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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21화 (12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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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21화

    47. 도시 복구, 그리고 강화(1)

    “자, 받으시오.”

    스람이 남긴 걸작.

    그것들은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

    먼저 첫 번째, 그것은 지팡이라 로브, 귀걸이처럼 몸에 착용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닌 것 같았다. 스람이 용의 심장을 살펴보며 꺼냈던 물건과 일정 부분 비슷했다.

    “아까 사용하셨던……?”

    “아, 그거랑은 다르오. 내가 썼던 놈은 투시용 광선이고.”

    그리 말하며 아까 사용했던 원통의 수정구부터 발동시킨 스람. 직선적인 빛줄기가 이안의 육신을 비췄다. 그러자 이안의 속살, 심지어 뼈와 장기까지 적나라하게 비춰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투시용 광선’. 스람이 말했던 표현 그대로였다.

    “이런 거야 후손분도 가능하실 테고.”

    물론 이안으로서는 그다지 필요한 도구도, 대단한 능력도 아니었다. 먼저 ‘투시’라는 능력 자체의 활용도가 일천하거니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투시 마법이 마법사에게도 존재했다.

    “대신 이놈이 재미난 물건인데.”

    원통 끄트머리의 수정구에서 푸른 빛줄기가 쏘아졌다. 그 대상은 이번에도 이안이었다. 또한, 놀라운 현상이 펼쳐졌다. 이안으로서도 매우 당혹스러운 결과였다.

    “이름은 난쟁이 광선.”

    그 명칭과 효과가 정확하게 일치했다.

    이안의 몸이 눈 깜짝할 새 작아졌으니까.

    절반 크기를 넘어 평범한 성인의 발목까지.

    나아가 성인의 주먹크기로 줄어들어 버렸다.

    “이게 무슨…….”

    이안의 입장에서는 세상 전체가 커져 버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찰나만 그렇게 느꼈을 뿐, 곧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작아진 것은 바로 자신, 그것도 엄청나게 작아졌다.

    “반대쪽 하얀 수정구로 비춰주면.”

    마법 중에도 대상을 이토록 작게 만드는 주문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이안이 개발해내고자 한다면 불가능하지도 않을 테지만, 제법 오랜 시간과 정신력을 소모할 터.

    “바로 원상복구가 되지.”

    이번에는 반대쪽 수정구가 이안을 비췄다. 그러자 작아졌던 육신이 본래대로 돌아왔다. 조금 더 커지거나 덜 커지지도 않았다. ‘원상복구’라는 표현이 딱 맞아떨어졌다.

    “…… 말씀처럼 재미난 물건이긴 하네요.”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끝 부분에 한마디 더 첨언하기도 했다.

    “어떻게 활용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야 상상력에 달린 문제 아니겠소? 나는 이 광선 덕분에 세밀한 작업이 가능해졌지. 뭐 후손분께서야 그쪽으로는 필요하지 않겠소만, 한번 잘 생각해보시구려. 부작용은 없다고 자부할 수 있으니까.”

    상상력에 달린 문제라.

    잠시 고민에 빠졌던 이안.

    ‘가만.’

    이윽고 한 가지를 떠올려냈다.

    떠올랐다면 바로 확인해 봐야겠지.

    “자, 이제 두 번째 녀석을 설명해 드리자면…….”

    “지금 써보아도 되겠습니까?”

    “음?”

    “그 난쟁이 광선 말이죠.”

    이안의 요청에 스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나를 주입하면 되는 겁니까?”

    “그렇게도 사용할 수 있지.”

    총 두 개의 수정구가 달린 원통.

    일명 ‘난쟁이 광선’을 받아든 이안.

    그가 장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잠시 도와주시겠습니까?”

    “갑자기 무엇을 하시려고…….”

    “실험해 볼 것이 좀 있습니다만.”

    갑자기 무슨 실험이란 말인가?

    장인들 모두가 망설이는 그때.

    “제가 도와드릴게요! 제가!”

