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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04화 (10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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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04화

    38. 장인의 발자취(2)

    “자객!”

    갑자기 웬 자객?

    갸우뚱거린 이안이 손아귀로 마나를 끌어 모았다. 올리버의 검이라면 모를까, 저런 꼬마가 휘두르는 검이야 손으로도 잡을 수 있었다. 예상대로 가볍게 낚아채 빼앗아 버렸다.

    “헛!”

    검을 휘둘렀던 꼬마가 주춤주춤 물러났다. 나름 회심의 일격이라고 여겼던 탓일까? 적잖이 충격받는 눈치였다.

    “오호라, 이번에는 제법 비싼 자객을 보내셨군? 암! 대륙 최고의 천재를 암살하는 대업인데, 이 정도 자객은 보내야지!”

    “나는 자객이…….”

    “시끄럽다! 그래봐야 자객은 자객! 죽여주마!”

    꼬마의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품으로부터 단검 한 자루를 꺼내더니 두 번째 공격을 시작했으니까. 물론 이안의 입장에서는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았다.

    ‘여기가 어디지?’

    이안은 장난보다 못한 꼬마의 공격을 피하며 주변부터 둘러봤다.

    분명 로 공국 내에서 최대한 서쪽으로 오고자 했다. 목적지인 필틴 영지가 로 공국의 서쪽이니 말이다. 밤이 깊어졌던 그린리버의 황성과는 달리 이곳은 아침 해가 쨍쨍했는데, 이 시차로 봐선 로 공국의 영토가 확실한 것 같았다.

    ‘내가 이런 마을에 온 적이 있었나?’

    주변은 자그마한 마을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을의 입구쯤으로 보였다. 이번 생은 아닐 테고, 전생에 와봤으니까 텔레포트도 가능했을 터인데, 그럼에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도대체 이 마을은 어디란 말인가?

    “이놈! 이 자객 놈! 야압! 얍! 야아압!”

    그 와중에도 이상한 꼬마의 공격은 계속 펼쳐졌다. 위협적이진 않았으나, 슬슬 귀찮아지기 시작한 이안이었다. 아무래도 멈춰놔야겠다.

    “슬…….”

    이안이 슬립 주문으로 꼬마를 재우고자 하는 그때.

    “클레반!”

    소란을 느낀 마을의 주민 몇몇이 몰려왔다.

    이 꼬마의 이름이 ‘클레반’인 모양이었다.

    “당장 멈추지 못하겠느냐!”

    그 주민 중 건장한 중년인이 달려와 꼬마를 붙잡았다. 놈의 부모일까? 그 짧았던 의문은 금세 풀어졌다.

    “촌장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자객입니다! 저를 노리고 고용된 자객이 분명하다고요! 갑자기 눈앞에 슉 하고 나타나지 뭡니까?”

    클레반의 말에 중년 ‘촌장’이 이안을 슥 훑어봤다. 물론 자객이란 말은 믿지 않는 것 같았다. 즉시 단검부터 빼앗고 제압했으니까.

    “초, 촌장님? 왜 저를……!”

    “이놈아, 언제까지 자객 타령이나 할 생각이냐?”

    “이번에는 진짭니다! 진짜로 저를 노린 자객이란 말입니다! 맨손으로 칼까지 잡았다고요! 분명 저놈은 훈련된 자객이…….”

    “한동안 잠잠한가 싶더니만 또 이러는군! 누가 이놈한테 무기를 보여준 거야? 엉? 빨리 데려가! 집밖으로 못나오게 하고!”

    촌장의 호통에 주민 몇이 꼬마 클레반을 끌고 갔다. 녀석은 끝까지 자객이니 어쩌니 고래고래 소리쳤지만, 모여든 주민들은 귓등으로도 들어주지 않았다. 많이 익숙해 보였다.

    “휴우, 실례가 많았습니다. 보시다시피 문제를 겪고 있는 녀석입니다. 정신적으로 조금…… 결함이 있지요. 누군가로부터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며 저 난리를 쳐댑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촌장의 정중한 사과가 돌아왔다.

    이안 역시 로 공국어로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고용된 자객도 아니고요.”

    “하하, 물론 그러시겠지요. 제 짐작으로 요 주변 분은 아니신 것 같고, 타지에서 오신 여행객이신지?”

    촌장은 이안의 공국어 억양과 생김새, 복장까지 두루두루 살펴보더니 결론을 내렸다. 바로 그가 타지로부터 온 여행객이라는 결론이었다.

    “예. 마을이 보여서 기웃거려 봤습니다만.”

    “때마침 클레반의 눈에 띄셨군요.”

    “그런 셈이죠.”

    대충 얼버무렸는데, 그럭저럭 잘 넘어간 것 같았다. 이안은 큰 문제가 없는 이상 신분을 밝히고 싶지 않았다. 여기는 엄연한 타국의 영토이며, 그린리버와의 마찰 또한 적은 국가 아니겠는가? 괜히 이상한 소문이나 문제를 일으킬 필요는 없으리라.

    “젊으신 분 같은데 세상여행이라니, 대단하십니다.”

