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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07화 (107/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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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07화

    38. 장인의 발자취(5)

    “무슨…….”

    저 외부인 놈을 붙잡았던 부하 셋이 순식간에 고깃덩이가 되어버렸다. 바람 같은 게 부는가 싶더니 펑! 하고 폭발했다는 얘기다.

    잭슨은 물론 나머지 수하들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서, 서, 설마……!”

    그러나 당혹스러움도 잠깐일 뿐, 상황을 인지하면 인지할수록 공포가 오감을 마비시켰다. 애당초 당혹스럽다는 표현으로 국한시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마, 마, 마, 마법사……?”

    이 비현실적인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오직 하나, 바로 ‘마법’이었다. 인즉 저 밝은 갈색 머리칼의 외부인이 ‘마법사’란 뜻이리라.

    “으, 으, 으아아악!”

    그 사실을 모두가 깨달았다. 우두머리인 잭슨도 알아챘다. 하지만 이제와 알아챈들 무엇 할까? 그들은 전부 마법사 이안 페이지의 영역에 갇힌 지 오래였는데.

    “죽기 싫으면.”

    이안의 목소리가 모두의 귀로 들어갔다.

    마나가 잔뜩 섞여 들릴 수밖에 없었다.

    “움직이지 마.”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모두가 제자리에 멈췄다.

    잭슨도, 열여섯 명의 수하들도.

    그들은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

    “지금부터 내가 질문을 시작할 건데, 누가 대답하든 상관은 없어. 그냥 아는 대로 대답해 주는 게 좋을 거야. 무슨 소린지 알겠지?”

    이안이 동의를 구하듯 묻자 겁에 질린 사내들의 고개가 일제히 끄덕여졌다.

    “클레반, 그 아이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걸 말해. 어디서 만났는지, 왜 너희를 돕고 있는 건지, 그 아이한테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아냈는지. 뭐든 좋으니까.”

    그 질문에 잭슨 패거리의 대답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너 나 할 것 없이 알고 있는 모든 기억들을 고해 바치기 시작했다.

    살고자 하는 열망이 진득하게 느껴졌다.

    “워, 원래 기억을 잃고 떠돌던 부랑아입니다.”

    “성격이 하루가 다르게 벼, 변하더군요.”

    “처음엔 사내놈이 생긴 게 반반하고 어려서, 그쪽 취향을 가진 귀족한테 팔아넘기려고 했습니다만…….”

    “워낙 정신에 하자가 있는 놈인지라 팔리질 않아서…….”

    “가만 두니까 웬 조각상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집요할 정도로 드래곤 모양만 만들었습니다.”

    “그놈이 만든 조각이 조금 시, 신기했습니다.”

    “조각에서 빛이 나오고, 소리도 들리고…….”

    “그, 그래서…….”

    놈들이 대답은 참으로 다양했다.

    하지만 모두 사실인 것 같았다.

    이야기가 큰 줄기로 흘렀으니까.

    ‘요약하자면…….’

    놈들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잭슨 패거리는 본디 공국 내 귀족들에게 온갖 용도의 노예들을 공급하던 인신매매업자였다.

    언제나처럼 팔아먹을 인간을 물색하던 도중, 기억을 잃은 채 떠도는 소년 클레반을 생포했다. 처음에는 반반하고 어려서 그쪽 취향의 귀족한테 팔아치우려고 했으나, 다중인격이란 문제가 처분의 발목을 잡았다.

    ‘그러던 와중에 드래곤 조각상을 만들기 시작했고.’

    한데 그 결과물이 상상 이상이었다는 얘기였다.

    스스로 빛을 발하며 소리까지 내는 마법의 조각상, 잭슨은 이거다 싶었다. 마침 귀족들의 비위나 맞춰가며 개처럼 사는 것도 지겨웠던 참에, 자신들 역시 귀족이나 왕처럼 살아볼 방도가 떠올랐다.

    ‘바로 계획을 꾸몄다.’

    그때부터 잭슨과 그 무리들은 계획을 세웠다.

    먼저 사이비 종교를 지지대 삼아 구석진 마을에 정착했다. 그 마을이 바로 흉년과 약탈에 시달리던 보르돈 마을이었다. 자신들을 ‘용의 사제’라 소개하며 드래곤 석상을 보여줬고, 먹을 것과 입을 것까지 지원해주며 안정적으로 스며들었다.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겠지.’

    놈들은 그렇게 마을을 장악했다. 마을 관리를 명받은 귀족 가문의 중간 관리자조차 뇌물을 먹여놨으니, 표현 그대로 독립된 자치 마을이 탄생해 버린 셈이었다.

    “흐음.”