    클레반이 쾌활한 어조로 나섰다.

    “뭘 어떻게 하면 되나요?”

    “간단합니다. 우선.”

    이안이 난쟁이 광선을 발동시켰다. 그 대상은 기억이 온전치 못한 꼬마 조각가, 클레반이었다. 가뜩이나 작았던 몸뚱이가 이제는 쥐 방울만 해졌다. 그 작은 크기에 순진무구한 외모까지 더해지니 제법 앙증맞았다. 자연스럽기도 자연스러웠다.

    “여기로 한번 들어가 보시겠습니까?”

    ‘여기’란 바로 아공간 주머니.

    그 안쪽으로 통하는 주둥이였다.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란 얘기였다.

    “넵! 그럴게요!”

    이안의 요청에 클레반은 일말의 의심조차 없이 아공간 주머니 쪽으로 접근했다. 정확히는 이안의 손바닥 위에 올라타 주머니 앞까지 배달되었다.

    “우와아!”

    아공간 주머니의 내부는 현실 세상과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밤하늘에 수많은 별이 반짝거리는 형국이었는데, 풍경의 수준으로만 놓고 보자면 상당한 절경이었다.

    “그럼 들어갈게요!”

    이안의 손바닥 위에서 폴짝 뛰어내린 클레반.

    그 작아진 몸뚱이가 주머니로 빨려 들어갔다.

    “흐음.”

    이안은 클레반이 들어가자마자 아공간 주머니의 주둥이를 묵었다. 그러더니 평소처럼 허리춤에 매단 채 한동안 움직였다. 텔레포트와 블링크 주문으로 짧은 거리를 이동하기도 했고, 허공에 붕 떠올랐다가 착지하기도 해봤다.

    “이쯤 됐으면…….”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금 아공간 주머니를 꺼낸 이안.

    풀어진 주둥이 속으로 손을 넣었다.

    보관 중인 물건을 꺼낼 때와 같았다.

    “클레반 님. 가능하시면 손 위로 올라오십시오.”

    대신 물건을 잡고 꺼낼 때처럼 손까지 휘적거리지는 않았다. 다만 주머니 안쪽으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꺼내 드리겠습니다.”

    손에 올라타는 촉감이 느껴졌다.

    그대로 넣었던 손을 쏙 꺼내 올렸다.

    역시나 손바닥 위에 클레반이 있었다.

    “어떠셨습니까?”

    “되게 신기해요!”

    클레반이 신 난 듯 대답했다.

    제법 괜찮은 경험이었던 모양이다.

    “일단 몸이 막 둥둥 떠다니고요. 우음. 다른 물건들도 떠다니던데……, 너무 멀어서 가까이 가보진 못했어요. 숨도 쉴 수 있고, 아, 후손님이 하시는 말씀도 잘 들렸어요. 손도 잘 보였고요.”

    안에서 보고 느낀 점들을 쏟아내기 시작한 클레반. 아공간 주머니 내부에서는 물리적인 법칙이 다르게 적용되는 모양새였다. 추측만이 전부였는데, 이제야 확실해졌다.

    ‘이제 어지간한 물건은 다 넣을 수 있겠군.’

    아공간 주머니의 단점.

    그것은 바로 주둥이의 넓이였다.

    일단 안으로만 들어간다면 크기는 상관없다. 단지 접어 넣을 때가 문제다. 주머니의 표면상 크기는 주먹 네 개 정도가 합쳐진 크기, 주둥이 또한 그만큼의 넓이를 가졌다.

    ‘주둥이보다 넓으면 보관 자체가 불가능했으니까.’

    폭이 좁아 쑥 들어가는 지팡이, 혹은 의복처럼 구겨서 넣을 수 있는 물건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방향과 방식으로 넣어도 주둥이의 크기보다 커다란 물건들.

    ‘예를 들어 용의 심장.’

