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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12화 (11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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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12화

    41. 이안 페이지의 로브(2)

    ‘마법사라면 누구나 꿈꿀 만한 이상?’

    이안이 새로운 로브, 일명 ‘이안 페이지의 로브’를 멀뚱멀뚱 바라봤다. 자신의 이름으로 하여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아티펙트, 그 로브가 지닌 힘이 궁금해졌다.

    ‘이상이라…….’

    한 가지 추측과 함께 로브를 입어본 이안.

    처음은 미첼 그린리버와 로브와 똑같았다.

    이안의 사이즈에 맞도록 조절되는 로브.

    착용감 또한 그 어떤 의복보다 편했다.

    “……!”

    하지만 중요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모든 마법사들이 꿈꿀만한 이상.

    그 표현이 체감되기 시작했다.

    “마나가…….”

    로브가 머금은 힘이 이안의 육신으로 스며들었다. 그 목적지는 명백한 '마나 하트'였다. 도대체 어떤 능력이 펼쳐질까? 마나의 회복력 강화? 근본적인 한계치의 증가? 아니, 로브의 힘은 그 정도로 단순하지 않았다. 충분히 그 이상을 해냈다.

    “무한의 마나.”

    베르톨도가 이안의 변화를 대신 짚어줬다. 바로 그랬다. 로브를 착용한 이안의 마나하트는 한계치를 잊어버렸다. 인즉 무한정의 마나가 심장 속에 새겨진 거다.

    “그것이 바로, 내가 탄생시킨 일생의 걸작이오.”

    베르톨도의 확신어린 설명에도 이안은 좀처럼 입을 떼지 못했다. 다만 마나와 마나 하트의 변화를 조금씩 곱씹었다. 분명 예전과는 느낌부터 달라졌다.

    본디 마나와 마나 하트란 물과 물병과도 같았는데, 물병에 물이 얼마나 차있느냐가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출렁거림이 느껴졌다는 얘기다. 한데 지금은 아니었다.

    ‘그 출렁거림이 전혀 없다.’

    물병 속 빈 공간을 의미하는 출렁거림이 사라졌다. 뚜껑 끝까지 가득 담긴 물병처럼 단단했다. 아무리 물을 쏟아내도 결단코 줄어들지 않는 마법의 물병, 그 비현실적인 물병이 이안의 심장 속에 각인된 거다.

    “이건…… 비현실적이군요.”

    “말하지 않았소?”

    제아무리 마법 쪽으로는 산전수전 다 겪어본 이안이라도 얼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무한의 마나라니, 그런 이안의 반응에 베르톨도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아마 프란 님이었다면 좀 더 과장된 반응을 보여주셨을 텐데, 후손 분께서 훨씬 점잖으신 것 같구먼. 하긴 얼굴의 생김새부터가 많이 다르긴 하오만.”

    물론 이안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여전히 로브와 변화에 매료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전생을 뛰어넘었다.’

    이안은 현재의 수준을 그리 확신했다. 물론 이 로브를 입었다고 8클래스의 경지까지 회복한 것은 아니었다. 마나의 질은 여전히 7클래스의 범주였으니 말이다.

    ‘설마 이런 아티펙트가 존재할 줄이야.’

    그렇다 해도 무한에 가까운 마나를 가진 7클래스 마법사는 차원이 다르다. 만약 이 상태로 8클래스의 경지를 무사히 이루어낸다면?

    ‘제법 볼만하겠군.’

    심지어 아직 끝난 것도 아니었다.

    이제 하나의 아티펙트만 착용한 거다.

    남아 있는 아티펙트가 일곱 가지에 달했다.

    ‘분명 이 로브와 비슷한 힘을 가졌겠지.’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애당초 이안은 아티펙트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전생에는 물론이거니와, 이번 생 역시 처음에나 유용하게 써먹을 법한, 거쳐 가는 도구쯤으로 여겼다.

    높은 경지를 이룰수록 아티펙트의 효과 또한 상대적으로 미미해지기 때문이었다. 하여 장인을 찾아 나선 거다. 기존의 것들보다 더욱 강력한 아티펙트가 존재하지 않을까하는 기대감, 바꿔 말하자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분명 그랬을 지언데.

    ‘이런 아티펙트라면 상황 자체가 달라진다.’

    그 결과 얻어낸 아티펙트의 힘은 결코 지푸라기 따위가 아니었다. 이 정도면 단단한 동아줄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심지어 이런 동앗줄이 일곱 개나 더 남아 있다고?

    “아이가 꽤 마음에 드는 모양이오.”

    이안의 생각이 깊어질 무렵.

    베르톨도가 넌지시 말을 걸어왔다.

    감상이라도 듣고 싶은 모양새였다.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지금까진 거짓말만 하셨는가?”

