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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09화 (109/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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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09화

    40. 두드리는 섬으로(1)

    “나리! 이놈은 기필코 빵을 훔쳐 먹은 적이 없습니다요!”

    “……자라.”

    클레반은 이안이 구해온 갈색말의 등 위에서 또다시 잠들어 버렸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어째 제대로 된 인격이 하나도 없군.”

    이안은 정신이 오락가락한 클레반과 함께 서쪽 바다가 펼쳐진 곳, 더불어 필틴 대영주의 영지성이 자리 잡은 항구도시 ‘필틴’으로 향하고 있었다. 돌에 언급된 서쪽 바다 건너 ‘두드리는 섬’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두드리는 섬이라.’

    단언하건데 이안은 듣도 보도 못한 섬이었다. 때문에 정보가 절실했다. 바다는 넓다. 대륙보다 광활하다. 아무리 ‘서쪽 바다’로 좁혀졌다한들, 손수 찾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특징이라도 알고 있다면 모를까.’

    그래서였다. 서쪽 바다를 주 무대로 둔 필틴 항구도시라면 관련된 정보가 없을 리 있겠는가? 대륙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 중 하나이니만큼 해안지도 역시 여럿 구해볼 수 있을 터.

    ‘이놈 때문에 시간만 지체되네.’

    어차피 필틴 항구도시야 가본 적이 없으니 텔레포트는 불가능하다. 다만 더 빠르게 날아갈 수는 있다. 이 클레반이란 꼬맹이, 아니 꼬맹이의 탈을 쓴 이상한 놈만 없었다면 말이다.

    ‘저택에 둘 수도 없고.’

    원래는 클레반을 저택에 두고 섬부터 찾아 텔레포트로 데려올까 고민했었다.

    하지만 곧 생각을 바꿨다. 놈이 언제 또 비교적 정상적인 인격으로 돌아올지 몰랐으니까. 그때 묻고 싶은 것, 그리고 시켜보고 싶은 것이 참으로 많았다.

    ‘우선 해안지도부터.’

    항구도시 필틴에 도착한 이안은 가장 먼저 공국 서부 바다의 해안지도부터 구매했다. 그런데 시작부터 문제가 생겼다.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두드리는 섬’이란 명칭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지도들을 살펴봐도 마찬가지였다.

    ‘뭐지?’

    한참을 해안지도들과 씨름해본 결과, 적어도 항구도시 필틴에서 구할 수 있는 해안지도 중 ‘두드리는 섬’이 그려진 지도란 존재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일이 더 복잡하게 돌아갔다.

    “흐음…….”

    해안지도가 소용없다. 남은 것은 수소문 아니겠는가? 뱃사람들에게 물어본다면 무언가 단서를 얻을 수 있을 터, 이안의 발걸음이 서쪽 바다와 맞닿은 부두 쪽으로 향했다.

    “야 이 새끼들아! 똑바로 못 들어? 그린리버로 보낼 물건이라고! 잘못 보냈다가 그 괴물딱지 같은 마법사 놈이 지팡이 들고 쫓아오면 책임질 거야? 엉? 콜드우드 제국 황태자도 그 괴물딱지 잘못 건드렸다가 정신 나갔다는 소리 못 들었어? 뒤지고 싶으면 혼자 곱게 뒤지라고!”

    부두 쪽 뱃사람들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혈기가 넘쳤다. 물론 좋게 표현하자면 그랬다. 모두가 하나같이 구릿빛 근육을 꿈틀거리며 교역물품을 선박 위에 올리고 있었다. 듣자하니 그린리버, 즉 이안의 조국으로 보내질 물건들 같았는데.

    ‘괴물딱지 같은 마법사?’

    그 발언이 유독 귀에 거슬렸다.

    설마 이안 본인을 얘기하는 걸까?

    그냥 괴물도 아니고, 괴물딱지?

    어감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에이, 그 마법사가 우리 같은 상단 뒤꽁무니나 쫓아오겠습니까? 거 자기네 황태자까지 손바닥에 쥐고 휘두르는 작자라던데, 한평생 호사누리고 살기 바쁠 텐데요. 나라대 나라로 보내는 진상품이라면 또 모를까, 괜히 애들 겁만 먹습니다.”

    고래고래 소리치던 뱃사람 옆으로 왜소한 체격의 남자가 끼어들었다. 하얀 피부와 체격으로 볼 때 선원은 아닌 것 같았다. 아마 교역에 나서는 상단과 관련된 인물이리라.

    “모르는 소리! 내가 듣기론 별의별 곳에 다 영향력을 끼친다고 하드만? 거 뭐냐, 그 나라 마탑을 뭐라고 부르더라?”

    “상아탑이죠.”

    “그렇지! 상아탑! 자네도 알겠지만 그 상아탑이랑 거래 한번 트려면, 심지어 첫 번째 거래상단이 되려면 얼마나 염병을 떨어야하던가? 자네도 상인이니까 대충 알 거 아니야?”

