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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18화 (118/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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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18화

    45. 진실, 혹은 거짓(1)

    뼛조각은 곧 일정한 형상을 이루었다.

    스파르토이조차 산산이 부서지며 형상의 빚어짐에 일조했다. 그 결과 네 개의 다리를 가진 몸뚱이가, 뿔이 돋아난 파충류의 두개골이, 흉악한 날개와 꼬리까지 빚어졌다. 이는 명백한 ‘드래곤’의 형상이었다.

    뼛조각으로 이루어졌음에도 특유의 위용과 위압감은 그대로였다.

    ‘본 드래곤……?’

    본 드래곤.

    뼈로 이루어진 용.

    굳이 이름을 부르자면 그러했다.

    그 이름이 무엇보다도 어울렸다.

    (페이지의 어린 싹이여.)

    본 드래곤의 형상을 이루어낸 존재.

    놈은 더 이상 느릿하게 말하지 않았다.

    스파르토이의 자아가 아닌 것 같았다.

    (그대들은 아직도, 우리 일족의 육신을 탐내는가?)

    본 드래곤은 단순한 형상이 아니었다.

    독자적인 자아와 기억을 가진 듯 보였다.

    “……뭐라고?”

    이안이 침착하게 되물었다. 하지만 그 속으로는 수만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먼저 놈의 압도적인 힘과 살기가 피부로 느껴졌다. 장인들의 아티펙트를 착용한 지금조차 장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더욱 중요한 것은…….

    ‘여기서 싸움을 시작할 순 없다.’

    저 무지막지한 존재와 자신이 격돌한다면? 아마 이 근처는 풍비박살이 나버릴 거다. 수도 그린리버디움부터 일대의 영지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길 터.

    ‘일단 이 근처부터 벗어나야 해.’

    문제는 그것이었다.

    대체 어디로 벗어난단 말인가?

    모든 곳에 백성들의 터전이 있다.

    대륙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산다.

    버려진 땅이라고 해봐야 협소할 뿐.

    ‘놈을 어떻게, 어디로 유인해야 하지?’

    이안의 고민이 깊어질 무렵.

    본 드래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놈도 당장 공격할 기세는 아닌 것 같았다.

    (그 조악한 몸뚱이가 아직도 불만족스러운가?)

    놈의 어조는 어떠한 확신으로 가득했다.

    ‘육신을 탐낸다?’

    놈의 그 확신을 정리하자면 이랬다.

    프란 페이지가 ‘용의 육신’을 탐낸다.

    분명 비슷한 얘기를 장인들에게 들었다.

    다만 그들은 ‘순수한 동경’이라 했을 뿐.

    약간의 차이가 존재했다.

    ‘종이 한 장 차이긴 한데.’

    무언가 퍼즐이 맞춰져가는 느낌이었다.

    조금 더 대화를 나눠볼 필요가 느껴졌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이안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그는 보통 상대가 수천 년을 살아온 존재라면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곤 했다.

    하나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리 하기가 힘들었다.

    “난 당신들의 육신을 탐낸 적이 없어. 아무래도 내 아버지와 생긴 문제를 말하는 것 같은데, 그 프란 페이지라는 존재. 최초의 마법사라고 불리는 인간과 나는 일면식조차 없다.”

    이안은 진실을 말했다. 환술 속에서 본 적은 있으나, 그것이 제대로 된 일면식은 아니었으니까. 아버지와 아들로서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허튼소리.)

    하지만 본 드래곤의 반응은 냉랭했다.

    그는 이안의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 자가 언어의 힘을 탐닉하고 주어진 시간까지 거슬렀는가? 일족의 권속들을 찾아내 복종시켰는가? 그뿐만이 아니지. 그대는 기억의 보고에 들어가 일족의 기억을 엿보았다. 프란 페이지가 남긴 유산마저 찾아냈다. 지금 몸뚱이에 걸친 그 조잡한 쓰레기들, 그것들이야말로 프란 페이지의 유산이 아닌가?)

    드래곤의 안광이 이안을 위아래로 훑었다.

    아티펙트 로브와 지팡이, 장갑과 귀걸이.

    아마 프란의 유산이란 이것들을 뜻하리라.

    ‘이놈도 그 황금용과 똑같다.’