    “그건 아닙니다만.”

    “농담이오. 말씀해 보시구려.”

    “이런 아티펙트는 처음입니다.”

    이안의 첫마디는 그랬다.

    계속해서 찬사가 이어졌다.

    “상당히 많은 수의 아티펙트들을 경험해 봤다고 자부합니다만, 그간 모든 것들이 전부 다 쓰레기처럼 느껴질 정돕니다. 말 그대로 걸작이군요.”

    “허허헛!”

    그 찬사에 베르톨도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스스로도 어색한지 금방 멈췄지만, 기쁨의 순도가 가득한 웃음이었다.

    “크흠! 얼마 만에 웃어보는 건지 감도 안 잡히는군. 프란 님께 듣고 싶었던 찬사를 후손 분께서 대신해 주시는구먼.”

    실로 수백 년만의 한풀이.

    감회가 남다른 베르톨도였다.

    “설마 나머지 아티펙트들도 이 정도 수준의 걸작인 겁니까?”

    “글쎄, 원체 각자가 꽁꽁 숨겨서 만들었다 보니 나도 잘 알지는 못하오만, 그래도 수준으로만 치자면 다들 비슷할 게요.”

    “기대되네요.”

    “그래봐야 내 아이는 못 따라올 터, 너무 기대는 하지 마시구려.”

    베르톨도가 짐짓 자랑스런 어조로 말했다.

    막간을 이용해 표출된 장인의 자존심이었다.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크흠……!”

    수백 년 만에 듣는 찬사와 아부라서 그럴까?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한없이 건조했던 베르톨도의 어조가 조금은 풍부하게 살아났다.

    오랜 세월 끝에 메말랐을지언정, 그 또한 사람이었다는 증거였다.

    “그런데 저 꼬마…… 클레반 님께서도 포함이 되시는 겁니까?”

    “포함?”

    “여덟 장인 분들 중에 한분으로 말이죠.”

    이안의 물음에 베르톨도가 끄덕거렸다.

    “오, 물론이오. 저 세 번째 조각상에 그 친구의 걸작이 보관되어 있지.”

    클레반은 분명 조각의 장인이라고 했다.

    어떤 힘을 가진 조각상이 보관되었을까?

    자신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마법사적 탐구심이 이안을 괴롭혔다.

    확인해보고 싶은 욕구가 굴뚝같았다.

    “아무래도 클레반의 걸작이 궁금한 모양이로군.”

    이안은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프란 님께서도 그러셨지. 궁금한 건 도통 참지를 못하셨소. 아무래도 그 페이지란 가문 핏줄의 특징인 것 같구먼.”

    회상하듯 읊조린 베르톨도가 클레반에게 걸어갔다.

    꼬마의 얼굴을 가진 클레반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이 친구, 마법으로 재워두신 건가?”

    “가벼운 주문입니다. 워낙 난리를 치시는지라.”

    “그렇겠지. 기억 속에 숨어버렸으니.”

    베르톨로의 커다란 손바닥이 클레반에게 뻗어졌다. 정확히는 그 이마를 감싸 쥐었다. 어찌나 큰지 손바닥 하나가 클레반의 머리통만 했다.

    “일어나게. 오랜 친구여.”

    이안이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봤다.

    딱히 마나의 흐름은 느껴지지 않았다.

    마법으로 깨우는 행위가 아닌 것 같았다.

    “그대의 집일세. 그만 숨고 나오는 것이 어떠하겠나?”

    “…….”

    베르톨도의 속삭임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이윽고 클레반의 의식이 돌아왔다. 두 눈을 스르르 떴고, 사방도 힐끔 둘러봤다.

    눈앞 베르톨도의 얼굴, 옆에서 지켜보는 이안의 얼굴, 백색의 신전, 두드리는 섬의 익숙한 풍경까지.

    “나, 나는…….”

    “클레반. 자네의 이름이지.”

    “내 이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조각가이며.”

    “위대한…… 조각가.”

    “프란 님의 여덟 장인 중 하나라네.”

    “프란…… 프란 페이지 님…….”

    프란 페이지.

    그 이름을 입에 담는 순간이었다.

    클레반의 육신에 변화가 일어났다.

    갈색이었던 머리칼이 검게 물들었다.

    피부 또한 방금까지보다 창백해졌다.

    전체적으로 베르톨도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우욱……!”

    한동안은 머리를 부여잡은 채 구역질하기 바빴던 클레반, 그가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불사의 육신을 가졌기 때문일까? 컨디션의 회복 속도가 확실히 남달랐다.

    “……베르톨도 아저씨?”

