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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14화 (11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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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14화

    “자네들, 그 소문 들었나?”

    “화이트 드래곤?”

    “어? 알고 있네?”

    “알지 그럼.”

    “요즘 얼마나 시끄러운데.”

    “가는 곳마다 그 얘기라니깐?”

    요 몇 달 사이.

    세간에 특별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바로 ‘화이트 드래곤’에 관한 소문이었다.

    “직접 봤다는 작자들이 많다고.”

    “그래도 이 근처에는 아직 없잖아?”

    “들어오는 상인들 얘기가…….”

    로 공국 수도, ‘로하람’의 어느 선술집.

    호사가들의 대화가 이어지는 그때였다.

    “크르르르르릉-!”

    선술집 바깥, 정확히는 바깥의 하늘 머나먼 곳으로부터 기괴한 쇳소리가 들려왔다. 왠지 모르게 짐승의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뭐, 뭐야 저거?”

    “사람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설마?”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서로의 눈만 쳐다봤던 선술집 호사가들. 그들이 용기를 쥐어짜 내며 바깥으로 나섰다. 혹시 그 소문의 중심, ‘화이트 드래곤’이 나타난 건 아닐까?

    “저, 저기……!”

    “용……?”

    “저게 진짜 용이란 말이야?”

    “무, 무슨…….”

    “말도 안 돼…….”

    이미 로하람의 백성들은 너도나도 거리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모두가 공통된 무언가를 가리키며 경악하기 바빴는데, 그 대상이 소문 속 주인공, ‘화이트 드래곤’과 흡사했다. 사람들에게 통상적으로 알려진 드래곤의 형상 그대로였다.

    “크르르르르르……!”

    그 거대한 화이트 드래곤은 한동안 공국 수도 로하람의 창공을 서성거렸다. 마치 자신의 존재와 건재함을 인간 나부랭이들에게 뽐내기라도 하려는 듯, 고루고루 움직였다.

    “이만하면 됐어.”

    “크르릉……!”

    사람들에겐 보이지 않을 드래곤의 목덜미.

    그곳으로부터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투명화 마법을 시전 중인 이안이었다.

    “이쯤 했으면 슬슬 입질도 오겠지.”

    이안은 ‘용용이 1호’와 함께 로 공국, 콜드우드 제국, 그린리버 제국으로 이루어진 대륙의 주요한 도시와 영지들을 두루두루 순회했다.

    물론 국가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동부대초원이나 몇몇 대도시급 자유도시 또한 빼먹지 않았다. 그야말로 꼼꼼하게, 소문낼 입이 많은 지역이라면 어디든 날아갔다.

    “돌아가자. 두드리는 섬으로.”

    “크릉!”

    계획대로 대륙순회를 끝마친 이안과 용용이 1호. 그들이 장인들의 집결지인 두드리는 섬으로 돌아갔다. 아마 지금쯤이면 소문을 일찍 접한 장인 몇몇은 도착했을지도 모르리라.

    * * *

    이안과 용용이 1호가 섬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소문을 뿌려둘 겸, 장인들이 돌아오는 시간도 기다릴 겸. 표현 그대로 겸사겸사 선택한 여유로운 복귀였다.

    “세 분이나 오셨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소. 생각보다 빨리들 돌아오더군.”

    그 여유로운 복귀 덕분일까?

    뜻밖의 소식이 이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껏 해봐야 한둘 정도 왔을 거라 봤다.

    한데 벌써 세 명의 장인이 돌아왔단다.

    “아직 나머지 세 친구가 돌아오지 않았소만, 이 기세라면 그들도 조만간이지 않겠소? 과연 그분의 후손다운 묘책이셨소.”

    간만에 동지들을 만난 베르톨도의 얼굴이 활짝 폈다. 창백하기만 했던 안색도 조금은 색깔을 되찾은 것 같았다. 물론 느낌상 그렇게 보일 뿐, 창백함은 여전했다.

    “자, 이럴 게 아니라 소개부터 해드리겠소.”

