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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11화 (11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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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11화

    41. 이안 페이지의 로브(1)

    남자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놀랄만한 이야기가 연이어 쏟아졌다.

    “항간에는 최초의 마법사라 불리기도 하셨소.”

    “…….”

    환술 속에서 만났던 존재.

    용을 믿지 말라했던 존재.

    그가 바로 최초의 마법사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내 아버지께서…….’

    이안의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아버지, 프란 페이지의 정체.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럴 이유가 없었으니까.

    ‘최초의 마법사라고?’

    어찌 그게 가능할까? 최초의 마법사는 드래곤의 스승이라고 했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수천 년 전에 존재했던 인간이란 얘기다. 한데 그러한 자가 어찌 어머니를 만났으며 이안 자신까지 잉태시켰단 말인가? 수천 년을 살기라도 했다는 건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눈앞에 그러한 존재가 있었다.

    엄청난 세월을 생존해 온 장인.

    이젠 죽는 것이 소원이라는 남자.

    “괜찮으시오? 안색이…….”

    바로 그 남자가 이안에게 말했다.

    이안의 표정을 의식한 모양이었다.

    안색이 급변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괜찮습니다. 계속 얘기해 주십시오.”

    이안이 속내를 진정시켰다.

    아직 들어볼 얘기가 남았을 터.

    “그 전에 확실한 대답부터 듣고 싶소.”

    남자 역시 마냥 대답을 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입장에서도 이안의 정체가 중요했다. 정말 프란 페이지의 후손이라면, 바짓가랑이를 붙잡아서라도 올려야할 부탁이 있었으니까.

    “정말 프란 님의 후손이시오?”

    “이안 페이지라고 합니다.”

    “페이지? 그렇다는 건…….”

    “생각하신 그대로입니다.”

    이안은 우선 그쯤에서 선을 그어뒀다.

    아들이란 얘기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적어도 지금 당장에는 그랬다.

    “후손께서 우리를 찾아주신 건가…….”

    읽기 힘든 표정으로 끄덕거린 남자.

    그가 깊어진 눈빛을 번뜩거리며 말했다.

    “후손께서도 언어의 힘을 다룰 줄 아시오?”

    “다룰 줄은 압니다만, 아직 미흡합니다.”

    “그렇다면 혹시, 프란 님께서 우리 장인들에게 내려주셨던 영생, 이 축복 아닌 축복을 거두어줄 수 있으시오? 그리만 해준다면 내,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보답하도록 하겠소.”

    간절함이 뚝뚝 묻어나는 남자의 어조.

    하나 이안은 그 방법을 알지 못한다.

    “지금으로선 저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가. 아니, 그럴 테지.”

    간절함은 곧 실망감으로.

    머지않아 체념으로 떨어졌다.

    건조한 한숨과 표정마저 되찾았다.

    “한때 우리는 세상 그 어떤 기술자들보다 뛰어난 장인이었고, 프란 님께서는 그런 우리들의 재능을 빌리는 대신 영생이란 축복을 내려주셨소. 당시에는 정말 축복이나 마찬가지였지. 평생 수많은 걸작을 연구하고 남길 생각에 설레기만 했으니까.”

    “재능을 빌렸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이죠?”

    “드래곤, 그분께선 항상 드래곤을 동경하셨소.”

    “드래곤?”

    이안의 아버지인 프란 페이지, 최초의 마법사가 자신의 제자나 다름없는 드래곤들을 동경했다?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가운데, 남자의 말이 이어졌다.

    “드래곤들의 완벽한 육신을 동경하셨지. 인간의 몸뚱이로는 아무리 강대한 권능을 부릴 수 있다 해도 한계가 명확하다, 하지만 드래곤의 몸이라면 불가능할 것도 가능하도록 만들 수 있다. 평소 그런 말씀을 자주 하시곤 했소.”

    “드래곤의 육신…….”