    이안이 팔짱을 낀 채 생각했다.

    놈들의 이야기는 딱 거기까지였다.

    클레반의 출신지나 정체는 모르는 것 같았다.

    “부디 선처를…….”

    “제발 살려주십시오! 제발…….”

    “한 번만, 한 번만 살려주신다면…….”

    놈들의 애원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안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부족한데.”

    잭슨과 그 무리들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부족하다니, 그들은 진심으로 모든 것을 얘기했다. 오직 살고자 하는 일념 하나로 한 톨의 거짓조차 내뱉지 않았거늘.

    “중요한 게 빠진 느낌이야.”

    “더,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

    “말해. 없어도 한번 짜내봐.”

    “그, 그, 그, 그게, 그…….”

    말까지 더듬는 잭슨과 무리들.

    모두의 시선이 잭슨에게 쏠렸다.

    놈이야말로 우두머리 아니겠는가?

    제발 뭐라도 해보라는 눈빛이었다.

    “그러니까…… 그…….”

    “없나보군.”

    “프, 프, 프란! 프란!”

    “……?”

    잭슨의 말에 이안의 표정이 일순간 굳어버렸다.

    프란, 분명 익숙한 단어였다. 문제는 그 단어가 왜 여기서 튀어나온단 말인가? 전혀 생각지 못한, 뜬금없는 단어인데.

    “……자세히.”

    “그, 그놈이 가끔 그나마 정상적인 인격으로 말할 때가 있었습니다. 저도 딱 한번 봤는데, 그때 그놈이 그랬습니다! 프, 프란님은 어디에 계시냐고, 더는 영생따위 필요없다고. 무슨 헛소린가 싶어서 무시하긴 했습니다만…….”

    심지어 사람의 이름이란다.

    물론 프란이란 이름은 흔하다.

    어느 국가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문제가 있다면, 아무리 흔하다고 해도.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름.’

    그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름이라면 얘기가 달라질 터. 분명 아버지의 성함이 ‘프란 페이지’였다.

    모름지기 남자의 이름은 쉬운 것이 좋다며 아들 이름까지 ‘이안’으로 지어줬줬던 양반, 이안 역시 흔해빠진 이름 중 하나였다.

    ‘왜 하필 아버지의 이름이……?’

    물론, 어디까지나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이 높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흔해빠진 이름이니까. 그럼에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잊고 있었던 아버지의 이름을 너무 갑작스럽게 들어서일까?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분명…….’

    이안이 아버지에 대해 아는 점이라곤 극히 일부였다.

    해봐야 프란 페이지란 이름을 가졌다는 점, 귀족도 아니면서 페이지란 성을 강조했다는 점, 일평생 떠돌이 모험가였지만 어머니를 만나 정착했었다는 점, 그리고…… 오크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외모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단점까지.

    “…….”

    이안이 한동안 침묵하자, 슬슬 눈치를 살피기 시작하는 잭슨과 패거리들이었다. 이제 자신들을 살려주는 걸까? 그런 희망이 새록새록 피어날 때쯤.

    “또 없나?”

    “이, 이제 정말로 없습니다. 저희가 드릴 수 있는 얘긴 모두 최대한으로 쥐어짜냈습니다! 정말입니다! 제발 믿어주십시오!”

    잭슨이 넙죽 엎드리며 애원했다.

    나머지 수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살고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믿어주도록 하지.”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

    “살려준다고 한 적은 없는데.”

    “……?”

    잠시 혼란에 빠졌던 잭슨과 무리들.

    이윽고 이안의 말뜻을 이해해 냈다.

    놈은 처음부터 살려줄 생각이 없었던 거다.

    “이, 이 찢어죽일 새끼가……!”

    “그건 너희들이고.”

    딱 거기까지였다.

    아주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잭슨과 나머지 열여섯 부하들.

    그들의 길고도 더러웠던 인생사가.

    핏물 한 방울, 살점 한 조각.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후우.”

    홀가분한 표정으로 숲을 빠져나오기 시작한 이안, 표정과 달리 속내는 복잡했다. 하필이면 아버지의 이름이라니, 우연의 일치라 여기면서도 좀처럼 떨쳐낼 수가 없었다.

    ‘클레반, 그 꼬마의 정신을 온전히 만드는 게 우선이다.’

    녀석의 입으로 확실한 얘기를 들어야겠다.

    그래야 이 복잡함도 떨쳐질 것 같았다.

    “음?”

    그렇게 숲 속에서 빠져나온 이안.

    눈앞으로 이상한 광경이 펼쳐졌다.

    ‘마을 주민들……?’