    저 큼직한 검은색 구체, ‘용의 심장’처럼 형태가 확실하고 커다란 물건은 넣기가 불가능했다. 불과 방금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나 이제부터는 아니리라.

    ‘거기다 숨도 쉴 수 있고, 다른 물건과 접촉도 힘들다면.’

    수많은 사람들까지 손쉽게, 그리고 안전하게 이동시킬 수 있다.

    ‘보호하기도 편하겠고.’

    생각보다 연계되는 활용법이 많았다.

    천천히 고민해 보면 더욱 무궁무진할 터.

    “감사히 받겠습니다.”

    “별말씀을.”

    이안이 스람에게 감사를 건넸다.

    클레반 역시 원상 복구시켜 줬다.

    “그럼 두 번째 걸작의 설명도 듣고 싶군요.”

    “오, 이거야말로 걸작이라 말할 수 있지.”

    두 번째 걸작을 소개하기 시작한 스람.

    그 말처럼 자신만만한 어조가 느껴졌다.

    “붐 스틱이라는 물건이오.”

    “붐 스틱? 그게 뭡니까?”

    ‘붐 스틱’이란 이름의 물건은 큰 각도로 휘어진 부메랑 형태와 비슷했다. 앞으로 구멍 뚫린 원통이 달렸으며, 뒤로는 손잡이처럼 제작된 두툼한 쇳덩이가 돋아났다.

    “내가 지어준 이름이지.”

    다만 난쟁이 광선이나 투시 광선처럼 수정구가 붙진 않았다. 애초에 수정구를 부착할 정도로 큼직한 원통도 아니었다. 해봐야 손가락 두 개보다 조금 더 굵은 정도였으니까.

    “먼저 이 구슬을 끼어놓고…….”

    붐 스틱과 함께 딸려 나온 구슬.

    남색의 빛깔을 가진 구슬이었다.

    “아, 구슬이 아니라 저장기요. 마나저장기.”

    “그렇게 작은 저장기도 있었습니까?”

    “아직 세상에는 선보이지 않았소. 이래 보여도 저장량이 3클래스거든. 족히 십 년은 더 지나야 공개할 법한 저장기지. 지금은 너무 일러.”

    이안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옛날 자신이 고위마법사로 등극하면서 깨뜨렸던 4클래스 저장기를 떠올려보라, 크기가 얼마나 컸던가? 한데 이 조그마한 구슬 따위가 3클래스 상당의 마나를 저장할 수 있다고?

    ‘엄청나군.’

    현재의 마도 공학을 훨씬 앞서나갔다.

    ‘오버 테크놀로지’라는 표현의 표본이리라.

    “자, 계속 보시오. 여기에 이 저장기 구슬을 끼우고, 원통 끝으로 표적을 겨누는 거요. 그리고 여기 달린 이 고리, 그러니까 격발 쇠를 당겨주면…….”

    부메랑 형태의 쇳덩이.

    이른바 ‘붐 스틱’의 손잡이를 잡은 스람.

    그가 곡선 부분의 고리에 검지를 걸었다.

    그리고는 아무도 없는 공간으로 겨누었다.

    피슝!

    스람의 검지가 고리를 당기는 순간, 약간의 소음과 함께 마법이 펼쳐졌다. 갑자기 무슨 마법이냐고? 당연한 표현이었다. 원통으로부터 1클래스에 해당하는 마법 ‘매직 미사일’ 한 구가 빠른 속도로 쏘아졌으니 말이다.

    “연사도 가능하다오.”

    스람이 자랑스레 말하며 격발 쇠를 연타로 당겼다. 그러자 매직 미사일 역시 그 횟수에 해당하는 만큼 발포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보통의 매직 미사일보다 위력적이고 빨랐다.

    “어떻소?”

    “저장기로 발동되는 물건이라면, 마나를 갖지 못한 사람들도 사용할 수 있는 물건입니까? 평범한 사람들 말이죠.”

    “물론.”

    이안이 붐 스틱을 건네받았다.

    다른 방향으로 대단한 물건이었다.