    베르톨도와 클레반을 포함한 다섯 명의 장인들은 모두 각양각색 뚜렷한 개성이 흘러넘쳤다. 인종부터 성별, 외모와 체형까지 어느 것 하나 일치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모두들 보기 드문 검은색 머리칼의 소유자였다.

    “먼저 이쪽 숙녀분의 이름은 할리아, 대장기술의 명인이지.”

    “숙녀분은 개뿔, 이 늙은이가 지금 몇백 년 전 헛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클레반이랑 같이 쌍으로 미치셨나?”

    베르톨도는 가장 먼저 검은 머리칼의 여인을 소개해줬다. 겉모습만 놓고 보자면 누가 봐도 스무 살 안팎의 여인이었으나, 그녀 또한 프란 페이지에게 선택받은 장인으로서 영겁의 세월을 살아온 존재였다. 말투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인사는 됐고, 그 양반 후손이시라면서? 소문은 들어봤지. 그린리버의 대마법사 이안 페이지, 성이 페이지라기에 긴가민가했거든.”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드워프의 지하도시에서 대장장이 일에만 집중해왔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말투가 상당히 거칠었다. 듣기로는 드워프들이 그렇게 다혈질이라고 하던데…….

    “원래 걸걸한 친구니, 이해를 좀 해주시오.”

    베르톨도의 귓속말이 곁들어졌다.

    그냥 저 말본새가 태생인가보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안 페이지입니다.”

    “영광은 개나발, 나 좀 빨리 죽여달라고.”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럼에도 이안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만들어진 웃음과 함께 악수까지 청했다. 심지어 거절을 당했는데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다 이해한다는 얼굴이었다. 오랜 세월 죽지 못하고 살았는데, 말투가 좀 사나울 수도 있는 법 아니겠는가?

    ‘중요한 건 아티펙트지.’

    심지어 그녀는 이안 자신에게 나머지 아티펙트 중 하나를 선사해줄 장인 되시는 분이다. 험악한 말투가 아니라 보는 앞에서 상욕을 해도 용서해 줄 의향이 있었다. 물론 원하는 바를 얻기 전까지만.

    “그리고 이쪽은 보석세공의 명인…….”

    “데니스요.”

    마치 눈 화장이라도 한 듯 새까만 눈 밑을 가진 사나이, 보석세공의 명인 데니스가 재빨리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더니 한적한 곳에서 하늘만 바라봤다. 아주 조용한 남자였다.

    “원체 조용한 친구이니, 후손분께서 이해를…….”

    “괜찮습니다.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이안은 너그러이 넘어가 줬다.

    사람 성격이 조용할 수도 있지.

    낯을 좀 가릴 수도 있는 거다.

    ‘암, 그렇고말고.’

    “고맙네. 아, 마지막으로…….”

    “반갑소! 나 제르비오라고 하오. 따지자면 목수였는데, 지금은 뭐 나무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있소. 집도 건축하고, 배도 건조하고, 식탁도 만들고, 아, 내가 이번에 평범한 땔감보다 열 배는 더 오래 타는 땔감을 개발했는데 말이지.”

    자신을 목수라고 소개한 제르비오, 첫인상부터 엄청난 인물이었다. 올리버보다도, 나아가 필틴 항구의 뱃사람들보다도 훨씬 커다란 덩치의 소유자였으니까. 농담이 아니라 주먹 하나가 이안의 머리통만 했다. 거인의 핏줄이 아닐까 의심마저 들 정도였다.

    “이번 세대에는 이 땔감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 볼까 하는데, 후손분께서 보시기엔 어떠신가? 그린리버 쪽에서 힘을 좀 실어준다면 내 이번에야말로…….”

    생긴 건 드래곤도 때려잡게 생겨 먹은 양반이, 어울리지도 않게 웬 사업 얘기를 꺼내고 있었다. 아니, 애당초 아티펙트 장인씩이나 되는 양반이 무슨 땔감 사업이란 말인가?

    ‘그냥 재미 삼아 해보는 거겠지.’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이안이었다.

    그 오랜 세월, 취미 생활이라도 즐겨야지.