    특별예배당이 자리 잡은 숲과 보르돈 마을의 경계선, 그곳에 마을 주민들이 우르르 몰렸다. 저마다 무기가 될 만한 것들. 예컨대 조잡한 쇠붙이와 단검, 몽둥이 등을 쥐고 있었다.

    “초, 촌장님과 간부 분들께 무슨 짓을 하신 게요?”

    주민 중 가장 나이 많은 자가 앞장서 물었다. 목소리부터 덜덜 떨렸지만, 가진바 용기를 최대한으로 쥐어짜낸 모양새였다.

    ‘……이런.’

    또한 그 물음 덕에 이안 역시 깨달을 수 있었다. 보르돈 마을의 주민들이 왜 무기까지 들고 몰려왔는지를 말이다. 우선 잭슨 무리의 소리가 마을에 닿았을 가능성이 컸다. 제 아무리 깔끔하게 처리했다한들, 중간 중간 새어나간 비명까지 막긴 어려웠으니까.

    ‘게다가 심취했지. 동화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모두 잭슨 패거리의 사이비 교단 행각에 장기간 속아온 사람들이다. 아마 자신들이 속았을 거란 인식조차 없을 거다.

    그들한테 잭슨 패커리는 구원자이며 보호자, 그 자체였으리라.

    “그놈들은 인신매매업자 출신이며, 마법이 걸린 석상으로 보르돈 마을의 여러분들을 속인 겁니다. 아주 계획적으로 말이죠.”

    “마, 말도 안 되는……!”

    이안은 설명을 해보고자 했다.

    그러나 씨알도 먹혀들지 않았다.

    이게 바로 사이비 교단의 위력이었다.

    주민들의 맹목적인 믿음은 강철보다 단단해졌다. 그 잘못된 맹신을 깨부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특히 이들처럼 구석진 마을까지 내몰렸던, 쿡 찌르면 구구절절한 사연이 흘러나올 법한 사람들일수록 더더욱 그랬다.

    ‘난감하군.’

    이안 역시 보르돈 마을의 사람들을 구해주고자 나선 것은 아니었다. 다만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고, 겸사겸사 쓰레기들까지 치워줬다. 오직 그뿐이거늘.

    ‘어쩌지?’

    도대체 어찌 대처해야 좋을까?

    그냥 무시하고 갈 길이나 갈까?

    이안의 고민이 깊어지는 무렵.

    해결책 하나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래, 어차피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어.’

    이들은 이미 사이비 종교에 심취한 자들이다.

    해결책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우며, 그 세뇌에 가까운 상태를 고쳐줄 의무 또한 이안에게 없었다. 대신…….

    ‘나은 방향으로 유지시켜 줄 순 있을지도.’

    이안이 마음을 먹기가 무섭게 새하얀 빛줄기가 뿜어졌다. 텔레포트 주문의 효과였다. 그 느닷없는 공간이동의 목적지는 바로 에반투스의 보금자리, ‘드래곤 레어’였다.

    “에반투스 님.”

    이안이 급히 에반투스를 찾았지만, 그는커녕 아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저 멀리 구석으로 에반투스의 딸이 그물 침대에 누워 뒹굴고 있었다. 참 한가로워 보였다.

    (……응?)

    그랬던 그녀가 둥지 한복판에 나타난 이안을 발견했다. 꽤나 당황한 모양인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까부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고 있었던 인간 세상의 서책까지 떨어뜨렸다. 책 제목은 ‘그린리버의 마법사’, 저자는 ‘루카 루카’였다.

    만약 이안이 봤다면 누군가를 떠올렸겠으나, 아쉽게도 거리가 멀었다.

    (너, 너는?)

    “에반투스 님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그야 오라버니와 가고일의 행방을…….)

    “아, 그렇겠군요.”

    뒤늦게 생각난 듯 고개를 끄덕거린 이안.

    그가 에반투스의 딸에게 말했다.

    “혹시 에반투스 님께서 용의 교단을 운영하실 때 말입니다. 따님께서 직접 업무를 도와드리거나, 직접 전면에 나서보신 경험이 있으십니까?”

    (가, 가끔 고위단원들을 관리해 본 적은 있다.)

    “그거 좋네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내 이름은 왜……?)

    “필요해서요.”

    그 간단명료한 대답에 에반투스의 딸이 입술을 깨물었다. 참으로 건방진 인간이다. 하지만 거역할 수가 없다.

    그는 아버지인 에반투스조차 압도하는 마법사, 심지어 자신과 오라비의 명줄까지 늘려줬다. 그러한 인간을 어찌 함부로 대하겠는가?

    (……헤르넬리아.)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언급했다.

    에반투스보다 훨씬 발음하기 쉬운 이름이었다.

    적어도 이안의 혀 위에서는 그랬다.