    심지어 이안의 일거수일투족을 꿰고 있었다. 라그나르를 처리할 때 나타났던 골드 드래곤과 비슷했다. 아니, 똑같았다.

    ‘내 정보를 돌려보기라도 하는 거야 뭐야?’

    어째 나타나는 드래곤마다 이안을 안다. 천 년 전 기억에 갇힌 드래곤 로드, 리시스 라덴쥬의 정신체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놈들 사이에서는 꽤 인기가 있는 모양인가보다.

    ‘혹은 경계의 대상이거나.’

    아무래도 그쪽이 더 유력하겠지.

    문제가 있다면 서로 다르다는 거다.

    골드 드래곤과 저 본 드래곤의 목적이.

    ‘그 황금용은 나에게 경고를 하고자 왔었어. 시간을 되돌린 부작용, 시간의 수호를 운운했지. 나를 제거하기보단 보호하려는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이놈은…….’

    그랬던 골드 드래곤에 비해, 본 드래곤은 명백한 살기가 느껴졌다.

    용아병 부대로 페이지의 성씨를 가진 모두를 제거하고자 했으며, 그에 실패하자 직접 강림하기까지 했다.

    ‘똑같이 나를 주목하고 있지만, 대응은 다르다.’

    세상 어딘가에 생존해있을 드래곤.

    놈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다른 걸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리송했다.

    “……그러니까.”

    고민을 멈춘 이안이 입을 열었다.

    조금 더 대화해 볼 필요가 느껴졌다.

    “내가 했던 선택들이 전부 드래곤의 육신을 갖기 위한 준비였다, 당신들의 눈에는 그런 식으로 비춰진단 건가?”

    (틀렸는가?)

    “틀렸지.”

    이안이 고개를 저었다.

    어이가 다 없을 지경이었다.

    오해도 이런 오해가 없으리라.

    오죽하면 억울함까지 느껴질까?

    “아주 제멋대로구만.”

    문제는 이 결백함을 어찌 알리냐는 거다.

    아니, 결백함을 알린다 하여 변하는 것이 있냐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으로 미루어보건대, 저 본 드래곤이란 존재는 상당히 극단적인 놈이다. 차분한 대화가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았다.

    “먼저 묻겠는데, 그쪽이 허락하다면 모든 것을 하나하나 설명해줄 수도 있어.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선택들과 프란 페이지, 그리고 드래곤의 육신과 관련된 문제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지. 혹시 들어볼 의향이 있나?”

    이안의 침착한 물음.

    본 드래곤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 위선자와 똑같군. 세치 혀를 잘도 놀렸지. 언제고 스승이자 아군인 척 기만했지만, 뒤로는 육신을 빼앗고자 추악하고 더러운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참으로 구구절절한 이야기.

    하나 그 뜻은 간단했다.

    (페이지의 어린 싹이여. 그대의 입에서 그자와 똑같은 위선의 냄새가, 비틀린 욕망의 악취가 진동을 하는구나. 그 추악한 싹이 더 자라나기 전에, 도려내도록 하겠노라.)

    이야기를 나눠볼 생각이 전혀 없다.

    이안이 건넨 협상은 결렬이었다.

    (이것이 나의 대답이며, 찾아온 까닭이다.)

    “흐음.”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말귀는 통하지 않았다.

    물론 진즉에 알아채고 있었다.

    “그럴 줄 알았어.”

    하여 미리 준비를 해뒀다.

    구구절절한 얘기가 도움이 됐다.

    그만큼 시간도 넉넉했으니 말이다.

    “일단 장소부터 옮기자.”

    (싹을 잘라내는데 장소 따위는…….)

    “부탁하는 거 아니야.”

    한쪽 발을 쿵 내리찍은 이안, 그러자 푸른빛 술식이 사방으로 널따랗게 새겨졌다. 그 술식은 곧 원형의 홀을 형성시키기 시작했는데, 이는 8클래스의 주문 ‘워프 게이트’였다. 저 거대한 본 드래곤조차 통과할 수 있는 포탈이 땅 위로 생성된 거다.

    “따라와.”

    이안은 여유를 주지 않았다.

    곧장 포탈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 포탈의 건너편은 ‘두드리는 섬.’

    죽지 못해 사는 장인들의 터전이었다.

    “후, 후손님……?”