    클레반은 베르톨도를 ‘아저씨’라 불렀다. 프란 페이지가 사라진 이후 일이백 년 이내의 기억인 것 같았다. 정신과 기억이 완벽하게 돌아오진 않았으나, 일단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연령대가 어려졌을지언정 클레반이란 ‘존재’ 자체는 자각해 냈으니까.

    “정신이 들었나 보구먼.”

    “제, 제가 왜 여기에…….”

    “저분께서 도와주셨지.”

    베르톨도의 가리킴에 이안을 발견한 클레반.

    “자객……?”

    그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중얼거렸다. 이안을 정말 자객이라고 여겼다기보다는, 여러 기억들이 뒤엉킨 일종의 후유증인 것 같았다.

    “전에도 말씀드린 것 같은데, 자객은 아닙니다.”

    “다, 다가오지 마시오! 나는 절대로 빵을 훔쳐 먹지 않았…… 내,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생각보다 그 후유증이 강하게 남은 모양이었다.

    자신의 발언에 이상함을 느끼면서도 멈추지 못했고, 결국 베르톨도의 등 뒤로 숨어버리기까지 했다. 물론 겉모습은 여전히 꼬마였기에 어색하진 않았다.

    “음,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할 것 같소만.”

    “그런 것 같군요.”

    베르톨도의 말에 이안도 공감을 표했다.

    무려 수백 년간 축적된 기억의 무게.

    쉬이 털어내기란 어려운 일이겠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를 터.

    “베, 베르톨도 아저씨.”

    “음?”

    “프란 님께 드릴 걸작…… 꺼내셨어요?”

    “아, 보다시피.”

    클레반의 눈이 일순간 번뜩거렸다.

    로브가 보관되었던 첫 번째 용 조각상.

    이제는 텅 비어버린 보관함을 바라봤다.

    “어째서……?”

    “저기, 그분의 후손께서 오셨네.”

    “저 자객…… 분이 후손이란 말씀이세요? 프란 님의 후손?”

    후유증과 현재가 뒤엉켜 기묘한 호칭이 탄생했다.

    클레반은 그 ‘자객 분’ 이안을 바라보며 고민에 빠졌다.

    “그, 그럼 저도…….”

    이내 무언가 결심한 듯 발걸음을 옮겼다.

    그 방향은 바로 세 번째 조각상.

    자신의 걸작이 담긴 조각상이었다.

    우우우우웅-!

    세 번째 용 조각상에 클레반의 마나가 주입되었다. 아가리가 쩍 벌어졌고, 그 안으로부터 빛이 흘러나왔다. 속에 담겨있었던 걸작 또한 저속낙하 주문이 걸린 채로 떨어졌다.

    툭!

    클레반의 걸작이 바닥에 툭 뒹굴었다.

    한데 그 정체가 생각보다 독특했다.

    총 여덟 개의 기다란 걸작들.

    그 물건들은 아무리 봐도.

    ‘말뚝……?’

    아주 두툼하고 묵직한 백색의 쇠말뚝.

    이안의 눈에는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저 말뚝 같은 게 걸작인가?’

    이안이 의구심을 품든 말든, 클레반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뚝 하나를 집었다. 그러더니 조각상의 꼬리 아래쪽으로 기어 들어갔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행보였다.

    “뭘 하시는 거죠?”

    “글쎄, 나도 잘 모르겠소만.”

    클레반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베르톨도도 마찬가지였다.

    “제가 만든 걸작도 보, 보여드릴게요.”

    수줍게 중얼거린 클레반, 녀석은 곧 용 조각상의 꼬리 아랫부분에 말뚝을 박아 넣기 시작했다.

    힘으로 우겨넣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알맞은 구명이 뚫려있었던 거다.

    “여기다 이렇게…… 말뚝을 박아주시면…….”

    말뚝이 조각상 꼬리 깊숙한 곳까지 박힐 무렵. 고작 말뚝 따위가 클레반의 걸작으로 보관되었던 이유 또한 조금씩 밝혀지기 시작했다.

    “자객…… 아니, 후손님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급히 호칭을 바꾼 클레반의 외침과 함께.

    실로 놀라운 광경이 섬 중앙에 펼쳐졌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움직였다.

    도대체 무엇이 움직였느냐?

    말뚝 하나가 박힌 용 조각상.

    그 거대한 조각상의 발이.

    기다란 목과 꼬리가.

    하물며 날개까지도.

    “용용이…….”

    이름을 소개했던 클레반의 눈이 조각상 쪽으로 돌아갔다. 정확히는 조각상들이 세워진 순서를 살폈다. 움직이기 시작한 조각상은 왼쪽 기준으로 세 번째였다.

    “3호!”

    용의 모습을 꼭 닮은 드래곤 조각상.

    그 백색의 조각상이 날개를 퍼덕거렸다.

    조각된 눈으로부터 푸른색 안광까지 뿜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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