    그래야 멀쩡하게 살아갈 수 있을 터.

    삐끗했다간 클레반처럼 되는 거다.

    “이 친구, 아직도 그놈에 사업 타령인가?”

    “타령이라니? 이렇게 된 마당에 하고 싶은 거라도 미친 듯이 해봐야 하지 않겠나? 자네들이 미련한 거야. 엉? 툭하면 맨날 죽을 생각만 하고, 엉? 수백 년째 하던 거나 계속 하고 말이지. 엉? 사람이 그러면 안 돼!”

    “그 옛날에도 말아먹은 사업이 몇 갠데?”

    “어허! 지금은 달라. 경험이 쌓였다 이 말씀이지!”

    베르톨도와 제르비오는 어제도 만나 한 잔씩 걸쳤던 친구마냥 사이가 좋아 보였다. 하기야, 저 걸걸한 대장장이 여인 할리아와 음침한 보석세공사 데니스에 비한다면 제르비오는 양반인 것 같았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안 페이지라고 합니다. 지금 말씀하신 사업은…… 여유가 되는대로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 그거 진심인가?”

    “물론이지요.”

    “고맙네! 호탕한 게 역시 그분의 후손이로군!”

    “하하…….”

    드래곤에 관련된 소문을 듣고 모여든 세 명의 장인, 그들과 이안의 가벼운 통성명이 끝났다. 현 상황에 대한 자초지종은 이미 베르톨도가 설명을 끝내둔 상태였다.

    “이미 아시겠지만, 저는 지금 장인분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이안의 말에 다양한 성격의 장인들이 모두 집중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들에게 영생이란 이제 저주나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그 저주를 해방시켜 줄 수도 있는 존재, 이안의 말을 허투루 들을 리가 만무했다.

    “물론 아무런 대가도 없이 도움만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께 영생을 내려주신 프란 페이지, 저는 그분이 사용하셨던 언어의 힘을 흉내 낼 수 있습니다. 아직은 부족합니다만,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계획입니다.”

    이안의 얘기가 계속되는 그때.

    “어떻게 믿지?”

    의구심을 표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걸걸한 대장장이 할리아일까?

    “그 언어의 힘이라는 것.”

    예상과는 달리, 의외의 인물이었다.

    조용한 보석세공사, 데니스였다.

    “……믿는 건 여러분들의 자유입니다. 단지.”

    잠시 말문을 멈춘 이안.

    그가 곧장 마나부터 끌어모았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우선일 터.

    “그럴싸한 증거가 있긴 합니다.”

    한때는 ‘용언’이라고 믿었던 마법.

    그 언어의 힘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아타르 하카.)

    아타르 하카.

    검은 불꽃.

    과거 페어리 퀸에게도 선보였던 용언 마법, 지금은 언어의 힘으로 정정된 마법이 펼쳐졌다. 주문의 해석 그대로 검은 불꽃, 그 강렬한 흑염 한 송이가 이안의 손 위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평범한 마법은 아니군.”

    장인들 또한 마법사와 동류의 힘을 가진 존재, 평범한 마나로 이루어진 불꽃이 아님은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 양반이 하던 짓이랑 비슷하긴 한데?”

    걸걸한 대장장이 할리아 역시 동의를 표하며 나섰다. 언어의 힘은 육성이 아닌 마나의 소리로 퍼져나간다. 그 특징을 잘도 기억해낸 모양이었다. 흔한 경우가 아니었으니까.

    “이게 뭐냐고 하실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이안이 농담처럼 말하며 불꽃을 거두었다. 그러면서도 새삼 놀라움을 느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초적인 언어의 힘 한 번이면 마나통이 거덜 나는 수준이었다. 한데 지금은 아무런 느낌조차 없었다. 간에 기별도 안 간다, 그리 표현할 수 있으리라.

    ‘로브의 힘인가?’

    베르톨도의 걸작.

    ‘이안 페이지의 로브.’

    과연 대단한 물건이었다.

