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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23화 (12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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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23화

48. 도시 복구, 그리고 강화(3)

도시의 복구는 어느덧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다.

타국과 여러 영지에서 보내온 인부들, 도시 내 제국군과 기사단, 그리고 이안과 상아탑의 마법까지 협업을 이룬 결과였다.

“탑주님. 이 물건들은 어디다 둘까요?”

“저쪽 대장간에 두시면 됩니다.”

“이 묘목들은 어찌……?”

“그건 전부 목공소 마당에 두세요.”

“두기만 해도 되는지요?”

“예. 책임자가 따로 있습니다.”

그 무렵, 저택의 확장 및 증축 공사도 슬슬 마무리되어 갔다.

각각 여덟 장인의 작업소와 생활공간이 주된 확장영역이었다.

아직 두 명의 장인이 오지 않았고, 공학자 스람은 본인의 공방을 쓴다곤 하나 그래도 빼먹을 수가 없어 모두 포함했다.

“그럼 이 책들은?”

“그건 재단 사무실로…….”

그 질문에 무의식적으로 대답하던 이안.

그가 질문자를 확인하고는 말을 바꿨다.

“……어머니, 왜 나와 계세요?”

“저기를 좀 보려무나.”

어머니 베네사가 손짓으로 가리킨 곳. 그곳에는 공주 역시 짐을 옮기고 있었다.

전부 재단 사무실에 둘 짐짝이었다.

“마마께서도 하시는데!”

“저분은 생각보다 힘이 세요. 마법사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책이 담긴 상자를 고쳐 잡는 베네사.

그만둘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우리가 쓸 사무실이잖니. 직접 해야지.”

“……그래도 쉬엄쉬엄 하세요.”

이안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동시에 몇 가지 보조마법을 걸어 드렸다.

근력과 체력을 강화시키는 주문이었다.

“음?”

한데 몇몇 주문이 먹혀들지 않았다. 정확히 따지자면 이미 걸려 있었다.

주로 4클래스 이하의 보조마법들.

‘왜지?’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렸던 이안, 그가 곧 누군가를 바라봤다. 저 멀리 짐을 든 채 뒤뚱거리는 공주 하이리의 뒷모습이었다. 아무래도 그녀가 어머니께 걸어준 보조마법인 듯했다.

‘신경 좀 썼군.’

피식 웃었던 이안이 시선을 거뒀다. 천천히 주변 일대를 바라봤다. 단순한 개인의 저택이라 일컫기엔 너무 확장되어 버린 이곳은, 말 그대로 하나의 ‘장원’이나 마찬가지였다.

‘장원이 완성되는 그 순간부터다.’

요 몇 달 사이, 이안은 크게 세 가지 계획을 세워뒀다. 여러 잔가지가 있긴 했으나, 충분히 압축시킬 수 있었다.

‘먼저, 도시와 제국의 재난 방어력 강화.’

가장 급선무의 문제였다. 이번 사태는 전적으로 이안의 책임이 크다. 그렇다고 어디 산골에 틀어박혀 살아갈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홀몸이었다면 가능할지 몰라도, 이번 삶의 그에겐 가족과 사람들이 있다.

이 도시와 제국은 가족과 사람들의 집이며, 자신의 존재로 손해를 입은 몇몇 이들의 터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재난 방어력’은 반드시 강화시켜야만 했다.

‘장인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적어도 이번 사태와 비슷한 수준의 재난을 자체적으로 이겨내거나, 혹은 최대한 오래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재난 방어력.

그 힘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할 터.

‘많은 분야의 체질을 개선할 수 있다.’

상아탑, 기사단, 제국군으로 대변되는 제국의 3대 무력단체. 그들의 병장기와 여타 도구들을 눈에 띄게 진보시킬 수 있다.

어디 그뿐일까? 장인들의 정수가 담긴 여러 건축물과 성벽, 그리고 클레반의 움직이는 조각상까지 다양하다.

