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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06화 (106/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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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06화

    38. 장인의 발자취(4)

    “……?”

    불과 몇 시간 전과는 달랐다. 처음 만났을 때엔 자객 취급을 하며 맹렬히 달려들더니만, 지금은 언제 그랬었냐는 듯 무미건조한 표정과 눈빛으로 이안을 응시했다.

    “날 기억하지 못하나?”

    클레반은 좀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아까는 극도의 흥분상태였던 탓에 말이 통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말이 통하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답답한 건 매한가지였다.

    ‘미첼 그린리버가 만났다던 그 장인은 아닐 테고.’

    약 삼백여 년이란 세월의 흐름을 차치하더라도, 클레반은 일기장에 묘사된 장인의 특징과 전혀 다른 존재였다. 검은 머리카락도, 시체처럼 창백한 피부도 없었다.

    “내 말, 알아듣겠어?”

    이안이 그린리버 제국어로 운을 띄워봤다. 여러 언어에 능통했다는 일기장의 묘사를 확인해보기 위함이었다. 물론 클레반은 알아듣지 못한 듯 눈만 껌뻑거리는 게 전부였다.

    ‘뭔가 연관이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은데.’

    그럼에도 이안은 장인과 클레반의 연관성을 함부로 일축시킬 수 없었다. 아티펙트의 원리를 다루는 능력, 바로 그 확실한 공통점이 둘 사이에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분명 연결고리를 갖고 있을 터.

    이 꼬마가 또 다른 장인이거나.

    혹은 장인의 후계자 중 하나거나.

    기타 관계를 가진 제3의 누군가거나.

    가능성은 상당히 많았다.

    ‘시작부터 운이 좋았다.’

    글쎄, 과연 행운뿐이었을까?

    어찌 되었든 단서를 찾아냈다.

    생각보다 쉽고 빠른 결과였다.

    “꽤 신기한 재주를 갖고 있던데…….”

    이안이 눈을 가늘게 뜨며 읊조렸다.

    클레반이 알아들을 수 있는 공국의 말이었다.

    “그 재주, 어디서 배운 거지?”

    “…….”

    물론 클레반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나 여기서 멈춘다면 이안이 아닐 터.

    계속해서 묻고 싶은 질문을 이어갔다.

    “촌장을 도와주는 이유가 따로 있나?”

    “…….”

    “예를 들자면, 협박당하고 있다거나.”

    “…….”

    “폭행의 흔적은 없는 것 같고, 약물인가? 아니면…….”

    “그, 그만…….”

    이안의 계속되는 질문에 클레반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진정제의 효과 때문일까? 아직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것 같았다.

    “흐음.”

    그 괴로워하는 모습에 이안이 자신의 턱을 매만졌다. 이대로 질문을 던져봐야 시간낭비였다. 이 클레반이란 꼬마로부터 단서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정상적인 사고력부터 되찾아주는 게 우선일 것이리라.

    ‘그 촌장 놈부터 만나봐야겠군.’

    클레반을 어찌 알게 되었는지, 어떻게 데리고 있는 건지,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은 어찌 알아챘는지, 기타 등등 그 촌장이란 자에게 물어볼 사항들이 참으로 많아졌다.

    ‘순순히 대답해 주지는 않겠다만…….’

    이번에야말로 ‘무력의 힘’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애당초 놈은 수면제까지 사용해 가며 이안을 노리지 않았던가? 망설일 필요가 조금도 없었다.

    “한숨 자고 있어라.”

    이안이 꼬마 클레반을 재워줬다.

    정신적으로 불안해보인 까닭이었다.

    이럴 때는 잠을 자는 게 최선일 터.

    “그럼 이제…….”

    텔레포트 주문과 함께 창고 집에서 빠져나온 이안, 순간이동의 목적지는 촌장한테 안내받았던 사랑방 내부였다. 조만간 촌장이나 그 수하들로부터 기별이 오겠지.

    “괜찮으시다면, 저희와 같이 특별예배를 올리시지요.”

    아니나 다를까, 얼마간 후 촌장 잭슨이 찾아와 예배 이야기를 꺼냈다. 드래곤 석상도 고쳐졌겠다, 안정적으로 ‘여행객 리안’을 털어먹어볼 만반의 준비가 끝난 것 같았다.

    “특별예배가 정확히 뭐죠?”

    “저희 보르돈 마을에는 촌장인 저 말고도, 마을의 여러 문제들을 분담해 관리하는 주민 분들께서 여럿 계십니다. 행정상의 간부쯤이라고 설명드릴 수 있겠군요.”

