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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17화 (117/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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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17화

    44. 8클래스 마법사의 복귀(2)

    파직! 파지지직! 파지직-!

    그것은 표현 그대로 ‘지팡이’였다. 뇌전의 기운이 하나로 모여 거대한 원기둥 형상을 이루었다.

    마치 하늘 너머에 존재하는 신이, 자신의 지팡이 끝으로 인간 세상을 쿡 찔러보는 모양새였다. 그만큼 거대했으며, 또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용아병의 숫자, 그리고 각각의 위치.’

    이안의 두뇌 회전에 본격적인 가속도가 붙었다. 마나의 무한한 공급이 두뇌를 최대한으로 활성화시킨 결과였다. 단순히 빠르다고 표현하기가 무색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 버린 연산능력, 그리고 기억능력이었다.

    ‘오차범위는 없다.’

    모든 계산은 끝났다.

    이안이 두 손을 들어올렸다.

    “분열하라.”

    이안 스스로에게만 들릴 법한 목소리.

    그럼에도 신의 지팡이가 반응을 보였다.

    하나의 원기둥을 이루었던 뇌전의 기운.

    그 거대한 지팡이가 분열하기 시작했다.

    수 갈래, 수십 갈래, 수백 갈래, 수천 갈래.

    종국에는 수만 갈래의 번개에 이르기까지.

    “한 놈에 한 발씩.”

    그렇다. 이안은 도시안팎 용아병들의 머릿수에 맞춰 신의 지팡이를 수만 갈래로 분열시켰다. 방금 읊조린 그대로 한 놈의 머리통에 한 발씩 꽂아놓을 수 있도록 말이다.

    “가자.”

    명령은 간단했다. 하나 그 결과는 결코 간단하지 못했다.

    수만 갈래로 분열된 번개, 그것들은 곧 수만 갈래의 ‘낙뢰’가 되어 동시다발적으로 떨어졌다. 겉보기론 도시 전체에 종말이라도 내리는 듯 파멸적인 광경이었으나, 실상은 저마다의 목표가 명확했다.

    콰광! 쾅! 콰과광! 콰쾅!

    낙뢰의 정확도는 가히 완벽에 가까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성벽을 기어오르던.

    도시 내 백성들을 포위하고 위협하던.

    굳게 닫힌 대피소 앞을 어슬렁거리던.

    상아탑의 마법사들과 대치중이었던.

    거리를 제 집처럼 활보하고 다녔던.

    수많은 병사들에게 견제를 당하던.

    그 모든 용아병의 두개골을 노렸고.

    (크어어어어어-!)

    또한 소름끼치도록 정확했다.

    단 한 발의 빗나감조차 없었다.

    수만 마리 용아병들의 단말마, 그 괴성이 한순간 울려 펴졌다.

    물론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마법이었다. 생을 통틀어 가장 광범위하면서도 극한의 집중을 요했던, 심지어 번개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단일 주문의 파괴력을 뛰어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숨이 차기는커녕, 일말 현기증이나 비틀거림조차 없었다.

    “심하네.”

    이안이 제 손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 시선은 점점 다른 곳으로 번졌다.

    장인에게 받아온 새로운 아티펙트들.

    먼저 목수 제르비오에게 받은 지팡이.

    ‘주문의 효과를 보정해 준다더니.’

    그 지팡이의 효과는 실로 막강했다.

    애초에 수만 갈래로 분열된 번개다.

    위력 또한 수만으로 갈라졌단 뜻이다.

    그런데도 엄청난 파괴력을 선보였다.

    ‘이건 보정이 아니라 진화 수준이군.’

    혀를 내두른 이안의 시선이 지팡이로부터 벗어났다.

    대신 양손을 보호 중인 장갑으로 향했다. 베르톨도에게 맡겼던 마법의 비단, 그 푸른색 비단으로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신제품이었다. 심지어 아공간 주머니 속에 한 쌍이 더 있었다.

    ‘당장은 도움 받은 게 없지만.’

    장갑의 힘은 마법과 전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진 않았다. 그런데도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 장갑을 착용한 이상 이안은 추운 곳에 가도 떨지 않으며, 더운 곳에 가도 더위를 느끼지 않는다. 심지어 어지간한 불에는 화상을 입지 않는데다가, 그 반대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라고 한다.