    “젊어서 가능한 일 아니겠습니까.”

    “하긴, 그게 젊음이죠.”

    대화는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전형적인 현지인과 타지 여행객의 대화가 이어졌다. 물론 이안은 평범한 여행객이 아니며, 빨리 벗어나고 싶었으나, 무작정 뿌리치기도 어려웠다.

    “여긴 마을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이안은 이렇게 된 김에 이곳의 정체부터 파악하기로 했다. 분명 기억에 존재하지 않는 마을이었다. 한데 텔레포트가 성공해 버렸다. 전생에 와본 경험이 있다는 얘기였다.

    “이런, 소개가 늦었군요. 촌장 잭슨이라고 합니다. 저희 마을은 보르돈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필틴 영지령에 속한 마을이죠.”

    “필틴 영지령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아무 것도 아닙니다. 리안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리안이란 가명으로 소개한 이안. 그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분명 공국은 통일전쟁 중반쯤에 백기투항을 해왔다. 자연히 여기까지 들어올 필요도 없었었다는 거다. 여행이나 아티펙트를 쫓았던 전생에도 필틴 영지는 논외의 대상이었다.

    분명 그랬을 지언데, 어째서 몸이 기억하고 텔레포트가 발동되었단 말인가?

    ‘잠깐…….’

    곰곰이 생각해 보던 이안.

    얼마 지나지 않아 떠올릴 수 있었다.

    잠시 잊고 지냈던 낡아빠진 기억들.

    혹은 필요하지 않았던 기억들까지.

    ‘가짜 용의 교단.’

    필틴 영지는 로 공국의 서쪽이다.

    그 서쪽이라면 한번 와본 적이 있다.

    이안이 전생에 용언 연구를 돕고자 찾아냈던 사이비 용의 교단, 그 사기꾼 놈들의 활동지역이 바로 공국 서부였다. 전생에는 ‘통일 그린리버 대제국’의 서쪽 끝이었으나, 지금은 여전히 로 공국 영토에 속하고 있을 터.

    ‘까맣게 잊고 있었군.’

    한번 불꽃이 붙은 기억의 재생은 빠른 속도로 번졌다. 전생에 겪었던 사소한 기억들이 조금씩 되살아났고, 마침내 이 마을, 보르돈 마을의 정체마저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사기꾼들의 아지트.’

    전생에 방문했을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이십여 년 후. 이 보르돈 마을의 모습은 결코 지금처럼 온전하지 않았다.

    ‘그땐 다 무너진 폐허였지.’

    동시에 그 사이비 용의 교단의 아지트 중 하나이기도 했다. 드래고니안을 추적하고자 접선했던 도둑 길드의 수장 크루드조차 사이비 교단의 존재를 꿰고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볼 때, 지금도 활동하는 것 같았다.

    ‘이 마을이 전부……?’

    이안은 이미 진정한 용의 교단과 그 창시자 에반투스까지 찾아냈다. 그런 마당에 사이비 교단을 들쑤셔서 무엇하겠냐만, 오히려 흥미가 생겼다.

    가뜩이나 그 커다랗고 날개 달린 도마뱀의 정보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설령 사소하더라도, 혹은 사기꾼들의 헛된 망상일지라도 괜찮았다. 그 정도야 충분히 걸러들을 수 있으니까.

    “촌장님.”

    그때 마을 주민 한명이 촌장 잭슨에게 다가왔다. 그들은 이안을 의식한 듯 몇 발자국 넉넉히 떨어져 귓속말로 대화했는데, 청력 강화가 가능한 이안 앞에서는 말짱 헛수고일 뿐이었다.

    ‘아침예배 시간입니다. 어찌할까요?’

    ‘기도만 예정대로 진행해.’

    ‘저 외부인은 어찌하시고…….’

    ‘제 발로 찾아온 물고기야. 털어봐야지.’

    이안이 엿들었단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촌장 잭슨, 그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미소를 보이며 제 발로 찾아온 물고기, 이안에게 말했다.

    “이거 손님을 두고 실례가 많았습니다. 낯을 가리는 주민들이 많아서 말이죠.”

    “괜찮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보자.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식사라도 함께 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보잘 것 없는 마을이긴 합니다만, 민폐까지 끼친 손님을 모른 척할 정도로 야박하진 않습니다.”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는 촌장 잭슨. 아니, 정말 촌장이 맞긴 할까? 그러한 의문과 함께 대답하는 이안이었다.

    “그럼 한 끼 신세 좀 지겠습니다.”

    “신세라니요. 자, 이쪽으로 오시죠.”

    이안이 촌장 잭슨의 안내에 따라 마을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꽤나 조용한 마을이었다. 아까 그 시끄러웠던 클레반이란 꼬마는 어디로 끌려간 건지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저기 모여계신 분들은……?”

    이안이 가리킨 곳은 마을 중앙, 그곳에는 조잡한 석상 중심으로 여러 주민들이 꿇어앉아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귓속말로 속닥거렸던 그 예배인 모양인데.

