽어낸 데커드.

    그가 재판을 계속 진행하기 시작했다.

    “탑주께서는 스스로 인정하신 혐의에 관한 배경을 설명해 주십시오. 어떠한 까닭으로 공주마마의 마법 지도를 도왔는지,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설명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안이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는 거짓을 말할 생각이 없었다.

    단지 사실 중 일부만 얘기할 뿐.

    어째서 나섰느냐고? 간단했다.

    공주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갚을 건 갚아야겠지.’

    공주는 이안의 가족들 도왔다. 용아병들이 쳐들어왔던 그 난리 속에서 올리버와 함께 가족들을 구해줬다. 또한 마지막까지 책임지기도 했다. 그에 대한 보답 중 하나였다.

    ‘이참에 내 양심고백도 좀 하고.’

    또한 일종의 자기 위안이기도 했다. 일전에 언급했듯, 이안은 불법적인 마법전수와 그로 인한 마법사양성을 엄격히 통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지금도 그 신념은 마찬가지였다.

    한데 스스로 신념에 맞지 않는 행위를 일삼았다. 제아무리 이유가 있다 한들, 가치관을 통째로 부정해버린 상황 아니겠는가? 바로 그 찝찝함을 털어내고 싶었다.

    “저는.”

    이안의 감겼던 눈이 열렸다.

    동시에 말문도 열리기 시작했다.

    “마마께서 마법사란 사실을 7년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황궁에서 우연히 목격했던지라, 저만 알고 있었죠. 그때부터 거의 5년을 까맣게 잊고 지냈습니다.”

    돌심장 버섯에 관한 얘기는 뺐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각색이리라.

    “그러던 중, 5황자의 황제 폐하 암살시도 사건 때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만, 저는 상아탑주 허버트의 처형 이후, 5황자 곁에 새로 득세한 자들을 조사했었습니다. 폐하의 호위 기사였던 덤필 모릿, 황성 귀족 오번 파커가 그 핵심이었죠. 그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공주마마의 신분이 필요했습니다. 마법사의 신분으로는 귀족사회에 제대로 스며들기가 어려웠으니까요.”

    드래고니안과 관련된 얘기 역시 빠졌다.

    “마침 저에게는 마법이란 미끼가 있었고, 그 마법을 협조의 대가로 지급했습니다. 상아탑 전체에 공개한 새로운 호흡법부터 몇 가지 약소한 노하우까지. 그리 대단한 것들은 아닙니다만, 불법적인 마법 전수가 있었음은 사실입니다.”

    이안의 발언이 끝났다.

    결코 거짓은 한 점 없는 내용.

    하지만 실제와 조금은 다른 내용.

    찰나의 침묵이 회의장에 맴돌았다.

    “공주마마께 질문을 올리겠습니다.”

    데커드의 목소리가 적막함을 걷어냈다.

    그는 공주 하이리 그린리버에게 말했다.

    “지금 탑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사실인지요?”

    “……그렇습니다.”

    공주 역시 거짓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그녀 또한 이안이 돌심장 버섯을, 드래고니안을 쫓았단 사실은 몰랐으니까. 지금 이안의 발언은 곧 공주가 알고 있는 전부이기도 했다.

    “정확히 어떤 일을 도우셨는지요?”

    “황성귀족 오번 파커가 주최하는 비밀 경매, 그 자리에 구매자로 참가해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부탁대로 경매에 참가했고, 이후 보답으로 호흡법과 몇 가지 조언을 받았습니다.”

    공주의 말이 사실임을 고위마법사들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펼친 합동 심문마법으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물론 바로 옆에 이안이 있긴 했으나, 굳이 조작의 경우를 문제 삼진 않았다. 엄연히 죄를 인정하는 상황 아니겠는가?

    “좋습니다. 계속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후부터는 재판 본래의 취지 그대로였다. 거의 모든 질문이 공주에게 향했다. 공주 역시 성의껏 대답했다. 마법사임을 숨기게 된 배경과 이유, 방법까지 전부. 실로 상당한 시간이 흘렀고, 드디어 끝날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공주마마께 발언권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자유롭게 해주십시오.”

    마지막 자유발언의 기회.

    공주 하이리가 주변을 둘러봤다.

    덤덤한 표정의 황궁 마법사 케빈.

    겁에 질려 떨고 있는 하녀들까지.

    공주가 마음먹은 듯 입술을 뗐다.

    “……저는 엄격하게 금지된 국법을 어긴 죄인입니다. 어떠한 벌이든 달게 받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끝까지 나서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황족이라는 신분으로 받는 어떠한 특혜도 바라지 않습니다. 제국과 상아탑의 규정대로 처리해 주시길 부탁하겠습니다. 다만.”

    덤덤한 어조로 말했던 공주 하이리.

    그녀가 말미에 한마디를 더 붙였다.