    ‘비록 나한테는 크게 필요하지 않겠지만.’

    이안은 8클래스 대마법사다. 무한대의 마나까지 갖게 되었다. 매직 미사일이 쏘아지는 물건이라고 해봐야 어디에 쓰겠는가? 하나 사용자가 바뀐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붐 스틱, 혹시 대량생산도 가능하십니까?”

    “대량생산?”

    의외의 물음에 갸웃거렸던 스람.

    곧 질문을 이해하더니 대답했다.

    “가능은 하나,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소.”

    “그러시군요.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이해가 빠르시군.”

    이안은 굳이 이유를 묻지 않았다.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으니까.

    ‘시기가 이른 물건이겠지.’

    현재의 마도 공학을 앞서나간 물건.

    붐 스틱은 그중에도 최상이었다.

    아직 시기상조라는 얘기였다.

    “단.”

    이안이 순순히 포기하는 그때.

    첨언을 달아두는 스람이었다.

    “이 세대의 기술자. 그러니까 나 말고, 이 섬의 장인들도 제외하고, 또 존재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처럼 특별한 혜택을 받은 존재가 아닌, 말 그대로 현세대의 기술자. 그런 자가 원리를 파악해낸다면, 해서 모방이나마 할 수 있다면……, 그로 인한 생산은 허용토록 하겠소. 성능의 강화도 마찬가지요.”

    뜻밖의 허락이었다.

    많은 의미가 내포된 허락이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이안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비록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천재는 존재할 테니까.’

    마법의 이안.

    무예의 올리버.

    연금술의 더글라스.

    모두가 현세대의 존재다.

    마도 공학의 천재 역시 존재하지 말란 법은 없으리라.

    “조건을 모두 이행하셨으니, 약속대로 심장의 연구 권한을 드리겠습니다.”

    이안의 확답에 스람이 용의 심장을 바라봤다.

    보면 볼수록 신비롭고도 대단한 물건이었다.

    “내 다른 친구들처럼 후손 분께 딱 맞는 물건을 만들어 드리리다, 그런 장담은 드리지 못하겠소. 다만.”

    한 박자 쉬었던 스람.

    그가 문장을 완성했다.

    “프란 님께 드렸던 장담을 그대로 해드리겠소. 재미난 놈을 하나 만들어 드리지. 물론 어떠한 방식으로든 후손 분께 도움이 되는 선에서 말이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 *

    수만 용아병이 남긴 상처, 도시 곳곳에 새겨진 그 상처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회복되어갔다. 회복세의 명약은 바로 이안 페이지, 바로 그가 펼쳤던 ‘마법’과 ‘이름’의 가치였다.

    “도시 전체가 입은 피해의 규모에 비례한다면, 인명피해는 극히 일부라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미미합니다. 다행스럽게도 말이지요. 이 모든 것이 황태자 전하께서 직접 백성들을…….”

    황제와 황태자에게 올라오는 보고처럼, 인명피해가 짐작 이상으로 미미했다. 이는 이안의 마법이 상당수 적용된 지표였다.

    수만 마리 용아병을 단숨에 토벌시킨 저력, 나아가 백성 하나하나에 배리어 주문까지 걸어준 결과가 아니겠는가?

    “다행은 아니지.”

    “소, 소인이 실언을……! 송구하옵니다!”

    “자네가 송구할 일도 아니야.”

    또한 이안의 이름.

    그 이름값 역시 대단했다.

    수도는 제국의 심장이나 다름없다.

    그 수도의 성벽이 허물어졌을 정도다.

    그럼에도 아무런 움직임조차 없었다.

    타국이든, 제국 내 불순한 세력이든.

    “폐하, 공국 사절단이 국경을 넘었다는 보고입니다.”

    “벌써 말인가? 서신을 받은 지가 며칠 전이거늘.”