    드래곤의 육신이라면 이안도 익히 겪어봤다. 시간의 보고 속 드래곤 로드 ‘리시스 라덴쥬’의 정신체, 권능은커녕 본연의 힘조차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음에도 엄청난 힘을 자랑하던 육신 아니던가?

    “인간의 육신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고자 하셨고, 그 수단 중 하나로 우리들의 재능을 빌리셨소. 그분의 힘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작품들, 요즘 세상에서는 아티펙트라 불린다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아티펙트를 선택했다는 얘기였다. 어째 이안과 비슷한 이유였다. 물론 잔가지들은 달랐지만, 큰 맥락이 상통했다.

    ‘나도 드래곤으로부터 내 몸을 지키기 위해서였으니까.’

    이안이 장인을 원했던 이유 또한 그랬다. 드래곤으로부터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전생의 8클래스보다 강해져야 한다.

    하여 그 수단 중 하나로 맞춤형 아티펙트, 혹은 세상에 알려진 아티펙트들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 아티펙트를 손에 얻고자 했다.

    ‘이건 정말…… 묘하군.’

    최초의 마법사, 인즉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존재와 비슷한 선택을 내리고 있었단 얘긴데, 기분이 묘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프란 님은 우리들의 곁을 떠나셨소. 아니, 아예 이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셨지. 프란 님께서 사라진 그날 이후로 드래곤들조차 사라졌더군. 그 초월적인 존재들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까진 내 모르겠소만, 절대 우연은 아닐 것이오.”

    남자 역시 천 년 전의 기억에 머무는 존재, 리시스 라덴쥬의 정신체와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최초의 마법사와 드래곤들 간에 어떤 분쟁이 있었을 거라는 추측 말이다.

    “그 일기장으로부터 나를 찾아온 것도 그렇고, 클레반의 부탁을 듣고 여기까지 찾아냈다는 말도 그렇고.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있으시겠지. 프란 님처럼 말이오. 내 말이 맞소?”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감춘다고 능사는 아닐 터.

    이안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장인 되시는 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유를 물어도 되겠소?”

    “……선조님과 비슷한 이유입니다.”

    “설마 드래곤?”

    이안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남자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드래곤이 다시 나타났단 말이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남자가 확인하듯 물었다.

    “혹시 프란 님께서는……?”

    “그분도 만났습니다.”

    “오오, 그게 사실이오?”

    “활동에는 제약이 있으신 것 같았습니다만, 분명 제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드래곤을 믿지 말라, 그런 말씀도 남기셨죠.”

    이안은 최초의 마법사, 즉 프란 페이지와 관련된 사항을 숨김없이 얘기했다. 직접적인 관계만 최소한으로 밝히되, 그에 관한 이야기는 숨기지 않았다.

    ‘일단 내 목적부터 이루어내야겠지.’

    이안은 아티펙트를 얻고자 여기까지 왔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장인들에게도 동기가 필요할 터.

    ‘어떻게든 나를 돕도록 만들어야 한다.’

    영겁의 세월을 기다렸던 프란 페이지는 아직 만날 수 없다, 장인들을 도와줄 수 있는 건 오직 이안 페이지뿐이다. 바로 그러한 믿음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드래곤을 믿지 말라, 드래곤을 믿지 말라…….”

    남자가 그 말을 계속 곱씹었다.

    조금의 의심조차 없는 것 같았다.

    “……해서, 드래곤과 맞설 경우를 대비하고자 나와 내 동지들을 찾아다녔단 말씀이오? 오래 전 프란 님께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들이 가진 재능을 빌리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지금 저의 수준으론 드래곤에게 맞서기는커녕, 손짓 한 번이면 찢겨나갈 수준이죠. 적어도 그들과 동등한 입장에 앉을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물론 장인 분들의 작품에 의지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먼저 선조께서 부리셨던 언어의 힘, 그 힘부터 숙달해볼 계획입니다.”

    프란 페이지처럼 언어의 힘을 숙달하겠다.