    “헤르넬리아 님. 좋습니다. 급한 대로 헤르넬리아 님께서 저를 좀 도와주셔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가, 갑자기 무슨……?)

    이안이 대답 대신 손을 뻗었다.

    헤르넬리아의 어깨를 잡기 위함이었다.

    “가보시면 압니다.”

    이럴 거면 괜찮겠냐고는 왜 물어본 걸까? 어찌 되었든 새하얀 빛줄기가 헤르넬리아와 이안을 집어삼켰다. 물론 그 목적지는 보르돈 마을의 주민들 앞이었다.

    “허억!”

    이안의 재등장에 몰려있던 주민들이 크게 놀랐다.

    갑자기 사라지더니만, 다시금 갑자기 나타났다. 심지어 누군가를 데려왔다. 동료라도 끌고 온 걸까? 한데 그 동료의 생김새가 이상했다.

    사람과 흡사했지만, 결코 사람의 모습이라고 볼 수 없었다. 붉은 날개, 붉은 꼬리, 머리 위로 솟아난 두개의 뿔, 파충류를 연상케 만드는 눈동자, 그리고 그 모든 특징과 상반되는 미모까지. 저것이 정녕 사람이란 말인가? 아무리 봐도 인간이라기보다는…….

    “드, 드래곤……?”

    마을주민 하나가 홀린 듯 중얼거렸다. 흔히 도마뱀과 흡사하다고 알려진 모습과는 달랐지만, 몇 가지 특징만큼은 드래곤을 떠올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좋아. 짐작대로다.’

    주민들의 반응은 이안이 예상했던 그대로 흘러갔다. 이제 마지막 쐐기만 박아 넣는다면 복잡한 상황들을 해결할 수 있을 터.

    “이분께서 물려받은 성함은 헤르넬리아.”

    예정에는 없었던, 이안의 일장연설이 시작되었다.

    “여러분에게 응답을 내려주시는 드래곤, 바로 그분들의 후손이십니다. 거짓된 자들에게 놀아나는 여러분의 모습을 보다 못해, 헤르넬리아 님께서 직접 내려오셨습니다.”

    (무, 무슨 헛소리를……!)

    “이제 아시겠습니까? 저는 그저 사기꾼들을 단죄했을 뿐입니다. 이제부터는 드래곤의 후손이신 헤르넬리아 님께서 여러분을 직접 이끌어주실 터이니, 잘못된 믿음을 하루 빨리 버리시고 새 믿음을 깨우치십시오.”

    헤르넬리아의 얼굴에 어리둥절함이 피어났다.

    다짜고짜 이상한 인간들 앞으로 데려와서는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걸까? 문제가 있다면 바로 저 인간들이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들이 급격하게 변해가고 있었으니까.

    “오, 오오……!”

    “드래곤의 후손이시여!”

    “드디어 강림하셨나이까!”

    “저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부디 저희들을 구원해 주소서!”

    광적인 반응에 당황하기 시작한 헤르넬리아.

    그녀가 뭐라고 반문을 내뱉고자 했지만.

    “경험 좀 살려서, 당분간만 부탁드릴게요.”

    (뭐? 내, 내가 왜……?)

    “어차피 할 일도 없으시지 않습니까?”

    (할 일이 없다니!)

    “뒹굴면서 책이나 읽으시고.”

    (그, 그건…….)

    헤르넬리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가뜩이나 머리칼도 붉은색, 날개도 붉은색, 꼬리도 붉은색, 눈동자조차 붉은색인데, 이제는 아예 온몸이 붉어질 기세였다.

    “때가 되면 오겠습니다.”

    (자, 잠깐!)

    “그래도 순수하게 드래곤을, 그러니까 헤르넬리아 님의 증조부를 믿는 분들이십니다. 자손으로서 책임은 지셔야죠. 그게 마땅하다고 봅니다만.”

    (무슨 그런 억지…….)

    “믿고 갑니다. 헤르넬리아 님을 믿는 게 아니라, 에반투스 님의 가정교육과 붉은 용 핏줄의 숭고함을 믿어보도록 하죠. 그럼.”

    헤르넬리아는 계속 따지고자 했다.

    하지만 그럴 방도가 없었다. 그 대상이 되어야 할 이안이 빛줄기와 함께 사라져 버렸으니까. 심지어 그녀는 텔레포트조차 사용하지 못했다.

    (이, 이게 도대체…….)

    어이가 상실해 버린 듯 중얼거리는 그녀.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이렇진 않을 거다.

    “헤르넬리아 님!”

    “헤르넬리아 님!”

    “헤르넬리아 님!”

    그런 헤르넬리아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민들의 외침만 하염없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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