    확인된 바는 없으나, 베르톨도의 설명이 그랬다.

    ‘조만간 유용하게 써먹을 때가 올 거야.’

    다음은 역시나 푸른색 로브였다.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무려 무한대의 마나가 아니겠는가?

    이안이 방금까지 펼쳤던 최고위 마법들.

    그 마법 쇼에 혁혁한 공을 세운 아티펙트.

    그것이 바로 ‘이안 페이지의 로브’였다.

    ‘이 로브가 없었다면…….’

    도시 하늘에 먹구름을 잔뜩 깔아둔다.

    도시 내 백성과 용아병들을 구분한다.

    구분된 사람들에게 보호막을 씌운다.

    구분된 적들에게는 번개를 떨군다.

    일련의 과정에 한 톨 오차도 없다.

    이 마법 쇼에 로브가 없었다면?

    ‘보호막 씌우다가 기절했겠지.’

    이는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전생의 이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견뎌낼 만한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역시…….’

    이안이 왼손을 들어 귓볼을 툭 쳤다.

    그곳에 걸린 생소한 귀걸이 한짝.

    ‘이거야말로 물건이다.’

    보랏빛 보석으로 만들어진 피어스 형태의 귀걸이, 그 보석세공사 데니스의 결작이야말로 엄청난 물건이었다. 이안조차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를 단숨에 해결시켜준 은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어떤 능력을 가졌느냐?

    말로 표현하자면 간단했다.

    ‘육신의 전성기.’

    무려 육신의 전성기를 유지시켜준다. 겉으로 드러나는 피부부터 근육, 뼈, 두뇌, 장기 등 세월이 흐를수록 나약해져가는 몸뚱이가 항시 전성기의 상태를 유지한단 얘기다. 적어도 귀걸이를 착용한 그 시간만큼은 말이다.

    ‘설마 마나하트도 포함될 줄이야.’

    덕분에 아직 덜 자랐던 마나하트, 그조차도 귀걸이의 힘으로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제 이안의 심장 속 자그마한 핵, 마나하트는 다 자란 성년의 것과 마찬가지였다. 인즉.

    ‘8클래스 마법사.’

    완벽하게 돌아온 것이다.

    전생의 자신이 이룩했던 경지.

    8클래스 마법사, 이안 페이지로.

    명백한 ‘8클래스 마법사의 복귀’였다.

    “후우…….”

    천천히 땅 아래로 내려온 이안.

    그가 곧장 어머니에게 향했다.

    레디오와 더글라스의 상태도 살폈다.

    “다치신 곳은 없으세요?”

    "멀쩡하단다."

    베네사가 간단하게 몸을 움직여보였다.

    품에 숨긴 페어리 퀸이 드러날까 조심스러웠다.

    두 모자는 주변을 의식해 페어리 퀸을 고양이로서의 이름, 에스펠로 불렀다.

    "이게 다 공주 마마와 올리버 경, 황태자 전하. 그리고…… 에스펠 덕분이야. 에스펠이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쯤 저승에 있었을지도 모르겠구나."

    이는 사실이었다. 이안의 저택에 몰려들었던 수십 마리의 용아병 껍데기, 놈들을 혈혈단신으로 물리친 당사자가 바로 페어리 퀸이었으니까.

    “에스펠은…….”

    (나는 괜찮다. 인간.)

    이안의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페어리 퀸의 목소리였다.

    평소와 같은 카랑카랑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넘쳐흘렀던 기력도 바닥을 보인 듯 매가리가 없었다.

    (묻고 싶은 것이 많겠지. 하지만 나도 해줄 말은 없느니라. 어째서 스파르토이가 저렇게 된 건지, 이게 다 어떻게 된 사단인 건지 나도 알 수가…… 콜록!)

    여왕은 대화를 나눌 상태가 아니었다.

    아는 바도 없는 것 같았다.

    역시 방법은 하나뿐.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봐야겠군.’

    이안은 도시를 침공했던 수만 마리의 용아병 껍데기 중 한 마리만 살려뒀다. 여전히 도시 바깥에서 꼼짝하지 않는 용아병의 본체, 스파르토이가 그 대상이었다.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결정을 내린 이안.