    남자에겐 무엇보다도 뜻하는 바가 컸다.

    “언어의 힘, 그렇다는 것은…….”

    “장인 분들께 주어진 영생, 그 축복 아닌 축복을 제가 대신 거둬드릴 수도 있다는 얘기겠죠.”

    그야말로 솔깃한 제안이자 거래였다. 이안 자신을 전력으로 도와라, 그렇다면 언어의 힘을 숙달해 영생의 축복을 거두어주도록 노력하겠다. 남자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진심이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도 확신까지 드리긴 힘듭니다. 닿아본 적 없는 영역이니까요. 하지만 그 언어의 힘을 숙달해 보겠다는 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축복을 거두는 방법까지 찾아보겠다는 약속, 그것들은 모두 진심입니다.”

    “으음…….”

    그 대답에 고민 속으로 빠져 버린 남자.

    고민은 생각보다 더 길게 이어졌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존재라 그럴까?

    고민 한 번조차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베르톨도라 하오.”

    “예?”

    “내 이름말이오.”

    이윽고 남자의 대답이 돌아왔다.

    수락이나 거절의 의사는 아니었다.

    대신 자신에게 부여된 이름부터 소개했다.

    “이름을 소개하는 것도 오랜만이군.”

    남자, 베르톨도는 감회가 새롭다는 듯 뇌까렸다. 약 삼백여 년 전, 미첼 그린리버와의 만남과 약속, 좌절 이후로 모든 것을 포기했다.

    두드리는 섬으로 돌아와 하염없이 세월만 보냈으니, 실로 삼백여 년 만에 내뱉어보는 이름이었다.

    “따라오시오. 그대가 원하는 바를 보여드리지.”

    베르톨도가 섬의 중심부로 향했다.

    이안 역시 클레반을 안고 따라갔다.

    “프란 님이 사라진 이후에도, 우리들은 한동안 그분께 바칠 아이들을 만들었소. 제법 획기적인 아이들도 많았지. 아, 아이란 아티펙트를 뜻하오. 우리에겐 자식이나 다름없거든.”

    아티펙트 얘기를 시작한 베르톨도는 조금 흥분한 것 같았다. 그간 잊고 살았던 장인으로서의 감각이라도 되살아난 걸까?

    “이제야 그 아이들이 부모를 갖겠군. 너무 오래 걸렸어.”

    섬의 가장 중심부에 도착한 베르톨도와 이안, 주변으로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무엇을 찾고자 여기까지 온 걸까? 답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습을 드러냈다.

    “이쯤이었던가.”

    베르톨도는 기억이 가물가물한 듯 손바닥으로 바닥을 쓸었다. 그러자 곧 흙먼지 아래에 문자가 새겨진 땅이 나타났다. 베르톨도가 찾던 바로 그 지점이었다.

    우우우우웅-!

    비단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베르톨도가 땅덩어리 속으로 마나를 주입시켰다. 클레반도 그렇고, 이 장인이란 자들은 마법사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지하통로라도 존재하나?’

    비밀리에 만들어진 지하통로, 이안의 추측은 딱 그쯤에 머물렀다. 하나 곧 베르톨로가 보여준 광경들은 그 추측을 아득하게 뛰어넘어 버렸다.

    쿠구구구구구구…….

    실로 엄청난 진동이 일어났다. 뿐일까? 땅으로부터 솟아나기 시작한 백색의 조형물들, 기둥, 벽, 지붕, 조각상, 의자, 단상까지. 그것들은 모두 하나의 ‘건축물’을 이루어냈다.

    “움직이지 마시오. 이 주변은 안전하니까.”

    베르톨도는 익숙한 듯 그 이변을.

    건축물이 새워지는 광경을 감상했다.

    ‘신전?’

