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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15화 (11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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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15화

43. 내가 할 수 있는 일(1)

(꺄아악!)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페어리 퀸, 그녀의 조막만한 몸뚱이가 대저택 정원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야말로 만신창이였다.

(스, 스파르토이, 네가…… 네가 왜……?)

페어리 퀸이 힘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택의 담장은 군데군데 허물어졌고, 황금빛 안광을 번뜩거리는 용아병의 빈껍데기들이 사방으로 몰려들었다.

그녀는 몰려든 마흔 마리의 용아병 중 서른일곱 마리를 해치웠으나, 이젠 손가락 하나 까닥거릴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한계에 도달한 거다.

(그 눈은 대체…….)

페어리 퀸은 이해할 수 없었다. 저 수많은 용아병들이 왜 인간의 도시를 침공하고 있으며, 어째서 같은 권속인 페어리 퀸 자신까지 공격을 하는 것인지, 게다가 저 황금빛 안광은 또 무어란 말인가? 스파르토이의 영혼은 분명 푸른색이다. 안광 또한 푸른색을 띄어야할 터.

(우리의…… 임무…….)

용아병 껍데기가 페어리 퀸에게 다가왔다.

(관련된…… 존재의…… 말살…….)

놈이 손에 쥔 창날을 번쩍 들어올렸다.

(이, 이대로 죽을 수는……!)

그녀가 어렵사리 몸을 일으켰다.

그마저도 비틀거리기 일쑤였다.

더는 맞서 싸우기란 불가능했다.

창날을 피해낼 여력조차 없었다.

“이거나 처먹어라!”

그때였다.

레디오의 외침이 들려왔다.

동시에 약병 하나가 던져졌다.

표적은 명백한 용아병 껍데기였다.

콰아아앙!

용아병 껍데기의 뒤통수로 날아든 화염병이 굵직한 폭발을 일으켰다. 레디오와 더글라스가 만든 ‘특제 화염병’이었다. 위력이 제법 강한 모양인지 용아병 껍데기도 주춤주춤 물러났다.

“여왕님!”

그사이 달려온 이안의 어머니, 베네사가 재빨리 페어리 퀸을 안고 빠져나왔다. 그 모습을 확인한 레디오와 더글라스도 준비해온 화염병을 난사했다.

콰아앙! 쾅! 콰앙!

쩌렁쩌렁한 폭음이 이어졌다.

(야, 이 멍청이들아! 도망치라고 했잖아?!)

그 광경에 페어리 퀸이 버럭 화를 냈다. 자신이 저 용아병 껍데기들을 상대하고 있을 테니 그 틈에 도망쳐라. 분명 그렇게 말했을 텐데, 어째서?

“살아도 같이 살아야죠!”

화염병을 던지는 레디오가 대답했다.

페어리 퀸을 품에 안은 베네사도 끄덕였다.

그들은 처음부터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적어도 페어리 퀸만 나두고는 말이다.

(이…… 이 멍청한 인간들이……!)

화염병의 위력은 생각보다 강했다. 준비해온 물량을 전부 소진시키니 세 마리 남았던 용아병들도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단순한 화염병이 아니기에 가능했던 결과이리라.

“이, 이제 도망칩시다! 어서요!”

그나마 남자인 레디오와 더글라스가 앞장섰다. 뒤로 페어리 퀸을 안은 베네사와 하녀들이 따라붙었다. 괴물들이 더 몰려오기 전에 저택의 정원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지금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어……?”

하지만 그 희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또 다른 용아병들이 몰려들었으니까.

실로 최악의 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저택의 대문도.

무너져버린 담장들도.

모든 통로가 용아병 천지였다.

꼼짝없이 고립되었다는 얘기다.

“이, 일단 저택 지하로 내려갑시다! 이안님께서 설치해둔 마법트랩이 있으니까, 그것들로 시간을 좀 벌다보면……!”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따라 들어올 텐데…….”

“그, 그건…….”

베네사의 물음에 레디오가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틀린 얘기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하로 숨어드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혹시 모를 구조의 손길로부터 벗어나는 행위이며, 지금보다 훨씬 완벽하게 고립되는 꼴이니까.

(멍청한 인간들! 진즉에 도망치라고 하지 않았느냐?)

이러지도 못한다. 저러지도 못한다.

상황은 최악의 끝으로 흘러갔다.

어느새 용아병들이 가까워졌다.

계속 멈춰있을 수만은 없었다.

누군가 결단력을 발휘할 차례였다.

이대로 몰살당하기 싫다면 말이다.

“…….”

지금 이 순간.

그 결단의 몫은 레디오였다.

레디오 역시 그렇게 판단했다.

‘남은 화염병이 세 병…….’