‘붐 스틱 대량생산이 가능했다면 좋았을 텐데.’

공학자 스람에게 붐 스틱의 대량생산 여부를 물어본 까닭도 그래서였다.

가능하다면 엄청난 도움이 되었을 테니까.

‘어쩔 수 없지.’

앞선 계획만으로도 충분한 질적 향상을 도모해 볼 수 있으리라. 어쩌면 진보가 아니라 진화의 수준일지도 모르겠다.

‘이참에 상아탑 체계도 손을 봐야겠어.’

이미 새로운 마나 호흡법은 상아탑에 공개했다.

그러나 호흡법만 가지고는 큰 기대를 걸 수 없을 터. 몇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타 영지 5년 파견제의 삭제 및 변경, 아카데미 커리큘럼 수정 등 구상해 둔 바가 많았다.

‘오늘 상아탑 의회에서 바꿀 문제들.’

오늘 밤으로 예정된 상아탑 의회.

총 두 가지 안건을 다룰 예정이었다.

이안이 구상해둔 상아탑의 제도들.

그리고.

‘무허가 마법계승자, 하이리 그린리버의 재판.’

상아탑주의 권한으로 ‘모든 소란이 안정된 뒤 처리하겠노라’ 공표되었던 문제, 바로 공주 하이리가 마법사였다는 사실, 그 배경에 대한 처분이 오늘 상아탑 의회에서 다루어질 차례였다.

‘걱정이 없는 건가, 아니면 없는 척을 하는 건가.’

또 다른 짐을 옮기고자 돌아온 공주.

그녀와 이안의 눈이 잠시간 마주쳤다. 찰나였지만, 감정을 읽어볼 수 있었다.

‘……긴장했군.’

하기야, 일국의 공주로 태어나 처음 받아보는 재판일 거다.

재판뿐만 아니라 참으로 많은 일이 생소하겠지. 분명 그럴 지언데 긴장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제아무리 대단한 강철 심장과 임기응변의 소유자라 해도 불가능하리라.

“…….”

이안의 시선에 잠시 머뭇거렸던 공주 하이리. 그녀가 또 다른 짐을 든 채 페이지 사무실 쪽으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재판이 끝나기 전까지는 말 한마디 섞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였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어깨를 으쓱거린 이안이 공주로부터 시선을 거두었다. 하늘도 바라봤다.

아직 밝다. 그리고 맑다. 상아탑 의회까지는 시간이 남았다. 해야 할 일을 마저 하기에 충분한 여유였다.

‘오늘은 미리 해둬야겠군.’

그리 생각한 이안이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세 가지의 계획 중 ‘두 번째 계획’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본디 밤마다 해왔던 일이지만, 오늘은 의회가 예정된 탓에 미리 해둘 요량이었다.

‘용언서, 아니 언어의 힘 연구.’

달리 말하자면 ‘완벽 정복’.

바로 그것이 두 번째 계획이었다.

장인들과의 약속은 물론 일신의 무력. 두 부분을 충족시켜 줄 수단 아니겠는가?

“신기하단 말이지.”

서재로 돌아와 책을 펼친 이안.

그는 요 며칠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눈앞에 펼쳐진 용언서의 내용. 언어의 힘에 관한 ‘이해력’이었다.

“따로 연구했던 것도 아닌데…….”

최초의 마법사, 프란 페이지를 만났을 때.

황금용이었던 프란 페이지를 만났을 때.

얼마 전, 본 드래곤을 물리친 이후.

그럴 때마다 이해력이 깊어졌다.

언어의 힘에 관한 이해력.

읽고, 쓰고, 말하는 행위.

그 모든 것들이 트였다.

“흐음.”

덕분에 지금은 책에 담긴 내용의 6할 이상을 읽어낼 수 있었다. 쓰기와 말하기 또한 가능했다. 전생에 머물렀던 이해력과 비교하자면, 실로 비교하기 힘든 발전이리라.