    “제가 마법사란 사실을 알면서도 숨겨주신 분들. 여기 계신 케빈 님과 하녀들은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단지 황족이란 신분 아래 강압적으로 짓눌렸을 뿐이지요. 제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면 목이 달아났을 테니까요. 부디 그 특수한 상황을 참작하시어 모든 죄를 저에게만 적용해 주시기를, 상아탑의 모든 마법사 여러분께 간곡히 청하겠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발언은 주변의 보호였다. 그 발언에 마법사 케빈도, 친구나 마찬가지인 하녀들도 당황했다. 실로 고마운 얘기였지만 사실은 달랐다. 그들은 단 한 번도 강압적인 명령을 받아본 바가 없었다. 물론 처음에야 알게 모르게 작용하긴 했으나, 이후부터는 자발적인 침묵이나 마찬가지였다.

    “고, 공주마마! 저희는……!”

    “그만, 발언권은 오직 마마께만 있소이다.”

    “…….”

    다른 이들의 잡음을 끊어버린 데커드.

    그가 노회한 눈으로 이안을 바라봤다.

    가만히 넘어갔어도 되었을 사안이다.

    한데 상아탑주 이안은 굳이 나섰다.

    이유가 뭘까? 단순한 양심의 문제?

    아무래 생각해도 그건 아니었다. 데커드의 눈치와 감으로는 그랬다.

    ‘과한 처분을 원치 않으시는 건가?’

    어떻게 생각해 본들 똑같았다. 결론은 그 부근에만 머물렀다.

    데커드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현 상아탑에서 가장 가까운 동료. 눈치가 빠르고 시류를 잘 타는 자.

    로난의 표정을 읽어보고 싶었다.

    “…….”

    데커드와 로난의 눈빛이 맞닿았다.

    로난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줬다.

    로난 역시 똑같은 생각이었다.

    ‘그런가.’

    데커드는 이제야 확신했다. 상아탑주는 자신이 나섬으로써 재판의 흐름이 어떻게 달라질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역시 그는 마법적 재능만 타고난 어린 상아탑주가 아니었던 거다. 자신의 위치를 활용할 줄 아는, 나쁘게 말하자면 영악하며, 좋게 말하자면 영리한 청년임이 확실했다.

    ‘오히려 그편이 더 낫겠지.’

    갓난아기가 쥔 날카로운 칼자루보다야.

    똑똑한 자가 쥔 칼자루가 더 안전하다.

    적어도 데커드의 판단은 그러했다.

    “본래 상아탑주께서 의회의 의견을 규합한 뒤, 최종적으로 판결을 내리심이 옳으나, 지금은 탑주 본인께서 연루된 상황이므로 제가 판결을 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고위마법사들과 의견을 나눈 데커드.

    그가 결정된 판결문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불법적인 마법 전수 및 마법사 양성은 중죄에 해당하는 사안, 하나 몇 가지 상황의 특수함을 고려하고자 한다. 첫째로 당시 공주 하이리 그린리버가 경계했던 상아탑의 통수권자는 허버트 레온이란 자로, 황제 폐하를 시해하고자 했던 5황자 라그나르 그린리버의 심복이자 간악한 흑마법의 노예였으니, 그 경계는 결과적으로 타당했다.”

    첫 번째 특수함, 그것은 당시의 상아탑이다. 공주는 오라비인 황태자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에 상아탑을 경계했다. 결과적으로 그 경계는 옳은 것이었다.

    “둘째로, 공주 하이리는 숨겨왔던 마법사로서의 힘으로 하여금 어떠한 이득도 취한 바가 확인되지 않았다. 오직 백성들을 보호하고자 오랜 비밀을 공개했으며,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차후 또 다른 사실이 밝혀지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개인적인 욕망으로 마법사임을 숨겼다고 판단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두 번째 특수함, 바로 개인의 욕심이었다. 공주는 마법사의 힘으로 그 어떤 이득이나 욕망을 충족시키지 않았다. 그저 남몰래 마법적 역량만 키웠으며, 종국에는 백성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움직였다. 적어도 확인된 바로는 그것이 전부였다.

    “셋째로, 공주 하이리는 그 한정된 조건 속에서 고위마법사에 해당하는 4클래스를 이루었다. 이는 대륙 전체를 통틀어도 몇 존재하지 않을 재능임이 분명하다. 그러한 바 본 상아탑은 공주 하이리에게 당장 죄를 물기보다는 마지막 기회를 주고자 한다.”

    셋째는 공주의 예상 그대로였다.

    4클래스의 경지를 이루어낸 재능.

    그 재능을 쉬이 벌할 수 없을 거란 판단.

    “예정된 형벌은 5년 후로 유보하되, 그 기간은 철저한 상아탑의 마법사로서 책임을 다하라. 제국 내 발생하는 모든 파견임무에 최우선적으로 파견될 것이며, 상아탑의 개인교습으로 하여금 아카데미에서 배우지 못한 모든 것들을 전수받게 될 터.”

    모자란 지식은 과거 이안이 그랬던 것처럼 상아탑의 개인교습으로 전수해주겠다. 다만 이안과는 달리 처음부터 파견임무에 투입될 것이다. 요약하자면 그런 얘기였다.

    “유보된 형벌의 경중은, 그 모든 과정과 결과를 밑바탕 삼아 5년 후 다시 판결하도록 하겠다. 그러한바 지금 이 순간부터 마법사 하이리 그린리버는, 더 이상 제국의 공주가 아닌 상아탑의 마법사로서 책임을 다하길 명한다.”

    비록 조건부이기는 하나, 새로운 고위마법사의 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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