    “그야…… 온갖 더러운 꼴은 다 봐야겠죠.”

    “옳거니! 근데 그 거래상단을 지가 고향에서부터 알고지낸 상단으로 단칼에 갈아치웠다 하더군? 다른 특별한 이유 하나 없이, 오로지 행수가 동향사람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가만히 듣고 있던 이안은 어이가 없었다. 동향사람이라서 포이언 상단을 상아탑의 제1 거래상단으로 지정해줬다? 이게 도대체 말인지 당나귄지 헷갈릴 지경에 이르렀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소문의 와전이란 말인가?

    이안이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하긴, 사람들은 사정을 모를 테니까.’

    용언서로 하여금 비밀경매의 미끼를 만들어주는 대가로 약속했던 사안이니, 겉보기로는 그리 보일 수밖에 없으리라.

    ‘어쩔 수 없는 건가.’

    이안의 고개가 힘없이 저어졌다. 아무리 그렇다한들, 저런 식으로 비춰지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뭐, 학살자 소리 듣는 것보다야 낫겠지.’

    이제야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끼는 이안이었다. 그래, 뭐가 어찌 되었든 전생보단 낫다. 세상사람 모두가 이안의 손에 묻은 피를 두려워했던 전생, 적어도 그때보단 백배천배 나았다.

    “저기…….”

    그리 마음을 정리시킨 이안이 우락부락한 뱃사람과 상인에게 다가갔다. 부두까지 찾아온 목적, ‘두드리는 섬’에 관한 수소문을 시작해보기 위함이었다.

    “엉?”

    두 사람의 시선이 이안에게 쏠렸다. 하나 그것도 잠시일 뿐, 곧 우락부락한 뱃사람이 심드렁한 표정과 얼굴로 대답했다.

    “뭐요?”

    “말씀 하나만 여쭤도 되겠습니까?”

    “얼씨구, 설마 배 태워달라고? 일 없수다.”

    뱃사람은 이안의 위아래를 슥 훑어보더니 계속 말할 것도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다소 억양이 튀는 공국어와 허름한 복장에 밀항시도자 정도로 여겨 버린 모양이었다.

    “아뇨, 그게 아니라…….”

    “그럼 뭐 일이라도 시켜달라는 건가? 그 비실비실한 몸뚱이로? 미치겠구먼. 뱃일이 만만해보이나?”

    사실 이안의 몸뚱이는 비실하다고 표현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전생보다 전체적인 골격이 훨씬 더 커졌으니까.

    성장기였던 12세부터 17세까지 올리버와 격한 수련을 쌓았으며, 제2 황실기사단과 운동까지 병행했다. 전생보다 훨씬 더 좋은 음식을 먹었고, 양질의 엘릭서까지 꾸준하게 복용해준 결과였다.

    “집어치우쇼. 재수 없게 배 위에서 송장 치르기 싫으니깐.”

    그럼에도 우락부락한 뱃사람의 눈에는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근육의 푸짐함으로만 따지자면 올리버도 이곳에선 평균 정도밖에 미치지 못했으니 말이다.

    ‘물론 근력은 누구보다 강하겠지만.’

    아마 이안도 마찬가지일 거다. 무려 마나를 운용할 수 있는 몸이다. 평범한 선원들의 완력에 비하겠는가?

    물론 뱃일을 하러 온 것이 아니기에, 구태여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그것도 아닙니다. 여쭤볼 게 좀 있어서……”

    “야 인마! 물건 다 바닷속에 수장시킬 일 있어? 셋이서 들라고 셋이서! 힘자랑은 마누라 앞에서나 하라고 이 조루새끼야!”

    우락부락한 뱃사람이 다짜고짜 선원들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더는 이안과 대화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비록 뱃사람들이 거칠다고는 하나, 지금은 도를 넘어선 느낌이었다.

    ‘그 괴물딱지가 눈앞에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하나?’

    살짝 짜증이 났던 이안.

    이내 생각을 바꿨다.

    그럴 필요까진 없다.

    다만.

    ‘괴물의 동족 정도가 적당하겠지.’

    굳이 ‘그린리버의 대마법사 이안 페이지’일 필요는 없었다. 평범한 사람들한테야 1클래스 마법사조차 경외의 대상이니까.

    “출항이 금방이라 바쁘신가 보군요.”

    “알았으면 쉰 소리 말고…….”

    “만약, 바다가 얼어붙기라도 한다면.”

    이안이 부두 끝을 향하며 말했다. 은은한 마나가 섞인 목소리인지라 일대 선원들의 귓구멍에 속속들이 박혀들었다.

    “출항은 불가능해지겠죠?”

    “엉?”

    “예정된 일정에 문제도 생길 거고.”

    “이 날씨에 뭔 개풀 뜯어먹는 소를…….”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은데.”

    이윽고 부두 끝자락에 도착한 이안.

    발아래로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봤다.

    “콜드 웨이브.”