레디오가 침착하게 상황을 살폈다.

먼저 자신에게 남은 화염병은 세 개.

‘그리고 칼 한 자루, 다친 곳은 없다.’

있어봐야 쓸데없는 칼 한 자루.

다행스럽게 몸이라도 성했다.

이윽고 판단을 내린 레디오.

스르릉……!

그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칼이라도 쥐는 편이 나을 테니까.

“제가 유인을 해보겠습니다.”

“유, 유인이라니요?”

“아빠……?”

이윽고 세워진 레디오의 결심.

그 결심에 베네사도, 더글라스도 놀랐다.

또한 말이 되지 않는 결심이기도 했다.

어찌 혼자 저 괴물들을 유인한단 말인가?

목숨을 내놓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일 터.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

“인텡글!”

레디오의 숭고한 희생이 시작되기 직전.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이안이 모두를 구하러 나타난 걸까?

아니, 이안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명백한 여인네의 목소리였다.

촤아악-!

동시에 저택의 정원 아래로부터 수십 갈래 덩굴이 튀어나와 용아병들을 휘감았다. 물론 이안의 덩굴과는 달랐다.

그 굵기나 수가 확연하게 협소했다. 오래 버티지는 못할 터.

“하아아아압!”

연이어 들려오는 남자의 기합소리.

검을 쥔 중년 기사가 담을 뛰어넘었다.

또한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 목표는 덩굴에 휘감긴 용아병무리들.

조금의 망설임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스걱!

중년 기사의 검에 용아병 한 마리가 추풍낙엽처럼 무너졌다. 골반 뼈가 두 동강이 나버린 까닭이었다. 어디 그뿐일까? 또 다른 용아병들도 마찬가지였다.

중년 기사의 검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붉은 피와 푸른 마나로 일렁거리는 마나 블레이드, 바로 제2 황실기사단의 단장이자 제국의 검공, ‘올리버 레이우드’의 ‘절기’였으니까.

“황태자 전하의 명에 따라.”

용아병들을 순식간에 베어버린 올리버.

그가 중후한 저음의 목소리로 읊조렸다.

“이안 공의 가족 분들을 모시겠습니다.”

물론 황태자의 명을 받아온 것은 올리버 뿐만이 아니었다. 인텡글 주문으로 용아병들의 발을 묶었던 여인, 그 마법사 또한 정원 쪽으로 달려왔다. 이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눈길이 머무는 미녀였다.

“모두 이쪽으로 오세요! 어서요!”

제국의 새로운 4클래스의 고위마법사.

공주, 하이리 그린리버였다.

* * *

지금 그린리버 제국의 수도, 그린리버디움는 초유의 비상사태에 빠져버렸다.

그린리버디움이 어떤 도시던가? 역사상 단 한 번도 타국의 침공을 허락한 바가 없었던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한데 오늘 그 기록이 무참하게 박살 나고 말았다.

“모든 백성들을 대피소로 인솔하라!”

어째서 그 기록이 깨졌단 말인가?

타국의 군대로 인하여? 아니다.

내부의 반란 때문에? 아니다.

“단 한 사람도 빼먹지 말라!”

일전에도 나타났던 뼈 괴물, 그 거대한 도마뱀 뼈 괴물이 이번에는 대군을 이루어 나타났다.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건지 수만 마리가 순식간에 접근했다.

성문을 닫아도 소용없었다. 놈들은 성벽조차 어렵지 않게 기어 올라왔으니까. 아무리 돌을 던지고 화살을 쏴도 멈추지 않았다.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는 얘기였다.

“전하! 옥체를 보존하심이……!”

“아니, 아직은 아니다.”

“하, 하오나…….”

그 혼란스러운 사태의 중심에 얼간이 황태자, 하이든 그린리버가 있었다. 그는 직접 나서 백성들을 도시 곳곳에 만들어진 대피소로 인솔 중이었다.

그만 도망치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토록 황태자가 솔선수범하니 다른 병사나 기사, 마법사들도 일신의 안위를 꾀하기 힘들었다. 결국 모두가 한마음으로 백성들을 찾고 인솔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예? 무, 무슨 말씀을…….”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야.”

아바마마처럼 현명하지 못하고.

라그나르처럼 똑똑하지도 못한.

이 나라의 ‘얼간이 황태자’로서.

“전하! 동부 대피소에 자리가 없다고 합니다!”

“서부 대피소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원입니다!”

좋지 못한 소식이 연이어 보고되었다. 상아탑의 강력한 주문으로 관리되는 동쪽과 서부의 대피소, 두 곳 전체가 만원이라는 보고였다.

아무리 거대한 대피소라곤 하나, 기존의 백성들은 물론 수도 내 모든 상인과 이방인, 심지어 뒷골목 거지들까지 수용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함이 많았다.