    장인들 또한 허공에 나타난 포탈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곳으로부터 이안의 모습이 드러나자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으나.

    “으응……?”

    “뭐, 뭐야 저건?”

    연이어 나타난 본 드래곤의 두개골을 보고는 일동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 두개골뿐일까? 거대한 몸뚱이와 날개, 꼬리 끝까지 차례차례 포탈 밖으로 빠져나왔다. 나름대로 커다란 몸집을 자랑하는 용용이조차 비교가 불허할 정도의 덩치였다.

    “떠오르는 곳이 여기밖에 없어서.”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미안하게 됐습니다.”

    이안이 두드리는 섬을 전투의 장소로 선택한 이유, 간단했다. 먼저 두드리는 섬은 머나먼 바다 한복판이다.

    대규모의 마법이 펼쳐져도 인명이나 재산피해가 일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이곳의 주민이나 마찬가지인 장인들은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는 존재다. 오히려 죽임을 당한다면 만족할 사람들 아니겠는가?

    ‘당장 올 수 있는 최적의 장소.’

    포탈 역시 가본 곳만 연결이 가능했다.

    두드리는 섬을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크크큭…….)

    그때 나지막한 웃음이 들려왔다.

    본 드래곤이 흘린 웃음소리였다.

    가소롭다는 듯 큭큭거리기에 이르렀다.

    (이 땅, 기억이 나는군.)

    섬의 허공으로 날아오른 본 드래곤.

    놈은 두드리는 섬을 아는 듯 중얼거렸다.

    (그 위선자가 만든 둥지인가?)

    “둥지?”

    (그자는 우리의 육신을 취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진정한 용의 일족으로서 인정받길 원했지. 우리처럼 둥지를 짓고, 독자적인 일족을 번성시키고자 했다.)

    잠시 말문을 멈췄던 본 드래곤.

    곧이어 충격적인 한마디가 이어졌다.

    (황금용 일족.)

    “……뭐?”

    (그 위선자가 스스로에게 부여했던 이름이다.)

    이안의 머리가 일순간 혼란스러워졌다. 너무 갑작스러운 얘기였다. 프란 페이지, 최초의 마법사, 어쩌면 자신의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존재. 그 존재가 심지어 황금용이기도 했다고?

    ‘도대체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혼란만 늘어났다.

    빠져나갈 수 없는 늪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관여된 걸까?

    일말 갈피조차 잡히지 않았다.

    (페이지의 어린 싹이여. 나는 그대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게 아니다. 우리의 육신을 탐낸 적이 없다는 말도, 프란 페이지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말도 모두 믿어줄 수 있다. 다만, 그것은 그대의 생각에 불과할 뿐.)

    잠시 말문을 멈췄던 본 드래곤.

    그가 계속해서 말문을 이어갔다.

    (돌이켜보라. 그리고 대답해보아라. 지금껏 걸어온 모든 행보가 스스로의 의지였음을 확신할 수 있는가? 다른 누군가의 의도대로 놀아난 것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겠는가?)

    이안이 방금 전부터 떠올렸던 생각, 프란 페이지가 황금용이었다는 언급을 듣고부터 품기 시작했던 의문. 본 드래곤의 질문은 바로 그 의중을 정확하게 찔러들어왔다.

    (아마 확신할 수 없겠지.)

    “…….”

    (증명할 수도 없을 터.)

    “…….”

    (그것이 내가, 싹을 자르려는 까닭이다.)

    할 말을 모두 끝마친 본 드래곤.

    그가 하늘 높은 곳으로 날아올랐다.

    또한 입 안 가득 머금기 시작했다.

    파멸적으로 불타오르는 마나의 기운.

    진짜배기 ‘드래곤 브레스’를 말이다.

    (고통 없이 끝내주도록 하마.)

    고통 없이 끝내주겠다.

    드래곤의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놈이 머금은 검붉은색의 드래곤 브레스.

    그 기운에 담긴 파괴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살이 찢겨나갈 기세였다.

    이 커다란 섬쯤이야 먼지로 만들어버릴 기세였다.

    (다음 생에는 부디, 헛된 싹으로 틔워지지 말도록.)

    본 드래곤의 진심어린 한마디와 함께.

    검붉은 브레스가 섬 전체를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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