    이안이 바다 쪽으로 양손을 내리뻗으며 읊조렸다. 그러자 곧 푸르스름한 냉기가 마나와 한대 섞여 응집되었다. 이는 곧 구체의 형태를 이루었는데, 마치 투석기로 쏘아질 포탄 같았다.

    ‘이 정도면…….’

    눈앞에 펼쳐진 바다와 선박들을 가늠해 본 이안이 냉기의 구체를 바다 속으로 투하시켰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 대답은 얼마 지나지 않아 펼쳐졌다. 또한 충격적이기도 했다.

    콰드득, 콰득, 콰드드득!

    냉기의 구체가 풍덩 빠져버린 부분. 그 지점을 시작으로 바다의 표면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정박된 배들 주변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졸지에 출항은커녕 옴짝달싹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해 버렸다.

    “이, 이게 뭔…….”

    부두 앞으로 펼쳐진 푸른 바다의 일부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 갑작스런 광경에 선원들의 입이 쩍하고 벌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말이 안 되는 상황, 그리고 이 말이 안 되는 상황을 가능케 만드는 존재, 그런 존재라면 하나밖에 없지 않겠는가?

    “마법사……?”

    부두 근처 선원들의 눈이 자연스레 한곳으로 쏠렸다. 바다가 얼면 출항하지 못하느냐 물었던 청년에게로 말이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여쭤볼 게 하나 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야 어쨌건, 다시금 우락부락한 뱃사람에게 다가와 입을 여는 이안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이안을 귀찮은 파리쯤으로 여겼던 덩치가, 이제 식은땀까지 흘리기 시작했다.

    “제, 제가 마법사님을 몰라보고 무례를…….”

    “몰라보는 게 당연하니 넘어가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매, 맥파든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우락부락한 뱃사람의 이름은 맥파든, 이안이 맥파든의 널찍한 어깨를 툭툭 털어주며 말문을 이어갔다.

    “맥파든님. 혹시 두드리는 섬을 아십니까?”

    “예? 두, 두, 두드리는 섬 말씀이신지요?”

    “이 지도에다 표시를 좀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이안이 공국 서쪽 바다의 해안지도 한 장을 펼치며 말했다. 표시만 해준다면 어떻게든 가볼 수 있을 테니까.

    “그, 그것이…….”

    한데 맥파든의 반응이 조금 찔끔거렸다. 두드리는 섬을 모르는 것 같진 않았다. 그 섬에 뭔가 문제라도 있는 걸까?

    “왜 그러십니까?”

    “그러니까…… 그 섬은…….”

    “괜찮으니까 말씀해 보세요.”

    “그…… 애들…….”

    “애들?”

    “애들 잘 때 들려주는 예, 옛날이야기에…….”

    그렇게 맥파든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구구절절 얘기했지만, 핵심은 그랬다.

    두드리는 섬이란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필틴 왕국시절부터 내려오는 전설일 뿐.

    “뭐라도 좋으니 얘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순전히 전해지는 이야기로만 말씀을 올리자면, 그 두드리는 섬은 평범한 섬이 아니라고 합니다.”

    “평범한 섬이 아니다?”

    “우, 움직이는 섬…….”

    민망한 듯 말문을 멈췄던 맥파든.

    그가 어렵게 뒷말까지 끄집어냈다.

    “거, 거대한 섬이 스스로 움직이는데, 옛날에는 그 섬에 사는 온갖 장인들이 가끔가다 육지까지 찾아와서 불쌍한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고, 성벽도 쌓아주고, 옷도 짜주고, 농기구도 만들어줬다고 합니다. 망망대해를 자,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는 섬인지라, 쉽게 찾을 수가 없다는 설명도…… 크흠흠!”

    결국 헛기침까지 내뱉는 맥파든이었다.

    만약 마법사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 ‘두드리는 섬으로 가려면 어찌 해야 하냐’고 물어봤다면 어땠을까? 지금쯤 박장대소와 함께 선원들과 농담이나 따먹고 터, 그만큼 낯간지러운 얘기였다.

    “지금 장인들이라고 하셨습니까?”

    “예? 아, 예. 그, 그렇습니다만…….”

    그러나 이안의 귀에는 전혀 농담이나 따먹을 만한 얘기로 들리지 않았다. 장인들의 섬이란다. 지금 이안이 찾고 있는 핵심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던가?

    ‘실존하는 섬이 분명하다.’

    이안은 확신을 가졌다.

    찾아내기만 하면 그만인데.

    ‘대해를 헤엄쳐 다니는 섬이라.’

    까다로운 조건 하나가 붙어버렸다.

    ‘골치 아프군.’

    이안은 우선 바다의 상태부터 원상복구를 시켜줬다. 그러고는 한참동안 지평선 너머를 바라봤다.

    장인에 대한 실마린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찾았다. 이상한 꼬마 클레반부터 두드리는 섬까지. 아마 저 망망대해 어딘가에 떠다니고 있을 터인데, 그 스스로 움직인다는 섬을 무슨 수로 찾아낼까?

    ‘가만.’

    이안의 고민이 깊어지는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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