    “아, 저희 마을은 아침마다 모여서 기도를 올리곤 합니다. 마을의 오랜 전통이죠.”

    “기도받는 석상이 특이하네요. 날개 달린 도마뱀인가?”

    그 석상은 명백한 드래곤의 형태였다. 아무리 조잡해도 알 수 있었다. 하나 이안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시치미를 뚝 뗐다.

    “도마뱀은 아니고, 드래곤입니다.”

    “드래곤? 드래곤한테 기도를 올리는 겁니까?”

    “신들과는 달리, 기도에 응답을 해주시니까요.”

    “응답?”

    그때였다. 기도를 올리던 주민들로부터 소란이 일어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조잡한 드래곤 동상에서 빛줄기가 뿜어져 나왔으니까. 정말 기도에 응답이라도 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오오오……!”

    “용이시여! 용이시여!”

    “제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해주소서!”

    “내일도 배를 곯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주민들의 기도가 한층 광적으로 번졌다. 그들로서는 정말 기적과도 같은 현상인 것 같았으나, 이안의 생각은 달랐다.

    ‘마법이다.’

    정확히는 마법을 내뿜는 석상.

    석상으로부터 주문이 펼쳐진 거다.

    라이트 주문의 가벼운 변형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의구심이 생겼다.

    ‘저건 마도공학품의 수준이 아니야.’

    마도공학품은 스스로의 힘으로 마법을 일으키지 못한다. 마법이란 이름의 초자연적 현상을 가능케 만드는 존재란 오직 두 부류뿐.

    ‘마법사, 그리고 아티펙트.’

    저 석상은 분명 아티펙트가 마법을 발동시킬 때의 원리와 일치했다.

    ‘하지만 달라.’

    지금껏 이안이 봐왔던 여러 아티펙트와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이 오묘한 괴리감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어딘가 대충, 시험 삼아서 만든 느낌이…….’

    지금까지 이안이 봐왔던 수많은 아티펙트들, 예를 들자면 모그리안 링, 황비의 아뮬렛, 미첼 그린리버의 로브, 대초원의 지팡이 등은 모양새부터가 남달랐다. 소박하면 소박했지 결코 조잡하지는 않았다.

    한데 저 동상을 보라. 조금 손재주가 뛰어난 어린아이가 진흙으로 빚었다 해도 믿어줄 정도였다.

    ‘아티펙트치곤 너무 조잡한데…….’

    이안의 의구심이 깊어지는 그때.

    촌장 잭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추하지만 들어오시지요. 금방 식사를 준비하겠습니다.”

    조잡한 석상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촌장의 집에 도착했다. 촌장의 오두막답게 그 규모가 다른 집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가장 넓게 지어졌으며, 내부도 상당히 깔끔했다.

    “기대만큼 누추하진 않네요.”

    “이래봬도 제가 손수 지은 집입니다. 도시 사람들 저택에야 감히 비할 수가 있겠습니까만, 나름대로 신경을 좀 썼죠.”

    얼마 후, 대접하겠다던 식사라는 것이 식탁 위로 차려졌다. 사실 식사라고 해봐야 으깬 감자를 넣어 끓인 스튜에 푸석푸석한 빵 쪼가리가 전부였다. 대다수 백성들의 통상적인 한 끼이기도 했다.

    “겸상을 해도 괜찮겠습니까?”

    촌장 잭슨이 이안에게 물었다.

    이안 역시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렇게 다소 어색한 식사가 이어졌다.

    이안도 공복이었던 지라 문제는 없었다.

    “혹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디서 오셨는가를 여쭤봐도 될까요? 듣자하니 공국어가 능숙하시긴 해도, 특유의 억양이 조금 다르시더군요.”

    “그린리버 출신입니다. 그곳에서 왔죠.”

    “오! 요즘 아주 시끄러운 동네가 아닙니까?”

    한동안은 잭슨의 질문 세례가 이어졌다.

    그러나 그것도 처음에만 활발했을 뿐.

    점차 말수부터 줄어들기 시작했다.

    “…….”

    대신 이안의 안색과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해졌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예? 아……, 하하! 아닙니다. 입맛에 맞지 않으실 것 같아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맛있게 드셔주시니 저도 모르게 그만……. 하, 한 그릇 더 내어드릴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릇을 받아든 촌장 잭슨이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 쪽으로 돌아간 얼굴에서부터 당혹스러움이 묻어났다. 이안은 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뭐지? 어떻게 멀쩡한 거야?’

    잭슨 자신이 저 외부인에게 내어준 스튜는 평범한 스튜가 아니었다. 강력한 수면제가 섞인 스튜였으니까. 그런데 잠들기는커녕 멀쩡한 꼴로 앉아 한 그릇을 더 달란다.

    ‘너무 적게 넣었나?’

    그래,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맛이 이상하면 눈치챌 것 같아 조금만 넣긴 했으니까. 간단하게 생각한 잭슨이 다시 한 번 수면제를 탔다. 아까보다 조금 더 많이 넣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하나 촌장 잭슨은 알 수 없었다.

    수면제의 양이 문제가 아니란 사실을.

    지금 아주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단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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