“더는 방법이 없습니다! 속히 대피하셔야……!”

“으으……!”

황태자가 신음을 삼켰다.

이제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아직도 수많은 백성들이 남았다.

그 모두를 외면할 수도 없는 일.

황태자의 판단이 빠르게 세워졌다.

“아직, 아직 대피소는 남아 있다! 동부와 서부가 만원이라면 황족 대피소와 귀족 대피소로 백성들을 인솔하라! 아직 여유가 있을 것이다. 없을 리가 없지!”

황족들과 귀족들의 대피소.

황태자만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이었다.

“하, 하오나 반발이 심할 것이옵니다!”

“그분들의 대피소에 어찌 백성들을……!”

부하들의 우려는 사실이었다.

특히나 귀족들의 반발이 심할 거다.

제국은 엄연한 계급사회 아니던가?

하물며 거지에 이방인들까지 함께?

그럼에도 황태자의 결심은 확고했다.

“지금 이 판국에.”

황태자가 으르렁거리며 소리쳤다.

일말 살기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단언컨대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그딴 것이 뭐가 중요하단 말이냐?”

“하, 하오나 전하……!”

“반발하는 황족이나 귀족이 있거든.”

허리춤으로부터 검을 뽑아든 황태자.

황태자로서의 지위가 실린 검이었다.

“참하라.”

“……!”

황태자의 검을 받잡은 부단장 폴.

잠시 머뭇거렸던 그가 예를 취며 말했다.

“명을 받들겠나이다. 전하!”

부단장 폴이 병사들을 이끌고 나섰다. 백성들을 황실과 귀족의 대피소로 인솔하기 위함이었다.

하사받은 황태자의 검으로부터 진한 사명감이 전해졌다.

“전하!”

마침 올리버와 하이리 역시 황태자의 곁으로 복귀했다. 이안의 가족들, 베네사와 레디오, 더글라스와 페어리 퀸까지 함께였다. 저택의 하녀들도 뒤를 따랐다.

“이안 공의 식솔 분들을 모셔왔습니다.”

“좋아, 하이리.”

“말씀하셔요. 오라버니.”

“지금부터 네가 책임지고 그분들의 안위를 지켜다오. 황족과 귀족의 대피소를 개방시켰으니 그곳으로 모시도록 해!”

황태자는 이안의 식솔들을 하이리에게 맡겼다.

그녀는 며칠 전부터 4클래스의 경지에 올랐다.

충분히 믿을 만한 전투요원이 아니겠는가?

“단장, 계속 움직일 수 있겠어?”

하이리에게 명을 내린 황태자가 이번에는 단장 올리버를 바라봤다. 올리버의 양쪽 손은 이미 피투성이였다.

혈액 속 마나를 이용한 마나 블레이드를 과도하게 사용한 탓이었다.

“소장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 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 방법이 아니라면 놈들.

저 괴물들에게 흠집조차 낼 수 없었으니까.

“……무리하지 마. 단장.”

“전하께 돌려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내 걱정은 할 필요 없고…….”

“이십 년 전 생각이 나는군요.”

“이십 년 전?”

“그 무렵엔 전하의 기저귀도 갈아드렸습니다.”

“뭐……?”

"소장이 직접 말이지요."

"갑자기 무슨 소리를……."

“아주 가끔 있었던 일입니다만.”

말문을 잃었던 황태자.

이내 피식 웃으며 화답했다.

농담의 뜻이 이해된 덕이었다.

“아무리 무서워도.”

사실 황태자는 두려웠다.

이 도시 누구보다도 겁에 질렸다.

당장이라도 도망쳐 버리고 싶었다.

단지 참아내고 또 참아낼 뿐이었다.

올리버는 그것을 한눈에 꿰뚫어봤다.

“오줌 지릴 나이는 지났지.”

올리버가 던진 농담 덕분일까?

황태자의 심정이 진정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전하! 놈들의 수가 줄어들지를 않습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성벽을 넘어오고 있습니다!”

상황은 악화되기만 했다.

어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

예를 들자면.

‘이안.’

도시 전체가 단 하나의 존재.

상아탑의 주인, 7클래스의 대마법사.

이안 페이지, 그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저 괴물들은 느리다! 그대들의 빠른 발이 모두를 구할 수 있다! 도시 내 백성들을 모조리 찾아 대피소로 인솔하라! 백성들만 무사히 피신시킨다면 상아탑의 마법사들이 저 괴물들을 마음 놓고 박살내버릴 터! 조금만 더 힘을 내라!”

황태자의 외침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비록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썼으나, 그 백금색 머리칼은 어느 때보다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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