    전운이 감돌기는커녕 오히려 지원행렬만 줄을 섰다. 도시 복구와 관련된 물자는 물론 인부들까지 파견해 주기에 이르렀으니까. 이유는 간단했다. 도시가 입은 타격보다도 그 타격을 단번에 수습해버린 마법사, ‘이안 페이지’란 이름 자체에 전쟁 억제력이 생겨버린 까닭이었다. 지금은 알아서 기는 것만이 상책이리라.

    “하이든, 사절단을 맞이해보겠느냐?”

    “황자들을 보내주십시오. 소자는 도시에 남도록 하겠나이다.”

    “특별한 까닭이라도 있는 것이냐?”

    “하이리와 페이지 부인의 일을 지원하고 싶습니다.”

    “으음…….”

    도시의 빠른 회복에는 이안이 공주로부터 모색했던 사유재산의 환원, 지금은 ‘페이지 재단’이라 명명된 공주 하이리와 베네사 페이지의 활약도 컸다. 그들은 당장 수도 내 백성들이 처한 문제부터 개선했다. 황태자 역시 직접 나서기를 선호했다.

    “다른 황자들을 보내주십시오. 아바마마.”

    “외교의 업무 또한 중히 여겨야 한다.”

    “너무 많은 것을…….”

    황제의 말에 황태자가 대답했다.

    “욕심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무슨 뜻이지?”

    “천천히 걷고자 합니다.”

    천천히 걷는 것.

    그것이 황태자의 방침이었다.

    자신에게 내림 방침 말이다.

    “소자의 능력은 아직 협소할 뿐입니다. 그것을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언젠가는 아바마마처럼 많은 분야에 걸쳐 전문가가 되어야 마땅하나, 지금은 소자가 할 수 있는 일에 온 힘을 다하고, 맡길 수 있는 일은 능히 해낼 수 있는 자에게 맡기고자 합니다.”

    그 말에 황제의 눈이 일순간 번쩍거렸다.

    지금 이 말을 황태자가 내뱉었단 말인가?

    자신의 장남이자 늘 걱정거리였던 아들.

    제국의 황태자, 하이든 그린리버가?

    ‘놀랍구나.’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한다.

    전문가에게 업무를 맡긴다.

    결코 나쁘지 않은 방침이다.

    ‘사람만 제대로 쓴다는 조건 하에 말이지.’

    이내 고개를 끄덕거린 황제.

    그가 너그러이 웃으며 말했다.

    “허면 당장 가보아라. 이런 시국일수록 백성의 삶 속에 녹아드는 것도 성군의 업무이자, 아주 값비싼 경험으로 돌아올 터이니.”

    “하오시면 소자, 물러가 보겠나이다.”

    "음."

    이윽고 황태자 하이든이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러자 바깥에서 대기 중이었던 올리버가 재빨리 따라붙었다. 언제나 그랬듯 일정한 거리와 함께 황태자의 뒤를 따랐다.

    “휴우!”

    집무실로부터 멀어진 황태자.

    그가 참았던 숨을 힘껏 내쉬었다.

    그러더니 올리버에게 중얼거렸다.

    “단장! 자네도 봤어야 하는데, 아바마마께서 날 어떤 눈빛으로 보셨는지 말이야! 내 인생을 전부 통틀어서 그토록 흡족하신 눈빛은 처음이셨다니깐?”

    “경하드리옵니다.”

    “하긴, 내가 요새 철 좀 들긴 했지.”

    “그것은…….”

    “응? 왜?”

    “……아무것도 아니옵니다.”

    대충 얼버무린 올리버가 미소를 머금었다. 본인의 입으로 직접 철이 들었다니, 그거야말로 덜 들었다는 증거겠다만. 아직 덜 들었으면 또 어떠하겠는가?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주군이, 지도자로서 가장 긍정적인 길을 나아가고 있단 사실이리라.

    ‘부디 그 걸음, 한순간도 멈추지 마시길.’

    신하된 자로서 간곡한 염원과 함께.

    황태자의 뒤를 따르는 올리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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