    그 건축물의 정체는 신전, 아무리 봐도 백색의 신전이나 마찬가지였다. 따지자면 ‘용의 신전’쯤으로 일컬을 수 있으리라. 가장 앞으로 솟아난 여덟 개의 거대한 조각상, 그 조각상들이 모두 드래곤의 형상을 띠고 있었으니까.

    “아까도 얘기했소만, 프란 님께서는 드래곤의 육신을 동경하셨소. 다만 그 동경했다는 말이 시기나 질투, 열등감으로 번졌다는 얘긴 아니라오. 적어도 내 기억 속 프란 님께서는 그러셨소. 순수한 마음으로 드래곤들의 완벽함을 동경했고, 또 존중하셨지.”

    베르톨도가 섬의 중심부에 나타난 백색 신전을 바라보며 말했다. 추억이라도 회상하는 듯 나직한 읊조림이었다.

    “저기 저 조각상들이 보이시오?”

    “크기는 제가 본 드래곤들보다 작습니다만, 나머진 진짜 드래곤이라 해도 믿겠군요.”

    “모두 그쪽이 데려온 친구, 클레반의 작품이지. 그 친구가 조각가거든. 아, 나는 재봉술에 능통하오.”

    장인들도 각자 분야가 다른 모양이었다. 클레반이 기억을 잃고도 조각상에 집착했던 이유, 또한 베르톨도가 미첼 그린리버에게 로브를 지어준 이유이기도 했다.

    “저 조각상 속에는 각각 하나의 아티펙트, 우리 여덟 장인들이 프란 님께 바치고자 만든 걸작들이 보관되어 있소. 저 조각상들은 말하자면 보관함인데, 아마 그분께서도 힘으로는 부술 수가 없을 거요.”

    용의 스승이라는 최초의 마법사조차 부술 수 없다? 그 자체로도 신기한데, 하물며 제작자가 저 꼬마 클레반이란다. 살아온 세월까지 꼬마는 아닐 테지만, 신기할 따름이었다.

    “지금 내가 내어줄 수 있는 아이는 단 하나뿐이오. 다른 조각상들은 모두 각각의 부모들, 그러니까 장인들만이 열어줄 수 있거든.”

    베르톨도가 가장 왼쪽의 드래곤 조각상 앞에 멈췄다.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하시겠소?”

    “나머지 아티펙트를 얻어내려면 다른 장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런 말씀이시겠죠.”

    “바로 맞추셨소.”

    그들은 결코 죽을 수가 없다.

    세상 어디든 살아남아있을 터.

    갖고 싶다면 그들부터 찾아오란 얘기였다.

    “일단은 내 아이부터 소개시켜 주도록 하겠소.”

    드래곤 조각상에 마나를 주입시키기 시작한 베르톨도, 그러자 다물어졌던 조각상의 아가리가 쩍하고 벌어졌다. 뿐만 아니라 새하얀 빛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아직 이름은 없소. 항상 그 주인의 이름을 따서 지어줬거든. 후손 분의 이름이 이안 페이지라 하셨으니, 이 아이의 이름은…….”

    빛이 모두 흩어져 버릴 때쯤, 푸른 빛깔의 로브 하나가 조각상의 아가리로부터 나풀나풀 떨어졌다. 미첼 그린리버의 로브도 그렇고, 진한 푸른색의 색감은 베르톨도의 취향인 것 같았다.

    “이안 페이지의 로브, 그 정도가 적당할 것 같군.”

    이안 페이지의 로브, 그 깃털보다 가벼운 푸른 빛깔 로브가 이안의 손 위에 안착했다. 마치 제 주인을 알아보기라도 한 듯 정확한 착지였다.

    “마음에 드시오?”

    “글쎄요. 아직은…….”

    “한번 입어보시구려.”

    베르톨도의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얼마나 대단한 힘이 깃들었기에 저럴까?

    이안의 기대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노파심에 드리는 말씀이오만, 너무 놀라지는 마시오. 마법을 부리는 존재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볼 이상, 바로 그 꿈을 현실로 실현시켜 줄 로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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