    그 말에 이안이 조소를 삼켰다.

    행정상의 간부들은 얼어 죽을.

    함께 마을을 장악한 무리들이겠지.

    “그 간부 분들과 합동으로 올리는 예배입니다. 개인적인 바람과 사정을 기도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마을 전체를 돌보는 기도가 주된 예배지요.”

    “그런 자리에 외부인이 끼어도 되겠습니까?”

    “안될 건 없습니다. 아, 대신 특별예배는 마을 중앙의 석상에서 진행되지 않습니다. 따로 마련된 특별예배당이 있죠. 딱히 차별을 두는 것은 아닙니다만, 평범한 기도가 아닌 만큼 조용한 예배를 선호하셔서…….”

    잘도 거짓말을 읊어대는 촌장 잭슨이었다.

    이안 역시 거짓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챘다.

    은밀하게 걸어둔 심문 마법의 효과였다.

    “혹시 다른 곳에서 기도를 올리시는 게 내키지 않으신다면, 기다리셨다가 저녁예배에 참석하셔도 괜찮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안이니까요.”

    촌장 잭슨은 괜한 의심을 사지 않도록 뒷말까지 덧붙였다. 물론 순순히 따라준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모든 수하들을 특별예배당, 그 허울뿐인 숲속에 집결시켜 뒀으니까.

    “으음.”

    잠시 고민하는 시늉을 보였던 이안.

    그가 곧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그 특별예배당이라는 곳도 궁금하군요.”

    “그러시다면…….”

    “참석하도록 하죠.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됐다.

    이제 다 된 거다.

    잭슨이 쾌재를 부르며 앞장섰다.

    자칭 ‘특별예배당’은 보르돈 마을과 조금 떨어진 숲속에 위치했다. 아주 지어낸 얘기는 아니었던 모양인지, 숲속 한복판에도 조잡한 드래곤 석상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그 주변으로는 촌장이 말했던 행정상의 간부들, 즉 수하들의 모습도 보였다.

    “여깁니까? 생각보다 가깝네요.”

    이안이 촌장 잭슨에게 말했다.

    그럼에도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딱히 확인해 볼 필요조차 없었다.

    잭슨의 가식은 딱 여기까지였다.

    빠악!

    대답 대신 돌아온 것은 몽둥이, 그리고 뒤통수로부터 느껴지는 얼얼한 통증이었다. 동시에 이안의 상체 역시 앞으로 고꾸라졌다. 통증의 여파 때문일까? 적어도 촌장 잭슨과 그 무리들은 그렇게 여겼다.

    “그러니까, 약 먹고 자빠져 잤으면 얼마나 좋아? 그럼 우리들도 편하고, 댁도 편히 갔을 텐데. 하여간 운도 지지리 없어요. 지지리.”

    이안의 휘청거림을 확인한 잭슨의 말투가 돌변했다. 마을에서 보여줬던 그 사근사근하고 정중했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었다.

    “우리도 이러고 싶진 않았거든. 이만 손 씻고 살려고 마을 하나 접수한 거 아니겠어? 근데 인간한테는 왜, 그 버릇이란 게 있잖아? 직업병 같은 거.”

    촌장 잭슨이 이안에게 뚜벅뚜벅 다가왔다. 아까까진 볼 수 없었던 음흉한 미소와 함께였다. 다른 사람이라 해도 속아 넘어갈 정도였다.

    “그걸 왜 자꾸 자극하느냐~ 이 얘기야. 그것도 얼굴에 노잣돈 많은 티까지 팍팍 내고 다니면서. 엉? 그 기름기 좔좔 흐르는 면상이 눈에 보이는데! 참을 수가 있어야지.”

    잭슨과 총 열아홉 명의 수하들은 과거 로 공국 일대에서 활동했던 인신매매업자였다.

    지금은 보르돈 마을에 정착해 왕처럼 군림하고 있었으나, 가끔씩 지나가는 여행객들을 털어먹기도 했다.

    가진 것을 빼앗고 은밀하게 죽이든가, 경우에 따라선 옛 경험을 되살려 현직 업자들에게 팔아넘겼다. 평소 잭슨과 무리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종의 ‘취미생활’이었다.

    “그냥 마음 편하게, 운이 좀 나빴다 생각하시라고.”

    잭슨이 단검 한 자루를 꺼냈다. 그러자 수하들 역시 익숙한 듯 이안부터 일으켜 세웠다. 이안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껏 떨궈진 고개가 겁에 질린 것처럼 보였다.