‘문제는 여전히 마나지만.’

물론 마나의 ‘양’이 문제가 아니다.

이제부터는 마나의 ‘질’이 문제였다.

‘설마 8클래스의 마나로도 한계가 클 줄은.’

현재 이안은 8클래스 상당의 마나 하트를 보유했다.

보석세공사 데니스의 걸작 귀걸이 덕에 육체적 전성기를 되찾았으니까. 근본적인 성장이 부족했던 마나 하트 또한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이마저도 언어의 힘을 마음껏 쓰기가 힘들다는 점이었다.

‘8클래스 이상, 이를테면 9클래스.’

감히 짐작조차 해볼 수 없는 단계.

결국 그 세계로 입문해야만 했다.

‘지금이 한계는 아니야.’

그렇다.

8클래스가 인간의 한계는 아닐 거다.

이미 그 전례가 존재하지 않던가?

‘최초의 마법사’라는 존재 말이다.

‘그 작자는 나보다 훨씬 강했다. 단지 그 이상의 벽을 뚫지 못해 용의 육신까지 노렸겠지. 즉 8클래스는 한계가 아니야.’

최초의 마법사는 인간의 육신만으로 드래곤과 필적한 경지를 이뤄냈다.

이안 역시 불가능하란 법은 없다. 아직 포기할 단계가 아니라는 거다. 충분히 자력으로 넘어설 수 있을 터.

‘나도 평범한 인간은 아니니까.’

드래곤이든, 최초의 마법사든. 그 존재들이 이안보다 뛰어난 것은 오직 하나, 기나긴 수명으로 축적된 경험밖에 없다.

적어도 이안의 생각으로는 그랬다.

‘근데 내 수준으로 시간을 어떻게 되돌린 거지?’

이쯤 되니 그 부분도 의심이 갔다. 전생의 이안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8클래스였다.

한데 30년이란 세월을 언어의 힘으로 되돌려 버렸다. 그 엄청난 권능을 어찌 다룰 수 있었던 걸까?

‘일회용 주문이라 가능했던 건가?’

당시 사용했던 언어의 힘, 황금용 일족의 언어라고 생각했던 그 힘은 용언서에서 지워졌다.

일회용 주문이었다는 얘기다. 아마 그 일회성과 함께 어떠한 작용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작자의 의도였을 지도 모르겠군.’

본 드래곤이 이안에게 했던 말.

어떻게든 잊고 지내고자 했던 말.

일부러 생각나지 않는 척했던 말.

그 말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여전히 확신할 수 없었다.

장담하기도 힘들었다.

“제기랄.”

지금까지 모든 행보가 본인의 선택이었음을 확신할 수 있느냐는 물음, 프란 페이지의 개입이 조금도 없었음을 장담할 수 있느냐는 물음. 그 대답은 아직도 마찬가지였다.

‘모르겠다.’

바로 그래서였다.

이안이 세운 세 가지 계획.

그 중 마지막에 해당하는 계획.

최초의 마법사이자 골드 드래곤.

어쩌면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존재.

모든 문제와 의구심의 마지막 퍼즐.

‘프란 페이지, 그자를 찾는 것.’

솔직히 아버지라 칭하기는 힘들다.

기억이 없으며, 존재조차 특수하다.

평범한 아버지로 여기기는 어렵다.

그렇게 대하기도 불가능하겠지.

‘아직 이렇다 할 방법은 없지만.’

어머니 베네사조차 프란 페이지에 관한 기억이 적었다.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남편’이었던 프란만을 기억했다. 그 이상의 무언가는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조만간 만나게 되겠지.’

역시나 근거 없는 예감이었다.

한데도 이안은 그렇게 짐작했다.

벌써 두 번이나 만나지 않았던가?

환술 속 최초의 마법사로서.

그리고 황금색의 용으로서.

‘만난다면, 무엇을 물어봐야 할까?’