    “좋아! 나는 내 사업 파트너의 말을 믿겠어. 기꺼이 도와주도록 하지! 얼굴이 좀 너무 안 닮은 것 같기는 했는데, 대대로 그쪽 핏줄들 마누라가 다 미녀였겠지 뭐!”

    먼저 결심을 세우는 쪽은 제르비오였다.

    심지어 사실과 가까운 추측까지 해냈다.

    마누라가 미녀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뒈질 수만 있다면 뭔들 못하겠어?”

    대장장이 할리아 역시 결정을 내렸다.

    특유의 거친 말투만큼은 여전했다.

    “…….”

    보석세공사 데니스 또한 묵묵히 걸었다.

    걸작이 보관된 조각상 앞으로 말이다.

    “우와아……! 그럼 이제 용용이 2호랑 5호, 7호도 깨울 수 있겠네? 1호랑 3호는 좋겠다! 친구들 많이 생겨서.”

    “그르르…….”

    “그르릉……?”

    이윽고 세 명의 장인들이 각각 걸작을 보관해둔 조각상 앞에 섰다. 클레반의 말처럼 용용이 2호, 즉 두 번째 조각상에는 할리아가, 용용이 5호, 다섯 번째 조각상에는 데니스가, 마지막으로 용용이 7호, 일곱 번째 조각상에는 제르비오가 멈췄다.

    우우우우웅-!

    클레반과 베르톨도가 걸작을 꺼낼 때와 똑같았다. 고유의 마나가 조각상으로 흘러 들어갔고, 벌어진 아가리 속으로부터 수백 년간 보관되었던 걸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과연 어떠한 아티펙트일까? 이안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관찰했다.

    ‘일단 저건 지팡이가 확실하고.’

    과연 그들의 걸작들은 각자 분야와 상통하고 있었다. 먼저 목수 제르비오의 걸작은 ‘지팡이’였는데, 평범한 박달나무 지팡이임에도 잘 제련된 광물처럼 광택이 흘렀다.

    ‘저건 보관함에 담겼으니까…… 장신구겠지.’

    보석세공사 데니스의 걸작은 웬 자그마한 보관함에 담겨 있었다. 그 모양새로 추측하건대, 어떤 ‘장신구’가 확실해 보였다.

    ‘그리고 저건…… 칼?’

    마지막으로 대장장이 할리아의 걸작은 ‘장검’이었다. 분명 최초의 마법사 프란 페이지를 위하여 만들어진 걸작일 터, 한데 어째서 검을 만들었을까?

    “내 마음이지.”

    그 의문에 대한 할리아의 대답은 그랬다.

    자기 마음이란다.

    “마법사라고 칼 못 쥐는 건 아니잖아?”

    “……그렇긴 하네요.”

    “실력 있는 칼잡이가 써준다면 더 좋겠지만.”

    어찌 되었든 아티펙트 세 가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특히 저 지팡이와 장신구의 능력이 참으로 궁금한 이안이었다. 베르톨도가 내어준 아티펙트 로브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하지 않겠는가?

    ‘……?’

    기대감이 커져 가는 그때였다.

    수상한 느낌에 멈칫거린 이안.

    ‘뭐지?’

    아주 가까운 곳으로부터 느껴지는 기운이었다. 장인들, 혹은 두드리는 섬 일대나 아티펙트에서 감지된 기운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가까운 곳, 굳이 예를 들자면.

    ‘내 몸 어딘가.’

    이안이 마나와 정신력을 집중시켰다.

    그 감각의 근원을 찾아내기 위함이었다.

    ‘이건…….’

    수상한 감각의 근원은 예상대로 몸뚱이.

    정확히 말하자면 몸속에 지닌 무언가였다.

    ‘페어리 더스트……?’

    페어리 퀸과 다시금 권속의 관계를 맺었던 당시.

    그녀에게 받은 페어리 퀸의 분홍빛 가루들.

    또한 그녀에게 들었던 권속의 ‘또다른 능력.’

    (도와줘.)

    그 분홍빛 가루로부터 ‘생명력’이 느껴졌다.

    이제 거의 다 꺼져가는, 페어리 퀸의 불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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