    “한 따까리 하는 놈인 줄 알고 죄다 모아놨더니만, 이거 내가 괜한 짓을 한 것 같구먼.”

    손에 쥔 단검을 빙그르 돌려본 잭슨.

    그가 이안의 복부에 칼을 찔러 넣었다.

    망설임은 물론, 거리낌조차 없는 것 같았다.

    “……엉?”

    한데 잭슨의 고개가 갸우뚱 돌아갔다.

    손으로 전해져야할 느낌이 이상했다.

    살을 파고드는 특유의 감각이 없었다.

    “뭐, 뭐야?”

    황급히 단검을 거둔 잭슨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단검의 날붙이가 통째로 사라져 버린 탓이었다.

    원래부터 날 부분이 없었던 물건처럼 손잡이만 덩그러니 남았다는 얘기다. 잭슨은 눈치챌 수 없었으나, 이는 바로 이안이 펼친 ‘웨폰 브레이크’ 주문의 효과였다.

    “이게 왜……?”

    잭슨이 당혹스러운 눈으로 이안을 바라봤다.

    방금만 해도 고개를 푹 떨구고 있지 않았던가?

    분명 그랬던 자가 어느새 얼굴을 들고 있었다.

    아주 살벌하면서도 무감각한 눈빛이 느껴졌다.

    ‘가, 갑자기 눈빛이…….’

    잭슨은 이안을 속였다. 마을에선 한없이 정중하고 서글서글했던 젊은 촌장의 모습이었지만, 숲속으로 들어온 이후부터는 본색을 드러냈다. 그런데…….

    “운이 나쁜 건 너희들이겠지.”

    “……뭐?”

    이 숲속에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존재.

    아무래도 잭슨 자신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으, 으아아아악!”

    가장 먼저 비명을 터뜨린 쪽은 잭슨의 수하들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안을 붙잡고 있었던 손바닥으로부터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으니까.

    마치 화상과도 같았지만, 불의 영향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제된 냉기가 이안의 몸뚱이에서 피어올랐다.

    “내가 무감각해진 건지, 아니면 이 머리통에 문제라도 생긴 건지. 요즘은 화가 잘 안나. 너무 말도 안 되는 적이 생겨서 그런가?”

    이안이 자신의 뒤통수를 훔쳤다.

    붉은색 피가 여실히 묻어났다.

    그는 잭슨의 기습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최소한의 방어 주문만 펼쳤다.

    딱 두뇌와 장기만 보호되는 주문 말이다.

    덕분에 얼얼한 통증이 전신으로 느껴졌다.

    “아프네.”

    피 묻은 손을 탁탁 털어버린 이안.

    순식간에 말라붙은 피가 가루처럼 흩날렸다.

    “이제야 화도 좀 나는 것 같고.”

    이제 화가 좀 나는 것 같다.

    그 나지막한 목소리가 끝나는 동시에.

    후우우우우웅-!

    강렬한 마나의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 나왔다. 뿐인가? 이안을 붙잡았던 수하들의 몸뚱이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육신이 갈기갈기 찢어진 것도, 화마에 불타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표현 그대로 ‘증발’해버렸다. 외마디 비명은커녕 핏물조차 남길 수 없었으니까.

    “어…… 어?”

    잭슨의 입이 쩍하고 벌어졌다.

    아직 상황조차 파악하기 힘들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버린 거지?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고?”

    잭슨의 칼부림에 일말 거리낌이 없었듯, 이안 역시 일련의 행위에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못했다.

    이들은 이안이 정해둔 ‘범주’를 넘어선 존재였다. 이안을 협박했던 도둑 길드도, 윗선의 결정으로 징집되었던 콜드우드 제국의 군대도, 자식을 살리고자 고군분투했던 드래고니안 에반투스도. 모두 그 기준을 넘지 못했기에 살생하지 않았다.

    “그건 내 입장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그 반대로 이안의 손에 죽어나간 존재들, 예컨대 어머니를 욕보였던 모그리안 영지의 병사부터 레디오를 공격했던 비적들, 콜드워커의 암살자와 라그나르 그린리버까지. 그들은 모두 이안만의 ‘범주’를 넘어섰고, 예외 없이 죽음을 맞이했다.

    “근데 나한테도, 너희들처럼 버릇이 하나 있어.”

    촌장 잭슨을 포함한 보르돈 마을의 사기꾼들은 후자에 속했다. 조금 애매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으나, 방금 전부터 확실해졌다. 이제 놈들도 범주를 넘어섰다.

    “쓰레기가 눈에 띄면, 가급적 치우는 편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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