자신의 아버지가 맞긴 맞느냐고?

대체 무슨 계획들을 꾸미고 있느냐고?

이안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느냐고?

‘대답을 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조차 설득되는 계획이라면?

설득은커녕 반대의 경우라면?

그의 계획을 도와야 할까?

그의 계획을 막아야 할까?

혹은 방관해야 할까?

‘역시 모르겠다.’

이안의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졌다.

다시금 용언서에 정신을 쏟았다.

강제된 집중력이 발휘되었다.

수십 분을 지나 수 시간.

창밖은 어두워졌다.

똑똑!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서재 문을 두들겼다.

페이지 일가의 저택에서 7년째 근무 중인 하녀 중 하나, 이제는 대규모 확장과 중축으로 늘어난 인력 덕에 하녀장으로 승격한 ‘에밀리’의 노크 소리였다.

“탑주님. 일러주셨던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이안이 에밀리에게 일러둔 시간.

상아탑 의회에 참석할 시간이었다.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이안이 어둑한 창밖을 돌아봤다.

요즘 들어 참 빠르게 느껴졌다.

자꾸만 흘러가는 세월 말이다.

“고맙습니다. 계속 일 보세요.”

자리를 털고 일어난 이안. 그가 옷장에 걸어둔 로브를 바라봤다. 하사받았던 ‘미첼 그린리버의 로브’, 그리고 재봉사 베르톨도의 걸작 ‘이안 페이지의 로브’까지 총 두벌이었다.

‘슬슬 반납하긴 해야 할 텐데…….’

미첼 그린리버의 로브는 본디 황실의 전유물이다.

미첼 그린리버가 남긴 유언이 바로 ‘황족 마법사’에게만 물려주라는 것이었으니까. 하여 대여의 형식으로 하사받았던 것이다.

“흐음.”

이안은 고민 끝에 미첼 그린리버의 로브를 꺼냈다. 그러더니 차곡차곡 접어 아공간 주머니 속에 넣어버렸다. 제법 괜찮은 반납의 형식이 떠오른 모양새였다.

“가자.”

걸어가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하여 텔레포트 주문을 읊조렸다.

새하얀 빛줄기가 이안을 삼켰다.

목적지는 상아탑의 회의장이었다.

* * *

이안이 도착한 그린리버 상아탑의 회의장.

이미 모든 고위마법사가 착석해 있었다.

이안은 결코 늦게 도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찌감치 도착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꼴찌참석’을 면치 못했다.

“오셨습니까. 상아탑주님.”

중년의 고위마법사 로난이 가장 먼저 이안을 발견했다. 물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도, 나이 차이가 무색할 정도의 예법을 차리며 인사하는 것도 누구보다 빨랐다.

“오, 오셨습니까. 상아탑주님.”

그 뒤로 다른 이들의 인사가 이어졌다.

그들이 이토록 빠르게 참석한 이유.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이안이 참석하는 회의니까.

그 이안은 빨리 오는 편이니까.

심지어 공간이동까지 하니까.

“일찍들 오셨네요? 제가 처음일 줄 알았는데.”

이안의 가족들은 이안이 익숙하다. 황제 테리 그린리버는 특별한 경우다. 여덟 장인은 이안보다 더한 존재를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외의 나머지, 세상 대부분을 차지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안 페이지란 어떤 존재겠는가?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것저것 준비해 둘 게 많은 지라…….”

“하하, 탑주님을 기다리게 만들 순 없지요.”

존경과 두려움, 즉 경외심의 대상.

어쩌면 그 단어조차 초월해 버린 존재.

사람들에게 이안 페이지는 그러한 존재였다.

“그럼 좀 일찍 시작하도록 하죠.”

아무것도 모르는 듯.

혹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이안이 자신의 자리에 착석했다.

제국력 509년의 첫 상아탑 의회.

그 시작은 약속보다 조금 더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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