    그가 먼저 공주에게 말했다.

    뒷수습을 맡기기 위함이었다.

    “스승님……!”

    공주의 눈가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비록 내색하지는 않았으나, 방금 전 괴물들에게 포위당했던 상황은 그야말로 절망의 끝자락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죽임을 당하는 건가 싶었을 터, 임기응변으로 꾹 참아냈을 뿐, 그 찰나가 지옥과도 같았으리라.

    “도시를 침범했던 괴물들은 한 마리도 남김없이 처리했습니다. 더 이상 사람들을 대피시킬 필요는 없을 겁니다. 이 사실을 도시 전체에 알리시고, 속히 수습에 나서십시오.”

    “스승님께서는……?”

    “저는 저 나름대로 이 사태의 원인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짚이는 부분이 몇 가지가 있어서 말이죠.”

    제자에게 한마디 따뜻한 말이라도 건넬 법 하건만, 이안은 계속해서 사무적인 말만 늘어놓았다. 공주도 크게 기대하진 않았는지 고개만 끄덕였다. 이안의 말대로 수습이 시급했으니까.

    “아.”

    그러던 이안이 무언가 생각난 듯 말문을 덧붙였다.

    “혹시 누군가 공주마마의 마법을 문제 삼는다면, 그 문제는 모든 상황이 수습된 이후 처리하기로 했음을 상아탑주로서 명하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보패를 건넨 이안.

    상아탑주를 상징하는 보패였다.

    “그걸 보이면 얘기가 빠를 겁니다.”

    “……알겠어요.”

    공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마법사임을 숨겨야한다는 것.

    이제야 떠오른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었잖아.’

    그럼에도 공주는 후회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사태가 벌어졌고, 자신은 4클래스 마법사로서 그 사태를 막아내고자 했을 뿐이었다.

    덕분에 많은 백성들을 구했으며, 이안의 가족들도 지켜냈다. 이를 어찌 일신의 안위 따위와 비교한단 말인가?

    ‘이제 내 주변만 지켜낸다면…….’

    다만 자신이 마법사임을 숨겨줬던 주변 사람들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을 지켜낼 수단이 필요했다. 마침 그녀는 4클래스의 경지를 달성한 마법사, 어떻게든 모두를 지켜낼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백성들을 지키고자 내리신 결단임을 압니다.”

    그때 이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전히 사무적인 말투와 행동.

    하나 내용만큼은 달랐다.

    “충분히 참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현재의 상황을 충분히 참작해주겠다.

    공주로서는 단비와도 같은 한마디였다.

    "그럼."

    신하의 예를 갖춰보였던 이안.

    그가 텔레포트 주문을 발동시켰다.

    목적지는 그린리버디움의 바깥.

    스파르토이가 위치한 자리였다.

    * * *

    모든 용아병 부대를 지휘했던 스파르토이, 그가 홀로 남은 채 우두커니 서있었다. 수만 마리 부하들이 한순간에 박살 나버렸다.

    한데도 도망치거나 후속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하늘만 멀뚱멀뚱 바라봤다. 마치 누군가의 명령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스파르토이.”

    그 앞으로 새하얀 빛줄기가 떨어졌다.

    빛은 곧 완연한 인간의 형상을 이루었다.

    푸른 로브의 마법사, 이안 페이지였다.

    “얘기 좀 나눠볼까?”

    그 물음에도 용아병의 본체.

    스파르토이는 반응하지 않았다.

    (프란…… 페이지의…… 핏줄…….)

    대신 느릿한 어조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빈 껍데기들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제거…… 해야 할…… 존재…….)

    스파르토이의 말이 계속됨과 동시에.

    달그락!

    바닥에 널린 뼛조각이 스스로 달그락거렸다. 뿐만 아니라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법일까? 아니, 딱히 마나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분들의…… 뜻에…… 따라…….)

    비단 근처의 뼛조각만이 아니었다.

    도시에 나뒹구는 수만 용아병들의 잔해.

    그 뼛조각 전체가 스파르토이의 머리 위로.

    아까부터 올려다봤던 하늘에 몰려들었다.

    (어린…… 싹부터…… 자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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